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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87화


1522화

밀당이라니.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소리를 한다.

이드는 고개를 젓고는 육포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쫄깃한 식감과 짭조름한 감칠맛이 혓바닥을 두드린다.

상당히 잘 만든 육포다.

“확실히 맛집이네. 육포도 좋아.”

“입에 맞으면 좀 사둘까요?”

“그럴까?”

“여기 주문 있어요!”

이드의 반응에 라미아가 곧장 손을 들고 종업원을 불러 육포를 대량 주문했다.

그러자 잠시 후, 커다란 육포 보따리가 나오고 몇 가지 요리가 따라 나왔다.

“서비스입니다!”

서비스로 나온 요리의 맛도 육포만큼 훌륭했다.

이드가 포크에 묻은 소스를 빨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이거면 충분하겠는데?”

“그러게요. 그보다 왜 카논에 가지 않겠다는 건지나 계속 이야기해 줘요.”

“카논에 안 간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크게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손에 쥔 포크를 흔들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는 라미아.

따지고 들면 분명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드는 굳이 라미아의 말을 수정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드는 포크를 내려놓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까 대련했을 때.”

“카논 이야기 중에 갑자기?”

“일단 들어봐. 대련 중에 문득 한 사람이 떠오르는 거야.”

“누가요?”

“마르텔.”

“우리가 아는 그 블러디 혼?”

“어, 그 마르텔.”

이제는 죽고 없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다시 들을 일 없을 줄 알았던 이름이 튀어 나오자, 라미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요리에 든 과일을 골라 먹고 있던 일리나도 같은 얼굴이다.

“왜 그 사람이 떠올랐나요?”

“그러니까요. 마르텔과 바이언 공작. 둘은 이렇다 할 공통점도 없는 것 같은데.”

라미아의 말대로다.

외형이나 말투는 물론, 성격과 성향까지 닮은 구석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어째서 이드는 바이언 공작과의 대련에서 마르텔을 떠올렸을까.

“무공 때문이에요.”

이드의 대답에 일리나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두 사람의 무공을 직접 본 그녀였기에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무공은 서로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공이 닮았다는 말은 아니에요.”

“맞아요. 초식도 달랐지만, 무를 추구하는 방향이나 성향도 달랐어요. 마르텔의 검법이 뜨겁게 휘몰아쳤다면, 바이언 공작의 검법에선 날카롭게 꿰뚫는 힘을 느꼈으니까요.”

옳다.

일리나의 평가는 정확했다.

이드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때 마르텔의 무공을 보고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어떤 말이요?”

“그의 검법이 내 고향의 어떤 검법과 많이 닮아있다고 했던 말이요.”

“기억해요. 축융검법이었죠? 형산파라는 곳의 무공이라고 했었잖아요. 아, 그럼 혹시 바이언 공작의 검법도?”

“맞아요. 축융검법만큼 닮은 것은 아니지만, 점창파의 사일검법이 생각나는 검법이었어요.”

“세상에! 그런 우연이 또 일어났단 말인가요?”

“그렇죠. 참, 기이한 우연이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일리나.

그에 반해 이드는 놀라움보다는 걱정이 좀 더 큰 표정이었다.

사실 대전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일리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우연이 두 번이나 반복될 수 있을까?

한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필연이라는 말도 있다.

간단한 우연도 아니고, 복잡한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법이 이렇게나 비슷하다?

이는 타 문파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가 많은 중원에서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차원을 넘어 두 번이나 발생했다.

이래도 정말 우연인가?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과 차원의 인으로 인해 중원과 그레센 사이에 어떤 보이지 않는 연결점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물론 증거는 없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고, 확인할 방법도 없는 이야기.

하지만 한번 그런 생각이 떠오르고 나니, 꽤나 신경이 쓰였다. 혹시 중원에서도 여기 그레센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뭐,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따로 손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믿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중원 무림이라면 능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이드?”

이런 속내를 알아차린 것일까.

일리나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부르자, 이드가 별일 아니라며 웃어 보였다.

“미안해요. 조금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서.”

“어떤 생각인지 말해 줄래요?”

“그래요. 말해줘요.”

“정말 별거 아닌데.”

이드는 두 사람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각각 달랐다.

우선 일리나는 이드와 걱정을 함께하며 그를 위로했다.

“괜찮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반면 라미아는 이성적인 답을 내놓으며, 이드의 걱정을 일축했다.

“일리나 말이 맞아요. 그건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차원의 인을 가진 이드가 쉽게 넘어 다녀서 그렇지, 차원의 벽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드가 그레센에 퍼트린 무공이 가진 가능성이 그만큼 컸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다고 봐요.”

각자 방식은 달라도 자신의 걱정을 덜어 주려는 그녀들의 모습에 이드는 빙그레 웃음이 났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 

“고마워요.”

그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 일리나와 라미아의 입가에도 이드를 닮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렇게 잠시 마음을 나눈 세 사람은 곧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마르텔과 카논이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이라기보다는 마르텔을 생각하니, 소드 팰러스의 배신자들이 떠오르더라고. 우리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던 놈들.”

도망칠 기회를 주었더니, 오히려 웅크리고 벽을 쌓던 멍청이들.

물론 유도된 부분이 없지 않았던 일이지만, 분명 예상을 벗어난 행동이었다.

그 말에 라미아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지금 그 배신자들과 혼돈의 파편을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아무렴 설마 그러려고.”

이드는 그건 아니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혼돈의 파편이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 멍청이들과 같은 취급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압력을 줬을 경우 어떤 방향으로 튀어 오를지 모른다는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싶더란 말이지.”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혼돈의 파편이 그 배신자들보다 심각하긴 하죠.”

“그렇다니까.”

이번 여행의 목적은 혼돈의 파편을 압박하고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하지만 강한 압박을 받은 혼돈의 파편이 오히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혼돈의 파편이 가진 위험성이 큰 만큼 그 방향에 대해서 전혀 예측할 방법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 그레센 전체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에이, 그건 최악이 아니죠.’

“아니면?”

“진짜 최악은 놈들이 다시 드래곤들의 복귀를 막고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죠.’

라미아가 뭘, 모르시네~ 라며 꺼낸 말에 이드는 전신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저건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다.

장기전이라니.

이드가 돌아오기 전 백 년을 조용히 움직이며 때를 기다렸던 놈들이다.

즉, 저들에게 있어 백 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는 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장기전에 돌입한다면 또 수백 년이 그냥 지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언제 어떤 일을 꾸밀지 알 수 없는 혼돈의 파편을 경계하며 수백 년을 견뎌야 한다니. 실로 끔찍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경우만은 진짜 피하고 싶어.”

“동감이에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라미아.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런 변수를 줄이고 싶었어.”

“알았어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카논에 가지 않겠다는 거죠?”

“아예 안 가겠다는 건 아니라니깐.”

“뭐,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해요. 혼돈의 파편이 가진 능력과 위험성을 생각하면 연구해 볼 구석도 많고.”

라미아는 팔짱을 끼고는 탁자에 올려진 지도를 잠시 노려봤다.

그녀의 작은 머리 안에서는 이드가 놓치고 있는 많은 가능성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장기전만큼이나 골치 아픈 경우의 수들.

아무렴 이런 가능성을 피하려면 적극적인 밀당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라미아가 말을 이었다.

“전 찬성이에요. 카논은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죠. 일리나는 어때요?”

“저도 조심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세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드는 싱글벙글 웃었다.

사실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카논을 피한다고 해서 혼돈의 파편이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뭐, 그렇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드는 지도를 다시 펼치며 말했다.

“좋네요. 그럼, 여행 경로를 새롭게 짜볼까요? 두 사람은 어디부터 가보고 싶어요?”

“전 라일론을 좀 더 돌아보고 싶어요’

“저는 카논에서 말지도 가깝지도 않은 시리카요. 이드도 여긴 아직 가보지 않았잖아요. 볼거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드는 어때요?” 

“음, 나도 시리카는 좀 궁금하긴 한데, 그래도 단숨에 거기로 향하기보다는…….”

그렇게 말과 함께 지도의 이곳저곳을 짚어보는 이드,

세 사람의 저녁 시간은 그렇게 지도를 살피는 중에 신나게 흘러갔다.

이후 디저트에 이어 야시장까지 구경을 끝낸 다음에야 황성으로 돌아간 세 사람,

밤의 황성 경비는 철저하고 삼엄했지만, 이드 일행에겐 황제가 내어준 통행증이 있어 큰 소란 없이 조용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황녀에게 시달려 기진맥진한 스폴이었다.

그녀는 소파에 머리를 처박은 상태로 말했다.

“다음엔 저도 꼭 데려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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