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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54화


591화

화아아악-

“으악! 내 눈!”

비올라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연속된 무시 속에서도 도대체 녹색홀을 어떻게 파괴하겠다는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다가 광인멸혼류에 빛 테러를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곤란은 빛 테러만이 아니었다.

시큰거리는 눈을 비비며 발을 동동 구르던 비올라는 디디고 있던 땅이 사라지며 추락하는 감각에 사정없이 허우적거려야 했다.

“어허억! 떠…… 떨어진다!”

원래 이렇게 쉽게 당황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갑자기 닥친 추락은 그의 캐릭터를 붕괴시키기에 충분했다. 정확히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처할 연륜이 부족한 것이었다.

[쯧쯧쯧! 눈깔 카리스마 뒤에 저런 한심이가 들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라미아가 그 모양을 보고 혀를 찼다.

처음 징그러운 눈알의 사역마를 통해서 등장할 때는 그래도 자아도취에 빠진 흑막의 카리스마라도 있었는데, 실제 나이를 알고 얼굴을 마주 보며 겪어 보니 점점 한심해 보였다.

라미아는 비올라가 키보드 워리어류(流)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아바타를 통해서만 날아다니는 초전사들.

[저 깜냥으로 배신에 도둑질까지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대견하네.]


사실 비올라가 느끼고 있는 추락감은 일종의 착각이었다. 실제로 추락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1초에 불과했다. 이유는 연구실을 가득 채운 광인멸혼류의 힘에 연구실 벽이 둥글게 깎여 나가며 일행이 디디고 있던 땅이 사라져 버린 때문이었다.

라미아가 곧바로 사람들을 문제없이 보호했지만, 빛 테러로 시력을 잃은 비올라는 그런 사실을 알기는커녕 시력을 잃어 괜히 예민해진 감각이 추락감을 극대화시켜 더욱 허둥대게 되었다.


그렇게 비올라가 삽질을 하는 사이, 광인멸혼류의 빛 무리는 이드의 뜻에 따라 녹색홀을 향해 압축되었다. 압축된 빛 무리가 망치가 되어 녹색홀을 두드렸다.

서로 다르게, 또 같이.

빛의 망치는 찰나의 간격을 두고 하나하나의 공격을 증폭시키며 움직였다. 현대의 슈퍼컴퓨터도 계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고도의 파괴공학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런 메커니즘을 깨달음이라는 직관력으로 녹여 낸 무인의 집념이 실로 두려울 뿐이다. 부르르르-

녹색홀도 두드려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원래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인지, 빛의 망치에 두드려 맞던 녹색홀 표면에 기묘한 파문이 만들어지더니 빛의 망치를 향해 달려들어 흡수하려고 했다. 그러자 망치의 움직임이 변했고, 녹색홀은 한 점의 빛 알갱이도 흡수하지 못했다.

“어림없지!”

이드는 코웃음을 쳤다. 어디 광인멸혼류와 돌멩이를 같이 취급한단 말인가. 이드는 이 반응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흡입력이 모이면서 약해진 부위를 강하게 공략했다.

흡입력에 의해서 일어난 파문이 빛의 망치가 일으키는 충격과 부딪치며 부서졌다.

쩌억!

실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이드는 일그러진 파문의 형태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녹색홀이 부서졌다. 블랙홀을 닮아 가던 흡입력이 널뛰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라미아가 이야기했던 틈이 생겼다.

그것은 면도날 끝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미세했다. 하지만 빛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처럼, 광인멸혼류도 자연스럽게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드는 녹색홀의 틈 구석구석까지 빛 그림자가 스며든 것을 보고 광인멸혼류의 진짜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러자 압축된 빛이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물질화하며 실체를 가진 빛의 칼날[]]로 변화했다.

쩡!

귀가 쨍쨍한 소리가 들리고 녹색홀의 표면에 무수한 금이 생겨 나며 그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마치 안에 태양을 담고 있는, 깨지기 직전의 알 같았다. 이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열려라!”

이드는 말로 머릿속 이미지를 좀 더 선명히 하고 의형강기를 조종했다. 이드의 지시를 받은 광인들이 녹색홀의 중심으로 모여들어 나란히 늘어서며 둥근 원형의 공간을 만들었다.

힘과 힘의 격돌에서 밀린 녹색홀의 중앙부가 뻥 뚫려 버린 것이다. 단순히 금이 간 이상으로 녹색홀이 파괴되자 파탄이 일어났다. 기상 영상의 태풍처럼 녹색홀 외곽 부분이 길게 늘어나더니 뒤틀린 흡입력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무식하게 부숴 대기 시작했다.

쾅! 콰콰콰콱!

연구실이 무너지며 무시무시한 돌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생명의 관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저거다.’

이드의 신경은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라 시원하게 뚫린 녹색홀의 구멍 안에 떠 있는 바이트 타블렛을 향해 있었다.

타탁!

이드는 먹이를 노리는 솔개처럼 허공을 날았다. 무중력상태는 절정에 이른 허공답보 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지나간 자리에 그림자가 아른거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이드가 바이트 타블렛 앞에 다가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드는 광인 하나로 대지에서 뽑아 올리는 마나의 흐름을 끊고 바이트 타블렛을 손에 잡았다.

“헙?”

순간 이드의 입에서 다급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게 무슨・・・・・・’

바이트 타블렛을 손에 쥐는 순간, 머릿속에 선명하던 무수히 많은 광인의 형체가 급격히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느낌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에도 영향을 미쳤다. 녹색홀을 찰떡처럼 주물럭거리며 통로를 열었던 광인의 일부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녹색홀은 기회다 싶은지 때를 맞춰 힘을 쓰기 시작했고, 활짝 열렸던 구멍이 일그러지며 닫히려 했다.

“하압!”

그 사실을 감지한 이드는 마음에 날을 세워 광인을 단단히 세웠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바이트 타블렛. 바로 그 물건에 손을 대는 순간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잡고 있던 걸 놓으면 된다.

“칫!”

이드는 작게 혀를 차고 손에 들고 있던 바이트 타블렛을 녹색홀 밖으로 튕기듯 던져 버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고수도 아닌, 단순한 도구에 의해서 자신의 무공이 무너질 뻔했다는 사실에 이드는 화가 났다.

과연 원인은 바이트 타블렛이 맞았다. 바이트 타블렛을 던져 버리자 노이즈가 낀 듯하던 광인의 이미지가 다시 유리알처럼 맑아진 것이다. 확신이 사실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통로의 한쪽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드는 통로를 유지할 생각을 버리고 아직 멀쩡한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런 이드의 등 뒤로 무수한 광인이 무리지어 따랐다.

광인이 사라지자 녹색홀의 구멍은 순식간에 메워졌다. 뿐만 아니라 메워지는 속도 그대로 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드는 광인을 펼쳐 그 공격을 막았다. 이드의 등 뒤에서 일제히 뛰쳐나오는 광인의 모습은 마치 천사의 날개를 연상케 했다.

꽈꽝!

커다란 폭음과 함께 녹색이 폭발했다. 이드를 향한 공격이 광인에 의해서 완벽히 막혀 버린 것이다. 이드는 그 속에서 이전과 같은 흡입력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

청소기의 엔진처럼 품고 있던 바이트 타블렛이 사라진 때문인 것 같았다. 이제 녹색홀은 그저 무식한 마력을 품은 폭탄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 폭발력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힘이었다.

이드는 녹색홀을 사방에서 두드리며 광인을 그 아래쪽에 모아 화살처럼 쌓아 올렸다.

펑!

그와 동시에 이드는 라미아를 향해 바이트 타블렛을 차올렸다. 손대기도 꺼림칙한 물건이었다.

“이거 이상해. 조심해서 따로 좀 챙겨줘. 그리고 지금 뚫을 테니까 준비해!”

라미아를 향해 날아간 바이트 타블렛은 라미아 앞에서 사라지며 아공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아공간 어딘가를 구르고 있을 것이다.

[말만 해요!]

“좋아. 그럼 하늘까지 뚫어 버려!”

핑-

광인 하나가 일직선으로 솟아올랐다. 아래에서 전달하는 힘을 받은 광인은 작지만 단단한 힘으로 녹색홀을 관통하고 연구실의 천정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 하나가 시작 신호라는 듯 녹색홀 아래에 쌓여 있던 광인이 불타오르며 한꺼번에 솟아올라 녹색홀을 갈기갈기 찢어냈고, 일부는 그대로 절벽 끝까지 솟아오르며 연구실 천장에 하늘까지 이어진 구멍을 만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돌연변이 반딧불이 군무를 추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갈 길이 만들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라미아의 목소리가 짜랑하고 울렸다.

[충분! 우리 먼저 나가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

이드는 지금까지 조심조심 어르던 광인멸혼류의 고삐를 풀었다.

아름답고 섬뜩하게 녹색홀에 칼질 중이던 광인이 찰나간 멈추었다.

그리고.

“부서져라.”

기이이잉!

불끈 쥔 이드의 주먹처럼 기세가 돌변한 광인이 수백의 륜이 되어 녹색홀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리마아가 탈출한 구멍으로 번개처럼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생명의 관을 탈출한 이드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이드의 발밑에서 강렬한 압력이 뿜어지며 생명의 관이 들어 있는 절벽이 폭발했다.

번―쩍!

콰르르르릉!

거의 산과 다름없는 절벽이 폭발하는 모양은 단순한 폭발이란 말로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 소리만으로도 하늘의 구름이 물러가고, 뿜어진 충격파로 헬름 협곡의 초목이 모두 쓰러져 버렸다. 협곡이 돌먼지에 뒤덮이고, 양 협곡의 절벽이 무너지는 곳도 생겼다.

탈랄 마을에서 몬스터 때문에 약초 채집이 어렵다고 했는데, 이제는 협곡 자체가 사라지면서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뭐, 상관없으려나. 마을을 폐쇄한다고 했으니.”

지금 상황이라면 이후에라도 마을이 다시 부활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아차. 그러고 보니 포로들!”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던 이드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낸 생명의 관의 포로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도 무너져 내리고 있는 돌 더미 속에서 그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죽었다면 그놈들의 인생도 여기까지란 거겠지.”

이드는 빠르게 포로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먼저 나왔을 라미아를 찾았다.

그녀들은 가까이 있었다. 그들은 한차례 폭발의 충격을 흘려보낸 후 먼지가 가득한 협곡의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이드, 여기예요!]

마침 이드를 발견했는지 라미아가 날개를 흔들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그 옆으로 날아 내리려다 멀리 보이는 그림자를 보고 멈춰 섰다.

끄아아악!

아직 멀어서 작은 참새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분명 와이번이었다.

“갑자기 저놈이 왜? 마력 폭발에 반응한 건가?”

와이번은 마력에 민감한 몬스터인 만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놈이 이곳으로 날아온다면 당연히 이드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절벽이 무너진 마력 폭발에 흥분해서 날아온 것이라면 백이면 백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미리 처리해 둘까?”

그게 좋을 것 같았다. 괜히 머리 위에서 잡았다가는 와이번의 피비를 맞을 테니까.

그런데 막 행동에 나서려는 이드의 눈에 참새에서 종달새만큼 커진 와이번의 등에 있는 불룩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와이번 등에 혹이 있었던가?’

낙타와 외도한 와이번이 없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드는 눈에 내력을 더해 와이번의 모습을 당겨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섰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위에서 뭘 보고 있었던 거예요?]

일리나와 라미아가 물었다.

“글쎄. 손님…………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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