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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20화


1455화

황금마차가 성문을 넘어 소드 팰러스로 들어섰다.

그에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신호에 맞춰 폭죽 마법을 사용했다.

피유우우우-

퍼퍼퍼퍼펑!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도화지 위에 화려한 불꽃이 갖가지 그림을 그려 냈다.

심장을 울리는 폭음과 불꽃의 냄새는 사람들의 흥분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 불꽃이 둘 있었다. 하나는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검이었다.

소드 팰러스와 검후를 상징하는 문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런 검 아래 적힌, 하늘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글자였다.

‘검후님 오신 날’

가까운 영지에서는 충분히 보이고도 남을 것 같다.

그야말로 검후가 돌아왔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싶은 소드 팰러스 사람들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불꽃이었다.

그렇게 불꽃과 함께 황금마차를 지나 보낸 사람들은 이제 검후에 대한 찬사와 환호 대신 술잔을 높이 들기 시작했다.

“검후님의 영광을 위해 건배합시다!”

“건배!!!”

“소드 팰러스의 영원한 가치를 위해 건배!!”

“건배!!!”

“아무튼 모르겠고 건배!!”

“와하하하. 누군지 오늘 가장 마음에 드는 건배사가 확실해! 건배!!!”

거리에 주향이 차오르자, 술이 약한 사람들의 얼굴이 벌써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얼굴 가득 흥분과 기쁨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그리고 이런 축제 가운데 가장 흥분한 사람들은 외부인이었다. 황금마차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

그들은 설마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축제가 이렇게 흥겨울지는 미처 몰랐다. 어쩌면 축제일부터 틀에 박히지 않은 즉흥성 때문이 아닐까.

“이거 좋구마잉!!”

그렇게 사람들이 빠르게 취해 가는 사이.

축제 분위기를 꼬리에 단 황금마차는 어느새 그 호위를 적색 기사단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 또한 검후의 복귀마다 늘 해 오던 일이었다. 완전 무장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적색 기사단의 등장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재밋거리를 안겨 줬다.

이런 기사들의 모습은 특히 어린 소년들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와 꿈을 심어 줬다.

“나 결심했어. 난 커서 적색 기사단의 기사가 될 거야.”

“네가 적색 기사단이면 나는 흑색 기사단의 기사가 되겠어!”

“흥, 배신자들, 너희들만 가니? 나는 은색 기사단에 들어갈 거야.”

“어・・・・・・ 그건 좀…….”

“씨잉! 나빴어, 너희들! 엄마!”

친구들의 놀림에 눈물을 훌쩍이는 소녀의 옆에서 다른 소년 하나도 차분히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난 청색 기사단이 좋아.”

“이야, 여기 오색 기사단의 기사들이 모여 계셨구만.”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꿈을 들은 어른들은 무엇이 그리 흐뭇하고 재밌는지, 배를 잡고 껄껄 웃어 댔다.

그리고 황금마차가 내성으로 들어가기 전,

이런 모습을 보고 들은 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검후 역시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과연 자상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던 검후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삼검왕의 배신에 대해 언제 알릴 거라고 했지?”

“최대한 빠르게 진실을 밝힐 계획이에요. 이틀에서 삼일 후?”

“음, 이 축제는 보통 얼마나 이어지고?”

“그때그때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평균 5일 정도 이어지고 마무리될 거예요.”

“그럼 이번 축제는 망하는 거네? 저기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분노로 바뀌기까지 남은 시간이 3일이라는 거잖아.”

특히 청색 기사단이 좋다고 했던 아이.

과연 그 아이가 진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어쩌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나 않을지 몰라.”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의 관계를 보자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검후가 창밖을 살폈다. 이미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황금마차는 내성으로 들어선 후다.

하지만 검후는 마치 아이들의 모습이 비치는 듯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괜히 축제를 망쳤다고 따돌림을 당해서는 안 되죠. 발표는 조금 늦춰야겠네요. 황제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겠지요. 어때요?”

“과연 소드 팰러스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검후다우신 판단이라고 생각하옵니다.”

“훗, 명예 후작이야말로 내게 좋은 지적을 해 주었소.”

갑자기 격식을 차린 대화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소드 팰러스에 도착할 무렵, 환영 인파로 인해 들떴던 분위기는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음, 나쁘지 않아.’

이드는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쉴라 단장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도착했습니다.”

소리 없이 열린 문밖으로 웅장하고 익숙한 내성의 전경과 함께 단단한 얼굴로 도열해 있는 세 개 기사단이 보였다.

검후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마차에서 내렸다.

이드들도 그녀를 뒤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포근한 바람이 내성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와 끝없이 터지는 폭죽 소리를 실어 왔다. 바람마저 주인이 돌아온 것을 반기는 것 같았다.

검후도 그런 분위기를 느낀 듯 곧게 세운 허리와 어깨에서 힘을 빼고는 푸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장의 특제 호박 케이크가 먹고 싶구나.”

특제 호박 케이크는 검후가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이며, 특히 장기간 소드 팰러스를 떠났다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는 것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찾으실 것 같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거 반가운 소리로군. 자, 들어들 가지 이야기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천천히 하도록 하고.”

검후는 사람들을 재촉하며 걸음을 옮겼다.

모르긴 몰라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을 것이다. 준비했던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색 기사단 중 남아 있는 세 개 기사단도 검후가 꺼내 놓을 이야기를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절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과 곡절들이 있었던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검후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주방장 특제 호박 케이크 하나에 뒤로 밀려 버리고 말았다. 고작 호박 케이크 하나에 말이다.

이드는 어느새 저만치 걸어 나간 검후를 뒤따르며 아연한 표정으로 그대로 굳어 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고는 키득거렸다.

“대단하긴 진짜 대단해. 괜히 검후로 칭송 받는 게 아니라니까.”

“갑자기요?”

“그렇잖아. 방금은 있는 대로 무게 잡으며 한 소리 할 타이밍이었는데, 갑자기 호박 케이크로 방향을 틀어 버렸으니, 딱 영웅담에 나올 법한 장면이지.”

영웅도 그렇고, 유명인들의 일화를 들어 보면 괴짜 같은 면이 상당히 많다. 마치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자 앞서가던 검후가 고개를 휙 돌리며 가늘게 뜬 눈으로 이드를 노려본다.

“노리고 한 것 아닙니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호박 케이크가 먹고 싶었을 뿐이에요.”

“하하하.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오히려 궁금합니다. 검후께서 다른 것 다 제쳐 두고 찾으시는 호박 케이크가 얼마나 맛있을지 말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뭐, 기대해도 좋아요.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케이크의 맛을 떠올린 듯 노려보던 눈초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이어 그녀의 눈이 아직 굳어 있는 기사단장들을 향했다.

“그대들은 오지 않고 무엇하나? 혹시 호박 케이크가 마음에 들지 않나?”

이런 검후에 대한 기사단장들의 반응은 재빨랐다.

“가・・・・・・ 지금 갑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태어날 때부터 호박 케이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기사단 해산! 전원 각자 위치로!”

“추, 충!”

그래도 해야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기사단장의 명령에 기사들은 축제 중에 자신들이 담당하는 위치를 찾아 흩어졌다. 그런 기사들의 표정도 황망하기는 마찬가지.

그들도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무겁고 쓰린 마음으로 검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호박 케이크라니.

“전부터 생각하던 일이지만, 정말이지 가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엉뚱한 분이시라니까. 우리 검후님은.”

“왜? 난 그래서 더 좋은데?”

하지만 어째서인가.

마치 도망치듯 후다닥 흩어지는 기사들의 얼굴에 그늘이 걷혔다. 그들의 얼굴에도 어느새 호박 케이크를 기다리는 검후와 같은 밝은 분위기가 담기고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주방장 특제 호박 케이크는 맛있었다.

무엇보다 양이 어마어마했다.

디저트라고 부르기 염치없을 정도라고 할까. 도대체 검후는 평소에 호박 케이크를 얼마나 많이 먹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이것이 다른 모든 것을 물릴 정도의 맛인가 하는 점이다.

‘이게 그 정도로 맛있지는 않은데.’

일단 이드의 기준에선 결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슬쩍 양옆에 앉은 두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과연 두 사람의 표정도 자신과 비슷하다. 그때 검후가 물었다.

그녀는 이미 다섯 조각의 호박 케이크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어떤가요. 맛있죠?”

“나쁘진 않습니다.”

“호호호. 기대에 미치진 못하는 모양이군요. 사실 이 호박 케이크는 남편이 좋아했어요. 그런 남편의 식성에 나도 익숙해진 것이죠.”

즉, 맛이 아니라 추억으로 먹는다는 말이다. 물론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까운 친인을 떠나보내는 일에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이별은 좀 특별해서 그런지 마음이 쓰렸어요. 그런데 이 호박 케이크를 먹으니, 그 쓰린 마음이 달래지는 것 같아요.”

땡그랑!

“모든 것이 저희의 모자람 때문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주군!”

“면목 없습니다.”

검후의 말에 쉴라를 포함한 세 기사단장이 접시와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검후도 접시와 포크를 내려 두고서 팔걸이를 탁 쳤다. 퉁!

손바닥에서 일어난 무형의 경파가 세 기사단장을 일으켜 세웠다.

“내 이미 지나간 일이라 말했다. 그대들의 탓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보지 못한 탓이라 말했다. 그러니 더 이상 이 문제로 그대들은 용서를 구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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