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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50화


587화

땅이 머금었던 기운이 누런 흙을 머금고 거대한 황하의 물결처럼 무섭게 뻗어 나갔다.

고기 방패가 되어 준 다섯 뱀을 기리며 즉석에서 오두광뢰파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그 속은 철황권의 묵인연영(墨忍鳶泳)에 철황쌍두를 더한 초식이었다. 즉석 인스턴트 같은 이름과 다르게 그 속에 슬로푸드처럼 정교하고 깊은 맛을 숨긴 공격은 특정 구간에서 강줄기처럼 갈라지며 부관주가 빠져나갈 길을 차단하고 덮쳐들었다.

특히 이 초식에서 이드가 공을 들인 중요 포인트는 오로지 무인만을 상정한 공격이 아니라 마법사가 블링크와 같은 공간 마법으로도 공격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마나의 결합을 방해하는 기능이 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콰콰콰콱-

묵인연영은 부관주를 휩쓰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넘치는 힘으로 부관주 뒤에 있는 벽에 깊고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고 사라졌다. 

“뭐야, 시시하게 한 방에 죽어 버린 거야?”

비올라가 뿌연 먼지로 막힌 시야에 고개를 흔들며 이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드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를 대신해 일리나가 손가락을 뻗었다.

“이드라면 저기 있어요.”

“어느새!”


“과연 마법사. 설마 땅 속으로 피해 버릴 줄은 몰랐네.”

이드는 부관주를 보며 감탄했다. 사전에 도망갈 구멍을 잘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땅에 스며드는 물처럼 땅속으로 피해 버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법사다운 신기한 회피 방법이었다. 덕분에 뱀들이 모아준 힘이 부관주가 있던 자리의 먼지만 날리고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처음 셀포 에스파스에 균열이 생겼을 때 부관주는 솔직히 좀 많이 놀랐다.

그는 셀포 에스파스의 힘이면 이드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산이라는 듯 오히려 셀포 에스파스가 부서지는 결과로 돌아왔다. 비올라와 그 협력자들의 실력에 계산 범위를 넘은 부분이 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 부관주는 바쁘게 상황 수습에 나섰다. 수습이라고 하지만 부서진 공간을 복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를 생각한 공격을 준비했다.

한번 부서지기 시작한 공간을 다시 복구하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부수고 복구하는 일의 반복일 테니 말이다. 시간만 느긋하다면야 아티팩트와 마법진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 마나를 충전해 가면서 상대를 말려 죽일 수 있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드들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는 셀포 에스파스의 상태를 체크하고 셀포 에스파스가 무너지는 타이밍을 살펴 기습을 노렸다. 계산은 정확했고, 타이밍은 절묘했다.

그런데 상대의 대처가 그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이드라는 이름의 어린 기사가 셀포 에스파스의 흔적인 뱀을 던져 자신의 기습을 막아 버린 때문이었다.

부관주도 뱀을 던지는 이드의 모습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저게 사람 새끼인가 싶었다. 사람이라면 저 뱀을 힘으로 공중에 띄울 수는 없었다. 그는 저들이 셀포 에스파스를 탈출한 이유가 이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관주의 생각도 거기까지였다. 상대가 자신의 기습을 예상하고 잘 막은 것뿐만 아니라, 산산조각 나는 뱀 고기 뒤에 숨었던 무서운 공격이 해일처럼 밀고 들어온 때문이었다.

“마나가?”

부관주는 놀랐다. 방어보다는 회피를 선택하는 순간 느껴지는 잘게 쪼개진 마나의 이상 현상 때문이었다. 이래서는 마나를 타고 흐르는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없다.

‘정말 보통이 아니군. 대(對)마법사 공략 무공도 가지고 있어?’

마인드마스터에 의해 무공이 알려진 후 많은 정보가 세상으로 흘러나갔지만, 그중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개발된 무공은 정말 비기 중의 비기였다. 어지간해서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데, 어린 기사가 그걸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부관주의 당황은 짧았고, 상황 판단은 빨랐다.

마법사를 잡기 위한 무공을 개발한다는 정보를 접한 그 순간부터 마법사들도 대마법사 공략 무공에 대한 공략 방법을 긴 시간 연구해 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끝없이 발전하는 창과 방패의 싸움과 같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부관주가 살펴본 연구 내용 중에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도 있었다.

부관주는 신기루처럼 그의 손에 나타난 마법 지팡이로 자신의 그림자를 찍고서 마법을 시전했다.

“섀도우 다이브(shadow dive)!”

불쑥!

그림자가 일어나 부관주를 감싸 안았다. 그림자 속에서 공격을 피한 것이다. 땅 속으로 몸을 피했다 할 수 있겠다. 그림자 안의 공간을 이용하는 이 마법은 상당한 고위 마법으로 두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수많은 개념과 사념이 혼재된 그림자 속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과 그림자 안에 있을 때는 공간 마법을 이용해서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부관주도 다르지 않았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공격이 벽을 때리자 그림자 속에서 일어나다가, 마침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드를 보고는 다급하게 지팡이를 뻗었다.

짜자자작!

지팡이를 타고 강력한 번개의 그물이 번쩍였고 그 안에서 이드의 모습이 찢어지며 사라졌다. 이드가 지팡이에서 번쩍이는 뇌기를 느끼고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위치를 바꾼 것이다.

이드는 위치를 이동하며 부관주의 목덜미를 노리고 천강지를 쏘았다.

하지만 이드의 공격은 다급한 부관주의 보호 마법을 깨고 사라지고 말았다.

따앙!

부관주는 보호 마법을 두드리는 공격에 황급히 보호 마법을 강화했다. 정말 간발의 차였다. 이드가 아쉬워하는 사이 부관주가 급하게 그림자 속으로 기어들기 시작했다.

마법사로서 바람과 같은 이드를 쫓을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숨기만 하지는 않았다. 어깨까지 그림자 속에 담근 부관주가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이드를 노리고 범위 마법을 사용했다. 

“분노하는 땅의 형상은 오라! 라바 엑스트루젼(lava extrusion)!”

쿠르르릉-

묵직한 진동과 함께 그림자 주변의 땅이 순식간에 붉은 용암으로 녹아내리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순간 탑주의 연구실에 뜨거운 열기와 유독 가스가 가득 찼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열기와 가스에 위협을 느낄 만한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특히 그중 철황권의 힘을 품은 이드는 용암도 무섭지 않았다. 이드는 부관주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는 그가 보호막처럼 덮고 있는 용암을 휘저어 그 속에 손을 찔러 넣었다. 한 번에 부관주의 실드 마법까지 관통한 이드의 손에 부관주의 허연 머리카락이 잡혔다.

“흥!”

기겁한 부관주가 급히 대응하려고 했지만, 이드는 가볍게 비웃어 주고는 무 뽑듯이 그를 뽑아 올렸다.

치지지직!

그에 따라 실드 마법 위에 흐르는 용암이 부관주의 얼굴을 순식간에 태워 버렸다.

“끄・・・・・・ 끄아아아악!!”

부관주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비명이 터졌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라는데, 딱 그에 어울리는 비명이었다.

사실 이 정도 화상이라면 순식간에 쇼크사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가 사용하고 있는 보호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로 인해서 불행하게 즉사를 피하고 있었다.

이드는 부관주가 완전히 그림자 밖으로 뽑혀 나오자 그대로 앞쪽으로 던져 버렸다.

부관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상태로 보아 절대 이대로 죽을 위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드가 부관주를 좀 가볍게 보고 행동한 것이기도 했다.

바닥을 구르던 부관주가 한순간 슉 하고 사라지더니 연구실의 중앙에 나타났다.

“난 또 어디 멀리 도망갔다고. 이왕 도망가려면 멀리 갈 것이지 말이야.”

“크허허억………… 헉… 헉…… 헉…….”

이드가 방향을 바꿔 그에게 다가가는 사이 부관주는 겨우 허리를 숙이고 서서는 울음인지 신음인지 구분하기 힘든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는 진물과 함께 침이 줄줄 흘러내렸는데, 그 얼굴은 완전히 녹아서 무너지고 눈동자조차 익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으윽. 잔인한 인간. 차라리 그냥 죽이지.”

“다 자업자득이야.”

이드는 뒤에서 들리는 비올라의 말에 감정 없이 대답했다. 과연 비올라도 그 말에는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때 한쪽에서 부관주를 향해 다가가는 존재가 있었다. 몸의 비늘이 여기저기 떨어진 볼품없는 형상의 뱀이었다.

슈르륵. 슈르륵.

“셀포 에스파스의 진체? 어, 그럼 부관주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뭐야?”

뱀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던 비올라가 갑자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사이 뱀은 부관주의 앞으로 다가와 힘없이 그 발을 한 바퀴 감더니 혓바닥으로 신발을 핥으며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마치 용서를 바라는 모습 같았다.

하지만 지금 부관주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부관주는 겨우 들고 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신발을 핥고 있는 뱀의 대가리를 내리찍어 버렸다.

꽝!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뱀의 몸이 잠시 격렬하게 꿈틀거리다 잠잠해지더니 하얀 빛으로 부서지며 부관주의 몸을 타고 올라 까맣게 타 버린 그의 얼굴에 엉겨 붙었다.

“어? 야, 저거!”

비올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드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부관주의 신음성은 멈춰 있었고, 이드를 향해 마법이 발사된 후였다.

“플레임 필드! 혼돈의 소리!”

이드를 중심으로 푸른 불길이 타오르고 사방에서 악마의 목소리가 저주가 담긴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셀포 에스파스 안에서 뱀이 쏟아내던 네 가지 마법의 원형이었다.

“휘이익~ 휘익~”

이에 이드의 입에서 천마후가 휘파람의 형태로 흘러나왔다. 지옥의 노래라지만 무림의 악마들을 지배하는 천마의 휘파람에 비할 수 있을까. 혼돈의 소리는 천마의 힘에 사그라지며 하얗게 부서졌다.

이드는 부운귀령보를 이용해서 불길을 밟으며 부관주에게 다가갔고, 부관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다향한 마법들을 사용하며 이드와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사이 하얀빛은 점점 투명해지며 그 안에서 멀쩡해진 부관주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눈썹과 하얀 수염은 복구하지 못했지만 평범하면서 인자한 원래 얼굴에는 한 점의 흉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비올라가 빽빽 소리치며 이드를 닦달했다.

“아,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빨리 빨리 죽여 버리라고요. 뭘 그렇게 끌고 있어요. 제대로 실력 발휘 하란 말입니다. 뱀 던지던 그 힘은 어쨌어요!” 

이드는 그 목소리에 작게 입맛을 다셨다.

사실 아래쪽에 있던 마법사들과 달리 생포를 목표로 움직이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비올라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조차 모를,

부관주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고급 정보가 탐이 났던 것이다. 비올라가 말했던, 비밀리에 생명의 관에 돈을 대고 있는 자들의 명단을 알고 싶었다. 이래서 역시 하려면 두목은 되어야 한다. 절대 쉽게 죽는 법이 없으니까.

그때 이런 이드의 속을 짐작한 비올라의 고함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냥 죽이라고요! 내가 아는 거 모르는 거 최대한 찍어 줄 테니까! 그러다 놓치면 어쩔 건데! ・・요!”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가슴이 졸여지는 모양이다.

“하하. 그럼 그 말을 믿고 확실히 끝장을 볼까!”

이드의 말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의 주먹에서 천둥소리가 쳤다.

꽈!

검은 유성이 심상치 않은 느낌에 블링크로 도망가는 부관주의 팔 하나를 부수고 땅에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사이 부관주는 연구실 중앙에 있는 진녹색 원형 기둥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따라 이드가 일라이져를 뽑아드는 순간.

뒤에서 다시 발악하는 비올라의 말이 들려왔다.

“아악! 스톱! 공격 금지! 공격하면 당신 마누라를 죽일 거야!”

“…..네가 미쳤구나!”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일리나를 가지고 협박을 할 수 있을까.

부관주를 향하던 일라이져가 비올라를 향해 날아간 것은 오롯이 미쳐 날뛰는 혓바닥의 자업자득이지, 절대 이드 탓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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