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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56화


593화

깊은 밤, 저택으로 마차 한 대가 조용히 들어섰다.

덜컥!

저택의 문 앞에 마차가 멈추고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이더니, 그 안에서 3미터에 가까운 거한이 내렸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듯 거한이 저택으로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그러자 거한의 몸이 흙 인형처럼 무너지고 그 안에서 발터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 있나?”

“별실에 계십니다.”

“가자.”

발터의 말에 남자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나 있었다. 평소에는 철저하게 막아 놓는 계단이지만, 발터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남자가 미리 열어 둔 것이다.

발터가 계단을 내려가자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급한 몸짓으로 그 뒤를 따랐다.

뚜벅. 뚜벅, 뚜벅.

발터의 특징과도 같은 무거운 발소리가 오늘은 유독 크게 지하를 울렸다.

눈치 빠른 남자는 평소 같지 않은 발소리에 괜히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그로 인해 남자는 갑자기 들려온 발터의 목소리에 허둥대고 말았다. “특이할 만한 일은?”

“예? 아, 예! 특이 사항이………… 있습니다. 랜달 님이 도착하신 후에 포획해 놓은 애송이들을 원하셔서 별실에 넣어 드렸습니다. 이후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더듬거리며 ‘포획한 애송이’를 언급한 남자의 말에 발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이언 마스크라는 별명을 가진 그에게서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발터가 예민하게 반응할 만한 일이 ‘포획한 애송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 외는?”

“없습니다.”

무사히 보고를 마친 남자는 몰래 식은땀을 닦았다.

이후 침묵 속에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검은 강철 문 앞에 섰다.

“여기서 기다려라.”

“예.”

문과 문 안에 있는 존재를 노려보던 발터는 남자의 대답에 대답도 없이 강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별실은 지하에 만들어진 것치고는 굉장히 넓고 잘 꾸며져 있었다. 대저택의 집무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별실의 모습이 엉망이었다. 중앙에 놓여 있었을 커다란 책상이 한쪽에 나동그라져 있고, 책상이 있던 별실의 중앙에는 심장과 머리에 구멍이 난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발터는 시신들을 무심히 지나쳐 별실의 가장 안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등을 돌리고 선 랜달이 열두 번째 시신이 될 것 같은 남자의 가슴에 지팡이를 박아 넣고 서 있었다.

“끄어………… 사…………려………… 끄르르륵……………”

심장이 찔린 남자는 희한하게도 아직 죽지 않고 고통스러운 피거품을 게워내고 있었다.

‘랜달 포스터.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발터는 내심 이를 갈았다. 눈앞에 벌어지는 참상이 끔찍해서가 아니었다.

죽어 있는 자들과 현재 죽어 가고 있는 자가 초인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오.”

그런 마음을 감추지 않은 발터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랜달은 발터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발터는 두 번 묻지 않고 몸 안에 단단히 갈무리하고 있던 초인기를 풀어냈다.

순간 별실 안을 수백 킬로그램의 ‘무게’가 내리눌렀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랜달이 말했다.

“중요한 일이네. 곧 끝나니 조금만 기다리게.”

“흥.”

여전히 고개도 돌리지 않은 통보와 같은 대답에 발터는 콧방귀로 답했다. 그러나 당장 그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는 듯 한쪽에 뒹굴고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 사이 일차 준비를 끝내고 남자의 머리에 지팡이를 박아 넣은 생명의 관 부관주 랜달 포스터는 남자의 영혼을 빨아올려 앞에서 회전하고 있는 콘티에롬으로 밀어 넣었다.

콘티에롬을 타고 흐르던 남자의 영혼은 이드의 검에 의해 잘려 나간 부분으로 스며들었다. 거기에는 앞서 희생된 열한 명의 영혼이 있었는데, 남자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더해진 것이다.

꾸드드득.

준비된 재료가 모이자 영혼들이 일그러지며 잘려 나간 부분의 일부가 되어 콘티에롬을 복구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영혼을 갈아 넣은 이 작업으로도 완벽한 수리가 되지는 못했다. 그저 콘티에롬이 더 부서지는 것을 막는 일종의 응급조치였다.

우우웅-

그래도 그럭저럭 수리는 되었는지 다섯으로 나뉘었던 콘티에롬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 후 랜달에게 날아가 그의 복부를 감싸는 갑옷처럼 장착되었다.

랜달은 그런 콘티에롬을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었다.


‘열두 명의 초인을 죽여 한다는 일이 고작 물건 수리라니.’

발터는 랜달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자신도 초인이면서 초인을 마법 재료 정도로 취급하다니. 초인파 내에서는 그의 연구를 지지하고 있지만, 발터가 보기에 랜달은 초인파에 도움이 되긴커녕 해만 될 것 같았다.

“기다리게 했구먼. 뭐라고 했나?”

콘티에롬의 수리로 여유를 찾고 돌아선 랜달이 물었다.

“……”

발터는 이미 들어 놓고 능청스럽게 묻는 랜달의 모습에 침묵으로 답했다.

“허허. 내가 여기 온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만. 뭐, 이해하네. 명색이 비밀 거점인데, 대낮에 들이닥쳤으니까.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네. 콘티에롬을 급하게 수리하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한데 그 재료를 구할 곳이 있어야 말이지. 콘티에롬과 비밀 거점의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나. 비밀 거점이야 옮기면 그만인 것을.”

비밀 거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들으면 복장 터질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랜달이었다.

“말이 심하오. 재료라니. 이들도 엄연히 우리와 같은 초인이오.”

“쯧쯧. 자넨 초인에 너무 집착이 커 어차피 이놈들은 초인 범죄자나 쓸모없는 초인기를 가져서 초인파에서 쓰레기로 분류된 놈들이 아닌가? 이런 쓰레기를 사용해서 초인의 탄생 이유를 찾고, 또 초인을 위한 일에 쓴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나?”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요. 당장 생명의 관에 들어가는 초인들의 수도 너무 많소.”

“그럼 어떤가? 최근 들어 초인들의 발생이 그만큼 늘었지 않나? 그런데 누구도 그 이유를 몰라. 이후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겠나? 이런 때야말로 오히려 더욱더 초인에 대한 연구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네. 초인을 아끼는 자네 생각은 알지만, 지금 늘어나는 초인처럼 초인의 능력이 갑자기 사라져서 초인이 줄어들면 어쩔 텐가?”

초인기가 사라진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초인기를 얻어 초인이 된 자들이 언젠가 올 세상의 멸망처럼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발터는 초인의 역린과 같은 발언에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어허. 아무런 대가 없이 힘을 얻은 초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걸 모르나?”

“……”

발터는 대답 없이 랜달을 노려보았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면 거의 매번 하게 되는 말싸움이다. 하지만 초인이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랜달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만다.

발터는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언쟁을 한숨으로 삼키고는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후우. 그래서 무슨 일이요?”

랜달도 익숙하다는 듯 태연히 이야기를 받았다.

“생명의 관이 무너졌네. 대부분이 죽었고, 내가 손을 써 놨으니 살아 있는 놈들도 없을 걸세. 아무 흔적도 찾지 못할 정도로 폭삭 무너졌을 테니.”

‘으음.’

발터가 눈을 번뜩였다. 랜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심상찮은 일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덩어리가 큰 정보였다.

“생명의 관을 공략한다는 정보는 접하지 못했소만?”

“소드 팰러스였네. 정확히는 은색 기사단장과 검후의 무공을 사용하는 젊은 괴물, 그리고 탐나는 에고 아티팩트 하나와 정령사 끝으로 맹랑한 놈이 하나 붙었는데 그놈은 신경 쓸 것 없고.”

발터는 검후의 무공을 사용하는 괴물이라는 말에 놀랐지만 표 내지 않고 말했다.

“고작 네 명 때문에 생명의 관이 무너졌단 말이요?”

“생명의 관이 별건가? 말 많은 겁쟁이들만 남은 곳인데. 그리고 그 네 명이 어디 보통 네 명인가? 그중에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끼었잖나. 그 이름값에 내가 직접 본 실력이면, 오색 기사단 중 두 개 기사단이 움직인 것과 같다고 보네. 이름이 이드라고 하더군.”

“그 이름이 맞소. 하지만 그들이 왜?”

“용사 파티가 등장하기 전에 성깔 있는 여기사 하나가 생명의 관에 침입했지. 검후를 찾다가 흘러든 모양인데, 용사 파티는 그 여기사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네.”

결국 우연이라는 소리였다.

“공교롭군.”

“그래도 덕분에 사용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던 이 녀석을 써먹을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아.”

발터는 사랑스럽다는 듯 콘티에롬을 쓰다듬는 랜달을 보며 무심히 말했다.

“흥.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거에 비해서 성능이 별로인 모양이오? 당신도 그 물건도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소만?”

“별수 있나. 상대가 괴물인데, 무엇보다 이놈은 아직 미완성인데 이 이상을 바랄 수야 없지. 완성되면 얼마나 굉장할지 이드라는 괴물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려고 했는데. 내 넉넉한 맘으로 자네에게 제일 처음 보여 주지.”

“……..훗. 기대해 보지. 그러면 이제 어쩔 거요?”

랜달의 도발에 발터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급한 수리는 마쳤으니 돌아가야지. 이 녀석을 완성해야 하니까.”

“생명의 관이 무너지고 혼자 살아 돌아가면 말이 많을 텐데 괜찮겠소? 더구나 생명의 관이 발견되었으니 곧 보고가 올라오고 토벌하기 위해 나설 가능성이 높을 텐데.”

“그러니 서둘러서 돌아가야지. 그리고 나도 다 수가 있네. 저쪽에 붙은 맹랑한 망나니 덕분에 좋은 수가 생겼지. 하하하.”

랜달은 나름대로 귀엽게 지켜보고 있던 비올라를 떠올리며 시원하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찍었다.

“블레이즈!”

화르륵!

지팡이 끝에서 시작된 불길이 바닥을 달려 별실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재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렸다. 환기구가 다 감당하지 못한 역겨운 냄새가 별실을 채웠다.

“자, 내 볼일도 봤고 전해 줄 이야기도 모두 전했으니, 관련 보고 정도는 대신 부탁하지. 아무래도 이 꼴로 돌아가면 바로 연락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부족하오.”

“음? 뭐가 말인가?”

“당신이 봤다는 이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오.”

발터의 말에 움직임을 멈춘 랜달은 곧 웃으며 지팡이의 자주색 보석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가 그 안에서 새끼손가락의 손톱만 한 백색 구슬을 꺼내 던졌다.

“나이가 들면 역시 여기저기 고장 나는 곳이 많아. 자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깜빡할 뻔했지 뭔가. 내 설명보다는 그게 더 정확할 걸세. 그럼 난 이제 진짜 가 보지.”

발터는 껄껄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는 랜달의 등을 노려보았다.

고위 마법사가 깜빡했다고? 어디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소리를. 분명 말하지 않았으면 내어 놓지 않았을 것이다.

랜달을 향해 이를 갈던 발터도 잠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 앞에는 그를 따라왔던 남자가 여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발터는 남자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

“이곳은 폐쇄한다. 철저하게 묻어 버리고 다음 후보지로 거점을 옮긴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발터의 뒤를 따르던 남자는 태연한 대답과 달리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악! 또 일주일은 밤샘이야!”


은색 기사단과 합류한 이드들은 해가 진 후 탈탈 영주의 환대를 받으며 영주성에 도착했다.

탈탈 기사단 단장의 요청도 있었지만, 부상이 심한 카린에게 장거리 이동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많은 포로를 한 번에 옮길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일부 은색 기사단과 프랑 기사단의 용기사가 탈탈 기사단과 함께 포로들을 탈탈 영지로 이송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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