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82화
619화
소드 팰러스의 주점이 때 아닌 성황을 맞았다.
이드가 마르텔을 쓰러트렸다는 소식에 아래위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야기 삼매경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제국이 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드를 소드 팰러스의 네 번째 검왕이라고 소리치며 술잔을 들었다.
“그 누가 부러워하지 않으리요. 소드 팰러스에 네 번째 검왕께서 탄생하셨다니!”
소드 팰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삼검왕은 소드 팰러스를 지키는 방패요, 검이며, 소드 팰러스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었다.
소드 팰러스가 타국을 공격하거나 공격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드 팰러스 밖에서 활동할 때면 언제나 타지 사람들은 소드 팰러스라는 이름 앞에 양보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제국보다 더 강력한 소드 팰러스의 힘을 느꼈다.
타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드 팰러스의 이름은 제국 안뿐 아니라 타국에서도 통했다. 사람들은 아나크렌이 아니라 소드 팰러스에서 왔다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소드 팰러스는 그들에게 힘의 상징이자 자랑이었다.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삼검왕의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검왕의 탄생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본능처럼 힘의 상징이 꺾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아무렴! 거기다 어디 보통 분인가? 심지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란 말이야!”
그런 생각에는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사실과, 이를 검증받기 위해 소드 팰러스에서 대기 중이라는 사실의 영향이 컸다.
“그렇지! 위대하신 검후님께 무공을 내려 주신, 더 위대한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다시 소드 팰러스로 돌아왔다고!”
“이제 꾸엔달 그놈도 소드 팰러스가 기사들의 성지라는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을 거야! 크하하하.”
한 사람이 술잔을 들며 외치자 사람들의 함성이 파도처럼 그 뒤를 따랐다.
“……소드 팰러스의 사검왕인가…..”
흥성이는 분위기의 주점 한쪽에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주점의 가장 안쪽,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모인 그들은 흥분한 주점의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한 기사가 주점에 모인 사람들을 냉소하며 말했다.
“희망 사항이겠지. 저놈들은 그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거야.”
기사의 말대로 사람들은 대결의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전에 마르텔과 이드 사이에 있었던 험악한 분위기는 어느새 소문에서 낙오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황제께서 그자를 직접 보겠다며 불렀다고 하더군.”
다른 기사가 말했다. 옆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네. 소드 팰러스가 검증할 능력이 없다면 황궁에서 검증하겠다고 했다지?”
“소드 팰러스의 사검왕이 아니라 황실의 검황을 노리는 거겠지.”
“빌어먹을. 소드 팰러스에서는 그동안 뭘 한 거야? 그자가 온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소드 팰러스를 사랑하는 한 기사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크큭. 뭐 하기는. 네가 말한 이드라는 자와 주도권 싸움만 했지. 그것도 이제 끝났지만.”
“어떻게?”
“삼검왕이 숙이고 이드를 사검왕으로 받아들이거나, 이드가 삼검왕을 차 버리고 황궁에 들어앉거나, 결국 둘 중 하나야.”
“딜! 삼검왕께 말이 너무 험하네.”
묵직한 목소리의 기사가 딜이란 기사를 진정시키자 다른 자가 나섰다.
“난 딜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검후님이 수련을 위해 떠나신 후에 삼검왕이 제대로 한 게 뭐가 있어? 끅, 그러고 보면 이전에도 없었지.” 기사가 삼검왕을 비판하자 다른 자들이 주변을 살폈다.
“자네들, 오늘 술이 과했군.”
“전혀. 이제야 할 말을 할 뿐이지. 난 이번 기회에 소드 팰러스의 주인이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해.”
“자네 정말 위험한 말을 하는군. 소드 팰러스의 주인은 영원히 검후님이시네.”
“알지. 당연한 말이야. 하지만 검후님이 항상 소드 팰러스를 돌보실 수는 없어. 그분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 그분이 자리를 비우신 후 소드 팰러스는 선장을 잃은 배처럼 기우뚱거리고 있어. 검후님이 돌아오시면 바뀌겠지만, 다시 자리를 비우시면 이 상황이 반복되겠지. 그러니 이런 꼴을 보지 않으려면 가만히 앉아 명성만 올리는 삼검왕이 아니라 실질적인 소드 팰러스의 운영자가 필요해!”
평소답지 않은 딜의 열변에 묵직한 목소리의 기사가 말했다.
“자네가 지켜보던 게일 경 말인가?”
“게일 경이든 누구든 어떤가! 그리고 당장은 저 사검왕의 이름이 걸리는군. 감히 누가 그에게 검왕의 자리를 주었다고?”
차가운 눈을 빛내는 기사의 말에 둘러앉은 기사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들은 밖에서 들리는 소드 팰러스 네 번째 검왕의 탄생 소식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었다.
마르텔에 대한 소식은 페시딘에게 긴급으로 전달되었다.
페시딘은 보고를 받은 후 도저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툭. 툭.
계속 종이를 찍어 대는 펜을 따라 잉크가 번져 서류가 쓸모없게 되어 갔다.
“으득. 고작 이번 일만을 가지고 검왕이라니. 검왕의 이름이 진정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던가!”
페시딘은 결국 펜을 내려 두고 책상의 서랍에서 가죽에 싸인 물건을 꺼내 놓았다. 가죽 속에 든 물건은 세 개의 가지 위에 놓인 검은색 구슬이었다. 페시딘이 구슬을 돌리자 구슬의 중심부가 갈라지며 황금색 빛이 새어 나왔다.
“……”
페시딘은 그 모양을 말없이 바라보다 구슬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는 서랍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늘은 일찍 마무리하지.”
지나가는 말로 하루 일과를 종료시킨 페시딘은 그길로 자신의 개인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의 개인 수련장은 언제나처럼 서늘하고 조용했다. 페시딘은 그 위에서 검을 꺼내 들고 섰다.
“후~”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세워진 그의 검에서 적색 검기가 타오르더니, 곧 검사가 되고 검강이 되었다.
그는 그 상태에서 그가 보고받았던 마르텔의 모습을 심상에 그렸다.
크고 작은 뿔을 두 개 가진 위험한 코뿔소. 그것이 페시딘의 마음속 마르텔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불끈!
이빨을 꽉 깨문 페시딘의 정신이 바늘 끝처럼 예리해지자 붉은 검강이 공간 속으로 녹아 사라지더니, 페시딘과 검을 중심으로 공기와 마나가 갈라지고 공간이 일그러지며 휘어졌다.
페시딘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땀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공간을 지배하는 힘에 기화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페시딘이 그와 같은 힘을 유지한 것은 고작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긴 호흡과 함께 힘을 풀어낸 그는 검신을 팔로 받쳐 올렸다. 깨끗하게 관리된 검신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블러디 혼이 가진 두 번째 뿔은 나도 벨 수 있다. 하지만 그놈도 베었단 말이지. 그놈이………… 마르텔을 눌렀다고.”
페시딘은 곧 납검하고 수련장 밖에 있는 자를 향해 소리쳤다.
“마르텔에게 간다!”
날이 밝았다.
소파에 앉은 이드는 호화로운 창에 드리운 커튼을 머리를 짚으며 노려보다 말했다.
“이제 갔을까?”
[희망 사항이에요?]
옆에 있던 라미아가 말했다.
오늘은 그녀도 연구를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지 않고 이드와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 지하실에는 처음으로 독차지하게 된 바이트 타블렛을 껴안은 비올라뿐이었다.
시큰둥한 대답에 다시 일어난 이드가 창에 드리운 커튼을 걷어 냈다. 그러자 저택 밖으로 구름처럼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어제 대결 이야기를 듣고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끄응~”
[똥 마려우면 화장실을 가세요.]
앓는 소리에 라미아가 툭 쏘아 주었다.
그 때 밖에 있던 사람들이 이드를 발견했다. 매직미러가 아닌 이상 유리가 서로를 투명하게 비치는 것은 당연한 일!
“와! 이드 님이다.”
“어디, 누구야! 저분이야?”
“저도 수련생으로 뽑아 주세요. 이드 님께 배우고 싶어요.”
“저부터 뽑아 주세요. 전 수업료로 오백 골덴을 내겠어요!”
“흥, 미친놈. 사검왕님의 수업을 고작 그 정도로밖에 보지 못하다니. 꺼져. 저는 오천 골덴 내겠습니다.”
“만 골덴!”
“난 세 명의 기사 수업료로 오만 골덴을 내겠소!”
수업료도 없는 수업에 사람들이 경매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판매자의 의사와 전혀 무관한 경매였으며,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도 없는 경매였다. 브레이크가 없는 경주차라고 할까? 이드는 질끈 눈을 감고 커튼을 다시 내렸다. 시끄럽게 들리던 소음이 차단되었다.
“아, 씨. 저 사람들은 왜 또 저러냐.”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니죠?]
“…. . . . . .”
툭 던지는 라미아의 대답이 미웠지만 진짜 몰라서 물었던 게 아닌 이드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지금까지 몰랐어도 당장 들려온 고함 소리를 들어 보면 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소드 팰러스의 네 번째 검왕인 이드의 수업을 받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간단히 말해 마르텔과 있었던 대결의 부작용이었다. 에단의 말처럼 명성이 조금 오르고 끝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검왕을 쓰러트린 무인의 수업.
그것은 수련생들에게 엄청난 메리트였다. 빅터가 이드의 가르침을 버리고 마르텔에게 꼬리를 흔든 것과 같은 이치였다.
삼검왕도 과거에 제자를 두기도 했고 수련생을 모아 수업을 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진행되는 수업은 없었다.
당시의 수업은 지금 이드의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든 것처럼 엄청난 인기였다. 또 삼검왕 아래에서 배운 수련생들은 대부분 유명한 기사가 되어 성공했다.
밖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와글와글와글
그때 문이 열리며 커튼으로 막았던 소음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일리나가 에단과 함께 들고 들어온 자루를 탁자에 두고 문을 닫았다.
“휴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인간 세계에 나름대로 익숙한 일리나도 지금처럼 모여든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일리나. 나 때문에. 그런데 어딜 갔다 왔던 거예요? 이건 뭐고?”
“수련생들이 올 때가 돼서 기다렸어요.”
그러고 보면 최근 수련생들의 수업에 그녀가 많이 참가하고 있었다.
“쯧, 밖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수련생들이 들어오기는 힘들지 싶은데요.”
“그런 것 같아요. 원래 벌써 와야 하는데 아직 한 사람도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건………….”
일리나가 자루를 뒤집었다.
와르르르-
자루 속에서 수없이 많은 종이들이 쏟아져 나와 탁자에 산처럼 쌓였다. 언뜻 봐도 수백, 수천 장은 되어 보였다. 에단이 들고 온 자루에도 마찬가지로 종이들이 한가득했다.
“이게 다 뭐에요?”
“이드가 수업을 받고 싶다면 추천장을 받아서 신청서를 쓰라고 했잖아요.”
“그럼 이게 다?”
“추천장과 신청서입니다. 개중에는 선생이 없다고 신청서만 쓴 것도 있고요. 어제부터 조금 전까지 제출된 것만 가져온 겁니다. 아마 며칠 동안 계속 들어올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소드 팰러스에 있는 모든 수련생과 기사들이 신청서를 쓸 것 같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소드 팰러스의 종잇값이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방 하나가 종이로 꽉 찰 것 같습니다.”
이드가 황당함에 뒷목을 잡았다.
추천서를 언급할 때는 설마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좋아. 이걸 다 확인하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장작으로 쓰자! 어때?”
“좋은 생각이십니다.”
에단은 이드의 눈길에 바짝 고개를 숙였다. 반대했다가는 신청서 정리를 자신이 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껴서였다.
[……쯧쯧쯧.]
“……”
그 뒤에서 라미아와 일리나가 작게 혀를 찼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드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하는 순간 그녀들도 저기 쌓여 있고, 앞으로 쌓일 신청서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련생은 어떻게 뽑을 건데요?”
신청서를 내라고 해 놓고, 아무도 뽑지 않을 수는 없었다.
“……철저히 인맥을 통해서! 네리베르와 케마란이 있잖아.”
[・・・・・・ 나무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