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135화


572화

이드에게서 비올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세 여성은 하나같이 강한 우려를 표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혐오스러운 외관도 문제가 되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비올라의 존재가 꺼림칙하다 판단한 것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쉴라의 생각은 확고했다.

“사리사욕을 위해 아군을 배신하는 자와는 절대 함께할 수 없습니다.”

기사도를 숭상하는 기사로서 그녀에게 배신이란 단어는 금기와도 같았다.

주군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것을 목숨으로 간하고 바른길로 인도할지언정, 배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쉴라의 생각이었다. 특히 주군 되는 검후가 행방불명된 일에 대해 자괴감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쉴라에게 배신이란 말은 더욱 예민하게 다가왔다.

[확실히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생명의 관이란 곳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확실히 메리트긴 하니까요. 일단 무슨 말을 할지부터 들어 봐요.]

쉴라가 단호히 거부감을 표시하자 라미아가 처음 우려와 달리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처음부터 라미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비올라가 성냥개비 같은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오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도대체 어떤 위대한 현자가 널 만든 거지? 이리 와서 내게 마도의 비의를 알려주지 않겠느냐? 네 비밀을 알려주면, 내가 너희 창조주의 뒤를 따라 위대한 길을 걸으리라.”

순간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비올라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세 여성의 온도가 5도 이상 더 떨어져 내렸다.

[…………저거 그냥 썰어 버리죠?]

라미아의 생각이 적극적으로 쉴라를 향해 기우는 듯했다.

실제 쉴라의 검이 다시 뽑혀 나오는 모습에 이드가 급히 나서서 말리고는 비올라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일단 이 작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행동하도록 하죠. 너도 정말 썰리고 십지 않으면 헛소리 그만하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우선 나부터 더 이상의 헛소리는 참아 줄 생각이 없어.”

“끙. 내 말 어디에도 헛소리는 없었거늘.”

비올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드 등은 믿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비올라의 난해한 성격과 말투는 생명의 관에서도 말과 분란이 많은 편이었다. 스스로 신뢰와 친구를 까먹는 성격인 그의 이어지는 다음 말도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바를 먼저 밝히자면, 나는 이 생명의 관의 탑주이신 키릴 베이몬 님을 세상 그 누구보다 존경한다.”

‘개소리!’

뜬금없는 고백에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그 말을 부정했다.

그렇게 존경하면서 어떻게 지금처럼 배신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좌중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올라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탑주는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의 새로운 길과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정복왕이시다. 나 비올라는 그런 탑주를 존경해서 이 생명의 관에 왔고, 그분이 남긴 황홀한 발자취를 따라 달려왔다.”

“…..개소리 말고 핵심만 쫌!”

쓸데없이 붙어 있는 미사여구에 이드가 이빨을 갈았다.

“쯧, 넌 역시 성격이 급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최대한 핵심만 이야기하는 중이다.”

[알았으니까 빨리 이야기해 봐요.]

“역시 마도의 결정체답게 새로운 마법의 길을 가는 탑주의 이야기에 관심이 크구나. 좋은 일이다. 말을 계속하겠다. 헌데 언젠가부터 탑주의 발자취가 지워지고 끊어져 있음을 알았다. 탑주가 존재하고, 그분의 영광된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했음은 분명하지만 그분께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흔적을 일절 흘리거나 남기지 않고 있으신다. 나는 슬펐다.”

“…..저게 무슨 말인지 알려주겠나?”

혼자 격앙된 어조로 부르짖고 있는 비올라를 바라보다 쉴라가 머리를 부여잡고 속삭였다.

[끙. 간단히 이야기하면, 저 탑주란 사람이 마법을 가르쳐 주다가 갑자기 그만뒀다는 말이에요.]

“허…….”

핵심을 집어 주는 라미아의 말에 쉴라가 어이없는 한숨을 더했다. 저 간단한 말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건가!

그 사이 비올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혹시,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이 맹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쫓아오는 것을 경계하고, 지금까지 배운 것을 통하여 탑주 자신에게 도약해 오라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과연 제정신이 아닌 놈이 할 만한 생각이다.’

이드는 처음 비올라의 등장에 기뻐한 것만큼이나 지금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혹시,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 시간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생겼다.

“나는 열심히 탑주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지금 탑주는 신비롭고, 거대한 초고대의 마법을 작성하는 중이며, 저 시종장 같은 부관주조차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고독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 나는 확신했다. 탑주의 흔적이 사라진 것은 그 은밀한 벽을 넘어 고독한 길을 함께할 동지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이드는 조금 진지하게 비올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헛소리가 많이 섞여 있지만 유심히 새겨 둬야 할 몇 가지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뻐하며 그분께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과연 마법의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탑주에게 다가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내가 포기할까 하는 유혹에 흔들렸을 정도였지. 그러다 나는 알게 되었다. 저 게으른 부관주가 탑주의 시종장이라는 위치를 망각하고 감히 그분의 옆에서 초고대 마법의 말단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분노했지만, 이것이 기회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게으른 부관주가 훔쳐보고 있는 것을 내가 보고 연구하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이 천재적인 머리로 단번에 도약해서 탑주 옆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비올라는 세 개의 손가락을 말아 쥐고는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관주가 게으르고 멍청하지만 탑주의 은혜를 입고 시종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나는 부관주처럼 탑주께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주변에는 날 질투하고 시기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하루하루 절망에 허덕였다. 그러던 차에 갑작스러운 기회가 찾아왔다. 마법의 신이 내 간절한 기도에 은혜를 내리신 것이지! 네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느냐.”

라미아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벌건 눈동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런 X또라이 XX.]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뭐냐? 네 목적은 결국 그 탑주라는 사람이 숨기고 있는 보물을 훔치고 싶다는 말이지?”

이드가 핵심을 찔렀다.

“날것 그대로의 표현이지만, 행위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다.”

비올라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탑주에 관련된 이야기가 끝이 난 때문인지 광신도 같던 말투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지 한마디를 더 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게 탑주가 숨긴 보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는 탑주가 남기고 있는 최후의 단서라고 생각한다.”

“뭐, 아무튼. 네가 원하는 건 우리가 그 보물을 훔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거겠지?”

“그렇다. 사실 너희들은 이미 내게 협조하고 있는 것과 같다. 생명의 관을 충분히 흔들어 혼란스럽게 해 주었으니까. 여기서 조금만 더 해 주면 좋겠다.”

“계속 그 눈알로 움직일 생각이냐?”

“아니다. 지금은 그저 생명의 관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있기 때문에 나서지 않는 것일 뿐이다. 마지막 탑주의 보물은 내 손으로 거둘 생각이다.”

이드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올라의 목적은 생명의 관을 무너트리고 보물을 얻는 것이고, 이드들의 목적은 생명의 관을 무너트리고 그 안에 잡혀 있을지 모를 카린과 실험체로 잡혀온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정은 같지만 최종 목적은 다르다.

“네가 원하는 일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지? 해 주는 만큼 우리가 받을게 있어야 서로에게 건설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겠어?”

“나는 양식 있는 마법사다. 당연히 내가 얻는 만큼 보상할 것이 있지. 우선 이 생명의 관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그거야 네 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거고.”

“…흐…..그리고 너희들의 목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겠지.”

비올라는 선수끼리 왜 이러냐는 듯 음흉한 웃음소리를 만들었다.

·우리 목적을 알고 있나?” 쉴라가 말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름다운 기사여. 생명의 관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너희들은 며칠 전에 이곳에 숨어든 기사를 찾아온 게 아니냐? 기사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는 법이지. 그 기사를 따라 누군가 찾아오리라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너희도 아는 일이지. 비슷한 형태의 갑옷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갑옷까지 언급되자 쉴라의 숨소리가 낮아지고 진지해졌다.

“그 기사의 행방을 알고 있단 말이냐?”

“크크크. 이 생명의 관에 있는 마법사 중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지. 그것이 내가 줄 두 번째 보상이다. 이 아름다운 기사가 이후 데이트를 약속해 주면 공짜로도 알려줄 수 있지.”

능글거리는 농담이었지만, 발끈할 것 같았던 쉴라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정보만 확실하다면 생각해 보겠다.”

“크카카카카.”

뜻밖의 대답에 비올라가 크게 웃었다.

이드는 쓸데없이 진지한 쉴라의 대답에 중간에 끼어들어 말했다.

“아직 좀 모자란 것 같다만?”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관에 있는 비밀들을 이야기해 주겠다. 마법에 관한 일은 비밀이지만 그 외의 재미있고, 흥미 있는 일들이 많거든. 가령 너희들이 찾고 있는 기사를 몰래 숨겨 준 마법기사라든가 말이다.”

생각지 못한 말에 이드와 쉴라의 눈이 급하게 부딪혔다.

‘이건 또 뭐냐? 마법기사가 왜 카린 경을 도와줘?”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습니다.’

이드는 이마를 쓰다듬다가 일행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비올라가 원하는 건설적인 거래를 이어 가겠다는 뜻이었다.

가장 반대하던 쉴라도 카린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아.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잘해 보자. 하지만 절대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무겁게 경고를 하는 이드의 안광이 눈동자를 넘어 그 뒤에 있는 비올라의 눈을 찔렀다.

…난 탑주의 마법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야.”

비올라도 그 눈빛에 이번엔 감히 장난스럽게 대답하지 못하고 양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해 보였다.

“좋아. 그럼 어디부터 가야지? 우린 카린이라는 기사를 먼저 찾고 싶은데.”

“일단 올라가야 한다. 그 카린이라는 기사도, 내가 찾는 탑주의 마법도. 위에 있거든.”

끄덕.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경고한 후이기 때문에 비올라의 말을 재차 확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혹여 거짓이라면 이후 행동으로 보여 주면 될 일이다.

이드는 만신창이가 된 공간을 다시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던 신음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있었다.

“저기 중앙에 있는 문으로 가자!”

비올라가 이드가 막아 놓은 아홉 개의 문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 뒤에 생명의 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걱정 마라. 네가 뿌린 독도 그렇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으니까. 클!”

이드는 그가 따로 조치를 더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드는 황석진결을 끌어 올려 바위를 모래로 바꿔 통로를 열었다.

“들어가죠.”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