이드 2부 – 1015화
1450화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검후를 휘감는 검염.
그 강렬한 열기에 달궈진 공기는 급격한 상승 기류를 만들어 내며 검염을 따라 거칠게 용틀임을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천둥과 같았다.
쿠르르릉!
하지만 이 모습도 잠시.
곧 이에 대응한 검후의 백화난무가 왼쪽으로 회전하며 검염을 밀어냈다. 무엇이 순행이고, 무엇이 역행인지 알 수 없는 힘의 충돌 속에서 열권을 따라 용틀임하던 상승 기류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쐐애애애애액!
그에 따라 발생하는 소음과 제트 기류는 한겨울 눈 폭풍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게 역행과 순행의 회전이 맞물리고, 그에 따라 방향을 잡지 못한 상승 기류가 미친 듯 요동을 치자 그 속에서 재앙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옹-
용권풍. 흔히 토네이도라 부르는 자연재해였다.
“세상에나…….”
반경 이십 미터에, 높이만 삼백 미터가 넘는다.
그 거대한 위용에 클라인 백작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런 자연재해 현상이 두 자루 검 사이에서 태어났다니. 더구나 그중 하나는 마르텔이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이 순간, 클라인 백작은 마르텔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상황은 얌전히 놀라고 있을 여유도 주지 않았다. 검후와 마르텔로부터 에너지를 주입받은 용권풍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아아아아아악!!!
강력한 풍압이 휘몰아치더니, 클라인 백작과 함께 황금마차가 기우뚱했다.
“어엇! 마차가!!”
그에 놀란 클라인 백작이 흔들리는 마차의 문을 붙잡았다.
웃긴 일이다. 마차보다 훨씬 가벼운 그다. 설마 정녕 문짝을 잡는다고 마차를 붙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그나 마차가 날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굉장하네요. 6클래스 마법 수준의 위력이에요.”
라미아의 힘이었다.
그녀가 마차와 일행들 주변으로 방어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 증거로 반투명하고 희뿌연 막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이드는 잘했다며 칭찬을 해 주고는 높이 솟아오른 용권풍을 바라보았다.
“절경이네. 그레센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중원보다 더한 신비가 숨 쉬는 그레센이기에 이보다 더 진귀한 장면은 많고 많았다. 당장 이드도 그런 순간을 만들어 낸 당사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질의 것은 없었다.
오로지 스스로 쌓은 무와 검법에 녹여 낸 검의만으로 만들어 낸 광경이니까.
그런 만큼 이드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아름답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 그와 같지는 않았다.
“기사들은 많이 놀란 것 같아요.”
일리나의 말을 따라 전장을 돌아보니 과연 어느새 대부분의 전투가 멈춰 있었다.
대신 삼삼오오 진을 짜서 용권풍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중이었다. 용권풍의 강력한 힘에 아무래도 싸울 정신이 없었던 것.
그 증거로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천막이나, 모포, 냄비 등은 이미 깨끗하게 날려 가서 보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더해 사람까지.
“어…… 어! 뜨, 뜬다! 누가 나 좀 잡아 줘!”
“저거…… 저거……!!”
동료와 짜고 있던 진이 엉성했던 것일까. 기사 하나가 용권풍에 휩쓸려 날아올랐다. 놀란 동료가 급히 손을 내밀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비행 마법에 걸린 듯 허공에 떠오른 남자는 순식간에 용권풍 안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곧 잔혹하게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는 용권풍의 에너지원, 즉 검후와 마르텔이 뿜어낸 경력이 용권풍 속을 떠도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으면…….”
개죽음이 따로 없다.
동료의 죽음에 그렇게 슬퍼하던 남자였지만, 그는 죽은 동료보다 스스로를 먼저 돌봐야 했다. 진형의 한 축이 무너지며 맨몸을 드러낸 그를 용권풍이 사납게 낚아챘기 때문이다.
“으아아! 놔, 놔라아!”
“으아악!”
그렇게 순식간에 스무 명에 가까운 기사가 용권풍의 먹이로 사라졌다. 다행히 은색 기사단에서는 이런 희생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도 없는 일.
“진형을 이동한다! 기사단은 나를 따르라!”
쉴라는 적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기는 순식간에 동료를 잃은 적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
자연재해로 인해 전투가 잠시 멈추는 순간이었다.
그와 함께 양측 지휘부의 시선이 용권풍을 만들어 낸 검후와 마르텔을 향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지금과 같은 전투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설마 마르텔이 검후를 상대로 이렇게나 싸워 낼 줄이야.
마르텔이 어느새 검후에 비견될 정도로 무위가 높아졌던 것일까.
“어쩌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우리, 살 수 있는 겁니까?”
은색 기사단의 기세에 밀리고, 순식간에 죽어 나간 동료들에 공포로 물들었던 쭉정이 기사들의 마음에 희망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마르텔 경. 부디 이겨 주십시오! 우리를 위해서!”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에 기사들은 한마음으로 신께 빌었다.
스폴이 알았다면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트렸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 웃느라 눈물까지 눈물을 찔끔거린 그녀가 조롱하며 진실을 밝히지 않을까? “너희들의 죽음은 오늘 해가 지기 전부터 정해진 거였어, 이 병신들아!”
물론 검후와 마르텔의 승부는 중요하다.
그러나 은색 기사단은 검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의심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확신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 확신을 깨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검후의 뒤에는 이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함께한 순간부터 이번 일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은색 기사단도 지금과 같은 모습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텔이 보여 주고 있는 활약에 대해서는 내심 인정 중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정하는 것은 오로지 마르텔의 무공적인 측면일 뿐, 검후의 승리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용권풍의 위험 범위 밖으로 전장을 옮긴 쉴라가 잔혹할 정도로 단호하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적에게 쉴 틈을 주지 마라! 죽여라!”
“배신자들의 척살을 이어 가자!”
“이 빌어먹을 년들이! 상황을 봐 가며 덤비라고!”
“좀 쉬자! 너희들은 겁도 없냐!”
이런 은색 기사단에 쭉정이들은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도 진저리를 쳤다.
저기 아직 기세가 등등한 용권풍을 보라.
적, 아 구분 없이 잡아먹는 괴물을 피해 왔으니 잠시 상황을 살피며 쉴 줄 알았건만, 은색 기사단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지 않은가. 정녕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인가.
“씨브아아알!!”
어느새 용권풍에 대한 두려움도 잊고 다시 전투에 몰두하는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시작된 전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미친 듯 휘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진 것이다.
마르텔의 죽음이었다.
신공절학이 품은 공력이 아닌, 순수한 자신의 힘으로 마르텔의 최후 초식을 밀어낸 검후, 그녀는 그 후에도 우직하게 힘으로 검염을 밀어내며 한발 한발 차근차근 마르텔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느리지만 우직한 걸음으로 끝내 마르텔의 앞에 도착해 멈춰 선 검후.
이드는 그에 대해 한마디를 내놓았다.
“내가 옳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네.”
그랬다.
아무리 세상을 속이려 해도 순리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옳다. 그리고 네가 틀렸다. 지금 이렇게 마주 선 이 순간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일리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그게 아닐지도 모르죠. 어쩌면……”
어쩌면?
그러나 일리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가 검후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전, 마르텔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검후가 검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상한 점은, 어떤 형태로든 막아 볼 수 있음에도 마르텔은 아무런 반항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쿵!
마르텔의 머리가 목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일반 남성의 머리 무게는 평균 4.5 킬로그램. 무겁다면 무겁고, 가볍다면 가볍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지금 땅으로 떨어진 마르텔의 무게는 평균을 넘어도 한참 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예로 클라인 백작의 경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
하지만 이런 충격도 마르텔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쭉정이 기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세상이 무너지고 멈춘 것 같은 충격을 느껴야 했다. 이러한 충격은 순식간에 전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도…… 도망쳐!”
“마르텔이! 블러디 혼이 죽었어!”
“개새꺄!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충격은 진실이 되고 공포로 변했다. 순식간에 마음을 채운 공포에 쭉정이들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어차피 마르텔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상태가 아니었던가.
적들의 이런 모습에 쉴라의 눈에서는 더욱 선명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기사라는 자들이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이다니! 지휘관의 죽음에 슬퍼할 줄도 모르는 파렴치한들이라니! “은색 기사단은 비겁한 도망자를 하나도 놓치지 마라!”
“우와아아아아!”
사방으로 뛰는 적들을 쫓기 위해 은색 기사단이 만들고 있던 진이 풀어졌다. 기사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모습에 이드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전투가 끝까지 이어졌다면 자신이 나설 일이 없었을 텐데. 설마 저렇게나 망설임 없이 등을 보일 줄이야.
“결국 다시 나서게 되네.”
“저도 같이 가요.”
일리나가 검을 들며 말했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후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검을 납검한 그녀는 죽어 널브러진 마르텔의 시신을 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땅을 구르고 있는 마르텔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고 있던 참이다.
제자였으며, 배신자였던 마르텔의 머리를 앞에 둔 그녀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모르겠다.’
빈말로도 이해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녀는 잠시나마 홀로 두어야 할 것 같다. 클라인 백작도 그런 마음인지, 별달리 움직이지 않는다.
“라미아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까. 일리나, 가요.”
“네.”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이드와 일리나가 도망자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도망자들은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드와 일리나의 손을 빠져나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드와 일리나는 도망자들이 도망치는 방향을 미리 선점하고 좁혀 들었다.
반대쪽에선 은색 기사단이 도망자들을 추적했다. 그 중간에 갇힌 도망자들은 제대로 된 마지막 발악조차 할 기회도 없이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모든 도망자를 처리하고 다시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어느새 새벽이 물러나고 붉게 해가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