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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46화


583화

라미아의 말에 괴이한 힘의 정체를 안 쉴라의 눈이 밝아졌다.

“과연, 흑마법이였나!”

순식간에 그녀의 머릿속에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수십 가지 방법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기사로서 주인인 검후를 지키기 위해 공부했던 것들이었다.

특히 흑마법사는 저주를 시작으로 까다로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기사가 쉽게 손을 쓰기 힘든 골치 아픈 상대로 첫 손가락에 꼽혀 눈여겨봤다.

쉴라는 드디어 쌓아 둔 지식을 쓸 때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는 아쉽게도 아직 그때는 아니었다.

라미아의 말이 이어졌다.

[흑마법과 같은 효과긴 한데, 흑마법사가 개입된 건 아니에요.]

이후 그녀는 파악한 내용들을 빠르게 전달했다. 괜히 쉴라가 쓸데없는 심력을 낭비할까 염려해 준 것이다.

라미아의 이야기에 쉴라는 귀를 쫑긋 세운 채 공격을 멈추고 회피와 방어에 주력했다.

“소울 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럼 역시 내가 받은 공격도 몸이 아니라 영혼에 가해진 거란 말이지?”

[맞아요.]

그러자 영혼이 상한 카린이 걱정된 쉴라가 물었다.

“카린 경에게 영향은 없는 거야?”

[제가 확실하게 조치했어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널 딸려 보낸 이드 님께 고마워해야겠다.”

[인사를 하려면 제게 해야죠, 왜 이드를 찾아요?]

라미아를 이드의 소유로 생각하고 말했던 쉴라는 라미아의 불만에 그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봐 달라던 이드의 말이 뒤늦게 생각나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래, 고맙다. 사례는…………… 이크!”

여유를 부리며 웃던 쉴라가 말을 끝내지 못하고 당황했다. 이야기하는 사이 두 배나 늘어난 괴수의 손에 움직임이 어지럽혀진 때문이었다. 

“추후에 반드시 하지! 하압!”

하지만 곧 상대의 움직임을 읽은 쉴라는 말을 마치고 거두었던 검강을 다시 뿜어내며 괴수의 검은 손을 잘라 냈다.

라미아는 그 모습에 당혹했다.

[아니, 기껏 이야기 잘 듣고 왜 저런대?]

분명 괴수를 잘라 내면 소울 밤이 터진다는 말을 들어 놓고 괴수의 손을 잘라 낸 이유를 알 수가 없는 라미아였다. 그렇다고 소울 밤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어 괴수를 공격한 것도 아니었다. 그걸 보여 주듯이 잘린 팔이 부서지며 찢어지는 비명이 이어졌다.

[쉴라 경, 괴수의 신체가 잘리면 소울 밤이 터진다고 말했는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라미아가 말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연속적으로 쉴라의 몸을 노리던 변태 손이 잘려 나가며 폐기장이 비명으로 가득 찼다. 라미아의 말보다 쉴라의 검이 빠른 때문이다. 그 속에서 또랑또랑한 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이 불쌍한 괴수를 사냥 중이지.”

불쌍하다는 말은 동의하지만 사냥 중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소울 밤에 노출되면 쉴라 경의 영혼에 먼저 이상이 생길 거예요.]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 마. 그보다 소울 밤이 터질 때 희생자들의 영혼도 영향을 받는지 확인 좀 부탁해!”

라미아는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엉뚱한 요청을 하는 쉴라의 말에 입을 삐죽이며 괴수를 살폈다. 한 부분을 딱 꼬집어 확인해 달라는 말에서 그녀가 정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쉴라가 요구한 일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방에서 연속적으로 소울 밤이 터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확실히 변화는 있어요.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영혼들이 조금씩 한데 뭉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러면 오히려 힘이 집중되면서 더 강해질 거예요.] 

“오히려 생각대로야. 고마워!”

[쉴라 경, 조금만 준비하면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어요.]

그 조금의 준비도 캐스팅을 위한 시간이지만 쉴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라미아를 통해 괴수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된 쉴라가 가여운 눈으로 괴수를 보며 말했다

“아니, 이건 내가 할 일이야. 이 안에 카린 경의 영혼 조각이 같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쉴라는 괴수가 카린 경을 확인하는 모습을 분명 보았다. 그런데 괴수는 카린 경을 무시하고 바로 자신을 노렸다. 그리고 영혼들이 서로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탐한다는 라미아의 말.

쉴라는 그 말에서 괴수가 자신을 노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없이 다른 영혼을 뜯어내 붙여도 영혼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깨닫고, 본능적으로 온전한 영혼을 가진 자신을 노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무력하게 쓰러진 카린이 이 불쌍한 괴수에게 당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짐작되었다. 어차피 영혼이 파손된 카린을 노려 봤자 자신들이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즈음 쉴라는 카린을 저렇게 만든 것이 이 괴수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도 카린과 같은 희생자일 뿐이었다. 오히려 마법사의 손에 끔찍한 고통을 당한 불쌍한 사람들이다.

검후와 제국을 수호하는 기사로서 왜 이런 일을 좀 더 빨리 알지 못하고, 막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쉴라는 이 불상한 영혼들을 자신의 손으로 해방시켜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카린을 찾았으니 다급히 서둘러야 할 필요도 없었고, 이드의 놀라운 힘을 확인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생명의 관에 대한 처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쉴라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소울 밤에 전신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끼며 더욱 깊고 깊게 숨을 마셨다. 그 숨을 따라 내면에 쌓여 있던 내공이 그녀의 정신과 영혼을 단단하게 만들어 소울 밤에 흔들리지 않는 힘을 주었다.

그리고 흑마법에 대한 공부가 그녀에게 괴수를 상대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했다.

정확히 괴수에 대한 공략법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운 지식 안에 있는 내용들을 응용해서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고, 라미아를 통해 그 방법이 유효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 내가 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같이 견디는 일만 남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쉴라는 괴수의 팔을 잘라 내는 검에 속도를 더했다.

그럴수록 라미아의 말처럼 소울 밤에 노출된 영혼이 한데 뭉치며, 힘과 단단함이 더해졌다. 쉴라는 그런 괴수를 상대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혼의 고통을 묵묵히 참아 내며 오로지 검을 휘둘렀다.


라미아는 그런 밑의 상황을 살피며 소울 밤을 막고 있는 루나틱 실드를 여러 겹 중첩해서 강도를 더하고는, 듣지 못하는 카린을 보며 말했다. 

[쉴라 경도 한성깔 하네요.]

카린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멋지게 웃으며 엄지를 내 밀었을 말이었다.

쉴라에 대한 라미아의 첫인상이 바뀐 것처럼,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괴수와 쉴라도 실시간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처음 라미아와 카린을 내려다보던 괴수의 키는 2미터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팔과 다리, 몸과 머리가 생기면서 검은 천을 뒤집어쓴 부정형의 형태를 벗어났다.

물론 그렇게 분명해진 모습은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다리는 확실히 인간이었지만 비정상적으로 발단한 몸과 여섯 개나 되는 팔과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손은 어떻게 봐도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몸 위에 달린 긴 주둥이와 날카로운 귀는 이 괴수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해 주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 쉬운 말로 늑대인간이다. 어쩌면 몬스터와 인간이 뒤섞인 영혼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자신에 대한 가장 완벽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쉴라도 변했다.

은빛으로 찬란하던 그녀의 검강이 달빛을 닮아가며 차분해졌다. 그녀의 검이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밖으로 뻗어 나가던 힘이 안으로 수습되며, 닿는 것을 안으로 끌어들여 쥐어짜고 비틀어 분쇄하는 난폭한 힘으로 변했다.

그것은 곧 쉴라의 내공과 검강에 대한 운용 능력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의미였다. 강철처럼 영혼의 두드림 속에서 그녀도 한 꺼풀 껍질을 벗어 버린 것이다.

쉴라도 생각지 못한 뜻밖의 결실이었다.

“크어어어엉!”

완전히 라이칸스로프로 변한 괴수가 더 이상 울림으로 끝나지 않는 분명한 소리를 질렀다.

라미아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이게 뭐예요. 더 강해졌잖아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의 결과에 라미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라미아의 눈에는 검은 라이칸스로프의 몸 안에 하나로 합쳐진 영혼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더 이상 산산이 흩어진 영혼의 조각이 아니었다.

외부의 자극에 뭉치고 뭉쳐 결국 하나가 되어 버린 영혼이었다.

쉴라는 라미아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괴수를 제대로 벼려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됐네.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결과거든.”

[저 라이칸스로프가 강해지는 일이 쉴라 경이 바라던 일이라구요?]

“아니, 하나의 영혼으로 통일되는 일을 원했지. 흩어진 영혼은 신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스러지지만 하나의 뜻으로 승화된 영혼은 세이레크널께서 거두어 가시지.”

[아, 그래서.]

라미아는 세이레크널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쉴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가 저 라이칸스로프를 처리하면 산산이 조각난 영혼들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딱 봐도 보통이 아닌 라이칸스로프를 처리하는 일이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라이칸스로프 굉장히 강해 보이는걸요. 쉴라 경이 고생해야겠어요.]

“전혀 문제없어. 이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서 세이레크널께서 내게 축복을 내리셨으니까. 분명 내가 이길 거야!”

쉴라는 소울 밤을 견디고 성장한 영혼의 힘을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온전히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그녀의 행동이 불러온 성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도 그 축복에 한손 거들어 볼까요.]

라미아는 그렇게 말하고 체력 회복 마법을 시작으로 다양한 보조 마법들을 걸어 주었다.

그와 동시에 변신을 마치고 그르렁거리며 숨을 고르던 라이칸스로프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보다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쉴라였다.

그녀는 마법의 도움을 받아 차오르는 고양감에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라이칸스로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히야호!”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아니 화를 내듯 라이칸스로프가 소리쳤다.

“크어엉!”

라미칸스로프는 괴수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스피드와 날카로움을 가지고 쉴라를 공격했다. 그 속에는 더 이상 쉴라를 원하는 갈망이 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적을 향한 투지와 적의가 가득했다. 소울 밤 이전의 쉴라였다면 쉽지 않을 상대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축복을 받았고, 그 힘은 소울 밤 속에서 순식간에 숙성되고 완성되었다. 그 힘은 단순히 검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더 밝아진 눈으로 라이칸스로프의 바람 같은 공격을 읽고, 더 정교해진 신체 능력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고, 비틀어 열었다. 그리고 더 무섭게 변한 검강이 라이칸스로프의 가슴을 갈랐다.

놈은 영혼이 하나 된 것뿐이 아닌 듯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르고는 오히려 더 난폭하게 쉴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첫 일격으로 서로의 실력에 대한 우열은 가려진 후였다.

이후 이어지는 쉴라의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그에 따라 라이칸스로프의 상처는 늘어나고, 난폭함은 더해졌다. 점점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 같았다.

라이칸스로프의 성장 속도는 의외로 빨랐다. 스스로에 대해 자각할 뿐 아니라 쉴라를 보고도 배우는 것 같았다. 놈은 쉴라가 사용하는 검강의 힘에 매료된 듯 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냈다.

그르르륵-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나고 놈의 손가락이 뒤틀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쉴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회전은 곧 힘을 뜻하지만 그 발현 모습이 너무나 거칠고 원초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의 발전 속도를 보면 곧 저 능력도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변해 갈 것이다.

쉴라는 그렇게 되기 전에 라이칸스로프를 끝장내기 위해서 검후에게 전수받은 절초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전해 받은 것은 칠식까지의 난화십이식.

“잠영화!”

사각으로 숨은 은색 꽃잎의 검강이 라이칸스로프에게 박혀 들어갔다.

“워우우우-“

놈이 위협을 느낀 듯 사방으로 날뛰었지만, 쉴라는 난폭함을 세련된 보법으로 제압하고 공격해서 팔을 잘라 냈다. 그리고 여섯 개나 되던 팔이 하나만 남았을 때 놈은 자신의 힘을 가장 잘 표현할 수법을 만들어 냈다.

검은 손가락이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섯 손가락 끝에 검게 물든 파괴적인 마나의 회오리가 일어나며 늑대의 어금니처럼 뻗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변화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여섯 개의 팔로도 막지 못한 쉴라는 변화된 한 손을 무시하고 그대로 라이칸스로프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생명력이 질긴 라이칸스로프의 생태와 무시무시한 트롤의 재생 능력을 기억하는 쉴라는 순식간에 라이칸스로프의 전신을 누비며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라이칸스로프의 육체가 곧바로 모래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처절한 비명도, 귀기도 없었다.

“후우우-“

쉴라는 땀에 젖은 숨을 길게 내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에 위에서 내려다보던 라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그녀는 조금 복잡한 생각을 담고 라이칸스로프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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