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26화
1461화
아침을 함께한 일행이 다시 식탁 앞에 모였다.
식탁은 아침보다 더욱 화려해졌다. 그야말로 요리 한 점 한 점에서 주방장의 기합이 느껴진달까. 검후가 돌아오고 이제 겨우 이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정작 당사자는 이런 주방장의 정성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현재 식사 예절을 빵과 함께 잼에 발라 먹은 듯 있는 힘껏 소리치는 중이었다.
“3! 셋! 베얼크! 무조건! 절대로!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어요!”
베얼크라는 룬어까지 외쳐 가며 지금까지 없었던 역대 가장 강력한 검후의 자기주장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황급히 자신들의 접시를 사수해야 했다.
“더럽다고오!!!”
검후의 입에서 화산처럼 뿜어지는 파편에 도끼눈을 뜬 라미아가 질색하자 화들짝 놀란 검후가 입을 가렸다.
그와 동시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
어린 시절부터 예절이 철저하게 몸에 밴 검후다. 아무리 흥분을 했어도 입에 있던 음식물을 뿜어내는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기에 너무나 민망한 것이다.
그나마 이 자리에 함께하는 사람이 이드 일행뿐이라서 다행이지, 기사들이나 하인들이 있었다면?
부르르르.
검후는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터질 것 같은 생각을 중단하고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미, 미안해요. 크흠. 음식은 다시 내어 오라고 할게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 우리 접시는 다 안전하니까. 두 사람도 괜찮죠?”
“네, 괜찮아요.”
“저도 괜찮기는 한데, 기분이 좀 그래요.”
일리나와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는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굳이 손대지 않을 음식을 다시 내어 올 필요는 없었다.
그저 보기 좋으라고? 그런 낭비는 사양하고 싶었다.
이드는 식탁 위에 놓인 접시의 절반을 검후 앞으로 밀었다.
“대신 이것들은 네가 다 먹어.”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건 두고. 대답부터 해요. 전 무조건 세 번째 방향이라고 했어요!”
이드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검후가 확실히 다짐을 받겠다는 듯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세 번째 방향’이란 당연히 마르텔의 검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하녀를 따라 내려온 이드는 라미아의 의견에 따라 식탁에서 마주한 검후에게 검법의 개조 방향성에 대한 선택지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검후의 대답이 바로 조금 전의 그 격렬한 반응인 것.
“알았어.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이 방법으로 하면 중도 포기자가 엄청나게 나올 거야.”
검후의 재촉에 일단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그녀가 선택한 방향성에 대한 단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검후는 오히려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
“보물은 자격이 없다면 가질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작 그 정도의 집념과 끈기라면, 그뿐인 거죠.” 그녀가 내놓을 검법은 신기루가 아니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실체가 있는 보물이다.
결국 그걸 얻고 말고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달린 것.
이드는 검후의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옳았으니까.
돼지 목에 진주, 개발에 편자라는 문장도 결국 이와 같은 의미가 아니던가.
이드가 공감하자 검후가 말을 더했다.
“전 오히려 좋아요. 그런 진입 장벽이 어설프게 보물을 탐하려는 멍청이를 걸러 줄 테니까요. 흐음, 아닌 게 아니라. 저도 이번 기회에 그 방법에 대해 배울까 봐요. 이후 내가 만들 검법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부디 참아 주라. 농담이 아니라고.”
이드는 정말 진지했다.
능력이 없다면 배울 자격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드도 검후와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어떤 일에든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고난도 정도껏 힘들어야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을 하는 것이지, 극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버리는 순간 남는 건 절망뿐이다.
보물을 얻기 위해 태산을 옮기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백이면 백 고개를 흔들고 포기할 것이다.
생각할 것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건 끈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무림에서 한때 이름을 날린 무공들이 끝끝내 외면받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다르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으로 도전해서 폐인이 된 촉망 받던 후기지수들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가 소드 팰러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러한 이드의 설명을 들은 검후의 반응은 무거웠다.
“……설마. 그 정도라고요? 그래선 곤란해요. 전 진입 장벽을 원한 것이지, 배울 수 없는 검법을 원한 건 아니었단 말이에요.”
“당연하지. 그런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언급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당연히 적당히 난이도 조절은 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래도 원본이 되는 검법의 수준이 제법 높단 말이야. 자연히…………….”
“진입 장법도 높아지는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해.”
거듭 신중하라 말하는 이드.
그에 검후도 냉수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이 모습에 이드 일행도 다시 점심 식사를 이어 갔다.
조용해진 식탁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리길 얼마일까.
식사는 완전히 손 놓고, 대신 와인을 홀짝거리던 검후가 일리나를 돌아본다.
“만약 일리나가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어요?”
“도가에 대한 공부요. 해당 학파의 무위자연이라는 부분이 엘프의 삶과 상당히 닮아 있는 것 같았어요.”
나름대로 이유가 확실한 선택이었다.
이런 일리나의 대답에 검후는 확실히 마음을 먹었는지 감사를 표하고는 이드를 향해 말했다.
“역시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는 것도 각오한다는 말이지?”
“그에 대해서는 미리 강력하게 경고하겠어요. 그럼에도 도전한다면 행운을 빌어 줄 뿐이죠. 소드 팰러스는 배우는 곳이에요. 가르침을 강요하진 않아요.”
말 그대로 더 배우고 싶어서, 더 강해지고 싶어서 찾는 장소가 소드 팰러스다.
사람을 강제로 끌고 오는 곳이 아니었다.
“뭐, 결국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이니까. 알았어. 그럼 그쪽으로 방향성을 정하고 작업할게.”
“대신 난이도 조절 잘 부탁해요.”
정말 간절하게 부탁하는 검후. 그러나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이드다.
다른 건 몰라도 불특정 다수가 접하게 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조절은 아무리 이드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뭐, 노력은 해 볼게. 가능하면 빨리 포기할 수 있도록.”
“아앗! 그런 비겁한…”
“비겁한?”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 부탁해요.”
수틀리면 그대로 손을 놔 버릴 것 같은 이드의 모습에 검후는 얌전히 꼬리를 내렸다. 부탁하는 을의 입장에서 갑을 이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자신이 언제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마르텔 이놈은 죽어서까지 내 속을 썩이는구나.’
검후는 쓸데없는 숙제를 남기고 가 버린 빌어먹을 제자 놈이 더욱더 미워졌다.
그렇게 쓰린 속을 와인으로 달래던 검후는 이드가 식사를 마치자 생각이 났다는 듯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아, 그리고 황제로부터 전언이 하나 있었어요.”
“황제가 내게?”
이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황제가 자신에게 전할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혼돈의 파편에 관한 문제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그런 문제였다면 검후가 이처럼 느긋하게 말을 전하고 있지도 않을 테니까.
“무슨 전언인데?”
“곧 제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각국에서 사절을 파견할 거예요.”
“그거・・・・・・ 복귀 축하가 목적인 거 맞아?”
“후후. 일단은요. 이 중 성격이 급한 나라에서는 이미 사절이 출발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그 사절과 내가 무슨 상관인데?”
“이드를, 정확히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를 만나고 싶대요. 그에 대한 부탁을 받은 모양이에요.”
“……황제에게 그런 부탁을 한다고?”
여러 가지로 놀랐다는 이드의 반응.
그 속에는 그런 부탁을 한 것은 물론, 부탁을 받았다고 말을 전하는 황제에 대한 의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나섰을 당시 어떻게든 자신을 제국의 전력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던 황제가 아니던가. 그러한 모습은 검후와 화해를 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제국 황가의 일원으로 대우하는 듯한 모습을 중간중간 보였던 황제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다른 나라에 내어 준다고?
“에이, 내어 주는 건 아니죠. 또 내어 준다고 그쪽으로 넘어갈 이드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만약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황제도 이런 요청은 무시했겠죠. 아니, 최소한 혼돈의 파편의 위협만 없었어도 들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혼돈의 파편이라는, 과거에 사라진 줄 알았던 멸망의 사자가 열심히 활동 중임을 알았다.
더욱이 그중 하나가 삼검왕의 일원으로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은 황제로서도 소름 돋는 끔찍한 일이었다.
그에 황제는 판단한 것이다. 무엇이 우선인지.
제국인지, 대륙의 운명인지에 대해서.
“그래서, 만나 볼래요? 일단 시리카의 사절이 가장 먼저 도착할 것 같은데.”
“아니, 필요 없어. 겨우 사절 따위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혼돈의 파편이 이런 사소한 일에 관여하고 있을 리도 없고.”
이드는 생각할 것도 없이 각국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검후는 조금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절이 들고 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 봐도 좋지 않을까요?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시간 낭비야. 그리고 무엇보다 사절을 만나기 시작하면 며칠은 금방 지나갈 텐데. 수정 작업이 느려져도 괜찮아? 몇 주 정도 늦어져도 괜찮은 거라면…….”
시간을 내 보겠다.
그렇게 답하려던 이드였지만, 검후는 머리카락을 날리며 거부했다.
“아아아아! 이드 말이 맞아요! 다시 생각해 보니까 사절 놈들 따위 만나면 골치만 아프지, 좋을 것이 하나도 없죠. 그러니 이드는 수정 작업에만 전념해 줘요. 사절들은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음, 좋은 선택이야.”
이드는 잘 부탁한다며 검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 라미아와 일리나가 손을 흔들며 그 뒤를 따랐다.
“아무리 아쉬운 사람이 지는 거라만. 어휴~”
홀로 남아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던 검후는 문득 난감한 지금 상황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드를 다시 만난 후 처음 경험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요란하고 재밌는 시간이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위험이 따르기도 하겠지만, 두렵거나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갑자기 그 사람에게 미안해지는걸?”
검후는 처음 당하는 을질에 문득 먼저 떠난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이었던 백작은 남편이었지만 상대가 황녀라는 이유로 항상 을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와 되돌아보니, 자신이 남편을 상대로 갑질을 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과연 이 미안함을 갚을 날이 올지.
그렇게 과거를 추억하고 있을 때였다. 집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나타났다.
“검후님. 클라인 백작이 들었사옵니다. 어찌할까요?”
“서재에서 보겠다. 차를 내어 오너라.”
그리 명을 내린 검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맑은 하늘을 살폈다.
밤보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폭죽이 터지고 있는 하늘.
“오늘 하루도 바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