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70화
607화
수련생들의 열렬한 반응은 끝없이 이어졌다. 케마란도 어느새 그 속에 같이 들어가 있었다.
쉴라가 수련생의 상대를 기사들에게 맡기고 다가왔다.
옆에 서 있던 네리베르의 허리와 목이 뻣뻣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최애(最愛)는 검후지만, 항상 그 옆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쉴라도 네리베르에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동경의 대상이며 목표였다. 이드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케마란 못지않게 환호하며 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인내는 옳았다. 이드 옆에 서 있는 그녀를 쉴라가 눈여겨본 때문이었다.
“네리베르였던가요?”
“미욱한 이름을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쉴라 단장님.”
네리베르가 최대한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태연한 척하지만 입꼬리가 기쁨과 감격에 파르르 떨렸다. 쉴라가 이름을 불러 준 사실이 어지간히 좋았던 것 같다.
“데일리 경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어요. 검후님을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마워요. 듣기로 케마란 양도 있다고 하던데, 그녀는?”
쩌적.
네리베르의 웃는 얼굴이 순간 굳어 버렸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케마란 양은 저쪽에…….”
“아! 호호. 그녀와는 잠시 후 인사를 나누어야겠군요.”
쉴라는 기사들에게 막혀 그녀들에게 들러붙어 있는 수련생들을 보고는 재미있게 웃었다.
‘케마란, 어째서 당신의 부끄러움이 제 몫이어야 하나욧!’
네리베르의 두 볼이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드가 쉴라와 눈을 마주치고는 인사말을 건넸다.
“바쁜 일은 끝났나요?”
“네. 클라인 백작께서 적절히 잘 도와주셨답니다. 이드 님 덕분이에요.”
“전 그냥 말만 전했을 뿐인데요, 뭘.”
“호호호. 그런데 수련생들이 무슨 일인가요?”
“별일은 아니에요.”
이드는 웃으며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실력이 늘어난 일과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쉴라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더니 네리베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판단력을 가졌군요, 네리베르 양. 이드 님, 저도 그녀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인지도요? 뭐, 방금 쉴라 경이 나타난 걸 보고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요.”
“왜 저를 보시고 그런 생각을..?”
“갑자기 든 생각이니까 그건 넘어가요.”
어떻게 본인 입으로 그녀의 명성에 밀린 것 같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저도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토벌에는 분명 황실과 초인파도 함께하게 될 겁니다. 당연히 이드 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테죠. 그 전에 이드 님에 대한 입장을 소드 팰러스에서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지요.”
지금까지도 소드 팰러스에서는 이드를 경계해 소 닭 보듯 하고 있었다.
“곧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클라인 백작님의 의견도 그랬지요.”
사실 소드 팰러스도 슬슬 한계였다.
이드가 범죄자도 아닌 이상 그를 억류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이드가 당장 떠나겠다고 하면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소드 팰러스를 떠나서 다른 세력과 접촉하게 된다면, 이드를 압박해서 좀 더 많은 이익을 취해 보려던 얄팍한 잔재주가 거대한 실(失)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클라인 백작은 황궁에 갔을 때 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드가 영혼과 정신의 관의 토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그로 인해서 소드 팰러스가 더 이상 이드를 외부인으로 취급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여기에 수련생들을 통해서 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소드 팰러스에 안에 퍼진다면, 삼검왕을 비롯한 소드 팰러스 수뇌도 더는 미적거리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점을 볼 때 수련생들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라고 확신한 이드가 말했다.
“그럼 쉴라 경이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며칠간은 바이트 타블렛을 조사하는 일로 바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럼, 소드 팰러스에 있는 동안 데일리 경과 스폴 경을 빌려 드리죠.”
“… …”
왜 하필 그 두 사람인가?
물론 실력 면으로는 수련생을 지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은색 기사단에서도 수위에 드는 그들의 무력을 생각하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드가 직접 겪어 본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은 덜렁이와 수다쟁이 소녀다.
도저히 타인을 가르치는 일에 어울리는 그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는 학생들과 어울려 잡담을 하거나 학생들에게 놀림당하는 초보 교사의 이미지랄까?
“두 분 말고 다른 분을 보내 주시는 건?”
“안 됩니다. 은색 기사단에서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떠넘기기냐!’
이드는 방긋 웃으며 답하는 쉴라를 보며 내심 소리쳤다. 아무래도 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중에 일을 방해할 사람을 치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뭐, 두 사람이 필요 없으시다면……….”
“고맙게 쓰겠습니다.”
이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옆에서 두 사람을 통제할 사람이 고생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그건 그 사람 문제가 아니겠는가.
“에단!”
이드는 즉시 달려오는 에단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네리베르.”
“……네?”
두 사람이 고생 좀 해라!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지금 소드 팰러스에 머물고 있다지요?”
막바지 의견을 조정하던 중 레오날도 후작이 말했다.
씨익.
무표정을 관철한 클라인 백작이 내심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역시 황제의 남자. 지푸라기처럼 흘린 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잘도 잡아냈다.
“아직 그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인지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만, 그렇습니다.”
“황제께서 그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십니다.”
레오날도 후작이 지금은 비어 있는 가장 높은 자리를 보며 말했다. 회의가 시작할 때 참석했던 황제는 대략적인 상황이 정리되자 나가 버렸다.
“저는 이번 토벌에 그가 합류하여 수도에 올라와 황제 폐하를 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에 대한 검증을 하지 못했소. 그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를 어떻게 황제께 내보일 수 있겠소?”
황제에 대한 인사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페시딘이 불쾌한 음성으로 답했다.
당장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임이 확실해졌을 때 그에게서 나올 수 있는 무공을 생각하면 그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보물 창고와 같았다. 그 보물 창고를 열기 위해 노력 중인데 황궁에서 예고 없이 보물을 빼 가려고 하니 기분을 좋을 수가 없었다.
레오날도 후작이 노리는 점도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야 확실한 명분과 자리가 없어서 기다렸지만 마침 자리가 났고, 뜻밖에도 클라인 백작이 먼저 기회를 주었으니.
‘목 안에 상처가 나더라도 삼켜야지!”
“상관없습니다. 소드 팰러스에서 아직 검증을 마치지 못했다면, 황궁에서 그에 대해서 검증을 마치면 됩니다. 애초에 그에 대해서는 앞서 수차례 문의를 넣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이 없으셨지요. 황제 폐하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검증은 소드 팰러스의 일이오.”
“아니지요. 그가 소드 팰러스를 찾았을 뿐입니다. 검후님이 계셨다면 누구보다 확실하게 소드 팰러스에서 검증할 수 있었겠지만, 참담하게도 현재 실종되신 상태가 아닙니까?”
“…….”
검후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소드 팰러스에서도 할 말이 없다.
그들에겐 그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무언의 죄가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소드 팰러스보다 마인드 마스터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황궁에서야말로 정확히 그에 대해 검증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드 팰러스는 무엇보다 검후님의 수사에 총력을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으음.”
‘잘한다. 클클클’
레오날도 후작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소드 팰러스에서 보유한 마인드 마스터에 대한 정보는 모두 황궁에서 나온 것이었다. 처음 이드에게 보여 주었던 그림도 황궁에서 복사해 온 것이다.
이드가 활동할 때 머물렀던 곳도 황궁이었다. 소드 팰러스는 그때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때 클라인은 마르텔의 은근한 눈짓을 받았다.
나서 보란 뜻이었다.
하지만 하는 말이 모두 바른말인데, 괜히 나섰다가는 헛소리만 해야 한다. 그는 그런 바보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본래 그의 의도와도 맞지 않았다. 그래도 마르텔이 계속 눈치를 주니 어쩔 수 있나. 말을 하라니 해야지.
“그럼 이드라는 자를 이번 토벌에 소드 팰러스 소속으로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황제 폐하게서 직접 그를 본 후에 토벌대 사령관을 맡은 록마틴 후작이 정할 일이 아니겠소. 황궁에서 그에 대해서 검증이 된다면 그의 존재가 결코 가볍지 않으니 말이오.”
―이놈! 그게 무슨 헛소리냐!
급하긴 급한가 보다. 놈이란 소리도 나오고.
여기서는 참을 필요 없겠지? 클라인은 마르텔에게 마주 쏘아봐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으득으득 이빨을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그 소리가 속을 뻥 뚫어 주는 시원한 북 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그 한편으로 클라인 백작은 삼검왕에 대한 의심과 살기를 품었다.
‘기다리시오, 삼검왕분들. 내 생명의 관과 연계된 사실만 확인되면 아주 뼛조각 하나까지 씹어 드릴 테니. 감히 검후님의 소드 팰러스를 똥통에 처박을 짓을 해!’
그가 생각하기에 생명과 영혼과 정신이라는 거대한 던전을 만들어 연구하는 거대한 단체를 후원할 수 있을 만한 최우선 후보가 바로 삼검왕이었다.
클라인은 아무 말 못 하는 두 검왕을 두고 레오날도 후작과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제국의 황제가 만나겠다고 데려오라는데, 그걸 거부할 제대로 된 명분이 있을 턱이 없었다.
‘돌아가는 대로 이드 님에 대한 이미지 작업을 마치고 삼검왕이 그분에 대한 검증을 마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지. 클클클.’
클라인 백작은 삼검왕을 엿 먹일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도 설마 자신이 생각한 이드의 이미지 작업을 까마득한 후배가 건의해서 진행하고 있을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쯧, 그런데 정말 인생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구나. 그저 경애하는 검후님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낙으로 살려고 했더니 이렇게 귀찮고 더러운 일에 발을 담그게 될 줄이야. 뭐, 이것도 모조리 검후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삼검왕 놈들 때문이지.’
황궁과 소드 팰러스의 조율이 끝나자 이후의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제국의 주요 인사를 소집해서 사건에 대해 기밀 처리한 후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토벌대 참가 인원이 모집되었다.
회의를 마친 후 마르텔이 불같이 분노하며 폭주하려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쏘아 대는 클라인 백작의 지적에 고개를 저으며 소드 팰러스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클라인은 그러는 중에도 두 검왕이 혹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을까 눈을 떼지 않았다.
이드는 수련생들의 요청을 허락했다.
동시에 이 일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아니라 이드라는 한 개인의 지도라고 못 박았다. 이후에라도 소드 팰러스에서 걸고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제가 당장 여러분들을 지도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필 제가 중요한 일로 바쁠 때 지도를 요청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수일간은 제가 틈틈이 여러분들의 상태를 점검하겠지만, 대부분의 지도는 여기 있는 에단 경과 데일리 경, 그리고 스폴 경이 애써 주실 겁니다.”
“야호!”
“이드 님 만세!”
이드가 수업을 타인에게 맡겼지만, 수련생들은 오히려 그런 결정을 진정으로 반겼다.
“수업을 못 하겠다는데 만세가 나오면 나보고 어쩌라고!”
과도하게 기뻐하는 모습에 이드가 은밀히 분노했다.
이드를 분노하게 만든 수련생들의 반응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소드 팰러스에서 수학하고 있는 수련생들에게 오색 기사단은 동경이고 목표였다.
수련생들에게는 그들의 스타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을 대단한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이 사실은 빠르게 소드 팰러스 전역으로 퍼졌다. 당장 다음날 저택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길이 비좁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많은 인원을 지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드의 지도를 받는 게 목적인지 데일리와 스폴의 지도를 받는 게 목적인지도 헷갈렸다.
이드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수많은 수련생을 처리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현재 저를 도와주고 있는 데일리 경과 스폴 경은 수일 후 돌아가고 이후에는 제가 지도를 합니다. 두 분의 지도를 받고 싶은 분은 두 분께 직접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