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32화
1467화
검법이 공개되는 순간 검후는 뒷전이 된다.
검후에서 검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 가며 주인공이 교체된다는 말이다. 그 말인즉 사절단도 검후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거다. 검후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이렇게 보내긴 아쉬운데.”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가 이럴까. 하지만 어린아이와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산전수전을 경험한 맹수라는 점이다.
살포시 내리깐 눈에서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번뜩임이 아른거린다.
“크흠.”
하지만 어째서인가!
클라인 백작이 보기에 그 번뜩임이 유독 하찮은 것은 맹수는 맹수인데, 작은 고양이의 기백보다 귀엽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적당히 자리를 만들어 볼까요?”
사냥감의 입장에 있는 마스 사절단이 겪을 곤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의 검후께서 즐거우시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보라. 자신의 말에 검후의 얼굴에 실망이 걷혔다.
“방법이 있겠나?”
“그렇지 않아도 이와 관련해 한번 말씀을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공개된 검법을 처음으로 익히게 될 1차 수련생의 선발권을 각국에 배분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굳이? 이건 자질만 있다면 누구라도 배울 수 있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을 텐데?”
검법의 소유권은 검후에게 있다.
그 검후가 검법을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는데. 감히 누가 거기에 대고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이건 처음 소드 팰러스에서 무공을 가르칠 때도 없던 일이었다.
검후의 목소리에도 살짝 불쾌함이 묻어났다.
“당연히 검법의 공개 원칙은 검후님이 정하신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수십 년 만에 검후님이 직접 공개하는 검법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그에 못지않은 수련 희망자가 생겨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을 검후님이 전부 가르치실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경험했지. 불가능한 일이네.”
검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처음 소드 팰러스를 통해 무공을 세상에 공개하던 때를 떠올린 것이다. 무공이야 세상에 공개된 이후 특별할 것도 없어졌지만, 검후의 명성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상태.
이런 상황에 검후가 특별히 공개하는 무공이다.
아마 처음 무공을 공개하던 때에 못지않은 사람들이 몰려오리라.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1차 수련생을 뽑은 다음, 그다음 수련 희망자들을 위한 교수로 써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에도 그런 방법을 사용했지. 음, 그래서 선발권이란 말이 나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거기에 2차는 몰라도 1차에서 밀리는 건 각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큽니다.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검후가 그런 부분까지 살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굳이 서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도 없다. 어차피 배우려는 사람은 수없이 많을 테니, 조금만 배려를 해 주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검후가 즐거움을 찾아 즐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닌가? 이보다 좋은 일석이조가 없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검후의 눈가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좋아. 백작의 말대로 진행하지. 1차 수련생은 각국에서 공평하게 선발하도록 하고, 그를 위해 조정할 자리를 만들게. 단, 전체 인원 중 20%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네.”
“20%가 아니라 40%라도 검후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백작만 믿겠네. 아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검후.
“그렇게나 좋으십니까?”
“아, 제법 기대가 되네. 원래 이런 악취미는 없었는데. 어쩌겠나. 당한 것이 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인가 보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검후님의 넓은 아량을 칭송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스 놈들은 주기적으로 밟아 줘야 조용한 놈들이 아니겠습니까?”
새로 생긴 악취미에 대한 조금은 수줍은 고백.
클라인 백작은 그에 대해 오히려 주군인 검후를 칭송했다. 실로 전형적인 간신배의 모습이지만, 클라인 백작의 의도는 순수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검후가 마스 땅에서 겪은 고초가 얼마인가. 이드의 도움으로 탈출한 후 마스가 보인 행동은 또 어떠한가.
특히 검왕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드는 정황들은 또 어쩔 것인가. 이런 점들을 볼 때 검후가 마스를 괴롭히는 것은 정당하다 못해 정의로운 행동이었다.
오히려 피를 보고 있지 않으니, 그야말로 자비롭다고 해도 좋은 일이 아닐까.
이런 마음을 전해졌는지 검후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럼 전 가서 명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잘 부탁하지. 멜팅 블러드가 공개될 화려한 무대를 준비해 주게나.”
“……”
“음? 어째서 가지 않고?”
항상 믿음직한 클라인 백작의 모습에 당부를 남기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검후는, 어째서인지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굳어 버린 클라인 백작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할 말이 남은 것인가?”
“그・・・・・・ 실례입니다만, 지금 멜팅 블러드라고 하신 겁니까? 이번에 공개할 예정의 검법의 이름을 정말 멜팅 블러드로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지금까지 입안의 혀처럼, 딸바보 아빠처럼 검후를 대하던 클라인 백작이 고장 났다. 일단 눈빛부터가 매우 불손해진 느낌이랄까?
“…..”
검후는 이런 클라인 백작의 모습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알기 때문이다.
마치 똥고집을 부리는 아이 같은 모습. 평소라면 이런 모습에 내심 더없이 기뻐할 클라인 백작이었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이런 세상에! 정말 그러실 생각이시로군요!”
“……안 될 이유도 없잖나.”
어딘가 삐진 것 같은 검후의 말투.
“멜팅 블러드라는 이름 자체로 이미 안 될 이유는 충분하고 넘칩니다. 검후님, 제발! 이름을 다시 지으셔야 합니다.”
클라인 백작이 간절히 애원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검후를 위함이었다.
‘멜팅 블러드라니. 세상이 그 이름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이건 검후 님의 위신이 걸린 문제다!’
그 기준에서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세상이 검후의 작명 센스에 대해 얼마나 의심을 하겠는가 말이다.
“……싫네. 내 마음이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충성스러운 마음을 검후는 알아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똥고집만 늘어나기라도 한 것일까.
검후의 이런 반응에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함께 눈가가 촉촉해진 클라인 백작이 간절하게 외쳤다.
“검후님!! 제발!!!!”
그렇게 같은 날, 다른 일로 두 사람이 애를 태운 날이 무심하게 지났다.
마스의 사절단 단장 포름 훈 백작과 클라인 백작. 서로 너무나 다른 위치에 있는 이 두 사람. 그러나 소드 팰러스라는 같은 공간에 있으며, 묘하게 같은 마음고생을 공유했다.
다른 일이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포름 훈 백작의 사절단은 사전에 검후의 언질에 대해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음에도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마스뿐 아니라, 다른 사절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대신 검후가 각 사절단에 전한 언질에 대한 내용은 나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그 정도면 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을 것이다.
어차피 같은 상황이 아니냐고.
하지만 달랐다. 누구보다 포름 훈 백작 자신이 잘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들과 다른 사절단은 다르다.
모든 사절단이 받은 언질을 자신들은 받지 못했다.
이런 보고에 마스의 왕은 강력한 방식의 방법을 강구하라고 요구했지만, 포름 훈 백작으로서는 난감할 뿐이었다.
이곳은 마스가 아니고 소드 팰러스였다.
평소 마스에서처럼 고성을 지르고 검을 뽑아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만약 그러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의 목이 먼저 잘려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포름 훈 백작은 애가 탔다. 깊은 무력감에 괴로워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클라인 백작은 멜팅 블러드라는 이름 때문에 괴로웠다.
아무리 설득하고 또 설득해도 검후는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도 아니었다. 은색 기사단은 물론 이드와 일리나, 라미아까지 나서 고개를 저었지만.
검후는 요지부동이었다.
이건 멜팅 블러드라는 이름이 가진 무언가에 꽂혔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클라인 백작은 무력감에 괴로워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발표 시간이 가까워 옴에 따라 그 괴로움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사람에게는 무심하게도 시간은 흘러 수도 황제의 중대 발표날이 되었다.
이미 예고가 된 일이기에 수많은 인파가 황성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황제는 황성의 테라스로 나와 삼검왕의 죄를 발표하고, 시련을 이겨 낸 검후의 무사 귀환을 최대한 담담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담담함 속에 깃든 절제된 분노에 몰려든 사람들은 아득한 충격을 받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야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제국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듯한 충격이었다.
삼검왕이 누구인가.
검후가 누구인가.
또 그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제국인들 중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들은 언제가 제국인들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 자랑이 스스로 똥물에 뛰어들었단다. 그 자랑이 이제는 수치가 되었단다.
“・・・・・・그 개자식들을 당장 목매달아라!”
“죽여라!!”
“검후님! 크흐흐흑! 우리 검후님이 받으셨을 충격을 어쩌나. 아이고~~”
망연함도 잠시.
그날 제국의 수도 안티로스는 슬픔과 분노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리고 이날의 발표는 그 어떤 화살보다 빠르게 세상으로 퍼졌다.
당연히 이런 소식은 소드 팰러스에도 닿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있었던 황제의 발표는 포고문이 되어 제국 방방곡곡에 붙었기 때문이다. 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게 정말이라고?”
“믿어지지 않지만, 황제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
“기다려 보게. 당장 내일 검후님의 중대 발표가 잡혀 있지 않은가. 그분께… 그분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 보세.”
그리고 그 어떤 곳보다 충격에 빠진 소드 팰러스는 검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