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59화
596화
마족.
마계에 살아가는 중간계 생명체의 숙적이자 천적.
인간들을 좋은 에너지 공급원 내지 장난감으로 여기는 악마들이다. 진짜 영혼을 거래하는 악마들과는 다르지만 평민들에게 마족과 악마는 같은 존재다.
전 대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나, 제국간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마족이 절반 이상 관여되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었다.
이 마족이나 악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의 영혼이다.
이들에 대해서 가장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신전이며, 또 이들의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 세상의 누구보다 빠르게,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저돌맹진하는 세력이 바로 신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전의, 평사제도 아니고 대사제가 마족을 언급했다면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뜻이었다.
스르르르-
하나둘 시선이 카린을 구해 온 이드들을 향하다가, 그녀를 가장 먼저 발견한 쉴라에게 향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마족의 존재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으음…….”
쉴라는 카린을 발견한 폐기장을 떠올렸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악취. 그리고 괴수. 하지만 그 어디에도 마족은커녕 무겁고 역겹다고 전해지는 마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쉴라는 라미아까지 고개를 흔드는 걸 보고 말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발견한 곳에서 마족을 보지는 못했고, 마기의 흔적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마족을 보지 못했다는 대답에 대사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내신 게 있으십니까?”
“보통 영혼이 손상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대표적으로 마족이나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거나 흡수당해서 영혼이 완전히 소실되는 것이고, 다른 경우는 영혼이 흩어질 정도로 강력한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영혼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후자의 경우 약 보름 정도는 흩어진 영혼이 본체 가까이 떠돌게 됩니다.”
“그럼 카린 경은 어떻습니까?”
“첫 번째 경우입니다. 카린 경 주변에는 영혼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마족을 의심한 것입니다. 마족이 중간계에 나타났다면 이것은 신전이 나서야 하는 매우 큰 일이지요.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살폈는데, 마족의 영혼 포식이라면 반드시 느껴져야 할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쉴라 경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럼 혹시 카린 경의 치료가 어려울까요?”
영혼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말에 스폴이 안타까운 눈으로 말했다.
그러자 대사제가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품속에서 화려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 놓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흔적조차 남지 않은 쪽이야말로 신전의 전문 분야지요. 지금까지 저주받은 종자들과 싸운 역사가 얼마이고, 그들에게 희생당한 형제자매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저 손 놓고 있었겠습니까. 이 최상급 성수의 도움을 받으면 말끔히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대사제님!”
나이 많은 중년의 사제답지 않은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스폴이 활짝 핀 얼굴로 대사제의 손을 덥석 잡아서 흔들었다. 대사제도 스폴의 적극적인 표현이 싫지 않은지 허허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한 사람, 미노스는 그 모습이 싫은지 은근히 스폴의 허리를 당겨 손을 놓게 만들었다.
“크흠. 치료가 가능하지면 바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잘 살펴 주십시오.”
“허허허.”
그 모습에 대사제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미노스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미노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자 대사제가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방 안과 문밖에 몰려 있던 기사들이 물러가고, 문이 닫힌 방 안에는 미노스와 이드들을 포함한 몇 명의 은색 기사단 기사들만이 남았다.
“자애로운 나의 신 비니블레스님. 여기 당신의 자애로운 손길을 기다리는 가여운………….”
대사제는 기도를 시작하며 카린의 가슴에 놓인 성수에 손을 올렸다. 영혼을 회복시키고 신체를 복구하는 일은 대사제인 그에게도 버거운 일이기 때문에 신선에 비치된 성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대사제의 신성력과 성수가 만나 온화한 신의 온기로 카린을 감쌌다.
[단순한 신체 복구가 아니라, 소실된 영혼을 복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어머나. 너 그런 것도 알고, 똑똑하구나!”
어느새 한곳에 모여든 사람들 중 스폴이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에헴. 그 정도야 기본이죠.]
“어머나, 어머나. 귀엽기까지 해!”
이드는 라미아와 스폴이 죽이 맞자 어깨에 있던 라미아를 스폴에게 건네주어 둘이서 놀게 했다. 그 순간 미노스의 눈에 미묘한 경계심이 떠올랐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그의 귀에 조용히 한마디를 속삭여 주었다.
“두 분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전 미노스 경을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드의 말을 들은 미노스가 얼굴이 벌게지더니 소곤거리는 소리로 답했다.
“커허허험! 그런데 대사제께서 말씀하신 마족이란 말을 그냥 넘길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다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보고는 목청이 터질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모두 피식 웃으며 모르는 척해 주었다.
카린이 치료 중이기 때문에 모두 마음이 가벼워진 덕분이었다.
“확실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보통 여성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키에 보이시한 짧은 머리를 한 페르다슈의 말이었다.
“그래. 하지만 마족은 아니야. 생명의 관의 목적도 그쪽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부관주도 흑마법을 사용했죠.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드가 부관주를 떠올리며 말하자 일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예요. 마족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흑마력이나 마기가 필요한데 부관주의 마력은 깨끗했어요. 그때 사용한 흑마법은 미리 마법진과 제물을 준비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던 걸 거예요.”
“그렇다면 카린은 누구에게 당한 걸까요.”
“어려울 거 없죠. 카린 경이 회복되고 나면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요.”
일리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대사제가 마지막 기도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만 보통 힘든 일이 아닌 듯 머리와 얼굴이 땀으로 흥건했다.
스폴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자 옆에 있던 미노스가 한발 먼저 앞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 땀 좀 닦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신의 종으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대사제는 미노스의 손을 피해서 스폴의 손수건을 받아 들고 말했다. 아무리 그가 나이 든 사제라지만 남자 냄새 가득한 미노스의 손수건에는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때문이었다.
미노스는 입술을 씰룩이더니 들고 있던 손수건을 스폴에게 내밀었다.
“이걸 쓰시오. 당신의 손수건은 내가 돌려받아서 사용하겠소.”
“…..알았어요.”
스폴은 아이 같은 미노스의 행동에도 환하게 웃으며 허락했다.
[저러면서 왜 헤어졌대?]
스폴과 함께 있던 라미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 두 사람의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이드는 방 안의 사람들과 함께 카린의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고통스러워 보이던 절단면은 어디 가고 깨끗한 팔다리가 온전히 생겨나 있었다.
신의 기적이라는 말이 절실히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카린의 상태를 확인한 쉴라는 대사제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은색 기사단의 이름으로 비니블레스님의 신전에 후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사제는 은색 기사단이라는 큰 이름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원이야 넉넉하면 넉넉할수록 좋았다. 그래야 신전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반나절 정도 안정을 취하면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그때 다시 카린 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까지 쉴 수 있도록 기사가 안내할 겁니다.”
쉴라는 밖에 기다리는 기사에게 대사제를 모시도록 지시하고, 기다리던 기사들에게 카린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고는 안정을 위해서 기사들을 물렸다.
“그럼 우리들도 잠시 자리를 비우죠.”
“그래도 옆에 한 사람은 지키고 있어야 하니 제가 있을게요.”
“그럼 저도.”
스폴이 나서자 미노스가 부록처럼 따랐지만, 이번엔 스폴도 그의 등을 밀어냈다.
“안 돼요. 지금부터 카린은 환자가 아니라구요. 어디 잠자는 아가씨의 얼굴을 구경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방 안에는 스폴과 라미아가 남았다.
라미아도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스폴과 수다를 떨겠다고 했다. 그녀가 있다면 만에 하나 발생할 응급 사태에도 대처가 가능했다.
쉴라가 오히려 고마워하고 나서자 이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포로를 이송 중인 기사들과 임무 교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미노스를 따라 프랑 기사단의 기사들과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 나섰다.
생명의 관에서 제압한 포로들과 탈랄 마을의 죄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잡혀 있던 사람들을 이송 중인 기사들과 교대하고 그들이 얼마만큼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장거리 이동에 연락과 보급까지, 프랑 기사단이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일을 반기는 중이었다.
은색 기사단의 아름다운 여기사들과 바꿔 가며 하늘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드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빨라도 오늘 밤에나 도착하겠네요.”
“여자들도 있기 때문에 내일 오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탈랄 마을의 죄인들은 탈탈 영지에 넘기고 포로들은 프랑 기사단과 저희들이 나누어서 이송할 예정입니다. 미리 의논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요. 어차피 포로를 잡은 건 쉴라 경이니까요. 그런데 포로를 둘로 나눌 생각입니까?”
포로를 잡은 것이 쉴라기 때문에 그녀가 모든 포로를 데려가도 상관이 없는데 프랑 기사단과 나눈 것이 의아했다.
“네. 아무래도 프랑 기사단의 공이 있어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 . . . . .”
이드는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올라와 부관주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은색 기사단과 프랑 기사단이 모두 알았으니 소드 팰러스에 진실로 생명의 관을 지원하는 세력이 있어도 사건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쉴라는 만에 하나의 경우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이런 배려를 통해 프랑 기사단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납치되어 있던 사람들과 아이들은요?”
일리나가 물었다. 탈탈 영주가 악덕 영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정성스럽게 돌봐 줄 인물도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쉴라가 그들을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은 탈탈 영지에서 그들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대신 은색 기사단에서 그들의 생활과 안전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검후를 찾기 위해서 바쁜 은색 기사단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탈탈 영지도 은색 기사단이 신경을 쓰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을 소홀이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나절의 빈 시간 동안 각자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간에 다시 복귀한 미노스는 포로들을 이송 중인 기사들이 내일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카린은 대사제가 말했던 시간보다 빨리 깨어났다.
기사로서 단련한 때문인 듯하다고 대사제가 말했다.
그런데 깨어난 카린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몸은 극히 정상이었지만, 허공의 한 점을 두려운 듯 바라보며 움츠러드는 카린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기사들의 걱정 속에서 그녀를 진단한 대사제의 결론은 정신적 충격이었다.
“주로 아이들이나 심약한 사람들이 강력한 피어를 가진 몬스터와 마주치고 살아난 후에 겪는 일입니다. 카린 기사가 고작 몬스터를 상대로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고, 제 생각에는 카린 기사를 공격한 어떤 적이 아이들이 보는 대형 몬스터만큼이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상하면서 그에 대한 공포가 영혼에 새겨지기도 했을 테구요.”
“그럼 회복하는 방법은 있습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간입니다.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 공포의 대상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지요. 두 번째는 정신을 단련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해진 실체가 없고 구체적인 수순이 있는 게 아니라 추천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가장 쉽고 간단하며 강력한 방법인데, 바로 성기사가 되는 것입니다.”
“네?”
“성기사로서 신께 귀의한다면 신을 향한 신실한 믿음으로 아무리 영혼 깊이 새겨진 공포라도 극복할 수 있지요.”
대사제는 세 번째 방법을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은색 기사단의 기사라면 실력이 확실하니 공짜로 성기사 하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은색 기사단에 직통으로 통하는 인맥을 가진 성기사를!
하지만 그런 대사제의 은근한 흑심은 쉴라의 단호한 거절에 막히고 말았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녀가 어떠한 상태이든 저희 은색 기사단에서 그녀를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그녀는 저희의 가족입니다.”
“으음…….”
대사제는 쉴라의 말에 살짝 감탄한 듯했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난 성기사를 얻고 싶은 욕심도 욕심이지만, 그가 괜히 성기사가 되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 스폴과 함께 가장 먼저 카린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라미아가 말했다.
[있어요. 회복시킬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