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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51화


588화

말과 물은 한 번 쏟으면 다시 주워 담기가 쉽지 않다.

비올라도 말을 해 놓고는 아차 싶어 급히 두 손을 들었지만, 이드는 저 미쳐 날뛰는 주둥이를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자, 잠깐. 내 말은 그게 아니…………… 켁!”

변명하던 비올라는 눈앞에 별이 번쩍이는 느낌에 한쪽 눈을 부여잡았다. 뭐가 날아오는 건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맞았는지는 확실히 안다.

한편으로 쪼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거슬리는 말을 했다지만, 급해서 튀어나온 말을 가지고 꼭 이 위급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징계를 해야 했을까. 자신보다는 탑주의 아티팩트에 접근한 부관주가 더 위험한 상대인데 말이다. 하지만 시큰거리는 눈을 달래고 겨우 다시 눈을 뜬 비올라는 곧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쩍 벌어진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부관주의 모습 때문이었다.

톡. 톡.

그때 일리나가 비올라의 어깨를 두드렸다.

던져 놓은 말이 있던 비올라는 차마 부끄러워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말했다.

“크흠. 내가 마음이 급해서 큰 실수를 했소.”

말을 하며 얼굴 근육이 움직이자 눈가가 쿡쿡 쑤시는 것이 제대로 멍이 든 것 같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비올라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 비올라야! 내 잘못은 쿨하게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남자라고.

그러나 당당한 마음과는 달리 비올라의 고개는 슬그머니 숙여져 있다.

“아니요. 사과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일리나가 상큼한 어투로 비올라의 말을 막았다.

“오!”

그녀는 남편과는 다른 대인배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이 좀 이상했다.

“비올라 씨,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이니까요.”

“잉? 책임?”

말에 대한 책임이라니. 말실수를 했으면 사과를 하고 해결을 해야지, 책임을 어떻게 지란 말인가. 비올라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일리나의 하얀 눈뭉치 같은 주먹이 비올라의 명치를 쳐 올렸다.

“끄어어억!”

비올라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꺾었다.

“약속을 어겨도 죽지만, 약속 이전에 내 여자를 건드리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겠다고 했어요. 이드가요.”

일리나는 말과 함께 살포시 얼굴을 붉혔다.

“어머나, 제가 말을 해 놓고도 좀 부끄럽네요. 그럼, 계속해서 책임 추궁에 들어갑니다.”

“뭐? 이・・・ 끄억~”

‘이 빌어먹을 커플들’이라고 내심 욕설을 날리려던 비올라는 이어지는 일리나의 말에 당황한 얼굴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이드는 비올라의 비명을 들으며 그에게 정기적이고 확실한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데 그는 그 말을 너무 쉽게 했다.

‘그게 다 맘 한 귀퉁이에 그런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튀어나올 수 있는 말 아니겠어?”

가족을 언급한 협박은 거칠기로 소문난 용병들도 하지 않는 짓이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누구 하나는 죽어야 싸움이 끝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악당의 영역이라고 할까?

일차 교육을 일리나에게 부탁해 놓기는 했지만, 이차로 자신이 나서서 확실히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뭐, 우선은 이 인간이 먼저지만.’

이드의 생각이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은 부관주를 향했다. 처음에 원형 기둥 앞에 서 있던 그는 가슴이 갈라지는 상처를 입고, 원형 기둥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비올라를 향해 발출되어 부관주에게 날아가는 뒤틀린 검로에 당한 것이다.

이드의 눈이 잠시 진녹색 원형 기둥을 향했다.

비올라가 대놓고 협박을 하는 것을 보면 저 물건이 그가 노리는 탑주의 고대 마법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고대 마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중요한 아티팩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물건이면 서둘러서 잽싸게 가지고 도망갈 것이지, 왜 우리가 올 때까지 여기 있었던 거지?’

부관주의 목적이 아티팩트를 지키는 것이라면 물건을 가지고 몸을 피했어야 옳다.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싸움으로 인한 손상을 입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데, 지금 모습은 신경을 쓰기는커녕 방패로 쓰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아티팩트를 옮기지 않은 이유는 저 물건을 옮길 수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저 물건을 가지고 도망가지 못한 거지. 그런데 저 물건 뒤로 숨은 건 뭐지? 저 행동은 이해하기 힘드네.’

단순히 아티팩트의 강도가 성벽처럼 단단해서 숨었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단단해도 일단 보물이라면 그렇게 쓸 수는 없다.

다이아몬드가 단단하다고 해도 거기에다 대고 총을 쏴 보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의문점이 있더라도 부관주를 처리한다는 처음 목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물건 뒤에 숨는다고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지.’

불끈.

이드가 다시 공격을 위해 손에 힘을 더하는 순간이었다.

“크륵………… 아프군. 역시 소드 팰러스의 검은 무섭구만.”

부관주가 피가 섞인 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이드는 날카로운 눈으로 침묵했다.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부관주가 다시 말했다.

“이 자리에 없는 여기사는 내가 들었던 은색 기사단의 단장처럼 보이는데, 이상한 일이지? 소드 팰러스에서 손님이 온다는 연락을 받은 적은 없는데 말이야.”

‘겨우 그거냐?’

이드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흘렀다.

“정보원이 게으른 모양이군.”

짜자자작!

이드의 손끝에서 열다섯 줄기의 벼락이 쏘아졌다. 회선의 비결을 담은 지력이 부관주를 노렸다.

“이놈!”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부관주가 황급히 중력을 비틀고 벽을 세웠지만 모두 막지는 못하고 두 개의 구멍이 더 생기고 말았다.

부관주는 새어 나오는 피를 막으며 소리쳤다.

“개자식! 여긴 소드 팰러스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라는 말이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이 소드 팰러스의 허락을 받고 하는 일이냐!”

“아, 그 말이었소? 처음부터 쉽게 말을 하시지. 그런데 어쩌나? 같이 있던 쉴라 경이라면 몰라도 난 소드 팰러스와 관계가 없는데 말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은색 기사단장과 같이 움직이면서 소드 팰러스와 관계가 없다고!”

부관주의 목소리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바로 그렇소.”

능청스러운 이드의 대답에 부관주가 이를 갈았다. 이드의 대답이 거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는데 맞다고 우기는 것도 웃긴 노릇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긴 소드 팰러스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기사들의 성지에 마법사가 왜 끼어 있소?”

갑자기 치고 든 이드의 말에 부관주가 이를 악물고 말을 바꿨다.

“…………소드 팰러스에서 지원하는 연구소다. 이곳을 공격하면 소드 팰러스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허, 이상하네. 내가 듣기로는 초인들도 지원하는 연구소라던데. 안 그래?”

이드가 슬그머니 비올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비올라는 시커먼 눈을 문지르며 침묵했다.

부관주는 이드를 따라 비올라를 노려보다 말했다.

“다시 말하지. 소드 팰러스를 포함해서 초인파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이쿠. 무서워라. 그러지 말고 또 어떤 곳이 더 돈을 내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면 내가 겁을 먹고 발을 뺄 수 있을 텐데 말이오.”

이드가 싱글싱글거리며 말했다. 저 얼굴이 어디 무서워하는 얼굴인가.

언행불치의 극치다.


“허…….”

부관주는 기가 찼다.

이건 유도신문도, 도발도 아닌 조롱이었다. 그가 언제 이런 꼴을 당해 봤던가? 기가 막혀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튀어나왔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처음에는 은색 기사단장이 검후를 수색하며 떠돌던 중에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추측도 의심스러웠다. 소드 팰러스와 비밀리에 연계를 하고 있는 만큼 소드 팰러스의 기사들도 모르는 소드 팰러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비밀 속에 저런 젊은 실력자에 대한 정보는 들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소드 팰러스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소드 팰러스와 생명의 관은 필요에 의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관계일 뿐이다.

다시 말해 필요하면 언제든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섣불리 단정 짓기도 어려웠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부관주는 다른 말로 이드의 관심을 돌리면서 바이트 타블렛을 감싸고 콘티에롬을 확인했다.

‘작업을 완료하려면,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가?”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입은 그 마음과 다르게 엉뚱한 소리를 꾸며 내고 있었다. 

‘콘티에롬의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을 끈다.’

“어떤 곳이 우리에게 돈을 대는지 궁금하다고 했나?”


“그랬소.”

이드가 긍정했다. 그런 중에도 부관주에게서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무인 이상으로 틈을 보였을 때 위험한 존재가 마법사들이다.

“많지. 이 세상에 욕심 없는 자들이 없으니까. 탑주께서도 생명의 관을 열었지만, 이 거대한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욕심 많은 자들의 욕심을 채워주고 자금을 받았지. 소드 팰러스는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아가는 초인들의 약점과 공략 방법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 투자했고, 초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이유와 자신들의 약점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

“그런 잡설 말고 핵심만!”

이드가 재촉했지만 부관주는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아는가? 이곳은 그런 욕심과 욕망이 모여 끓어오르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오케이! 거기까지.”

세상의 어두운 일면을 설파하는 부관주의 묵직한 목소리였지만 이드는 가뿐하게 그 말을 끊고 나섰다. 그런 이드의 얼굴에 가소롭다는 비웃음이 걸렸다.

“어디서 먹히지도 않을 개소리야. 생명의 관을 지원하는 곳을 대라고 했더니. 한다는 말이 욕망의 용광로? 에로 소설 제목이냐? 싸움에서 밀리던 놈이 이런 되도 않는 개소리를 하는 경우는 하나뿐이지.”

꼴깍.

“바로 일부러 시간을 끌 때!”

찌지직-

이드는 말과 함께 부관주를 향해 비혼화의 검화를 날렸다. 이번에는 그만을 노리지 않고 탑주의 아티팩트를 같이 노렸다. 그가 시간을 끌고 있는 목적이 아티팩트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뒤에서 비올라의 절규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과연 이드의 생각이 맞았는지 아티팩트 뒤에 숨어 있던 부관주가 튀어나와 공격을 막아섰다. 아티팩트 뒤에 숨어 있던 행동 자체가 일종의 눈속임이었던 것이다.

“썬더 폴!”

부관주가 휘두르는 지팡이를 따라 번개가 비처럼 쏟아졌다.


이드는 일라이져를 휘둘러 번개를 끊어 냈다.

그사이 부관주가 블링크를 이용해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드는 멀어진 그를 쫓지 않고, 부관주가 지키고 있던 이름 모를 아티팩트를 노렸다.

“멈춰라!”

순간 물러섰던 부관주가 기겁해서 아티팩트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오포스 실드가 작동했지만 이드의 공격이 실드를 깨고 부관주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

이드는 그 모습에 악당처럼 웃었다.

“멈추고 싶으면 댁이 멈춰 보시든가!”

이드는 그 뒤로도 계속 부관주가 아니라 아티팩트를 노렸다.

그러자 부관주가 이드의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따라 다니며 맞기 시작했다. 점점 부관주의 상처가 늘어 가며 잠깐 사이 당장 죽어 자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이 되었다.

이것도 이드가 힘을 적당히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관주야 상관이 없지만, 원형 아티팩트에 이상이 생기면 뒤에서 공격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는 비올라가 철천지원수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다시 이드의 검강이 아티팩트를 노렸을 때였다.

인질로 잡힌 자신의 신세를 참지 못한 것인지 아티팩트에 변화가 생겼다.

그르르륵!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원형 아티팩트가 다섯 개의 층으로 나뉘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크크・・・ 컥. 끝…났다!”

그러자 아티팩트 위에 피를 흘리며 서 있던 부관주가 피범벅이 된 이빨로 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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