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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32화


569화

“하..”

조심하라고 경고할 거라면 폭탄이나 던지지 말지.

‘재미있는 사람이다.’

쉴라는 이드의 말을 들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드의 말을 우습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드의 충고를 충실히 따라서 몸을 숙이고, 만약의 사태에 빠르게 대처할 차비를 한 후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한 호흡이 채 끝나기 전에 막은 귀를 뚫고 폭음이 들려왔다.

콰쾅!


찌이이잉-

엄청난 폭음에 귀가 상했는지 귀에서 날카로운 피리 소리만 들렸다. 마법기사 43호는 귀를 문지르며 사방을 둘러보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고함 소리와 희뿌연 시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뻔히 눈으로 보고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검사로서의 예감이 오늘이 그의 인생 최대의 위기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멀건 애송이라 별거 아닌 줄 알았더니………….”

가볍던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 명의 침입자를 생포하기 위해서 그를 포함한 마법기사 30명에 새끼 마법사 22명, 그리고 평소 얼굴 보기 힘든 무서운 고위 마법사 6명까지 모였다.

달랑 세 명을 생포하기 위해서라기엔 과해도 너무 과한 전력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즐길 거리가 생겨서 모조리 구경 나왔나?’

그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생명의 관에 들어온 마법기사 43호의 유일한 불만이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소연하니 내려온 게 책이다.

“빌어먹을 마법사들!’

마법기사들이 그때처럼 한마음으로 고루하고 재미없는 마법사를 욕한 적이 없었다. 여자는 무리겠지만 최소한 술과 고기 정도는 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책이라니!

좌우간 그 많은 인원에 마법사들이 부리는 괴물 트롤까지 해서 어지간한 자작 영지도 간단히 쓸어버릴 전력이 모여서 세 명의 침입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것들이 충분히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고 한참 동안 사람들을 뻣뻣한 자세로 기다리게 만들더니, 문에 구멍을 뚫어서 얼굴을 들이밀고는 손을 실실 흔드는 게 아닌가?

우리가 불편한 자세로 얼마나 오랫동안 제 놈을 기다렸는데!

“……이런 XX 새끼가…….”

조건반사처럼 욕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문밖으로 뛰어나가기 위해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문에 구멍을 내고 안을 살핀 놈이다. 제 놈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죽을 자리에 스스로 걸어 들어올 턱이 없지 않은가.

슈우욱.

그런데 막 한 발 앞으로 내디디는 그들을 향해 날아드는 커다란 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술통?”

언뜻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술통이 왜 날아 들어올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술통이 불통으로 변했다.

콰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강한 충격이 마법기사 43호의 얼굴을 때렸다.

귀에 피리 소리가 가득했다. 그는 황망히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오르고 사방에 비명이 가득했다. 그 속에는 피를 흘리며 고통에 신음하는 놈도 있었고,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폭발 때문인지 돌가루가 떨어지고 희뿌연 가루가 사방에 가득했다.

마법기사 43호는 가루를 손으로 휘휘 저어 걷어냈다.

“이거 보통 위험한 놈이 아니구나. 빨리 재정비를 하고 큭………… 쿨럭, 쿨럭………… 웩~!”

앞으로 걷던 마법기사 43호는 폐가 타들어 가는 통증을 느끼며 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이, 이게…………… 아아악………… 도, 독이다. 뜨거워………… 아악!!”

그뿐 아니었다. 그는 눈이 녹고 피부가 불타는 것 같은 통증에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순간 하얀 가루가 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헉! 빌어먹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 딱 봐도 무시무시해 보이는 건물에 세 명이서 쳐들어왔으면 그만한 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이쪽 숫자를 믿고 너무 안이했다. 독을 사용하는 자라면 상대는 단순한 애송이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이곳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독을 해독할 방법은 우리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우리가 괜히 마법기사로 불리는 것이 아니야.’

“큐어 포이즌!”

마법기사 43호는 고통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들의 갑옷에 새겨진 많은 마법들 중에 독을 해독하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의 어깨에 있는 견갑에서 시작된 초록의 빛이 사방으로 번지고 그의 몸에 편안한 감각이 스쳐갔다. 그렇다. 말 그대로 스쳐 갈 뿐이었다

피부가 녹고, 폐가 불타는 통증은 그대로였다. 토해지는 피는 더 많아졌다.

“설마 독이………… 아니야? ・…끄아아악!”

마법기사 43호는 절망한 표정으로 바닥을 굴렀다.


폭발의 충격이 몸으로 전해지면서 머리 위로 뿌연 먼지와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푸스스슥-

이드가 보니 잘라 내고 다시 막아 뒀던 석판이 폭발의 충격에 반쯤 밀려나와 있었다. 이드가 석판을 마저 빼내자 그 구멍을 통해서 수십 명이 동시에 질러 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드가 구멍 안을 살폈다. 그 폭발 속에서도 멀쩡하게 빛을 내고 있는 마법 등 아래로 뿌연 가루와 불꽃이 날리고 있었다. 비명은 그 안에서 들리고 있었다. 가루는 이드를 향해서도 날아왔다.

“위험하게 이쪽으로 나오면 안 되지.”

이드는 손을 내밀어 공기를 회전시켜 밀어냈다. 그러자 구멍으로 밀려오던 뿌연 가루가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들 듯 회전하며 안으로 밀려갔다.

“혹시, 저 가루가 독입니까?”

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이어볼 백 개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폭발력이 약하다 싶었다. 그런데 안의 피해는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백린(白燐)이라는 것입니다. 독은 아니지만 위험한 물질이지요. 이번처럼 폭탄으로 사용할 목적을 가지고 특수하게 가공하면 극도의 발화성을 가지고 사람의 피부는 물론이고, 근육과 뼈까지 태워 버립니다. 이것을 멈추려면 타들어 가는 부위를 도려내야 하죠. 그리고 가장 큰 일은 호흡기로 들이마셨을 때인데 이렇게 되면 폐가 타들어 가면서 사망에 이르게 되죠.”

“극독만큼이나 무서운 물질인 것 같군요.”

“무섭죠. 악마의 입김 같은 물건이라 사람을 상대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니까요. 하지만 이 안에 있는 자들에게 사용하는 일에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실험체로 보는 작자들이 같은 인간일 수는 없으니까요.”

‘무섭고 위험한 사람이다.’

쉴라는 이드에 대한 생각을 고쳤다. 자신의 적이나, 그 죄가 확실한 죄인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손속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 조심해야 할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 안에서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생명의 관에 이따위 비열한 수작을 걸다니, 죽음으로 사죄시켜 주마. 그릇되고, 이롭지 못한 것은 사라질 지어다. 퓨리피케이션!”

이드가 들여다보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백린 가루의 일부가 지우개가 지나간 듯 사라져 있었다. 맑아진 시야 뒤로 노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정화의 주문을 외우자 또다시 지우개가 지나간 듯 백린 가루의 일부가 사라졌다.

“쯧, 벌써 사라지면 안 되지.”

이드는 구멍에서 얼굴을 떼고는 일리나를 찾았다.

“일리나, 정령을 소환해서 백린 가루를 이 생명의 관이라는 건물 전체로 퍼트려 줘요.”

“마법사들이 있어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해 볼게요. 그런데 이드 말대로 하기에는 백린 가루가 모자랄 것 같은걸요.”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 백린 가루는 시선 끌기용이거든요. 라미아는 일리나를 지켜 줘.”

[염려 말아요. 이드가 말하지 않아도 일리나는 제가 지킬 테니까.]

“고마워요, 라미아. 그럼 바로 소환할게요. 부름에 답하세요. 로이콘!”

이드는 일리나가 로이콘을 소환하자 쉴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싸움의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방패와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저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백린 가루가 날려 가는 대로 바로 진입합니다. 쉴라 경이 밑에 있는 사람들을 맡아 주시면 제가 마법사들을 처리하겠습니다. 그 후 바로 지하를 뒤져 볼 생각이지만, 혹시 모르니 심문해 볼 인물 하나둘 정도는 살려 두십시오.”

이드는 쉴라에게 다시 당부를 하고는 일리나에게 신호를 주었다.

벌써 20% 가량의 백린 가루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로이콘, 백린 가루를 건물 전체에 퍼트려서 적을 쓰러트려 주세요.”

일리나의 말에 로이콘이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그는 이드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들어가 사방에 날리는 백린 가루와 자신의 몸을 아홉 개로 나누어, 세 개 층에 나누어진 아홉 개의 통로를 통해 날아갔다.

바람의 정령답게 바람처럼 날아가 바람처럼 재빠르게 사라졌다.

시야를 가리던 백린 가루가 사라지자 여기저기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마법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3층의 난간에서 백린 가루를 제거하고 있던 당사자로 보이는 마법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급하게 소리쳤다.

“저 가루가 흩어지지 못하게 막아라! 저대로 흩어지면 생명의 관 전체에서 사상자가 나온다.”

마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와 함께 서 있던 마법사를 비롯해서 아래층의 마법사와 마법기사 몇이 급하게 바람의 정령을 따라 몸을 날렸다. 

“간단한 일이었는데. 분명 아이의 손에 든 과자를 빼앗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이냐.”

마법사는 입술을 깨물고 으르렁거렸다.

“어째서는? 그 당연한 사실을 몰라?”

이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동화책에 보면 나와 있잖아. 악당은 정의의 용사를 이길 수 없다고. 여기 정의의 여기사 등장이시다, 이 쓰레기 악당 놈아.”

이드는 말과 동시에 쉴라의 어깨를 잡아 그녀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 이드 님?”

쉴라는 생각지 못한 이드의 행동에 얼굴을 붉혔다.

이드는 그 모습에 한쪽 눈으로 윙크를 날렸다.

“그럼 여기는 일리나와 쉴라 경을 믿고 맡길게요. 조심해요.”

후웅!

이드는 쉴라의 어깨를 짚은 반발력으로 허공에 몸을 띄우고 삼층의 마법사를 향해 바람처럼 날아올랐다.

이드는 이 층의 마법사도 잊지 않았다. 이드는 삼층으로 솟아오르면서 이 층의 마법사들을 향해 일라이져를 휘둘렀다.

후후후훙!

일라이져의 검신에서 은빛 무극검강의 빛 무리가 날아갔다. 막 몸을 일으키거나 방심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아연실색한 듯했지만, 이드는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위로 뻗어 올려 반달의 검강을 쏘아 냈다.

콰콰쾅!


쉴라는 이드의 모습이 사라지고 바로 들려오는 폭음에 적당한 긴장감을 끌어 올려 몸을 조율했다. 그녀는 자신과 일리나를 포위하고 있는 마법기사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었다.

마법기사들의 눈에서는 살기가 흘렀다.

처음 침입자의 소식을 전해 듣고 이곳에 모였을 때의 여유와 짜증은 간데없는 모습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동료가 죽거나 죽을 것 같은 상처를 입고 바닥을 뒹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양측은 따로 신호도 없이 한순간 맞붙었다.

쩌러러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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