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74화
611화
저택 뒤에 수련장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전이라고 수련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사들의 성지답게, 소드 팰러스에 있는 집은 크기와 상관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 필수다. 하다못해 여관조차 그럴 듯한 규모의 수련장을 손님들에게 제공한다.
떠도는 말에는 소드 팰러스 여관 운영 삼 년이면 어깨너머로 배운 검술로 잘난 체하는 애송이 기사 정도는 깔아뭉개 버릴 수 있다나?
물론 확인한 사람도, 확인해 준 사람도 없는 소문이었다.
이드의 집에도 저택의 규모와 가격에 걸맞은 품격 있는 수련장이 있었다.
오히려 쓸데없을 정도로 멋있기만 한 수련장이었지만, 이드가 가볍게 몸을 풀거나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죽자고 겨루기에 충분한 크기를 가진 수련장이었다. 특히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이 수련장을 아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용이었다.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인원은 다섯 명이 한계였다. 이드들이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만, 이번에 갑자기 생겨 버린 수십 명의 수련생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따로 외부에 있는 수련장을 빌려도 좋지만, 홍보를 위한 일환이라고 해도 과도한 관심은 불편해서 사절이었다. 입소문을 위한 것이지 수련생을 구경거리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전 네리베르의 수련장을 사용할 때처럼 엉뚱한 사람들이 눈을 아래로 깔고 구경하는 꼴을 당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드는 수련생을 받을 수 있도록 수련장에 대한 확장 공사를 감행했다.
저택만큼이나 잘 만들어진 수련장을 강기로 밀어 버렸다. 덕분에 먼지는 좀 날렸지만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고, 평탄화 작업도 동시에 끝내 버릴 수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기기묘묘한 강기의 활용보다는 아름다운 수련장이 사라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깔끔히 정리된 땅에 라미아가 단단한 암석을 마법으로 만들어 내고, 이드가 그 암석을 결대로 잘라 촘촘히 바닥에 깔았다. 간단한 물결무늬 하나 없는 밋밋한 수련장이 두 시간 만에 뚝딱 완성된 것이다.
수련장의 개시는 이드가 에단과 록, 케마란, 네리베르의 무공을 지도해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튿날, 하루 만에 새로 생긴 수련장이 수련생들에게 제법 이슈가 되었었다.
오늘도 수련장 위에는 수련생들이 가득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싱글벙글하면서 데일리와 스폴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밝다 못해 기쁨이 넘쳤다. 누가 보면 모두 괴롭힘을 당하고 기뻐하는 특수한 성격이라고 착각할 것 같은 모습이다.
학교에서도 연예인 수만 충분하다면 시도해 볼 만한 교습법이 아닐까?
데일리와 스폴은 쉴라의 걱정과 달리 수련생 지도를 잘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 밑에 있는 평기사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덕분에 두 사람을 돕도록 붙여 둔 사람들이 많이 여유로웠다.
이드는 한쪽에 느긋하게 서서 수련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에단을 바라보았다.
에단은 전날 밤을 꼴딱 새워가며 라미아와 비올라에게 시달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이드도, 라미아도, 비올라도 에단이 말했던 초인력의 흡수에 관련한 이상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쯤 되면 에단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는 중에도 비올라는 에단에게 일어난 현상에 광희(狂)했다. 초인의 탄생 이후 듣도 보도 못 했던, 난생처음의 접하는 대사건인 때문이었다. 사건이 지닌 의미와 희소성에 반쯤 정신 줄을 놓은 비올라는 돌아가겠다는 에단을 붙들고 늘어졌다.
“네 몸 안에 초인의 새로운 가능성과 마법의 정수가 잠들어 있다. 마법과 세상, 그리고 내 연구를 위해 네가 희생해라!”
죽어! 이 새꺄!”
“끄억!”
에단은 비장한 비올라의 개소리에 전력의 바디블로우를 먹여 침묵시킨 후 저택의 지하실을 탈출했다.
그러나 그 탈출도 허무하게 결국 에단은 라미아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지하실에 들르게 되었다. 그녀는 흡수되어 사라진 초인력이 폭탄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꾸준한 관찰과 검사가 필수라고 본 것이다.
에단으로서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확인한 일이기 때문에 거부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몸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설득된 에단의 주기적인 검사는 비올라의 책임이 되었다. 비올라 본인이 스스로 간절히 지원한 때문이었다. 에단은 질색을 했지만, 라미아와 다른 이들은 저만한 열의라면 그만큼 더 꼼꼼히 처리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뭐, 언제 갑자기 메스를 들고 달려들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에단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에단으로서는 원하지 않는 믿음이었지만.
“아무래도 영혼의 관과 정신의 관 토벌에 가게 되면 에단에게 신경을 써야겠다.”
생명의 관처럼 영혼과 정신의 관에도 초인을 이용한 공격 수법이 있을 것이고, 어제 있었던 현상이 다시 발생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에단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수련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련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데일리와 스폴의 지도 대련 시간이었다.
“음. 오늘은 내가 수련생들을 좀 봐 줄까?”
아무래도 이드의 이름으로 지도를 요청한 수련생들을 너무 무심히 방치하는 것도 올바른 일은 아니다. 절대 좋아 죽겠다는 수련생들의 얼굴이 거슬려서가 아니었다.
“우우우우우~!”
잠시 후, 수련장에서 길고긴 야유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그 뒤를 이은 곡소리가 더 높이 울려 퍼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케마란과 네리베르와 달리, 수련생을 가르칠 때는 손끝이 자동적으로 두 배 매워지는 요즘의 이드였다.
황궁에 갔던 클라인 백작이 돌아왔다.
그는 돌아온 당일 짐도 풀지 않고 이드를 찾아왔다.
서로의 관계를 숨기고 있던 중의 저돌적인 방문에 이드는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반겼다.
“이렇게 찾아오셔도 괜찮으십니까?”
이드가 자리에 앉으며 궁금한 기색으로 물었다. 클라인은 기분이 좋은 듯 크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이번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찾아온 거니까요. 그리고 삼검왕 쪽에서도 슬슬 저와 이드님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을 때가 됐습니다.”
“황궁에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암요, 삼검왕이 제대로 물먹을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겐 아주 즐거운 일이지요.”
클라인의 호언에 에단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 양반들을 물먹일 인물이 있습니까?”
“있지. 황제 폐하, 그리고 레오날도 후작, 그리고 나!”
“백작님이요?”
함부로 얼굴 보기 힘든 거물의 등장에 커지던 에단의 눈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클라인의 말에 가늘어졌다.
“왜 난 안 되나?”
“아니, 안 될 건 없지만 말입니다. 이번엔 소드 팰러스 대표로 가신 거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서 삼검왕을 물먹이면 그건 직무태만인데, 하는 생각이 에단의 얼굴에 떠올랐다.
클라인은 그 표정을 보고 끌끌거리며 웃었다.
“소드 팰러스를 대표해서 내가 맡은 일은 당연히 잘했지. 물을 먹인 건 이드 님에 관한 일이지.”
이드는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의 이름에 귀를 기울였다.
“저요?”
“네. 황제께서 이드 님을 직접 보자고 하십니다. 이드 님이 소드 팰러스에 드신 뒤로 꾸준히 연락이 왔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토벌대를 명분 삼아서 레오날도 후작과 제가 자리를 한번 만들었지요.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구겨지던 얼굴이 참 볼만했습니다.”
“토벌대가 황궁에 모이는 모양이지요?”
“영혼과 정신의 관이 어디에 있는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미정이지만, 일단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는 절차가 있으니까요. 중요 인물들은 황궁에서 출발하게 될 겁니다.”
이드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탁자 서랍에서 비올라가 하루 만에 작성한 영혼과 정신의 관에 대한 자료를 건네주었다.
“이건 비올라가 작성한 겁니다. 두 부는 쉴라 경이 챙겨 갔습니다.”
“음. 마침 필요하던 자료니 잘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전 이제 황궁으로 가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제가 바로 이드 님께 달려온 이유는, 이드님이 황제 폐하로부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검증을 받기 전에 삼검왕이 먼저 이드 님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고 검증을 마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클라인은 황궁과 삼검왕이 노리는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드는 노골적으로 한심한 표정이 되어 혀를 찼다.
“쯧쯧.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을 사발째로 들이켜고 있네요.”
클라인은 떡이 무엇인지 김칫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의 뜻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상일을 손안에 쥐고 흔들다 보니 오만해지고 멍청해진 것이지요. 다만 레오날도 후작의 생각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드 님과의 관계를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 특징이죠, 복잡한 건.”
그 복잡한 걸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인 클라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찻잔으로 눈을 돌렸다.
“그럼 오늘 방문은 삼검왕을 대신한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제 역할은 이드 님이 삼검왕에게 검증을 받기 위해서 움직이도록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드 님은 거절하셔야 합니다. 당시 이드 님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삼검왕이 이런 상황에서도 직접 오지 않고 절 보냈다는 것은 아직도 이드 님을 아래로 얕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움직이게 되면, 그 속이 어떠하든 오색 기사단과 소드 팰러스에 이드 님이 삼검왕 아래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엉망이군요. 소드 팰러스가 권력자들이 정치질을 하는 곳인지, 기사로서 무공을 갈고 닦는 곳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소드 팰러스는 오로지 검후님의 소드 팰러스일 뿐입니다.”
이드는 결사적인 클라인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검후에 대한 마음 하나는 제국 제일이 아닐까 싶었다.
‘아, 쉴라 경도 있으니 그건 아니려나? 둘이 누가 더 검후를 생각하는지 겨뤄 보자고 하면 볼만하겠네.’
엉뚱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환기시킨 이드가 자세를 고치고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셨습니다? 황궁까지 가깝지 않은 거린데.”
“이동 마법진을 이용했습니다. 좌표 불안정으로 텔레포트 마법에 의한 이동이 막혔다고,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는 제국뿐 아니라 전 대륙의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덕분에 재미있는 일도 적지 않았다. 서로 이동 마법진의 설치를 허락한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같은 세력에 속해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물론 은밀히 그런 사실을 숨기는 곳도 있다.
소드 팰러스도 다른 영지와 이어진 이동 마법진을 여럿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황궁과 이어진 마법진도 있었지만, 황궁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그것은 황제가 소드 팰러스를 견제하고 있다는 확실한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는데, 그만큼 황궁과 소드 팰러스의 거리가 벌어진 것이 겉으로도 티가 났다는 뜻이었다.
“참, 그런데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별다른 일?
이드는 에단과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당연히 있었지요.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백작의 조언을 구하고 싶은 일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