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60화
597화
“진짜니?”
라미아의 깜짝 발언에 스폴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는 라미아를 붙잡고 흔들었다. [꺄악. 어지러워! 이럼 이야기를 못 하잖아.]
카린을 지키는 반나절 사이 상당히 친해진 듯 라미아는 스폴에게 말을 트고 있었다.
라미아의 비명에 스폴도 급히 그녀를 내려 두고 두 손을 모았다.
“미안. 내가 너무 기쁠 때는 많이 흥분해서 한 번씩 이래.”
스폴은 부끄러운 사실이라는 듯 볼을 살짝 붉혔다.
“그런데 진짜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당연히 진짜지, 농담이겠니?]
“히히. 그렇지!”
“허어!”
대사제가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미묘한 감탄성을 터트렸다.
‘스폴~!’
그 소리가 스폴을 한심하게 보는 것 같이 들린 쉴라가 망신스러워 내심 이를 갈았다.
명색이 은색 기사단의 수석기사가 외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저런 푼수 같은 모습을 보이다니. 쉴라는 스폴에 대한 징계를 마음속에 기록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부끄럽습니다. 평소엔 저러지 않는데, 아무래도 아끼는 동료 기사의 일이라 감정의 동요가 큰 듯합니다.”
“그거야 탓할 일이 아니지요. 오히려 동료 간에 아끼는 마음이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저 새는 무엇입니까?”
“라미아라고 합니다. 제 손님께서 보유하고 있는 존재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종의 정령과 비슷한 존재라고 합니다.”
이드와의 첫 만남에서 라미아를 물건으로 보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쉴라는 대사제에게도 라미아를 아티팩트가 아닌 정령으로 소개했다. 대사제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세상에는 아직 제가 모르는 신기한 일이 많군요. 목소리를 봐서는 여성인 것 같은데. 그녀가 지금 한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아는 한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말입니다.”
쉴라는 단호히 대답하고는 이야기가 표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스폴에게는 대사제를 눈짓하며 가볍게 눈총을 주고는 라미아에게 물었다.
“어떤 방법이지?”
쉴라는 그녀의 말대로 치료의 가능 여부가 아니라 방법을 물었다.
스폴의 손에서 풀려난 라미아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날개 깃털 하나를 펼쳐 보이며 강사처럼 말했다.
[완벽히 장담은 하지 못해요. 하지만 성공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카린 경의 경우, 공포가 영혼에 새겨졌다고 하지만 이것도 크게 보면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공포란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꺾였기 때문에 생겨나는 거죠. 다행히 카린 경은 기사죠. 그것도 검후님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향해서도 검을 들고 달려들 수 있는 기사.]
“당연하지!”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평범한 여성이라면 모르지만 기사인 카린 경이라면, 맞서 싸우겠다는 그녀의 마음만 다시 굳게 세워 준다면 충분히 스스로 공포를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어떻게?”
대사제가 물었다. 라미아의 말은 그가 말했던 두 번째 방법인 정신 단련을 다르게 말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 신전도 확실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백인백색(百人百色).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지만, 그 본인도 모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고 생각이다. 그런 사람 모두에게 통하는 방법은 온전히 신에게 기대는 것 말고는 아직 신전도 찾은 것이 없었다.
[언컨션스 다이브(unconscious dive)를 기반으로 한 몇 가지 정신 마법에 쉴라 경과 이드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해요. 물론 치료를 확신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실패할 경우의 부작용은?”
[없어요.]
“그럼 하자.”
부작용은 없고 치료 가능성은 높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쉴라는 결정을 내리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정밀한 마법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대사제는 남았다. 신전에서도 궁리하고 있는 정신 질환에 대한 좋은 치료 방법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방에는 대사제가 카린의 몸을 치료할 때와 같은 사람들만이 남았다.
“왜?”
그 한쪽에 일리나와 선 라미아가 이드를 불렀다. 라미아는 이드가 가까이 오자 일리나까지 포함해서 셋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카린을 회복시키겠다고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카린과 쉴라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치료 방법이 뻥인 거야?”
[절 어떻게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요. 방법은 정확해요. 지구에서 들었던 정신분석학도 있고 장담은 못 해도 성공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요. 하지만 카린 경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을 뿐이죠.]
“중요한 일이 뭐예요?”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드도 귀를 기울였다.
[카린 경을 공격한 존재요.]
라미아가 이전에 했던 말이었다.
“정확히 어떤 점이?”
[그건 이드가 봐요. 아무래도 타인의 정신에 침입하는 일이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면 이드가 보고 싶은 게 보일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카린 경의 치료에는 쉴라 경만 있으면 돼요. 이드의 역할은 순수하게 카린 경이 가진 공포의 근원에 대한 확인이죠.]
이렇게 신중한 라미아의 모습은 어지간해서는 볼 일이 없었다.
“알았어. 그 이외는 내가 도울 일은 없어?”
[이드는요.]
라미아의 말에 일리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할 일은 뭐예요?”
[일리나는 카린 경의 내력 운기를 해 주세요. 아무래도 그편이 카린 경이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내공은 단순히 에너지를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다. 내공은 정신과 육체의 그림자이며, 정수다. 내공의 운기는 정신과 육체에 갑옷을 입혀 주는 것과 같다. 지금처럼 움츠린 카린의 영혼에는 무엇보다 든든한 일이다.
“이제 어쩌지? 카린 경의 손이라도 잡고 있어야 하나?”
각자 역할이 정해지자 카린의 옆에서 쉴라가 말했다.
[그런 고전적인 장면은 어디서 나온 거예요? 호호.]
라미아가 가볍게 웃고는 카린의 침대와 그 옆에 놓여 있던 의자까지 포함하는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마법진 안에만 있으면 돼요. 대신 카린 경의 꿈속으로 들어가면 의식을 잃고 쓰러질지 모르니까 의자에 앉아서요. 아니면 카린 경의 옆에 누워도 좋아요.]
“어머나, 꿈속이라니. 그럼 혹시 카린 경이 공포를 이기고 깨어나면 알에서 깬 오리처럼 단장님이나 이드 씨를 사랑하게 되는, 뭐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꺅! 로맨틱~!”
꿈이라는 단어에 스위치가 켜진 듯 스폴이 달아오른 볼을 감싸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라미아가 한심한 시선으로 그녀와 쉴라를 번갈아 보았다. 어쩐지 고전적인 쉴라의 발언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흥. 꿈 깨! 그런 일 절대 없거든. 그런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즉시 카린 경을 버리고 꿈에서 탈출할 거야!]
“아니, 카린을 버리는 건 좀…”
당혹한 스폴의 말이 이어졌지만 라미아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레센으로 오면서 인간의 육체를 잃어 이드와 일리나의 알콩달콩한 스킨쉽을 부럽게 구경만 해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여기에 한 사람을 추가하라니.
라미아는 단호히 카린을 버리는 것을 택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스폴의 로맨스 가득한 발언이 중요한 순간 카린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미노스가 눈치 없이 목소리를 깔고 나섰다.
“험. 험. 나라면 스폴 경을 위해서 언제라도 그리할 수 있다오.”
쟨 또 뭐래니!
[둘 다 연애질은 나가서 해요!]
철없는 두 기사를 내쫓은 라미아는 바로 마법을 실행했다.
일리나는 쉴라와 이드의 눈이 감기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의 마음처럼 가라앉은 카린의 내공을 운기도인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대사제가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타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일은 간단했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발을 들이기 힘든 곳이 타인의 속마음이지만, 도착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눈을 깜빡인 순간 이미 그들은 카린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곳은 온통 어둠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빛이 없어도 모든 것이 밝게 보이는 이상한 세상이었다.
“폐기장?”
[맞아요.]
“여기가?”
쉴라와 라미아가 이곳이 어딘지를 알아내자 이야기만 들었던 이드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인식하는 순간 끔직한 악취와 발에 질척이는 땅이 느껴졌다. 과연 들었던 것 이상으로 최악이었다.
“카린 경은 어디 있는 거야?”
[저기요.]
라미아가 가리키는 순간, 아무것도 없던 폐기장 안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며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으드득! 와드득!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쓰러진 사람의 다리를 들어 뼈째 씹어 먹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분명히 보이는 얼굴은 바로 침대에 누워 있는 카린이었다.
“감히!”
카린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쉴라가 반사적으로 검을 쥐었지만 그녀가 뛰어나가기 전에 라미아가 말렸다.
[지금 화내도 소용없어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꿈속이니까요.]
“하지만 저기 카린 경이 있잖아. 꿈속이지만 지금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건 그녀라고.”
쉴라의 마음은 참혹했다. 부상 부위를 보고 설마설마했는데, 실제 산 채로 팔다리를 뜯어 먹혔을 줄이야. 그녀의 공포가 이해가 갔다. 더구나 영혼에 타격을 받았다면 저 괴물도 보통 괴물이 아닐 것이다.
[음. 원래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요. 신성 치료를 받기 전 카린 경은 저기 있었지만, 치료 받은 후 그녀는 저기 있어요.]
라미아는 뜯겨 먹히고 있는 카린을 가리켜 보인 후 손을 들어 라미아가 처음 그녀를 발견한 돌출된 부위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 웅크리고 있는 카린이 생겨났다. 그녀는 절망 가득한 눈으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자신이 뜯어 먹히고 있는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카린을 올려다보던 쉴라가 말했다.
[쉴라 경이 전장에서 쓰러진 기사를 일으킬 때 어떻게 하죠? 그렇게 하세요. 그게 카린 경에게도 가장 쉽게 와 닿을 거예요.]
“알았다.”
[목소리는 클수록 좋다는 거 잊지 말구요. 가요.]
라미아는 쉴라와 함께 카린을 향해 달려가며 이드에게 눈짓해 보였다.
이심전심.
라미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안 이드는 카린이 뜯어 먹히고 있는 현장으로 다가갔다.
등을 돌린 그림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이드는 천천히 괴물 앞쪽으로 돌아갔다. 선명히 보이는 카린의 모습과 달리 괴물은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이놈이 라미아의 근심거리란 말이지.”
이드는 일렁이는 괴물의 모습에서 쉴라와 라미아가 말했던 괴수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과연. 선입견 없이 봐야 하는 거란 말이지.”
그때였다.
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쉴라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폐기장의 모습이 흔들렸다.
쉴라의 호통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느긋하게 살필 시간은 없겠는데.”
말을 마친 순간이드의 마음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의형강기를 다루는 이드에게 마음을 비우고 그 속에서 진안을 뜨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안까지도 필요 없었다. 그저 카린이 보고 있는 놈의 진짜 얼굴만 보면 될 일이다.
비워진 이드의 마음이 무극에 이르자 흔들리던 괴물의 형태가 순식간에 형태를 갖추었다.
삐죽한 귀에 긴 주둥이에 찬란한 은색 털과 새하얀 손톱.
온전한 괴물의 모습을 확인한 이드가 어이없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과연 라미아가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할 만하네. 오랜만이다, 메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