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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29화


566화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마법사들의 뒤에는 연단이 있었다. 연단 주위에는 스물세 개의 고풍스러운 의자가 있었고, 그중 아홉 개의 의자에 마법사들이 앉아 있었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로브와 의자에 앉아 있다는 점에서 연단 아래 서 있는 마법사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중 한 마법사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주문도 없는 간단한 동작은 마법이 되었다. 방음벽이라도 생겨난 듯 아래쪽의 소음이 연단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감히 생명의 관에 숨어드는 괘씸한 것들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더니 생각지 않은 귀한 아티팩트가 그물에 걸렸소이다그려. 껄껄껄.” 

소음을 없앤 하얀 머리의 마법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소이다. 사람처럼 추측까지 하는 에고를 가졌는데, 어쩌면 고대 마도사의 작품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오?”

“커커커.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지. 그렇지 않아도 연구가 막히던 차에 유희거리가 생긴 게 아니겠나. 그런데 확실히 밑에 있는 놈들이 어리긴 어려. 마법사라는 이름을 달고 희귀한 아티팩트가 아니라 여자에 한눈을 팔다니.”

“젊지 않나. 허허허.”

마법사들이 두서없이 말을 꺼내 들며 자리가 금방 시끄러워졌다. 이미 그들 사이에 침입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오직 이드와 함께 움직이고 있던 라미아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그런 마법사들을 비웃는 목소리가 있었다.

“클클클. 진짜 멍청한 것들이 누군데.”

목소리의 주인은 의자 위에 떠 있는 붉은 핏줄이 툭툭 불거진 징그럽고 거대한 눈동자였다. 정확히는 그 눈동자를 소환해서 조종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네놈은 뭔가 생각이 다른 모양이구나?”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눈매가 날카롭고 어두워 보이는 인상의 마법사가 말했다. 말투로 보아 눈동자를 조종하는 마법사와 편한 관계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클클클, 유린, 설마하니 네놈도 아직 눈치채지 못했느냐?”

퍽!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끝나기도 전, 유린이란 마법사의 손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눈동자의 아래쪽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주르륵.

구멍을 통해 눈동자의 체액이 흘러내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말을 한 것은 눈동자를 조종하는 마법사지, 눈동자가 아니다. 마법사는 여전히 쌩쌩한 목소리로 오히려 더 능글거리며 유린을 조롱했다. 

“이런이런. 그 지랄 맞은 성격하고는. 이렇게 구멍을 뚫어 두면 내가 편하게 말을 하지 못하지 않나. 사신을 보는 사계(四季)의 눈이여, 분열하고, 재생하라!”

눈동자의 마법사는 눈동자에 마력을 보내며 명령했다.

그러자 유린이 뚫어 놓은 구멍에서 거품과 같은 세포 증식이 일어나더니 구멍이 막히고 대신 눈동자와 똑같은 형태의 작은 눈동자가 생겨나 사방으로 두르륵 굴렀다.

그러다 작은 눈동자가 바로 아래에 있던, 눈동자가 흘린 악취 나는 체액을 바라보는 순간 눈에서 불길이 뻗어나가 체액을 태워 냄새를 지워 버렸다. 

“그나저나 힘이 딸리나 보지? 이전 같았으면 눈을 통째로 날려 버렸을 텐데?”

“오냐, 원하면 그리해 주마!”

“어허, 둘 다 그만하지. 아래 있는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럴 시간도 없고. 그러니 비올라, 자네 생각이나 빨리 말해 보게.”

다시 싸울 것 같은 두 마법사 사이로 끼어든 마법사의 말에 유린이 눈동자에 침을 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비올라는 눈앞으로 흘러내리는 침이 보일 텐데도 낄낄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멍청하게 다들 저 새 형태의 아티팩트에 정신이 팔렸는데, 저 새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보란 말이야. 저 물건이 뭐라고 했는지.”

“뭐라고 했는데?”

비올라는 뒤에 있는 마법사의 대답에 그를 노려보았다.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 새대가리냐? 그 머리로 어떻게 마법사 해 먹냐?”

“잘? 아하하하. 그러지 말고 말해 봐라.”

비올라는 되먹지 못한 개그에 혼자 웃는 마법사를 한심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저 새가 말하기를, 실험체를 확인하고 초인이라고 했단 말이야. 초인을 연구한 마법사도 아니고 아무리 에고를 가진 아티팩트라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말은 저 새를 제작한 존재가 저 새 안에 초인에 대한 자료를 넣어 뒀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즉, 저런 아티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도사 중에 우리 생명의 관과 마찬가지로 초인을 연구하고 있는 작자가 있다는 거지. 어째서 그런 작자의 아티팩트가 밖으로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저 안에는 우리가 연구하는 초인에 관한 자료가 있을 거다.”

“확실히 가능성 높은 이야기다. 네 말대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아티팩트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지. 나도 그렇고 네 말대로 모두 멍청이들이구나. 하하하.”

비올라는 스스로 멍청한 게 맞다고 웃어 대는 마법사의 모습에 침묵했다. 어쩐지 저 웃음이 자신을 향한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 기분은 비올라 혼자만의 것이 아닌지, 그에게 멍청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마법사들이 그의 모습에 수군거렸다.

“쯧쯧쯧. 하여간 마법사들이란…..”

하얀 귀밑머리가 특징인 늙은 마법사가 그 모양을 보고는 혀를 찼다.

본인도 마법사지만 상대의 허점만 보이면 그걸 물어뜯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저 버릇은 정말이지 볼 때마다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버릇 때문에 진짜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항상 조금씩 밀려 진행이 된다.

“이것도 병이지, 병, 지독한 직업병이야.”

마법사는 작게 푸념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그의 지팡이는 다른 마법사들이 들고 있는 지팡이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굵기는 지휘봉처럼 가늘었고, 길이는 노인의 키보다 머리 하나는 더 길었으며 가장 끝에는 아이의 주먹만 한 자주색 보석이 붙어 있었다.

통통.

마법사는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윽, 귀가…….”

그 순간 마법사들이 귀를 막거나 인상을 쓰며 그를 돌아보았다.

지팡이를 두드리는 가벼운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는 천둥소리처럼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부관주…….”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하고 두려운 눈으로 노마법사를 노려보았다. 과연 소리를 증폭하는 마법이 아니라 공격 마법이었다면 어땠을까.

무서운 상상이 떠올랐다.

부관주라는 자리에 있는 늙은 마법사는 그런 시선을 태연히 받아 넘기며 말했다.

“그만큼 떠들었으면 됐어. 이제 일을 좀 하세. 자네들 이야기는 선후만 틀렸지 모두 맞는 소리니까. 우선 지금 확인된 침입자부터 처리하고, 이후에 아티팩트의 확보와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구만.”

“부관주 말이 맞소. 그런데 일의 선후를 따지면 가장 먼저 탑주께 이 일을 보고하는 것이 최우선이 아니오? 생명의 관에서 가장 중히 다루는 초인에 관한 정보지 않소.”

비올라가 말했다. 과연 틀린 말이 아니라 불퉁한 표정의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따라갈 수 없는 부관주의 실력에 대한 질투에서 오는 심통이었다. 

“탑주는…….”

부관주는 탑주가 거론되자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천정을 바라보다 말했다.

“탑주께서는 지금 중요한 작업 중이네. 이런 일로 방해할 수는 없지. 우선 침입자와 아티팩트를 제압한 후에 보고해도 늦지 않아. 당장 며칠 전에 들어왔던 침입자도 잡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나라도 해결이 되어야 나도 탑주를 볼 낯이 있지. 안 그런가? 프뢰벨.”

부관주는 은근한 말과 함께 가장 끝의 의자에 앉은 뚱뚱한 마법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적을 받은 프뢰벨은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이런 망신이 어디 있나.”

그가 바로 부관주가 말하는 침입자에 대한 처리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평마법사들이 해결할 일을 자신에게 미룬다고 화를 냈는데, 그걸 아직 처리하지 못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던 것.

‘이게 다 네놈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 아니냐!”

프뢰벨은 속에서 치솟는 화를 눈으로 토하며 그 아래로 배정된 마법사들을 노려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고위 마법사들을 바라보고 있던 평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부관주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 탑주를 거론했던 비올라는 능숙하게 말을 돌리는 모습에 콧김을 뿜었다. 하지만 부관주와 달리 탑주는 감히 그가 함부로 거론할 수 없는 인물이라 더 이상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럼 부관주 생각에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허락한다면 내가 직접 나가서 침입자들을 처리하고 아티팩트를 확보해 올 생각이 있소만.”

비올라는 부관주에게 한 방 먹이지 못한 것을 침입자들에게 풀 생각으로 말했다. 자신이 나서면 실험체 겸 욕정을 해소할 여자의 확보와 함께 귀한 아티팩트를 가장 먼저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평마법사들을 어리다고 깔봤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척했을 뿐 고위 마법사들이라고 여자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마법 수준이 높아 봤자 그들도 사내이기 때문에 은의 여기사나 검은 머리의 여성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관주는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련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자네가 직접 나서겠다니 참 든든하구만. 하지만 자네가 나설 일은 없을 거야. 저 침입자들은 일단 품 안에 들이고 나서 처리할 생각이네.”

“안 됩니다. 통제되지 않는 자들을 감히 생명의 관에 들인다니요. 저는 반대합니다.”

부관주의 말에 반대 의견이 튀어나왔다. 당연했다. 말은 다르지만 결국 침입을 방조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음 좋은 호인 같은 인상의 부관주는 평소 성격과 다르게 한번 정해 버린 일에 대해서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다시 침입자를 놓치려고. 아직 무슨 구멍이 있어 앞서 있었던 침입자를 잡지 못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고집 부릴 일이 아니야. 시평은 앞으로 나와라!”

부관주는 평마법사들 사이에 있는 제자를 불러 여러 명령을 내렸다.


일리나의 노래가 끝나자 이드와 라미아가 나서서 괴물 트롤을 처리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검으로 트롤의 재생력을 부수기 위해서는 정말 산산조각을 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트롤만 있다면 미리 그 한계를 알아본다는 의미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트롤의 몸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이 마음에 걸린 때문이었다.

만약 시도한다면 그 사람 역시 산산조각 내야 하기 때문이다. 차마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드는 쉴라가 잘라낸 머리와 팔다리를 한곳에 모았다.

이어 라미아가 정화의 불꽃을 소환하여 트롤을 태웠다.

떨어진 몸이 한자리에 모이자 트롤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꾸물꾸물 몸을 재생하기 시작했지만, 재생하는 것보다 타들어 가는 것이 빨랐다. 

[에잇, 징그럽게 질기네.]

그 모습을 확인한 라미아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정화의 불길에 마력을 배가했다.

화르르르륵!!

붉은 불길이 파랗게 변하고 두 배로 커졌다. 압도적인 화력 앞에 불사신 같던 트롤도 저항하지 못했다. 트롤과 사람은 순식간에 한 줌 재가 되어 뿌려졌다.

이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일리나의 도움을 받아 수정구를 꺼내 들고 마력을 집중하고 있는 쉴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곧 눈을 뜨고 이드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라미아가 했지요. 그런데 연락은 됐습니까?”

“제대로된 통신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비상 신호만 보내 두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서는 준비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쉴라는 이 헬름 협곡에 검후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 대신 위험도가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생각에 은색 기사단에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곳의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알렸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그 순간.

협곡 안쪽에서부터 메케한 마나의 향이 뿜어져 나와 협곡의 입구로 뻗어 나갔다. 협곡을 가리고 탐지 마법과 통신 마법을 방해하는 마법 결계가 펼쳐진 것이다. 이드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한발만 늦었으면 그 비상 신호도 보내지 못할 뻔했으니, 차라리 다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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