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29화
1464화
사절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맥을 바닥까지 긁어댔다.
왕의 질책도 물론 두렵지만, 곧이어 속속 도착할 다른 사절단에 뒤처지는 것도 싫었던 그들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결과는 신통찮았다.
아니, 신통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살피면 살필수록 사절단의 혼란만 가중될 뿐, 아무리 쑤시고 다녀도 이거구나 싶은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검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랬다면 차라리 속이 편했으리라.
한데 여기저기 쑤시면 쑤실수록 정확한 실체는 없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대감이 감지되었다. 문제는 이 기대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는 점이었다.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사방을 돌아다닌 사절단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끙끙거렸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알아도 침묵하는 것인지, 몰라서 입을 닫은 것인지…….”
“현재 상황이 문젭니다. 어지간하면 모른 척 정보를 흘려 줄 사람들도 삼검왕의 배신 때문에 조심조심하며 몸을 사립니다.”
“더 환장할 일은, 분명히 뭔가 있기는 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뭔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 뭔가가 무어요?”
“그걸 모르겠다는 겁니다.”
사절단은 너, 나 할 것 없이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그때, 살집 있는 풍채에 나이 든 누군가가 이런 방법은 어떠냐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모습이 볼품없고 사절단에도 처음 속한 그이지만 서열이 제법 높았기 때문이다.
“이럴 게 아니라, 확실한 방법을 써 봅시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벌써 썼지요. 혹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어렵게 생각할 거 있겠습니까? 검후와 가장 가까운 곳을 뚫어 봅시다. 은색 기사단. 거기라면 확실한 소스가 있을 겁니다.”
“・・・・・・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겨우 은색 기사단이라니. 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에잉.”
남자의 말에 사절단의 기대감은 차갑게 식었다.
이런 반응에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당혹해했다. 자신의 의견이 이런 면박을 당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 안 될 건 무엇이오. 본국에서 내 일을 돕던 카타놀 남작의 둘째가 은색 기사단에 속해 있어 꺼낸 말인데.”
“하아~ 예. 나쁘지 않은 의견이긴 합니다. 뭐, 보통이라면 흔히 쓰는 방법이지요. 하지만 은색 기사단에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통하지 않습니다.”
“아비가 부탁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란 말이오?”
“당연히! 들어주지 않지요. 그게 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라고 그 간단한 방법을 몰라서 안 쓰는 것이겠습니까.”
답답하다는 듯, 또 한편으로는 그런 기본적인 생각도 하지 못하냐는 것 같은 비웃음을 담은 말에 의견을 냈던 남자는 수치심에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동시에 오기가 솟았다.
“그대들이 실패한 것은 확실한 연줄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하지만 난 다르오. 그 아이를 어릴 때부터 봤단 말이오.”
“소용없습니다. 소용없어요. 직접 낳은 어미가 와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다 해 본 일입니다.”
“그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닌데…..”
고집을 부리던 남자는 허탈해져 버렸다.
이미 다 해 봤다는데, 무슨 말을 더할까. 카타놀 남작의 둘째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안 된다, 안 된다고 말하던 남자가 말을 더했다.
“은색 기사단은 소드 팰러스의 그 어떤 기사단보다 특별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검후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기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오로지 여인으로 이루어진 기사단. 여기사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 그걸 포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더욱이 주군을 배신해 가며까지 말입니다.”
“아니, 배신까지는 아니잖습니까.”
“맞습니다, 배신, 어디 꼭 검을 거꾸로 들어야 배신입니까. 주군의 명을 듣지 않는 것도 배신인 겁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지요!”
“끄응.”
“그러니 혹여라도 그쪽으로는 생각도 마십시오. 귀한 연줄만 떨어지고, 거기에 더해 원망까지 듣습니다.”
진심이 담긴 충고에 남자도 결국 고집을 꺾어야 했다.
상대의 말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이미 그런 경험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가까운 지인 가운데서 말이다. 그렇게 방 안이 조용해지자 가장 상석에 앉은 사절단의 책임자가 우울한 얼굴로 확인하듯 말했다.
“그럼 결론이 난 것인가?”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이상은 정치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왕께 우리의 무능을 고백해야 한다는 소리로구만.”
“죄송합니다.”
책임자의 자학 아닌 자학에 다른 사람들은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책임자의 말처럼 왕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스스로 고백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뭐, 그런 일을 하라고 책임자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쩔 수 없지. 소드 팰러스는 제국의 땅이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는 확답을 받아야겠네.”
“뒤이어 도착할 다른 사절단 말씀이시지요?”
이유 없이 사절단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듯 눈치가 빨랐다.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부릅떴다.
“방법이 없는 것? 괜찮아. 무능한 것?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가 하지 못하는 걸 다른 나라가 해내는 것은 곤란해! 왕께선 무능한 건 참으셔도, 다른 나라에 뒤처지는 건 못 참으실 분이네. 그러니 말해 보게. 이거. 다른 사절단도 모르는 거 확실한가?”
확답을 바라는 책임자의 말에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서로서로 눈빛을 나눴다. 그중엔 망설임도 있었지만, 분명 공통된 의견은 하나였다.
“확실합니다. 공식적인 발표 전까지 비밀을 지키려는 소드 팰러스의 의지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검후의 의지인 이상, 저 라일론 제국의 사절단이 와도 사정을 파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답을 들은 책임자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들의 판단을 믿고, 나는 왕께 그리 보고를 올리겠네.”
드르륵.
말을 마친 책임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바로 왕께 보고를 하러 나간 것이다. 그렇게 방에 남겨진 사람들은 기묘한 침묵에 급격히 불안을 느꼈다.
“괜…… 찮겠지요?”
“…….”
묘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지인들을 만나 봐야겠습니다.”
“그럼 저도……”
그렇게 순식간에 텅 빈 방에는 한 사람만이 남았다. 처음으로 사절단에 함께하게 된 바로 그.
남자는 확답을 해 놓은 것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사절단의 행동이 우스웠다. 그러나 마냥 비웃을 일은 아니었다.
자신도 지금은 사절단에 속해 있었으니까. 일이 틀어질 경우 자신도 왕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남자는 은색 기사단이 머무는 건물의 위치를 떠올리며 방을 나섰다.
검후가 돌아오고 일주일이 되던 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 같은 축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검후가 직접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도 일주일은 너무 길었어. 아직도 귀에 폭죽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단 말이지.”
아침 식사 자리에 앉은 이드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축제 기간 내내 쉬지 않고 즐긴 소드 팰러스의 영지민들이 새삼 대단하다 싶었다.
“처음엔 저도 그랬어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과연 괜찮을지 몰라. 축제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시끌벅적하잖아.”
“어쩔 수 없죠. 각국에서 사절단이 오고 있으니까요. 그들을 보려고 축제가 끝났음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나라에서 찾아오는 사절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번엔 한 나라도 아니고, 각국에서 사절단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것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닌 사절단이 말이다.
대륙 각지 기사들이 모여드는 소드 팰러스의 특성상 제국 이외의 다른 나라 사람을 보는 일은 흔하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규모의 사절단은 이들에게도 낯선 일이었고, 그렇기에 일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뭐, 대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늘 입성하는 사절단은 어디서 오는 거였지?”
“일리나스 왕국이요.”
냉큼 답하는 라미아.
그에 이드는 오늘까지 소드 팰러스에 도착한 사절단을 꼽아 보더니 말했다.
“이제 세 개 사절단만 더 도착하면 고생 끝이네?”
“끙, 정말 마음 같아선 한 번에 몰아서 끝내 버리고 싶어요. 사절단이 오는 날마다 치장을 하려니, 너무 귀찮아요.”
미뤘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든 얼굴을 한 검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리카 때문이었다. 누군 단독으로 알현을 허락하고 누군 한데 묶어 처리한다? 형평성 이전에 각국의 자존심 문제였다.
“좀만 더 힘내. 세 번이잖아.”
“말로는 참 쉽죠.’
검후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검후다. 딱히 이드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사절단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챙기지 못했는데, 수정 작업은 잘 되고 있어요?”
“전혀 문제없어. 벌써 절반 이상 작업이 끝난 상태야. 빠르면 발표날 전에 완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그렇게나 빨리요?”
“전부 라미아와 일리나가 옆에서 잘 도와준 덕분이지. 나중에 시간 나면 보러 와. 검후님의 의견도 듣고 싶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검후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이드는 잘됐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검후는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은 얼굴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밖에서 이미 메이드들이 각종 장신구와 드레스를 들고 검후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그에 검후는 식당을 나서며 마치 삼류 악당처럼 다음을 기약했고, 라미아는 잘 다녀오라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그런데, 진짜 대충 끝내 버리고 오는 거 아냐?”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한나절은 붙잡혀 있을걸요.”
검후가 괜히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라미아의 말대로 검후가 다시 이드를 찾아온 것은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