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69화
606화
이게 무슨 말이야?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다. 설마, 그 사실을 들켰단 말인가?
“야! 너희들 설마…………….”
에단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무섭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사방을 살폈다.
하지만 이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 가능성을 바로 부정했다.
생각해 보면 아니라는 것이 뻔히 보였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두 사람이 집 앞에서 티격태격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눈썹 휘날리게 저택으로 뛰어 들어왔겠지.
또 들킨 상대에 따라서는 달려오기는 고사하고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으로 끌려갔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 사람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표정 어디에 다급함이 있냐고.’
힐끔힐끔 이드를 바라보는 케마란의 표정은 마치 엄마가 아끼는 머리핀을 부러트린 개구쟁이 같았다.
마침 에단도 그런 사실을 알아챘는지 악마 같은 표정으로 돌변해서는 케마란의 머리를 손에 쥐었다.
“그래, 우리 후배님이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셨을까?”
“아………… 아야야야……… 터져요, 선배님. 머리 터진다고요………! 살려주세요!”
케마란이 죽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쥐고 있는 에단의 손을 두드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네리베르가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의 단단한 머리가 터지려면 기사단장님이 쓰시는 메이스가 있어야겠죠. 선배님!”
“엉?”
“더 세게요!”
“으흐흐흐흐, 그럴까!”
장난스러운 에단의 대답과 달리 그의 손아귀 힘은 실제로 두 배 이상 강해졌다.
엄살이던 케마란의 목소리가 진짜 비명으로 바뀌어 가자 이드가 나섰다.
“장난은 그만하고, 아까 이야기는 뭐야?”
“이잉. 이드 님, 너무 아파요.”
케마란이 에단에게 잡혔던 머리를 감싸고 이드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엄살을 떨었다.
이드는 아니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얘가 어디서 되도 않는 콧소리를 내고 있어? 그만해. 그거 네 스타일 아니잖아. 네리베르, 네가 이야기해 봐.”
이드는 케마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밀어냈다.
네리베르는 참으로 온당한 대응이라는 듯 조용히 박수를 치다가 이드가 부르자 즉각 대답했다.
“네. 이드 님의 지도로 케마란 양의 실력이 늘었고, 그녀는 그걸 자랑해서 주변 친구들의 관심을 샀습니다. 하지만 그 비결은 케마란 양이 비밀로 하자 친구들이 그걸 알기 위해 그녀를 미행한 결과 이 저택과 저택에 살고 있는 이드 님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자랑한 건 아닌데…………….”
케마란이 꿍얼거렸다. 결국 원인은 그녀의 급격한 실력 향상이라는 말이었다.
“그럼 넌?”
에단이 물었다.
이드에게 지도를 받은 건 네리베르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아직 미숙해서 이드 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익히지 못해서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케마란 양의 경우에는 사용하는 무기가 워낙 눈에 띄다 보니 그녀의 실력이 조금만 변해도 바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네리베르가 눈을 내리깔고 말했지만 에단은 그게 겸손이란 걸 알았다.
핵심을 콕콕 집어 주는 이드의 지도에 네리베르의 실력 역시 쭉쭉 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재능도 결코 케마란에 뒤지지 않았다.
“오냐, 잘 알았다. 결국 네가 문제구나. 요놈!!”
“꺄아악!”
에단이 죄 많은 어느 원숭이에게 벌을 줄 때처럼 케마란의 머리를 단단히 죄었다.
“그럼 저기 숨어 있는 사람들이 케마란을 미행했다던 그 수련생들인 모양이네.”
“아………… 설마!”
네리베르는 이번에도 또 미행이 붙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이드는 케마란과 에단의 눈까지 자신을 향하자 그녀들이 왔던 방향의 큰 건물 쪽을 가리켜 보였다.
세 사람의 눈이 이드의 손끝을 따라가자 건물 벽을 따라 대롱거리던 얼굴들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들처럼 고개를 쏙 집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네리베르의 얼굴이 붉어졌다.
바보처럼 의심받을 짓을 하고 미행당했다고 케마란을 비웃었는데, 그 뒤로 얼마나 지났다고 자신도 미행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드가 건물 뒤에 숨어 있는 수련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할 때 숨어 있던 수련생들이 당당히 저택 앞으로 걸어 나왔다. 보통 발각되었다고 생각하면 도망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저택 앞에 모인 수련생들은 안에 있는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확인했다.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수련생이 크게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후배들이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드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을 하고 찾아 왔구나 싶었다.
십수 명이 한 번에 고개를 숙이며 외치는 모습은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은근한 압박이 되었다. 더구나 선배님이란다. 후배가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찾아왔단다.
여기서 피하면 이 집은 오만한 선배의 집이 되는 건가? 그보다 난 저런 후배 둔 적 없는데?
“슈슈?”
그때 에단이 그중 한 명을 알아본 듯했다. 이드가 보니 네리베르를 처음 본 자리에 있던 아가씨였다.
‘저 아가씨는 케마란보다 네리베르 쪽 사람이지 않았나?’
그 생각에 네리베르를 보자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케마란 양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결국 케마란의 친구가 그녀의 친구들이란 이야기였다. 앙숙이던 두 사람이 갑자기 친해져서 붙어 다니자 두 사람의 친구들도 서로 친구가 된 것이다.
“그럼 저 시위는?”
“케마란 양의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들도 그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케마란 양이 알아보겠다고 했고, 저는 말리던 중이었습니다.”
과연, 저택 앞에서 있었던 실랑이의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점점 높아지는 수련생들의 목소리! 저게 협박이지, 부탁이냐!
“마스터, 일단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으이그. 난데없이 이게 무슨 일인지.”
이드의 허락에 에단이 수련생들을 서둘러 저택으로 불러들였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수련생들은 재빠른 솜씨로 이드 앞에 줄을 섰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이 부탁한다는 소리보다 더 무섭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숫제 통보에 가까웠다. 억지도 이 정도면 기술이다. 문턱만 넘으면 만사 OK냐!
그렇다고 거부하면 또 밖에서처럼 소리칠 것 같다.
이드는 그들에 대한 대응 이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제 앞에 모인 거죠?”
케마란을 가르친 사람을 찾는 거라면 에단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자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에단 선배님께 그런 실력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케켁…..”
태연히 날린 비수에 에단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록과 소드 팰러스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더니 그 사이 검 실력도 후배들에게 모두 뽀록이 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설마 그때 뵈었던 분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되시는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슈슈가 재미있다는 눈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로는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드나드는 저택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누구의 저택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애인을 숨겨 둔 집이라는 설도 있었다고 했다가 당사자들에게 즉시 응징당했다.
좌우간 애인설이 진해지던 차에 결정적으로 이그렌과 사무엘 백작의 방문을 목격했단다.
“두 사람을 보고서 어떻게?”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와 마인드 마스터 동료의 후예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해서 소드 팰러스를 찾은 백작님으로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아주 대놓고 광고를 하고 다닌 모양이다.
“과연 그런 분이라면 이상하던 케마란의 무기술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죠. 그리고 저희도 그 기회를 얻고 싶었습니다.” 뒤가 하나도 없는 너무 솔직한 답변에 이드는 눈을 마주치기가 살짝 부끄러웠다.
“과분한 칭찬이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 소드 팰러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는데요. 지금은 누굴 가르칠 입장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출생을 소드 팰러스가 판별하는 상황이 우습지만 좌우간 그랬다.
그러나 수련생들의 표정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당당히 답했다.
“저희들은 소드 팰러스 내의 정치적인 일에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저희들이 배움을 얻고 싶은 분은 앞에 계신 이드 님이지, 마인드 마스터 후예인 이드 님이 아니니까요.”
‘이야, 말 잘하네.’
거기다 이미 이드의 허락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단순히 말만 잘하는 건 아니었다.
잠깐 딴생각하면 간도, 쓸개도 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소드 팰러스에서 아직 이드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정당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다는 점에도 놀랐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 수련을 위해서 모여든 귀족들 중에 삼검왕의 속을 짐작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그건 귀족으로서 교육받은 자들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처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드가 수련생을 가르치는 것은 정치적인 입장 이전의 문제였다.
수련생들이 억지로 밀고 들어왔지만 이드는 이들을 가르칠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이들은 케마란과 네리베르와는 달랐다.
두 사람과는 엮일 만한 사건이 있었고 짧은 시간 강렬하게 겪어 봤기 때문에 무공 수련에 도움을 주었지만, 생판 알지도 못하는 수련생을 가르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소드 팰러스의 선생도 아니고.”
자고로 무공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고 했다.
당장 시간도 부족했다.
생명의 관에 대한 문제로 황궁으로 향한 클라인이 돌아오면 영혼과 정신의 관에 대한 토벌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수련생을 지도할 시간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후배 놈들아, 그런 일은 정중히 요청해야지, 무작정 밀고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수련생의 말을 듣던 에단이 나서서 수련생들을 닦달하며 밀어냈다.
그때 네리베르가 살그머니 다가왔다.
“소드 팰러스에서는 상대방의 허락만 받는다면 누구에게나 배움을 요청할 수 있어요. 범죄자만 아니라면요. 저는 이드 님이 이 수련생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
“곧 큰일이 일어날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드 님도 그 속에 있으실 거라구요.”
음. 이번에는 누가 말했지?
“에단? 록?”
“코홈. 그런 큰 사건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인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드 팰러스에 들어오시고 난 이후의 이슈가 사라지면서 이드 님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인지도라…….”
“그리고 아래쪽에서 확실한 인지도를 쌓으면 위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과연 백작가 아가씨다운 식견이었다.
‘인지도는 필요 없지만, 혼돈의 파편과 바이트 타블렛을 생각하면 발언권은 미리 챙겨 두는 게 좋을까나.’
이드의 마음도 살짝 기울었다. 하지만 타인을 가르치는 일은 항상 신중해야 했다.
그때 저택의 문이 열리고, 록의 안내를 받으며 은색 기사단이 들어섰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그들의 등장에 에단과 투닥거리던 수련생들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으…………… 은색의 기사단! 쉴라 님!!”
에단과 다투던 수련생들이 순식간에 그녀 곁으로 모여들었다.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던 이드와 에단의 주변이 순식간에 휑해져 버렸다.
인지도…………….
어쩐지 올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