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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27화


1462화

무명 검법에 대한 수정 방향성이 정해지고 삼 일이 지났다.

그간 축제의 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부어라 마셔라!”

“마시고 죽자!!!”

“끝까지 달려! 축제의 마지막까지 목숨 걸고 마시는 거라고!”

식기는커녕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즐긴다기보다는 끝장을 보겠다는 집착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야말로 축제를 뼈까지 발라 먹고 말겠다는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이런 생소한 모습에 멀리서나마 검후를 보기 위해 찾아왔던 방문객들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뭐야. 무서워.”

“저 사람들 눈이 완전 돌아갔는데?”

“소드 팰러스의 축제는 원래 이래? 좀이 아니라 많이 낯설다?”

잔인한 축제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축제 자체를 전투적으로 즐기는 형태는 그들로서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낯설음도 결국 잠깐이었다. 한 잔 두 잔 술이 술술 들어가자 어느새 낯섦은 사라지고 어깨동무를 한 방문객도 전투적으로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먹고 죽어라!!! 크하하하하하!”

테라스로 나왔다가 이런 모습을 본 이드는 못 볼 꼴을 봤다며 이마를 짚었다.

“이게 정말 검후의 복귀를 축하하는 축제가 맞아?”

이건 누가 봐도 마시다 죽자는 술 축제였다.

복잡한 머리도 쉴 겸 잠시 기분 전환을 위해 나온 것인데, 테라스를 지나는 바람에 술 냄새만 가득하다.

이래서야 기분 전환이 되겠냐고.

이드는 혀를 차며 이리저리 휘청대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왜 저렇게들 술을 좋아하는 걸까.

이드도 가끔 술을 마시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건 어쩌면 그가 술을 즐길 뿐, 취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공감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타인. 직접 상대의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좋고 나쁜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이드는 아직 술에 진탕 취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술에 취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이후에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환골탈태를 이루었고, 그레이드론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드의 육신은 오래전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술에 취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그나마 밤이라고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네.”

멀뚱히 술에 취한 거리를 내려다보던 이드가 말했다.

그 말처럼 낮에는 거리에서 꼬물거리던 아이들이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남아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술판으로 끌려갔을지도? 

“아, 그건 또 아닌가? 저렇게 기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으니까.”

마시고 죽자고 달려드는 술꾼들.

하지만 역시 소드 팰러스는 소드 팰러스라는 것일까. 그렇게 술에 취한 중에도 여타 술꾼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술에 잡아 먹혀 정신을 놓는 순간 선을 넘어 버리는 다른 축제와 달리,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선을 넘는 술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았다.

바로 기사들.

사방이 흥청거리는 중에도 중간중간 주요 길목에서 무겁게 중심을 잡는 기사들의 존재에 순간 선을 넘을 뻔하려던 술꾼들도 선을 잘 지키게 되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황당한 일이었다.

어디 병사도 아니고 기사들이 축제의 경비를 서고 있다니. 인력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사실 소드 팰러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영지였다면 여러모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저기 기사들은 모두 기꺼이 열정을 다해 경비를 서고자 자처했다. 그건 모두 검후를 위함이었다.

검후를 위한 축제에 행여나 추문이 생기게 할 수는 없다는 정성이랄까?

이런 기사들이 있으니,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선을 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술보다 생존 본능이 더 열심히 일한 결과랄까?

그리고 이런 덕분에, 지금도 봐라.

축제의 밤을 즐기러 나온 젊은 아가씨들을 보고도 침만 질질 흘릴 뿐, 감히 지저분한 추파를 던질 생각도 못 하고 열심히 술만 들이켜는 청년들의 모습을!

목숨과 성욕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제법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이드는 그런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다 문득 이게 정말 괜찮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젊은 남녀가 화려한 불꽃, 넘치는 술과 음악이 가득한 축제를 같이 즐기지 못하면, 도대체 언제 즐기란 말인데?”

축제란 연인과 결혼과 임신이 폭발하는 기간이 아니었던가?

“어…… 음, 어쩌면 저거 때문인가?”

“아, 찾았다.”

문득 깨달은 사실에 멍하니 중얼거리던 이드는 막 테라스로 나오는 라미아를 바라봤다.

“뭐야, 나 찾고 있었던 거야?”

“네. 수정 작업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방에 없어서 찾았어요.”

“잠깐 기분 전환하려고 나왔지. 그런데 없으면 부르지, 왜 굳이 찾으러 다녀?”

“그럼 재미없잖아요. 그런데 방금 뭘 보고 한 말이에요? 저거 때문이라니?”

테라스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 라미아는 이드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이드가 바라보던 방향을 살폈다.

“별건 아니고. 묘하게 마시고 죽자는 축제 분위기. 그게 혹시 저기서 지키고 있는 기사들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이성에게 쏟아부어야 할 열정을 기사들이 막고 있으니, 그걸 풀 수단이 술뿐이었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

이런 이드의 설명에 라미아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세상에! 그런 끼워 맞추기식 엉터리 이론이 어딨어요?”

“왜?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지 않아?”

“당연히 말이 안 되죠. 기사들 때문에 연애를 못 한다니, 그건 핑계라고요. 가뭄이나 전쟁, 심지어 피난 중에도 다 해요. 그런데 무슨…………….”

“……..”

순간 말문이 막힌 이드였다.

라미아의 말대로 전쟁 중에도 할 건 다 한다. 어디 기사들의 경비가 전쟁보다 무서울까.

“저기 저것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그냥 다 겁쟁이들인 거예요.”

술만 푸는 청년들에게 겁쟁이 타이틀을 붙여 버린 라미아.

이드는 그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 연애가 하고 싶었으면 맨정신으로 하든가. 이드는 묘한 안타까움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나 찾고 있었던 거 아냐? 무슨 일인데?”

“좀 전에 시리카의 사절이 도착했대요.”

“빠르네. 그런데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만나지 않겠다고 확실히 말했던 거 같은데? 검후가 또 부탁이라도 했어?”

“아니, 그건 아니고, 내일 저들이 내성으로 방문하게 될 테니까. 귀찮아지고 싶지 않으면 방에서 나오지 말래요. 어쩌다 마주쳐서 상대하게 되는 건 자기 탓이 아니라고.”

“쓸데없이 꼼꼼하네.’

“어쩔 수 없죠. 요 며칠 이드가 검법 수정을 이유로 어지간히 놀려 먹었어야죠.”

“풋, 겨우 그거 가지고?”

피식 웃음이 샜다.

검후의 반응이 재밌어서 몇 번 골려 주긴 했지만, 전부 장난에 그친 수준이었다. 설마 겨우 그것 때문에 이렇게 경고까지 할 정도일까. 자신이 아는 검후는 결코 그렇게 속이 좁지 않다.

“그렇기는 하죠. 그럼 무슨 뜻인 거 같아요?”

“그거야 모르지. 그리고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조심하라는 대로 그냥 방에만 있으면 되니까. 아쉬우면 말을 하겠지. 그리고 어차피 수정 작업 때문에 밖에 나올 시간도 많지 않다고.”

“그런 사람이 여기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기분 전환이고. 이래 보여도 기본 작업은 끝내고 나왔다고.”

엄청 힘들었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라미아의 가슴에 어리광을 부리는 이드다.

그리고 이런 연인의 모습에 간지럽다며 웃음을 터트리는 라미아.

하지만 이런 이드의 말은 결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처럼 검법의 수정을 위한 기본 작업을 겨우 삼 일 만에 끝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사실 말이 기본 작업이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작업이 바로 이 기본 틀을 잡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 기본 틀이 잡혔다는 건 수정 작업의 삼분지 일이 완료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생각보다 더 빠르네요.”

“축융검법이라는 좋은 본보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어쨌든 검후가 좋아하겠어요. 이 속도면 어쩌면 검법에 대한 발표와 함께 동시 공개도 가능하게 될지 모르잖아요.”

단순히 검법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놀라운 일인데.

그걸 발표와 동시에 공개한다? 아마 충격이 두 배가 될 것이 분명했다. 모르긴 몰라도 사방에서 검법을 배우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그건 모르지. 수정 중에 어떤 돌부리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흥, 그런 엄살은 안 통하거든요?”

라미아는 콧방귀를 뀌며 이드의 머리를 파바박 흩트렸다.

기본 틀을 잡는 작업이 괜히 어려운 일이겠는가. 수정하려는 대상의 핵심을 완전히 간파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작업이 끝났다는 말은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을 했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그야말로 뼈에 살을 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아. 아파. 그만 당겨.”

“내가 뽑은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거든요? 정말 엄살이 심하다니까.”

“아팠다고.”

“네, 네. 그런데, 수정 작업이 끝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라미아는 자신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이드의 머리를 이번엔 단정히 빗어 내리며 말했다.

“글쎄. 생각해 둔 건 몇 가지 있지만, 우선 드래곤들의 복귀를 가장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거든.”

언뜻 복잡하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드 일행만으로 이 넓은 그레센에서 혼돈의 파편을 찾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것 같았으면 찾아도 벌써 찾았겠지.

당장 존 워스를 코앞에 두고도 몰라보지 않았던가.

“최소한 이제 그런 일은 없어야 하니까. 드래곤들이 도와주면 그런 일도 확실히 해결이 되지 않겠어?”

“그렇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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