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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77화


1512화

자존심에 상처가 난 공작들.

실제 공작들은 이 상황을 기막혀했다. 맹세코 이런 취급은 난생처음이었다.

자신들은 제국의 공작이다.

하나하나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올라 자신들의 땅에서는 황제가 부럽지 않은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언제 고블린 취급을 당해 봤을까.

이런 건 저들이 어려워하는 검후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다른 걸 떠나서 인정할 수가 없었다.

혼돈의 파편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렇지, 고블린이라니.

자신들이 제국에서 존경받는 대공작인 이유는 단순히 고귀한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각자의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에 오른 거인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쌓인 업적들이 모여 명예가 되어, 지금의 존경 받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신들이 고작 고블린에 비유하다니.

공작들은 다른 무엇보다 그간 자신들이 쌓아 올린 업적을 폄하 당하는 것을 넘어, 무시당했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명예에 죽고 사는 귀족의 정점에 선 자들이니, 어련할까.

그렇게 따져 보면 당장 폭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들의 수양이 보통이 아니라고 칭찬해야 할 판.

뭐, 그렇다고 진짜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달려 나가지 않았을 뿐, 이드를 향한 눈빛이 매섭다 못해 활활 타올라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맹렬하면 상석에 앉은 황제가 내심 찔끔할 정도다.

‘이거 야단났구나.’

명예 후작은 상대가 필요 없다고 했지만, 과연 공작들이 그냥 넘어가려 할까?

황제는 급한 마음에 검후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강하게 불만을 쏘아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아니, 도대체 왜 저러는 겁니까.’

‘글쎄요. 나야 모르지요.’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말간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검후.

황제의 귓불이 슬그머니 붉어지기 시작했다.

‘일을 이렇게 벌여놓으신 분이, 모른다고 하시면 끝입니까?’

‘일을 벌인 건 명예 후작이지, 내가 아니에요.’

‘이렇게 발을 빼시는 겁니까? 먼저 말을 꺼낸 건 검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저와 쿵짝을 맞춘 건 황제시지요.’

“……”

황제는 순간 말문이 막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중간에 나서서 분위기라도 풀어 주길 바랐는데, 저렇게 나올 줄이야.

귓불이 이제는 티가 날 정도로 붉어진 황제.

검후가 그런 황제가 불쌍했는지, 피식 웃으며 눈짓한다.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니, 걱정 마세요. 명예 후작이 잘 알아서 할 겁니다.’

‘공작들의 자존심을 저리 긁어 놨는데, 어떻게요?’

‘믿으세요. 그냥 믿으시면 됩니다.’

“…….”

그러고는 라미아와 일리나 옆으로 물러서는 검후.

황제는 내심 기가 막혔다.

그녀가 서로 협력을 바란다면서 분란을 수습할 생각은 아예 없어 보여서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그냥 믿으라니.

믿는 것도 그렇다.

명예 후작에 대해서 뭘 알아야 믿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황제가 끙끙 앓고 있을 때였다.

결국 노여움을 삭히지 못한 바이언 공작이 나서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대의 말은 우리가 고블린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오?”

명예 후작이 아니라, 그대라 칭하는 바이언 공작.

그에 이드가 무심한 표정으로 불에 기름통을 던졌다.

“꼭 고블린이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어차피 단순 비유이니까요. 상황에 따라서는 더 약한 늑대가 될 수도 있겠지요.”

늑대나 고블린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바이언 공작은 당장 그렇게 외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대신 그의 이마에 솟은 핏줄이 독사처럼 꿈틀거렸다.

“우리가 겨우 개새끼 수준이라니.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하시는구려?”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사실은 사실인 것을요.”

폭발할 것 같은 바이언을 향해 담담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이드.

사실 그라고 공작들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일.

조금 신경을 쓴다면 공작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저렇게 나와도 공작들도 곧 순순히 납득하게 될 것이다.

눈앞의 진실을 외면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인물들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말이오!”

“어차피 검후 님의 말씀도 있고 했으니, 지금 그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이언 공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터벅터벅 대전 중앙으로 걸어 나서는 이드. 그 발걸음에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

그렇게 대전의 중앙으로 나선 이드가 물었다.

“그런데 보여 드리는 과정 중에 대전이 조금 부서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요. 나람 공작의 공격도 여덟 번까지 견딜 수 있는 최강의 보호 마법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폴카 공작의 대답.

그런데 최강의 보호 마법치고는 라미아의 링크에 쉽게 뚫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굳이 그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뭐, 폴카 공작의 확답도 받았겠다.

무너지면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부터 보여 드리는 것이 혼돈의 파편과 온전히 같은 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입을 땐 양손의 장심이 건곤을 향했다.

“검을 잡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힘의 출력이란 항상 강약의 흐름에 따라 파동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투에서 발휘되는 힘은 극한의 집중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뽑아내는 그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혼돈의 파편이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어쩌면 각자의 분야에 따라 힘의 크기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드는 먼저 자신이 지금 보여줄 것이 혼돈의 파편과 완전히 같지 않음을 경고했다.

직후 이드의 장심에 각각 희고 검은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기운? 아니 어쩌면 빛일 지도 몰랐다.

기운이라고 말하기엔 그 어떠한 마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황제와 공작들도 느끼고 있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소?”

황제가 물었다.

그의 좌우에는 어느새 다가선 나람 공작과 폴카 공작이 서서 그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의문이 남지만, 원소력이 아닌가 하옵니다.”

폴카 공작이 약간 의문을 남기며 답했다.

“원소력이라면, 정령을 부린다는 말이오? 하지만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는 무공을 익힌 기사가 아니오?”

“그래서 의문이옵니다만…….”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답이 이어질 참이었다. 직후의 변화만 없었다면 말이다.

후우우-

딱히 피부를 찌르는 냉기가 느껴지지 않음에도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졌다.

곧이어 어디서 불어온 건지 알 수 없는 미지근한 바람까지.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께 제가 가진 무공 중 최강의 초식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저는 이 초식을 사용하여 혼돈의 파편을 소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무공이 가진 힘을 통해 혼돈의 파편이 가진 힘에 대한 기준을 삼으시길 바랍니다.”

뒤이어 이드의 말이 이어지며 건곤을 담고 있던 그의 장심이 서로를 마주보기 시작했다.

쩌렁!

그 순간!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들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문제는 그 소리가 귀로 들리지 않고, 머리에 직접 박혀 들었다는 것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소리.

소리에 물리력이 담겨 있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뇌가 곤죽이 되어 죽었을 것이다.

눈치 빠르게 그런 사실을 깨달은 몇몇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가운데, 흑백의 기운을 담은 이드의 두 손이 원을 그리며 휘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대전에도 변화가 생겼다.

검은 기운이 위로 가면 대전에는 냉기가 돌았고, 하얀 기운이 위로 향하면 대전의 공기는 뜨거워졌다.

황궁에 설치된 보온 마법이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당연히 아니었다.

쿠구구궁.

열기와 냉기의 교차가 빨라지고 그 기운이 강렬해짐에 따라 두 장심의 사이에서는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다. 묘한 아지랑이가 이드를 중심으로 일어나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이 살짝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주, 중력의 방향을 휘었어?”

마나의 흐름에 가장 예민한 폴카 공작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문을 가질 정신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사람의 눈은 이드를 향해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양손 사이를 향해 있었다.

한뼘.

작은 공간을 두고 마주한 두 손.

그 사이에서 장심에 담겼던 흑백의 기운이 하나로 섞이기 시작했다.

각각 열기와 냉기를 품은 기운.

딱히 대단할 거 없는 열기와 냉기였지만, 그 정 반대되는 기운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돌아가기 시작했고, 

쿠쾅!

순간.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커다란 천둥이 그 속에서 터져 나왔다.

이드는 이러한 과정을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초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초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12 대식 청룡승천공을 12 대식 대지굉광열파과 융합하고, 그 힘을 승천식 원원대멸력으로 하나로 엮어 현현하노니.

혼원식 

이원일기

***

그렇게 초식이 완성되는 순간.

스팟!

이드의 손에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소리로 냄새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 나간 빛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소리도 냄새도 없었을 뿐, 빛의 기둥은 실체를 가지고 존재했다.

무엇보다 천장을 뚫고 솟아 있는 그것이 뿜어내는 기운.

그 아찔한 압력이 대전 전체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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