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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72화


609화

에단의 눈이 본능처럼 이드의 시선을 쫓았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파의 눈!’

눈을 깜빡인 에단이 초인기를 발동했다.

갈색 눈동자에 두 개의 별이 떠오르며 회전하는 순간 깜깜하던 세상이 알록달록 크레파스 그림처럼 변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무 사이로 숨어서 이동하는 생명체였다.

“마스터, 어쩌면 아티팩트를 설치한 놈들이 저놈들이 아닐까요?”

에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멀어서 좁쌀처럼 보이는 그것은 인간이 분명했다.

간파의 눈을 얻고 하루 이틀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척 보면 안다.

“어쩌면이 아니라 확실해 보인다. 봐라. 이 나무 쪽으로 직진해서 오고 있잖아. CCTV 상자가 아니면 이 야밤에 외따로 떨어진 숲을 찾아올 이유가 뭐가 있겠어?”

“낄낄낄. 혹시 압니까. 저놈들 사는 마을 방앗간에 자리가 없는지.”

에단이 시덥지 않은 농을 던졌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검후가 은신처로 삼은 숲은 제국 동쪽의 외진 시골 깡촌에 위치해 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나 영지가 삼 일 거리인 조용하지만 버려진 숲으로, 돈이 되는 채집물이나 사냥감도 없는 숲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삼 일 거리에 있는 숲으로 달려올까.

그 시간이면 십 년 만에 재회한 연인의 열기도 밍밍하게 식어 버릴 것이다.

“제가 날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뽑은 모양입니다.”

에단은 흥분에 떨리는 입술을 축였다.

이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뒤에 있는 나무를 눈짓해 보이고는 자리를 옮겼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높은 나무 꼭대기에 장성한 남자 두 명이 붙어 있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달려오는 놈들을 마중을 나가도 되겠지만, 이드는 일단 놈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 속에서 그들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드가 확인한 놈들의 수는 셋이었다.

모두 남자였다.

에단의 방앗간설은 확실히 아니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용하지만 빠르게 이동하던 그들은 아티팩트가 설치된 나무가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방향을 수차례 변경하며, 나무나 폐허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 가며 경계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크게 조심스럽지 못한 것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이었다.

이드는 그 이유를 이곳에 자주 찾아오면서 한 번도 위험을 느끼지 못한 방심과 익숙함 때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방심은 했지만 좋은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다.

아티팩트가 설치된 나무와 가까워지자 일단 멈춰 주변을 살피고 한 명이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다시 중간 지점에 한 사람이 남고, 최종적으로 아티팩트가 있는 나무를 타고 오른 것은 한 명뿐이었다.

세 명이 나무에 오르면 한 번에 처리하려고 했더니 불가능하게 됐다.

-트와이스처럼 제대로 된 곳에서 교육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제일 멀리 있는 자의 실력이 가장 좋아 보이지?

-놈이 대장인 것 같습니다. 나무를 오르는 건 제일 막내인 거 같습니다. 원래 막내가 가장 귀찮고 힘든 일을 하는 법이지요.

그 사이 에단에 의해 막내로 지목된 인물이 아티팩트 상자를 열어서 조작하자 상자 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이 자리에서 바로 녹화된 영상을 확인할 줄이야!

―야, 저거!

―이야, 매뉴얼 진짜 좋네요. 마스터, 아무래도·

에단의 말이 이어지는 중간, 영상을 체크하던 막내가 즉시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날카로운 새소리를 냈다.

삐이이익—

…..들킨 것 같습니다.

신호가 떨어지자 멀리서 경계 중이던 두 사람이 즉시 움직였다.

중간에 있던 남자는 막내를 향해 마주 달렸고, 가장 멀리 있던 대장이라는 자는 왔던 길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헐 뭐냐, 대장이 제일 먼저 도망이야?”

“정보 계통 쪽 아이들 특징입니다. 살 확률이 가장 높은 놈이 정보를 가지고 빠지는 거죠.”

“막내는 네가 맡아라.”

“예!”

에단이 대답 즉시 나무에서 뛰어내려 막내를 뒤쫓았다.

그와 동시에 이드는 서 있던 나무를 휘어 거기서 생긴 탄력을 도약대 삼아 쏘아져 나가며 허공답보로 하늘을 달렸다. 그리고 마주 달리던 남자의 머리 위를 날아가며 천강지를 쏘아내 그의 쇄골을 뚫고 오른쪽 폐를 부숴 버렸다.

남자는 울컥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

쿨럭!”

이드는 그의 생사를 돌아보지 않고 앞서 달아난 자의 뒤를 쫓았다.

그자는 발각된 것이 확인된 순간부터 은밀성은 포기하고 오로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달려가는 그의 발밑으로 풀잎과 먼지들이 회오리치며 솟아올랐다.

이드는 그 모습에서 그가 바람의 능력을 가진 초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속성에 맞게 과연 도망치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하지만 이드에게도 속도라면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경공이 있었다.

파직!

허공을 디딘 이드의 발에서 작은 번개가 튀더니 다음 순간, 어느새 사라져 버린 이드가 있던 자리에서 은은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쿠르르릉—

“개썅!”

정신없이 달리던 남자는 맑은 하늘에 난데없는 천둥소리가 들리자 싸한 느낌을 받았다.

육감이라는 놈이 서늘하게 등골을 달렸다.

남자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였다.

새삼 자신의 임무가 위험한 일이었음을 떠올렸다.

그동안 너무 일이 쉬워서 잊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감시하던 상대는 필사적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는데!

물론 상대가 아무리 조심해도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남자의 생각일 뿐이었다.

후웅!

남자는 그의 등 뒤에 나타난 무언가가 자신의 바람을 밀어내고 있음을 느끼고 즉시 초인기를 발동했다.

“매드 타이푼(mad typhoon)!”

푸화악!

남자의 두 발을 밀어내고 있던 작은 회오리 폭풍이 하나로 미친 듯이 하나로 합쳐지며 남자의 몸을 감싸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로운 폭풍을 뚫고 불쑥 나타난 손 하나가 남자의 허리춤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이드에 손에 의해 날아간 남자가 나무에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아는 남자는 즉시 초인기를 발동시켰다.

“블랙 타이푼(black typhoon)!”

남자의 몸에서 뿜어진 바람이 회오리치며 그가 부딪힌 나무의 나뭇잎들을 빼앗아 이드의 시야를 가리고, 나뭇잎 사이로 은밀히 작은 칼날을 숨겨 날렸다.

그러나 이드는 그와 같은 잔재주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유령이 아닌 이상 지진 속에서도 이드의 기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바람은 단순한 이드의 호신기(護身氣)조차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내 타이푼 바람이…………?”

“당신의 바람은 너무 가벼워!”

구우우웅-

이드의 주먹에 철황기가 머무르며 산이 우는 소리가 났다.

철황기가 가진 무거운 힘이 일대를 지배하자 미치광이처럼 파르락거리던 바람이 천천히 바닥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뭇잎이 가득한 타이푼이 어깨까지 가라앉자 엉거주춤 도망가듯 몸을 돌린 남자의 얼굴이 들어났다.

“이야, 이제야 서로 얼굴을 보네?”

“히익!”

이드는 기겁한 남자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검게 물든 열네 개의 주먹 그림자가 남자의 전신을 두드렸다. 그 하나하나가 철퇴에 맞먹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열네 대의 주먹을 맞은 남자는 스스로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통증과 함께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차라리 그에겐 다행이었다. 전신이 걸레처럼 부서진 탓에 기절하지 않았으면 지옥의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드는 기절한 남자를 들고 움직였다.

팔다리가 고르게 부러진 남자의 사지가 연 꼬리처럼 흐느적거렸다.

중간에 천강지를 맞고 피를 토한 남자를 찾았는데, 이미 죽어 있었다.

이드는 대충 그의 몸을 수색했지만 나오는 흔적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듯했다. 문득 어쩌면 이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드는 내력으로 시체와 기절한 남자를 들어 올려 이동했다.

아티팩트가 설치된 나무가 가까워지자, 그 아래 이들의 막내로 보이던 자 옆에 서 있는 에단의 모습이 보였다.

“어? 벌써 잡아 오신 겁니까?”

“뭐, 대단한 상대들은 아니니까.”

하기사 마인드 마스터가 보기에 대단한 상대가 얼마나 되겠나?

에단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공에 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보았다.

“그런데 둘 다 죽은 죽이신 건 아니죠?”

“제일 먼저 도망가던 놈은 살았어.”

“휴~ 다행입니다. 잘못하면 말할 입이 사라질 뻔했네요. 저도 생포는 못 한 터라.”

“뭐, 이런 자들이 제대로 아는 게 있을까 싶긴 하다만, 그보다 무슨 일이야? 표정이 이상하던데.”

“보셨습니까?”

에단이 제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봤지. 무슨 표정이 죽이고 보니 친구의 친구 형이더라는 표정이던데?”

“그건 남이지 않습니까.”

에단이 흐흐 웃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저도 설명하자니 좀 어렵습니다. 이자를 죽였더니 그 몸에서 푸른색 안개 형태의 초인력이 흘러나와서 제 몸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이드는 이질적인 힘이 몸에 침입했다는 에단의 말에 얼굴을 굳히며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간파의 눈의 눈으로 본 거야?”

“네. 그게 아니었으면 못 봤을 겁니다.”

“손 내밀어 봐.”

이드는 에단의 손목을 잡고 그의 내부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내부는 이전에 살핀 것과 같이 내력과 함께 초인기의 근간으로 짐작되는 무형의 초인력이 느껴질 뿐이었다.

에단이 말했던 푸른 안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푸른 안개가 초인력이라고?”

“간파의 눈에 그렇게 보였습니다. 색깔이 푸른 건 이자의 초인기의 특성 때문인 것 같고요.”

“일단 내 기감에 잡히는 건 없다. 그래도 저자가 죽은 후에 흘러나온 초인력이 네게 흘러들었다는 건 이상하네. 전엔 이런 일 없었어? 아니면 있었는데 네가 몰랐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에단은 단언했다.

그가 트와이스에서 활동할 때 맡은 일은 위험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간파의 눈을 얻고 그것에 익숙해진 후로는 사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사이 에단과 동료의 손에 죽어 나간 적대 세력의 초인도 백 명이 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당장 몸에 느껴지는 이상은 있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점검은 마쳤지만 확신할 수 없습니다.”

“좋아. 그럼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저택으로 돌아가서 알아보자. 확실히 이상이 있다면 라미아와 비올라가 알아낼 수 있겠지.”

생명의 관에서 초인에 대해서 공부한 비올라라면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드는 에단에게 세 명을 지키게 하고는 주변을 수색했다.

에단이 자신도 나서겠다고 했지만, 현재 그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그를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푸른 번개가 되어 숲을 일주하고 세 명의 인물이 진입했던 곳까지 뒤졌지만, 눈여겨 살펴볼 만한 특이점은 찾을 수 없었다.

멀리 가진 못하고 나무에 올라 주변을 살핀 에단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드는 그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에단과 시체 두 구, 그리고 기절한 남자를 데리고 저택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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