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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33화


570화

이드의 검강이 3층의 난간을 부수고 솟아올라 마법사를 공격했다.

하지만 마법사의 실드에 막혀 잠시 힘겨루기를 하다가 흩어졌다. 대신 2층에서 폭탄과 백린에 당해서 신음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무너지는 난간에 깔려 죽고 말았다.

“단단해졌네?”

이드는 손에 전해지는 뜻밖의 감각에 눈을 번뜩였다.

실드 마법까지 계산에 넣은 공격이었다. 이전이라면 실드와 함께 마법사를 베어 버렸을 텐데 베지 못했다. 대신 얻은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실드가 단단하다는 손의 감각이었다. 마법사와 궁합이 맞으면 평균보다 강력하게 발현하는 마법이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 마법사의 실드 마법이 그런 경우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드는 본능적으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넉넉하진 않지만 확인해 둘 필요는 있다. 어쩌면 실드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확인을 위해,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이드는 푸르게 빛나는 실드를 향해 허공을 차고 날았다.

하지만 마법사는 순순히 검문을 당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법사는 무서운 얼굴로 이드를 노려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편히 죽여 주진 않으리라! 웹! 거스트 오브 윈드!”

“나야말로 검문만 마치면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을 살려 둘 생각은 없어!”

이드는 마법사의 말을 차갑게 비웃고는 거미줄처럼 조여 오는 마나는 갈라 버리고 휘몰아치는 바람은 풍령장으로 상쇄시켰다. 이후에도 쉼 없이 마법이 발현되었지만 대마도사도 아닌 마법사가 시동어만으로 발현하는 마법이야 뻔했다. 그런 마법으로는 이드를 막을 수 없었다.

이드는 적당한 거리가 되자 일라이져를 허공에 던져 놓고는 강기를 두른 손으로 배리어를 사방에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그 소리는 마치 드럼 연주 소리 같았고, 그 모습은 산을 깎아 내는 것 같은 박력이 있었다.

“이, 이런 미친놈. 네깟 놈이 깰 수 있는 힘이 아니다!”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마법사는 속으로 졸았다. 마법사로서 가지는 접근전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지만 실드를 두드리는 이드의 주먹이 주는 박력이 그의 마음에 데미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저 주먹이 실드를 넘어 자신을 뭉개 버릴 것 같았다. 마법사는 반사적으로 실드에 마력을 몰아넣는 한편, 딱 붙어 있는 이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실드에 딱 붙어 비어 있는 그의 등을 노린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이드에게 닿지 못하고 공중에서 주인의 손을 기다리던 일라이져에 의해 철저하게 막혔다.

‘좀 더 좀 더’

방어를 일라이져에게 맡겨 두고 실드를 두드리던 이드는 단단히 결합된 마력 너머로 아른거리는 무언가를 향해 손에 힘을 더했다. 그에 따라 마법사도 마력을 더했고, 다음 순간 이드는 마력 너머 아른거리던 힘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닥까지 파헤쳐지고 분해되어 희미한 잔향처럼 남아 있는 무공의 흔적이었다.

“마법사의 무공인가!”

실로 그러했다. 이드가 풀어 놓은 무공으로 힘을 기른 것은 기사만이 아니었다.

호사가들은 지금을 기사의 시대라고 말한다. 무공으로 인해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병도 드물지 않게 무공을 익히고 있으며, 평민 중에도 운 좋게 무공을 구한 자들이 출세를 꿈꾸며 무공을 연마한다. 오로지 열심히 일로정진하다 보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무공은 배우는 데 수많은 난관이 존재하는 마법보다 훨씬 접근하기 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나 호사가들과 평민의 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있는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무공은 기사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기사만큼은 아니지만, 마법사들도 충분히 무공의 혜택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드가 전했던 무공의 핵심은 내공의 운용에 있었다.

내공은 곧 마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의 입장에서 마나를 운용하고 성질을 변형시키는 무공은 호기심 덩어리였다. 그들은 무공을 연구하고, 변형하고 응용하면서 기사들의 무공을 만들었고, 그 정보를 토대로 자신들 마법사를 위한 마나 운용의 비결을 연구했다.

그 연구의 결과 태어난 것이 마나 머티리얼이라는 뼈대였다. 마법사들은 이것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 뼈대를 기초로 각자의 성격이나 학파, 전문 속성에 따라 살을 붙이고 모양을 다듬어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마법사들은 조금 더 마나를 빨리 모을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마나 회복이 빨라졌으며, 조금 더 마법의 발동이 빨라지고, 조금 더 마력의 결집력이 올라갔다.

무인의 숫자가 늘어난 것처럼 엄청난 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조금이 모여 만들어 내는 힘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이처럼 마법사들은 한 단계 끌어 올려진 마법으로 기사와 초인에게 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위치와 권력을 지킬 수 있었다.

이드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희미한 흔적만 남은 무공을 통해 짐작해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마법사가 무공을 이용해서 강해졌다는 사실을 이드는 입맛이 썼다.

‘내가 전한 무공이 인간 같지 않은 이런 놈들에게까지 흘러들어가 이들을 살찌우고 있다니.’

이드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늘이 있으면 양지가 있는 것처럼 좋은 점도 분명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 무공의 득을 보고 있으니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이드는 그 기분을 그대로 손에 쏟았다. 드럼 소리가 천둥소리로 변했다.

콰쾅! 쾅!

뿌득. 뿌득.

마법사는 의식 공간에서 실드 마법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연실색했다.

‘어, 어포즈 실드(Oppose Shield)가! 그레이트 소드의 경지에 들어야 어포즈 실드를 깨뜨리는 것이 가능한데, 도대체 이런 괴물 같은 놈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이냐.’

위험하다 판단한 마법사가 다급히 탈출을 시도했다.

‘블링크인가.’

이드는 마법사의 신형이 희미해지는 순간 그가 이동해 갈 곳의 마나가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 뇌령전궁보를 사용했다. 허공에 번개처럼 삐뚤빼뚤한 선이 그어지고, 블링크가 끝나기 직전 마법사 앞에 이드가 도착했다. 시야가 트인 야외가 아니라 이와 같이 한정된 공간에서라면 블링크와 충분히 속도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 뇌령전궁보다.

마법사 입장에서는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죽어라 공부해서 사용하는 마법이다. 그것도 공간에 간섭하는 5클래스의 마법인데, 그걸 달려서 따라잡는다고?

마법사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한여름의 괴담이자 악몽이다. 그러나 엄연히 현실이다.

이드와 마주하고 있는 마법사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하얀 얼굴로 딱딱한 혓바닥을 억지로 움직여 마법을 터트렸다.

“익스플로전! 플레어! 컨퓨전! 블라인드! 블링크!”

콰콰콰쾅!

이글거리는 화염 폭발이 이어졌다. 마법사는 우선 이드의 빠른 접근을 차단할 목적으로 실드 앞에 초고온의 화염을 소환하고 폭발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드에게 상태이상인 혼란을 일으켜 화염을 피하지 못하고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한 후 이동했다.

그러나 그가 이동했을 때, 이드 역시 그 자리에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블링크와 마찬가지로 뇌령전궁보는 폭발이 이드를 덮치는 것보다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상태이상을 유도하는 마법이 이드를 노렸지만 가볍게 손을 털어 흩어 버렸다.

블링크로 이동한 마법사는 앞선 경험에 따라 급히 주변을 살폈고, 역시나 근처에 와 있는 이드를 보며 급히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패럴라이………… 끄으으으윽………….”

하지만 마법사는 자신의 생각대로 주문을 외우지도, 지팡이를 들지도 못했다. 앞으로 내밀어진 잘린 팔뚝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목을 노렸는데 살짝 빗나갔나 봐. 당신이 흘리고 온 건 저쪽에 있을 거야.”

이드는 무심하게 웃으며 아직 등 뒤에서 불타고 있는 불덩이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팔은 그 속에서 숯이 되어 가는 중이다.

마법사는 이를 악물고는 반대쪽 손을 들어 이드를 가리켰다.

“패럴라이즈! 블라인드! 컨퓨전! 록 스톰! 스타라이트!”

상태이상 마법이 이드를 감싸고 바위와 별빛의 폭풍이 이드를 덮쳤다.

“마침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네.”

이드는 십지탄공으로 초열의 스타라이트를 요격하고 쏟아지는 바위들을 손과 발로 던져 냈다. 바위들은 정확히 아홉 개의 통로의 입구에 떨어지며 통로를 막았다.

그리고 바위의 폭풍이 멎는 순간, 이드는 한 걸음에 마법사에게 다가가 일라이져를 그어 내렸다.

“이건 감사 인사다.”

“그딴 인사 사양이다!”

마법사가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실드에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인사를 받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인사를 막을 수는 없듯이 일라이져는 그의 실드를 두부처럼 가르고 들어갔다. 마법사는 아랫배가 서늘해지는 감각에 두려움에 떨었다.

그 순간, 갑자기 뻗쳐 온 붉은 촉수가 마법사를 당겨 끌고 가 버렸다.

하지만 이드는 이대로 그를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이드의 의지가 일라이져가 흐른 검로로 향하자 일라이져가 남긴 검향을 중심으로 은빛 고리 형태의 검강이 뿜어지며 달아나는 마법사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베어 버렸다.

마법사가 끌려간 것도, 고리 형태의 검강이 그를 벤 것도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마법사의 심장이 멈추자 끌려가던 그의 몸이 허공에 덜컥 멈춰 섰다.

“신경 써서 구해 줬더니 그거 하나 막지 못해서 죽어? 쓸모없는 놈. 에이, 잘 죽었다!”

목소리는 죽은 자를 신랄하게 조롱하고는 쓰레기 버리듯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허공에서 꾸물거리던 붉은 촉수가 순식간에 줄어들며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비올라가 조종하는 사계의 눈이 징그럽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붉게 도드라진 혈관이 꿈틀거리자 눈동자가 이드를 향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거긴 한데. 어쩔까나? 어쩔까나? 네 생각은 어때?”

‘저게 무슨 헛소리야?”

이드가 맥락 없는 눈동자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악취 나는 검은 물줄기가 쏘아져 나왔다. 단순히 색과 냄새만 다른 것이 아니라 강력한 산성을 가졌는지 검은 물이 닿는 순간 메케한 연기를 올리며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분명히 위험한 공격이지만 위협이 되지는 못하는 공격이었다. 눈에서 나오는 액체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바보 같은 상황인지 이드에게 전혀 조준이 맞지 않고 있었다.

“놀이 상대를 찾는 거라면 딴 사람을 찾아.”

앞서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3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드는 이따위 어이없는 눈동자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일라이져에서 뿜어진 은백의 정순한 기운이 눈동자를 깍둑썰기해 버렸다.

“뭐가 이래?”

혹시나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이드가 허탈할 정도였다. 손의 감각이 마치 잘 익은 수박을 자른 느낌이다. 도저히 몬스터를 벤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음?”

그때였다. 피도 나지 않는 눈동자 깍두기들 사이에서 주먹만 한 구슬이 이드를 향해 굴러왔다. 찬찬히 보니 그것은 작은 크기의 붉은 눈동자였다.

이드의 앞까지 굴러온 눈동자가 이드를 올려다보며 크기만큼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쯧쯧. 성격이 너무 급한 거 아닌가? 좀 느긋했으면 통로를 다 막아 줄 수 있었을 텐데.”

“필요 없다. 막고자 하면 내가 막으면 돼! 그러니 어디에 있건 헛짓거리하지 말고 얌전히 죽을 때를 기다려.”

“아, 아. 거 성격 급하네. 밟지 말고 발 좀 치워 봐. 발 치우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아, 발 좀 치워 보라고! 임마!”

데굴데굴 구르며 이드의 발에 이리저리 차이던 눈동자에서 조금 빨라진 말이 튀어나왔다.

역시 굴려야 행동이 빠릿빠릿해진다.

이드는 이 눈동자를 통해서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발을 거두고 말을 재촉했다.

“이야기해 봐. 쓸데없는 이야기면 바로 터트려 버린다.”

“역시, 급해, 급해. 그러지 말고 말이야………… 우리, 너희들과 나, 서로서로에게 좋은 일을 좀 하지 않겠어? 좀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어때?”

목소리만이 아니라 징그러운 눈동자의 눈빛도 촉촉해졌다. 보기에는 더욱 징그러워졌지만 일단 저래 보여도 호감의 표현 같았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썼지만, 내심 미소를 지었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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