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75화
612화
클라인은 살짝 당황했다.
그가 말한 별다른 일은 저택을 들어서면서 봤던 수련생들과 은색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왜 이곳에 모여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이드가 조언을 구한다면서 말하는 투가 아무래도 수련생들에 관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요.”
“하하.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드는 지난 수일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클라인 백작은 사무엘 백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불쾌감에 사무엘 백작을 비웃었고, 검후의 숲에서 잡아온 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일리나가 달콤한 차를 내어오지 않았다면 이 사람, 이전에 다른 방으로 달려가 소리 지르고 돌아왔을 때처럼 일단 화원에 달려갔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크흠. 죄송합니다. 검후님의 실종에 관계된 범인이 있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하지요. 에단과 밤마다 숲을 뒤졌지 않습니까. 놈들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이 고생한 덕분이지요.”
“별말씀을….. 그보다 자네, 정말 잘했네. 트와이스에 있어서 그런지 판단이 빨랐어. 혼자였다면 위험했을 걸세.”
이드가 그간의 고생을 알아주는 말을 하자 클라인은 뿌듯해하면서도 공을 돌려 에단의 판단을 칭찬했다.
“맞습니다. 에단이 날을 잘 잡았지요. 여기 일이 끝나고 쉴라 경을 찾아가면 그간 알아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택을 나가면 바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그놈들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 제 귀로 직접 들어야겠습니다. 그럼 조언이란 건, 사무엘 백작이란 자에 대한 일입니까?”
클라인이 빨리 끝내고 가려는 듯 급하게 물어왔다.
사실 붙잡아 온 초인에 대해서라면 그가 조언할 부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네. 이그렌 경과 사무엘 백작의 관계를 끊고, 그래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를 좀 도와주고 싶거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황궁에 가기 전에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다면 바로 제가 처리했을 텐데요.”
“한창 바쁘신데 제 개인적인 일로 정신없게 할 수는 없다 싶었어요.”
“개인적인 일이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이제 이드 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드 님의 일은 더 이상 이드 님 개인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클라인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드는 가볍게 웃음으로 받았다. 지금이야 클라인이 저렇게 말을 하지만, 내심 검후가 다시 복귀하게 된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분은 제가 주의하죠. 아무튼 당시에는 저도 이그렌 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알아봐야 했지요. 그래이의 증손이라지만 그 사실만으로 무작정 믿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너무 신중하셨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첫 만남에서 있었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괘씸하지 않습니까. 감히 이드 님을 속여 무공을 가로채려 했다니요!”
“가로채는 건 아니구요.”
이드는 흥분한 클라인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그러나 클라인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기세등등한 눈으로 아직 보지도 못한 사무엘 백작을 씹어 댔다.
그러더니 곧 긴 한숨을 쉬고는 이마를 문질렀다.
“송구합니다, 이드 님. 이게 모두 저희들이 검후님을 잘 모시지 못하고, 그 때문에 삼검왕이 다른 마음을 품은 탓이 아니겠습니까. 삼검왕이 충심으로 검후님을 모시고 있었다면 검후님이 실종되셨더라도 이드 님을 정중히 모셨을 것이고, 그랬다면 감히 일리나스의 백작 나부랭이가 이드 님께 수작을 부릴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클라인은 으득거리며 삼검왕을 씹었다.
기승전삼검왕이다. 그의 마음속에 삼검왕은 이미 완전한 악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드는 클라인의 말처럼 되었어도 지금과 같은 일은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무엘 백작과 같은 욕심 많은 자가 이그렌이라는 카드를 쥐고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래이와 하엘의 증손자라고 찾아왔다면 만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리나가 표식을 남긴 그래이의 검을 들고 찾아왔다면……………
마침 이드의 눈에 일리나의 손에 의해서 반짝반짝 잘 손질되어 벽에 걸린 그레이의 검이 들어왔다. 저 검을 보고 어떻게 만남을 거절할 수 있을까? “이 일은 온전히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저택을 나선 순간부터 이드 님이 사무엘 백작이란 작자의 이름을 듣는 일이 없도록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자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요!”
“오옷! 어떤 좋은 방법이 있으시기에?”
과연 수천 년을 이어온 그레센의 귀족 사회.
이런 문제의 처리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도 있나 보다! 이드는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일에 방법이랄 게 무엇이겠습니까. 감히 이드님께 수작을 부렸으니 그 대가로 그 목을 잘라 줘야겠지요!”
“아……하…………하.”
이드는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다.
자신과 에단은 물론이고, 클라인까지 처음 제시하는 방법이 하나같이 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무엘과 같은 자는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이후의 후환이 없다는 것을 본능처럼 알고 있는 때문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그렌의 요청이 너무 온건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만큼 당했으면 독하게 갚아 주어야지!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이그렌 경이 원하지 않더군요. 이후에도 고향에서 살고 싶은데, 백작이 죽게 되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염려되나 봅니다.”
“쯧, 감상적인 청년이군요.”
“그래이도 그런 면이 있었지요. 하하하.”
“그러면 그 백작이라는 자와 부채를 청산하고도 그가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클라인 백작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좋은 생각이 났는지 빙긋 웃으며 무릎을 쳤다.
“마침 이번에 이드 님이 황궁에 가시니 그 일과 엮으면 이그렌 경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덤으로 이드 님을 그물에 든 물고기처럼 여기는 황궁과 소드 팰러스도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세세한 계획을 짜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드는 덤까지 챙기는 클라인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그가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니, 빨리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그리고 사무엘 백작가에 잡혀 있다는 이그렌 경의 부친은 제가 따로 구해내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그냥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편이 사무엘 백작을 더 곤란하게 만들어 줄 테지요.”
물론 그 시간만큼 이그렌의 부친이 더 고생하게 되겠지만, 클라인 백작은 일부러 그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내심 이그렌의 부탁보다는 감히 그를 이용해서 이드에게 접근한 사무엘 백작을 조금이라도 더 괴롭혀 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이드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 사이 이그렌 경의 부친이 더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클라인은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서둘러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그렌 경이 이드 님에 대한 연줄로 사용되고 있는 동안 그의 부친은 감금되어 있을 뿐이지, 다른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귀족을 노예로 팔려고 했던 사무엘 백작에 대한 귀족들의 비난이 높아지겠지요. 이그렌 경의 부친이 영지를 팔고 거대한 빚을 지기는 했지만 엄연한 귀족이니까요. 어쩌면 이그렌 경은 몰라도 그 부친의 경우에는 자신의 감금이 사무엘 백작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기뻐할 겁니다.”
“확실히 이그렌 경과 감금된 그의 부친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겠지요.”
“당연합니다. 귀족으로서 노예로 팔리기 위해 잡혀 있다는 사실은 죽음과 같은 분노와 수치를 주는 일이니까요.”
대략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하자 클라인은 붕 떠 있던 엉덩이를 들어 일어났다.
사무엘 백작에 관한 계획이야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을 손질한 후 정리할 일이었고, 지금 당장은 화원에 잡혀 있을 초인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것이 클라인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드는 허둥지둥 인사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클라인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진지하면서도 가벼운,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최근 네리베르는 고민이 생겼다.
갑자기 실력이 늘어난 케마란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던 이전부터 이드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사이가 좋아진 지금까지 꾸준히 실력을 겨루며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사람의 실력에, 대련의 승패는 당일의 컨디션과 운에 따라 갈렸다.
그야말로 백중세.
서로 세 번 연속 이겨 본 적이 없었고, 세 번 연속 져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케마란의 실력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달라졌다.
“5연패…예요.”
오늘 새로 세워진 연패 기록에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현재까지 최대 연패 기록이었다.
케마란의 실력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이드의 지도 때문이었다.
이드에 의해서 수없이 지적된 사항들 때문에 처음에는 케마란의 실력이 오히려 퇴보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빈틈이 메워지고 링스피어라는 무기가 가진 장점이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살아나자, 케마란의 실력은 이전보다 두 배 이상의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해서 원래 실력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링스피어라는 특별한 무기를 사용하면서 가지고 있던 핸디캡이 한 번에 사라지고, 지금까지 축적해 두었던 힘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 같은 성장세였다.
폭풍처럼 치고 올라온 그녀는 어느새 네리베르의 실력을 뛰어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내심 케마란을 인정하고 있었고, 이드에게 같이 지도를 받으며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던 네리베르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5연패 중에도 패배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곧 하루하루 케마란의 실력이 눈에 보일 정도록 확연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케마란이 네리베르에게 익숙해져 쉽게 상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케마란에게 네리베르의 노림수가 빤히 읽히고 있다는 뜻.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네리베르에게 충격적인 사실인 것은 마찬가지!
연속되는 네리베르의 패배에 두 사람의 실력과 관계를 알고 있는 수련생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천재 링스피어 케마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새로운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 들고, 그 무기를 사용하는 무공을 수련해서 정통 기사 무공을 수련한 네리베르를 압도하기 시작한 천재.
이전까지 수련생들로부터 천재로 인정받던 네리베르의 평가가 케마란에게로 옮겨가는 것 같았다.
천재 케마란.
네리베르는 이미 오래전에 인정하고 있던 일이었다.
링스피어라는 독특한 무기를 들고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그녀를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도 있었다. 자신도 케마란과 같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그 생각이 연속되는 패배 속에서 흔들려 버렸다.
나는 가짜가 아닐까?
오로지 케마란만이 진짜 천재가 아닐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과 함께 불쑥 치솟아 오르는 추잡한 한 조각 질투심에 네리베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바보같이. 정신 차려요, 네리베르!’
선의의 라이벌이자 비밀을 공유한 친구를 질투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치졸한 질투심을 불태우기에는 네리베르의 자존심은 너무 곧고 단단했으며, 전통 있는 백작가의 딸로서 받은 교육은 그녀가 현명하게 생각하고 신중히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검후와 쉴라 앞에 언제나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흥! 저 네리베르 폴 다임,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