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23화
1458화
여러 가지 별명이 많기로 유명한 소드 팰러스.
대륙을 다 훑어도 이만한 영지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소드 팰러스의 진정한 근간은 교육 영지다. 무공을 익힌 기사들을 길러 내기 위한 요람.
그런 이유에서 소드 팰러스는 기본적으로 교육적인 분위기가 깔려 있다. 동일한 규모의 다른 영지에 비해 조용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검후가 돌아온 첫날.
퍼퍼퍼퍼펑!
“뭐야, 잔이 비었잖아! 부어, 부어!”
“음냐? 여기가…… 어댜?”
교육적인 분위기는 개뿔.
소드 팰러스는 술과 노래에 젖어 밤을 잊었다.
폭죽이 밤하늘을 밝혔고, 모든 점포와 길에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사람들은 각자 손에 취향껏 술잔과 먹거리를 들고 밤새 거리를 돌아다녔다. 역사와 전통 있는 축제는 아니어도, 소드 팰러스 사람들에게는 검후가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그 하나로 기뻐하고 웃으며 즐길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검후는 그들의 자랑이자 수호신이니까.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간.
각국의 왕과 주요 인사들도 검후의 복귀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황금마차가 등장한 순간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들은 소드 팰러스의 분위기를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전달받았다.
소드 팰러스의 주민과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검후의 복귀 소식을 전혀 즐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축제보다 더 흥미로운 상황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배신과 전쟁보다 더 흥미로운 축제가 어딨을까.
다만 검후의 복귀가 생각보다 조용했기 때문일까.
잠까지 미뤄 가며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달받던 누군가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양 불만을 쏟아 냈다.
“배신당한 주인의 복귀치고는 너무 조용하잖아.”
“배신의 주재자인 삼검왕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부하는 검후가 돌아오기 한참 전부터 검왕과 존 워스가 소드 팰러스를 비웠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주인은 그 말을 비웃었다.
“흥, 배신은 그 혼자 했다더냐? 그에 동조한 벌레들이 어디 한두 마리냔 말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 벌레가 보이면 그 즉시 밟아 죽여야지. 그런데, 봐라. 벌레 밟아 죽이는 소리는커녕, 노랫소리만 들린다지 않으냐.”
“모두 도망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검후의 황금마차에 대한 소식을 접한 순간, 황금마차와 함께 소드 팰러스에 대한 소식에도 귀를 활짝 열고 있었던 이들은 새벽에 일어난 대탈주에 대해서도 바로 소식을 접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그 한 줌도 되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진정 배신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으냐? 너라면 가능할까?”
물 흐르듯 무심한 질문.
부하 된 자로서는 참으로 살 떨리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존귀한 주인일수록 그 언행 하나하나에 의미가 깊은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부하는 익숙한 듯 놀라지도 않고 덤덤히 답했다.
“상대는 검후입니다. 제가 검왕이라면 처음부터 배신 따위 마음에 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재미없는 놈, 아무튼, 아직 처리해야 할 남은 벌레들도 많을 텐데 마냥 웃고 떠들고 있으니. 아쉽군.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고 싶은데.” “기사들의 경계가 너무 치밀합니다. 죄송합니다.”
“됐다. 너희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니까. 주인이 돌아오는 날이니, 놈들도 바짝 날이 섰겠지. 당연한 일이다.”
주인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는 평소답지 않은 언행이었다. 그는 언제 어느 때라도 최고의 결과만을 원했기 때문.
하지만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주인의 성향이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나움과 억지는 그대로였다. 다만 그 사나운 충동이 고난을 극복하고 돌아오는 검후와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대리 만족했을 뿐.
당장 이 밤이 지나면 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주인의 모습은 비슷한 시각 비슷한 보고를 받는 대부분의 상급자들이 동일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서 배신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상황이 어찌 변할 것 같은가?”
어느 왕이 가장 신뢰하는 대신을 앞에 두고 물었다.
“어떤 부분에 대한 하문이십니까?”
“전부 다. 남아 있는 죄인들, 삼검왕에 대한 처리 문제.”
“일단 남은 죄인들이라면 전부 잡아들였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보고는 없는데?”
“보고에는 없으나, 저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감히 주인이 돌아오는 길에 똥이 굴러다니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렇지! 응당 그리해야지.”
마음에 드는 말이라는 듯 왕은 무릎을 치며 껄껄 웃었다.
“그리고 삼검왕에 대해서는 조만간 공식적으로 그들의 범한 죄에 대해 밝히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덮고 가지 않는다는 말인가?”
검후의 체면이 달린 일이다.
명예에 치명적인 추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조용히 덮어 놓고 지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에 하는 말.
그에 신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덮을 수 있는 일이 있고, 덮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후자에 해당하지요. 스승에 대한 배신이고, 주군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도 한참 넘었습니다. 더욱이 상대는 검후입니다. 이는 개인에 대한 배신을 넘어 제국에 대한 역심을 드러낸 것. 검후는 둘째치고,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라면 결코 그냥 덮고 지날 수 없는 일입니다.”
“나의 생각도 경과 같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반역을 어찌 덮을 수 있으랴. 티끌만큼이라도 관련된 자는 모두 잡아들여 껍질을 벗겨도 모자란
일이지.”
짧은 순간이지만 왕의 말에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평소 현명하고 인자한 왕이지만, 그런 왕이라도 반역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폭군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만 검후의 결정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배신자들에게 도주를 허락하다니.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소신은 검후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실리와 명예를 두고?”
“그보다는 개인의 복수심과 소드 팰러스의 명예를 둔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복수심이냐, 명예냐.
신하가 꺼내 놓은 선택지에 왕은 가만히 턱을 쓸었다.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물론 그에 대한 답이 왕의 입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두고 어쭙잖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이 나올 것이다.”
“그럴 것입니다. 어쩌면 배신을 경험한 검후가 나약해졌다며 비웃는 멍청이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야말로 어이없는 일이지. 저 검후가 나약해졌다니.”
왕은 마치 그 멍청이를 눈앞에 둔 듯 서늘하게 비웃음을 흘렸다.
그 또한 군주로서, 또 지배자이기에 검후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도주를 허락한 것은 실리와 명예, 복수심과 명예. 이런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힘이다.
힘이 없으면, 절대적인 자신감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결정을 두고 헛소리를 하는 놈은 스스로 병신이라고 자인하는 것과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왕은 근엄한 얼굴로 변해 명했다.
“나는 내 왕궁에서 그런 멍청한 소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절대로!”
“걱정하지 마옵소서. 전하의 신하 중에 그런 모자란 자는 없습니다.”
대신은 깊이 고개를 숙여 왕의 걱정을 녹였다.
동시에 속으로 큰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떠오르는 얼굴만 해도 저와 같은 헛소리를 지껄일 인물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아침부터 상당히 바쁘게 왕궁을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이었다.
왕은 그런 대신을 믿음직하게 바라보고는 탁자 위 어지럽게 널린 보고서 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거기엔 검왕에 대한 추적 불가의 보고가 적혀 있었다.
그간 실질적으로 소드 팰러스를 운영해 온 삼검왕이 이번 배신으로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이든 소드 팰러스에 있어 커다란 공백이 생겨난 것이다. 소드 팰러스의 공백은 곧 제국의 공백.
왕은 그 공백을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제국의 공백을 자국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가장 최고의 방법은 소드 팰러스의 권위를 우리가 가져오는 것인데, 그건 어려울 터이고.”
“……”
왕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대신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드 팰러스의 권위라니. 그건 겨우 삼검왕의 배신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검후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렇다면 소드 팰러스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난 인재를 쓸어 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일까? 어찌 생각하는가?”
“실리를 선택하신 영명한 판단이라 생각하옵니다.”
배신에 가담치는 않았더라도 평소 삼검왕을 추종하던 자들이 있을 것이다.
삼검왕의 죄가 밝혀지면 그들은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이다. 오히려 평소 삼검왕에 대한 지지를 밝혀 왔기에 보이지 않는 의심과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간 삼검왕을 지지하며 소드 팰러스에서 이름을 떨치던 입장에서는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또한 두려울 것이다. 언제든 오해와 의심이 더해져 삼검왕의 배신에 가담한 배신자로 몰려 목이 잘릴 수 있는 일 아닌가. 거기에 삼검왕에 대한 실망까지.
그런 두려움과 회의감이 더해지면 자연스럽게 소드 팰러스를 떠나려는 사람이 생길 터였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최고의 전력들이 주인 없이 세상에 풀려나오는 것과 같다. 그들을 잡을 수 있다면 전력의 상승은 확실한 일.
그야말로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인 상황인 것이다.
“그럼 내일 회의는 그에 대해 논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만간 사실이 밝혀지면 검후에 대한 내 위로의 말과 선물도 함께 준비해야 할 것이오.”
“그에 대해서도 준비토록 하겠사옵니다.”
대신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대륙 곳곳에서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최대한 이득을 얻어 낼 궁리들을 하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