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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78화


1513화

진은 경비대 소속 병사다.

그는 황궁의 성문을 지키는 자신의 임무를 좋아했다.

황궁을 지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라는 상관의 잔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평민인 자신이 황궁 소속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과 중에 요령이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언제나 정식하게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아니, 최선을 다하려 애썼지만..

“후우~”

“히익! 무슨 짓입니까!”

정말이지 틈만 나면 장난을 치는 이 선임 때문에 쉽지가 않다.

“어, 지금 노려봤냐?”

“저니까 노려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주먹이 먼저 날아갔을 겁니다.”

남자의 귓구멍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고도 무사하길 바라는 것일까 이 사람은? “네가 너무 열심이니까 그렇지.”

“매일 열심히 합니다.”

“오늘은 특히 더 그래 보여. 나는 네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혹시 무슨 일 있냐?”

혹시 경계하는 척 딴생각을 한 건 아니냐? 여자 문제라면 진지하게 상담해 준다. 진은 그런 선임이 한심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바이언 공작님을 가까이 뵐 수 있어서 그랬습니다.”

“맞다. 너 북쪽 출신이지?”

“출신과 상관없이 바이언 공작님은 존경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말 한마디에도 바이언 공작에 대한 존경이 물씬 묻어나는 진.

데님 상병은 그런 진의 모습이 재밌어 낄낄거렸다.

임무의 특성상 수많은 귀족을 보면서 저런 순수한 존경심이 여태 남아 있다니 말이다.

“그래그래. 황제 폐하보다 바이언 공작님이 더 대단하고, 더 굉장해서, 더 존경한다는 말이잖아.” “미치셨습니까? 제가 언제 황제 폐하보다…………….”

진은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황제 폐하를 입에 올리다니. 이 선임 놈이 오늘은 진짜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급히 그의 말문을 막으려던 진은,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찔끔 몸을 움츠리며 말을 끊어 먹었다. 데님 상병은 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야, 왜 그래?”

“지금 천둥이요. 어마어마하지 않았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천둥이라니. 이 새끼 봐라? 말 돌리는 방법이 꽤 신박해졌네?”

능글능글 웃는 데님 상병,

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못 들으셨습니까?”

“봐라, 새끼야. 저렇게 하늘이 파란데, 천둥이 어떻게 치냐?”

그렇게 올려다본 하늘은 데님 상병의 말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엉?”

그런데 가만 보니, 이상하다?

황궁 바로 위 하늘만 동그랗게 뻥 뚫려 있다.

그 밖의 하늘에는 둥실둥실 구름이 떠가는 모습.

뭔가 묘하게 이질적이라고나 해야 할까.

마치 누군가 하늘의 구름을 의도적으로 잘라낸 것 같은 모습.

그리고 기분 탓일까?

황궁 위에서부터 하늘까지 마치 태양이 거기에 걸린 듯 유독 눈이 시리다.

“데님 상병님. 하늘이 좀 이상합니다.”

선임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진.

하지만 같이 하늘을 올려다본 데님 상병은 곧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 진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렇게 열심히 경계를 서더니. 결국 빨리 노안이 왔구나.”

“그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럼 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고 눈이 시리냐? 난 이렇게 멀쩡한데.”

“그것도 그렇지만 구름이…….”

“구름은 항상 지 좃대로 움직였어. 이번에도 그런 거뿐이잖아. 아무리 바이언 공작님이 와서 열심히 하고 싶어도 그렇지. 좀 적당히 해라.”

“쓰읍.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더 이상 장난은 받아 주지 않겠다.

그러한 선임의 반응에 진은 더 이상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었다.

천둥도 그렇고, 눈이 부신 것도 그렇고, 단순히 자신의 착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황궁에 자신보다 대단한 분이 얼마나 많은데, 진짜 이상한 것이 있다면 그분들이 벌써 알아차렸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 진은 단념하고 다시 주변 경계를 시작했다.

슬슬 눈치를 주는 기사님이 무섭기도 했고.

제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어쩌면 운 좋게 발견될 수 있었던 대마법사의 자질이 다시 묻히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밖에서는 그렇게 또 한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이.

천정이 뻥 뚫려 버린 대전에서는 연신 끙끙 앓아대는 소리가 넘치고 있었다.

신음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고귀한 대공작들.

그들은 커다란 바위를 어깨에 짊어진 노예처럼 구겨진 얼굴로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뚫린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천근의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은 모습.

그야말로 불의의 일격이라도 당한 것 같다.

반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폴카 공작의 마법과 나람 공작의 호신강기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황제는 이러한 공작들의 모습을 심각한 얼굴로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이 곧 이드의 실력 발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황제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황제 폐하. 위험하옵니다. 부디 움직이지 마시옵소서.”

폴카 공작이 그런 황제를 말렸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폴카 공작의 얼굴.

강적을 마주한 듯 무섭게 굳어있는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가득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나람 공작은……?’

서둘러 살핀 나람 공작의 이마에도 진득한 땀이 흘러내리긴 마찬가지.

다음 순간 황제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허어!”

황제는 두 공작의 어깨 너머로 이드를 살폈다.

두 손을 마주하고 가만히 서 있는 이드,

검강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것도 아니고, 내력을 폭발시킨 것도 아니며, 공작들을 직접 공격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물론 무엇인가 자신은 알 수 없는 무공을 사용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외형은 어디까지나 고요할 뿐.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공작들을 찍어 눌러 무릎 꿇리기 직전으로 보이지 않은가.

제국 최고의 전력을 이렇게 한순간에 무력화시켜 버리다니.

“이것이…….”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인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세상을 멸망시킬 혼돈의 파편이 가진 힘인가.

황제는 순간 형체가 없던 위험이 선명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놀라움과 충격에 잠시 말문이 막혀 있을 때였다.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황제?

검후가 말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검후와 명예 후작 부인들.

힘들어하는 공작들과 달리 저들 세 사람은 아무런 영향이 없는 듯 평온한 분위기였다.

“검후…….”

-굉장하지요? 아니면 직접 체험하지 않아 아직 모르시겠는지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좀 더 선명하게 체험하는 것이 좋기는 한데.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직접 혼돈의 파편의 힘에 대해 체험을 해보시는 것은?

“검후, 위험한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황제 폐하.”

검후의 권유에 폴카 공작과 나람 공작이 즉각 반응했다.

안간힘을 쓰느라 입을 벌리기도 힘든 아래쪽 공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아무리 불의의 일격이었다지만 저렇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정상일까.

황제는 곧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무렇지 않은 명예 후작 부인과 조금 힘든 기색의 두 공작. 그리고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공작들.

‘허어! 공작들을 제압한 것만도 대단한데. 이렇게나 확실하게 힘의 방향성을 조절할 수 있다니.’

잠시 고민하던 황제는 두 공작의 만류에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검후의 말이 옳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경험을 안전하게 할 수 있겠소. 혼돈의 파편이라는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나도 적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소. 무엇보다 검후와 명예 후작이 날 해칠 것도 아니지 않소.”

-역시 황제다운 대담함이십니다.

황제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검후.

공작들이 검후를 향해 눈총을 주지만 이에 아랑곳할 검후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방글방글 웃기만 하는 검후.

폴카 공작과 나람 공작은 곧 황제가 뜻을 꺾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분명 황제와 검후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었다.

또한 명예 후작이라면 황제를 상대로 선을 지킬 것이라는 작은 믿음도 있었다.

황제가 알아차린 사실을 두 사람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보호막을 거두겠사옵니다.”

“그 전에 전신의 내력을 최대한 돌려 심신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말대로 하였소.”

나람 공작의 말에 따라 전신에서 은은히 내력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황제.

그 모습을 확인한 두 공작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차례대로 보호막과 호신강기를 거두었다.

“허…… 허읍!”

황제는 두 번의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갑자기 전신은 내리누르는 압력에 어깨가 툭 떨어졌다.

꺾일 것 같은 고개를 세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겨우 머리를 세웠다 싶을 때 또 다른 충격이 그를 덮쳤다.

이번 충격의 유형은 압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황제가 받은 타격은 앞의 충격 그 이상의 것이었다.

두 번째 충격은 육신을 짓누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정신과 심상을 타격해서 강한 충격을 주었다. 눈앞이 아찔해지고 손발에 절로 힘이 풀렸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황제는 이러한 동요를 입술을 깨물어 간신히 참았다. 동시의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혹시 흑마법에 당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니었다.

폴카 공작과 나람 공작이 자신을 걱정스럽게 살피고 있었으나, 뭔가 의심스러운 흔적을 발견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명예 후작의 무공이 가진 힘의 여파란 말인가.

지금 공작들이 힘겨워하는 것이 자신이 느끼는 이러한 심신에 대한 충격 때문이란 말인가.

끔찍하다.

실로 끔찍한 힘이다.

만약 적으로서 마주했다면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목이 잘렸을 것 같다.

동시에 생각했다.

가까이서 경험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보좌에 앉아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황제의 체면이고 뭐고 바닥에 주저앉아 기는 망신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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