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80화
1515화
대전 기둥이 무슨 커다란 울림통이라도 된 것 같았다.
쿵!
아니, 어떻게 사람 머리에서 철퇴를 내려친 소리가 나는지.
어어 하는 사이 벌어진 일에 놀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이해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가만있던 사람이 난데없이 대전 기둥에 머리를 박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그 정도로 바이언 공작의 행동은 예측불허였다.
그는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한 것일까.
혹시 정말 미치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뭐, 갑작스럽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오는 깨달음처럼 심마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직전에 명예 후작이 내보인 무위는 심마를 불러오기 충분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너무 대단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규격이나, 재능, 노력에 대한 모든 기준이 무너져 버릴 정도로 말이다.
실제 공작들은 각자의 분야를 떠나 스스로 정점에 섰다고 오만했던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분야가 다름에도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무공이라는 같은 분야를 탐구하는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
분명 몇 배는 더한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이언 공작과 친분이 깊은 몇몇은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이었다.
그 탓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이보게…….”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바이언 공작을 불러보지만.
쿵!!
그는 계속해서 대전 기둥에 머리를 들이박을 뿐이다.
힘차게.
힘차게.
쩌적!
결국에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한 기둥에 쩌억 금이 갔다.
그런데도 바이언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덩달아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더 이상 저 상태로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나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바이언 공작이 박치기를 멈추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덜덜.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
그 떨림을 확인한 바이언 공작이 다시 박치기를 시작하고, 그에 더는 참지 못한 코페르니 공작이 황급히 다가서며 어깨를 잡았다.
“황제 폐하께서도 계신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
“아직 떨림이 멈추지 않았으니, 멈출 수 없네.”
바이언 공작은 코페프니 공작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그리 걱정하지 말게. 미친 것은 아니니까.”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는 듯 이어지는 농담 같은 말.
그를 가까이서 살핀 코페르니 공작은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미쳤다고 하기엔 그의 목소리와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진중했기 때문이다. 저건 절대 광인의 눈빛이 아니었다.
“……”
코페르니 공작은 바이언 공작의 행동을 말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저 행동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자리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코페르니 공작은 슬쩍 황제를 바라보았다.
“…….”
그에 작게 고개를 끄덕여 답하는 황제.
무언의 허락이었다.
그렇게 황제의 허락 아래 다시 박치기를 시작하는 바이언 공작. 그리고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한번.
두 번.
침묵 속에서 계속 이어진 박치기.
쿵쿵 소리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걱정도 쌓여 갔다.
황제의 허락은 얻었지만, 전력을 다한 박치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아무리 바이언 공작이 삼검왕을 뒤잇는 무인이라지만, 내력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고 저런 짓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퍽!
계속된 충격에 질긴 신체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말았다.
뭉개지고 짓이겨진 이마에서 피가 터진 것.
줄줄 흘러내린 피에 바이언 공작의 얼굴과 기둥이 피 칠갑이 되었다.
그 지경에 이르고서야 바이언 공작은 박치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 제 손을 내려다보는 바이언 공작.
드디어 떨림이 멈춘 손.
그제야 만족한 바이언 공작이 씨익 웃었다.
온통 피로 범벅이 된 얼굴에 하얀 이빨이 번쩍이는 모습은 순도 100%짜리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꼴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이언 공작은 그저 떨림이 멎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주먹을 몇 번 쥐어보고는 곧장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엄하게도 황제 폐하께서 지켜보시는 중에 소란을 피웠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용서하오. 하지만 이유는 알아야겠소. 어찌 그런 것이오. 나는 공작이 잘 못 된 줄 알았소.”
“떨림이 멈추지 않아서 그랬사옵니다.”
“떨림?”
무슨 떨림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 황제의 물음에 바이언 공작은 이드 일행이 있는 쪽을 돌아보고는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좀 전 명예 후작의 무공을 보고 난 직후부터 떨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내력을 돌려도 손발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하오. 명예 후작의 무공은 내게도 매우 놀라운 것이었으니까.”
“다릅니다. 황제 폐하의 말씀대로 분명 명예 후작의 무공은 놀라운 것이었으나, 그 떨림은 놀라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꾸욱.
씁쓸한 듯 말하던 바이언 공작은 곧 분한 듯 이를 악물고는 핏줄이 솟을 정도로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두려움. 저는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습니다. 겁먹은 애송이 기사처럼 말입니다.”
자신을 겁쟁이 기사에 빗대는 바이언 공작,
지금까지 쌓은 자긍심과 자존심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황제의 입장에선 꽤나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방금 바이언 공작이 말하지 않았던가.
떨림이 멎었다고.
“수치스러웠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떨림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당당히 서고 싶었습니다. 이후 다시 이런 상황이 왔을 때 겁먹고 떨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랬군. 그럼 지금은 떨림이 멈추었소?”
명예 후작에 대한, 규격을 넘어선 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는가?
황제의 물음에 바이언 공작이 두 손을 내리고는 예의 그 미친놈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떨림은 멈췄습니다. 하지만 작은 두려움은 아직 남았습니다. 그래서 황제 폐하께 한가지 청을 드리옵니다.”
“무엇이오?”
“명예 후작과의 대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순간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바이언 공작의 요청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또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때나 효과적인 방법이다.
싸워 이겨내지 못한다면 두려움은 역으로 더 커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련은 두려움 극복에 좋은 선택일 수가 없었다.
방금 이드가 자신의 무공을 힘을 보이지 않았던가.
바이언 공작의 말처럼 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막강한 힘.
그것은 바이언 공작이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승패는 이미 싸우기도 전에 전해진 상태다. 그런데 이런 상대와 싸우겠다니.
참으로 무모하다.
혹시 바이언 공작은 두려움이 정신이 나가버린 것은 아닐까?
황제는 그런 생각에 다른 공자들을 살폈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몇몇을 제외한 모든 공작들이 바이언 공작을 이해하는 표정들이다.
당장 그의 옆에 선 나람 공작도 내색은 하지 않을 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황제는 잠시 고심한 후 물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알고 있습니다. 그 힘을 보고도 결과를 모른다면 눈뜬장님보다 못한 거지요.”
“그럼에도 싸우겠다는 말이오? 극복할 수 없을 텐데?”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두려움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승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대련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수백 수천 번 경험했던 일입니다.”
“승패는 수없이 경험한 일이다.”
아무렴 바이언 공작이라고 해도 언제나 승리만 있었을까. 황제는 바이언 공작의 말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그 울림이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다.
동시에 명예 후작의, 이드의 무공을 좀 더 보고 싶었다.
이드가 가진 무공의 정체를 알고자 함은 바이언 공작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을 정한 황제가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이언 공작의 요청・・・・・・ 명예 후작의 생각은 어떠하오?”
황제의 질문을 받은 이드,
슬쩍 눈길을 돌리자 배시시 웃는 검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온몸을 비틀어 거부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훈련장에서 걸레가 될 때까지 몰아붙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당장 그럴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속으로 혀를 찬 이드는 눈을 돌려 바이언 공작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닌 황제를 올려다보고 있는 바이언 공작.
처음에는 웬 미친 짓인가 싶었지만, 황제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의 생각을 알게 된 지금은・・・・・・ 뭐, 썩 싫지 않았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도 좋았고, 두려움을 정면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서 올곧은 무인의 인상을 받은 것이다.
검후는 피하던 대련을 하게 되어 어쩌냐고 놀렸지만, 저 바이언 공작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드는 한발 앞으로 나서며 황제의 물음에 답했다.
“바이언 공작님의 태도는 무인으로서 존경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저는 그 마음을 담아 대련에 임하겠습니다.”
“좋군. 바이언 공작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는 바요.”
“망극하옵니다.”
황제의 감사에 이드는 깊이 고개를 숙여 답했다.
“명예 후작이 응했으니, 바이언 공작의 요청을 허락하겠소.”
황제가 말했다.
그제야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바이언 공작이 이드를 향해 돌아선다.
여전히 피칠갑을 한 얼굴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저 얼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는 이드는 결코 그 모습이 불쾌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와 이드를 향해 먼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대련 요청을 받아주신 명예 후작께도 감사드리오.’
“무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대련 허락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기왕 이리된 것 한가지 청이 있소.”
“무엇입니까?”
“마음을 담은 대련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대련을 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