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134화


571화

설마 진짜 접근해 올 줄은 몰랐다.

이드는 발 앞에서 데굴거리는 징그러운 눈동자를 보며 환호했다.

‘어쩌면 이거 진짜 제대로 된 가이드를 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이상하게 행동하던 모습 때문에 혹시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접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저 혹시나 했을 뿐이다.

‘그래도 위험한 놈인 건 확실하니, 경계하는 게 좋겠지.’

이드는 마음 한구석에 눈동자와 그것을 움직이는 주인을 두고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눈동자의 주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결코 녹녹한 자가 아니다 싶어서였다.

이드들이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강제로 쳐들어왔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에 사상자까지 만들어 낸 적이다. 그런데 그런 이드에게 뜬금없이 다가와서는 좋은 거래를 해 보자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게 어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말이 좋아 거래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빼도 박도 못 하는 배신 행위였다.

‘배신,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자고로 배신자만큼 위험하고 믿기 힘든 놈들도 없다. 그 위험성이 얼마나 높으면 한번 배신한 놈은 다시 배신하게 되어 있다면서 방사능 폐기물 보듯 경멸할까.

‘그중에서도 이놈의 위험도는 상당히 높아 보이거든.”

자기 딴에는 몇 가지 준비를 한 듯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편하고,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보통 정신머리를 가지고는 힘든 일이다. 방심했다가는 이쪽이 다시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동자의 주인의 말대로 서로 적당히 필요한 것만 챙기고 헤어지는 것이 베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이드는 마법사가 죽고 한층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일리나와 쉴라가 등을 맞대고 마법기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실력은 대단해서 마법기사들이 두 사람을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는데도 한 치의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자기 여자가 싸우는 걸 이야기나 하면서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지.’

이드는 어깨를 휘휘 돌리며 두 사람을 향했다.

“좋아, 들어 보지.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뭐? 야, 임마! 어디 가? 지금부터가 핵심이라고!”

이드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비올라가 살짝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이드를 불렀다.

이드는 슬쩍 돌아보고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눈썹도, 눈꺼풀도 없이 눈동자만 있으니 도저히 감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기다려. 이야기는 천천히 듣자. 동료가 싸우고 있는데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비올라는 이드 뒤로 일리나와 쉴라가 싸우는 것을 보고는 능글거리며 말했다.

“흐흐흐. 저 미인들 때문이라면 내가 양보하지. 당연히 내 말이 가장 중요하지만, 미인 보호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니까. 그래도 새끼, 능력 좋네. 어디서 저런 미인들은 구했냐? 보니까 둘 다 네 여자는 아닌 것 같던데, 금발 여자는 내가 요리해도 되겠지?”

순간 이드의 눈이 차갑게 번뜩이고 돌가루가 튀었다.

퍽!

이드의 지력이 눈동자 바로 옆 바닥을 두드린 것이다. 그 충격에 눈동자가 공중으로 튕겨졌다가 떨어졌다.

이드는 바닥으로 떨어진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칼같이 말했다.

“서로에게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자며? 그럼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있어야 이야기가 되지 않겠어? 한 번만 더 내 일행에 대해서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이 마굴 같은 던전에서 제일 먼저 널 찾아내서 네 입이 아니라 네 대가리에서 직접 네가 말한 건설적인 일이 무엇인지 파내 주겠어.”

엎어져 있던 비올라가 한 바퀴 돌아 이드를 향했다.

“크크. 재밌는 협박이군. 서로에 대한 존중? 좋아, 해 주지. 그런 화끈한 모습은 싫어하지 않거든. 그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나도 같이 데려가는 건 어때? 날 이렇게 바닥에 계속 구르게 하는 것도 상대에 대한 존중은 아니지 않겠어?”

“아까처럼 날아서 따라 오든가!”

“조심해야지. 내가 너와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한다는 걸 알면 싫어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서로 편하게 네 주머니나 어깨를 좀 빌려 주면 좋겠다만?”

이드는 라미아를 밀어내고 자신의 어깨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눈동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부르르 떨었다. 그냥 보고 있기도 거북한 붉은 혈관 가득한 눈동자가 얼굴 바로 옆에 있는 모습이라니.

‘무엇보다 저놈의 뭘 믿고 어깨에 올려 줘?”

내심 고개를 저은 이드가 주변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깨는 힘들고, 발은 잠시 빌려 주지.”

“뭐?”

눈동자의 대답과 동시에 이드의 발이 눈동자를 차 올렸다.

혹시 진짜 눈처럼 터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철저히 반탄력과 충격을 제어한 덕분에 눈동자는 한 점의 이지러짐도 없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눈동자가 떨어진 곳은 난간이 무너진 돌 더미 위였다. 이드의 가슴 정도 되는 높이의 돌 더미 가장 윗부분에는 오목한 홈이 있어서, 눈동자가 안정적으로 담겨 있기에 딱 알맞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딱 좋네. 거기서 기다려.”

이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크크큭. 건방진 놈.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지 보여 봐라.”

“원한다면, 하지만 내 실력을 본 후에는 네 가치도 증명해야 할 거다.”

뼈가 있는 말이었다.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을 경우 그에 대한 응징을 약속하는 말이었다.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이드의 등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조정하던 비올라가 흘리듯 말했다.

“내 이름은 비올라다. 곧 트롤 실험체들이 폭주를 시작할 거다.”

“유의하지. 나는 이드다.”


일리나에게 다가가던 이드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폭주지? 움직이지 않던 놈들이 움직이면 기동이라거나 작동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리나와 쉴라는 열 명의 마법기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원래는 열세 명이었지만 두 사람의 검에 줄어든 숫자였다. 일리나와 쉴라의 실력을 생각하면 잘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마법기사들의 검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들이 걸치고 있는 다양한 마법 물품의 영향이 컸다. 솔직히 마법기사들의 검 실력은 그저 그랬다.

오히려 그녀들은 마법기사들의 뒤에 석상처럼 서 있는 11마리의 트롤을 더 경계하고 있었다.

차라리 좀비처럼 일절 움직임이라도 없으면 좋은데, 그르릉거리며 숨을 쉬고 있어서 도저히 신경을 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미묘한 대치 속에서 다시 한 차례 검을 나누고 서로 기세를 올리고 있을 때 라미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앗, 이드다!”

라미아의 말대로 그곳에는 일리나 쪽 마법기사들의 등 뒤로 다가선 이드가 있었다.

“아, 싸우는데 미안해. 그래도 쓸데없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빨리 끝내자고.”

움찔!

순간 마법기사들의 어깨가 굳었다. 원형으로 서 있는 덕분에 그들도 이드가 그들의 상관인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자신들이 그를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과연 그것이 괜한 걱정이 아니었던지, 그들 생각대로의 결과가 이어졌다.

이드가 마법기사의 뒷덜미를 잡아서는 무를 뽑아 듯이 쑤욱 뽑아서 던져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터텅!

“커헉!”

던져진 마법기사들은 한참을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는 격한 기침과 함께 정신 줄을 놓았다.

그중에는 기절하지 않은 자도 있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대세를 읽고는 기절한 척을 했다. 괜히 일어나서 발악을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확실한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드가 비겁하게 등 뒤에서 공격을 시작하자 마법기사들은 금방 정리가 되었다.

이는 마법기사들이 이드의 기습에 적극 협조한 덕택이 컸다. 이드의 앞에 자리가 비자 적극적으로 빈자리를 채우며 이드의 손에 자신의 목덜미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쉴라는 허탈하게 방패를 내리고는 한탄했다.

“하! 기가 막히는구나. 조금 전까지 잔인한 복수심을 태우며 달려들던 전사들은 어딜 갔단 말인가.”

[결국 자기 목숨이 최우선이라는 거겠죠.]

쉴라는 마법기사가 모두 처리되자 불만을 표시했다.

“등 뒤를 노리다니요. 비겁한 행동이셨습니다.”

“일대일로 마주 서지 못하는 놈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시간을 끌 일도 아니고요. 곧 저놈들이 폭주할 거랍니다.” 

이드는 그르릉거리는 트롤들을 가리켜 보였다.

[정말이네요. 눈에 혈기가 돌아요.]

라미아의 말대로 하얀 눈에 붉은 물감을 풀어내 듯 조금씩 붉은색이 돌았다.

“음…….”

그때 일리나가 트롤의 옆으로 다가가 쿡쿡 찔러 본 후 그대로 트롤의 목과 사지를 베어 버렸다.

“일리나 씨?”

쉴라가 이 여자는 갑자기 또 왜 이러나, 하는 눈으로 일리나를 불렀다.

“이드 말처럼 이 몬스터들이 깨어난다고 해서 일대일로 싸울 건 아니잖아요. 그럼 우리도 기다려 줄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 왜 트롤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역시 내 아내는 지혜롭다니까. 최고예요, 일리나.”

이드는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는 번개처럼 달려 나가 수라삼검의 검강을 뿌려 남은 트롤 열 마리의 머리와 사지를 일검에 분리해 버렸다. 그러고서 그중 한 마리의 몸을 살펴 보니 역시나 여기에서도 융합된 초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혀를 차고는 라미아의 마법을 빌려 트롤들을 태워 버렸다.

나름대로 놀라운 성능을 보일 것처럼 등장한 트롤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이 보여 준 것은 반쯤 재가 되었을 때 한번 꿈틀거린 것이 끝이었다. 이드는 트롤이 가루로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간단히 비올라를 소개했다.

“그런데 하나 묻자. 네가 분명 트롤이 폭주할 거라고 했지?”

“하하하. 내가 서비스했지.”

“그런데 왜 폭주라고 했던 거지? 보통 움직이지 않던 것이 움직일 때는 작동이란 식으로 말하지 않나?”

“하하하하!”

이드의 말에 비올라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예리한데. 그래서 만족스럽다. 네 생각이 맞다. 저 실험체들이 폭주를 했다면 내 탓이지. 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이기 싫어서 손을 좀 썼더니, 실험체를 조종하는 신호도 끊어져 버렸어. 실험체는 원래 일정 시간 신호를 받지 못하면 자동으로 폭주하도록 만들어 졌다는 걸 깜빡했지 뭐야아아악!”

비올라는 말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공중을 날았다.

이드가 비올라를 그대로 차올린 때문이었다. 앞서 그를 차올리며 충격에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덕분에 이번에는 부담 없이 차 버린 것이다. 비올라의 눈동자는 벽과 천정에 수차례 튕기고는 다시 이드의 발 앞으로 굴러왔다.

그리고 한 차례 부르르 떨자 눈동자에서 성냥개비 굵기의 팔과 다리가 생겨나더니 뒤뚱뒤뚱 일어나며 투덜거렸다.

“이야, 거칠구만그래.”

그런 눈동자를 바라보던 라미아가 돌아보며 물었다.

[몬X터 주X회사?]

“아니야. 저 비주얼이 나왔으면 상영 등급이 달라졌을걸.”

이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비주얼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성격적으로도 전체 관람가를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