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21화


458화

순간 끝없이 저주를 쏟아내는 그림자의 껍데기를 두드리던 이드의 검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힘이었다. 검이 스쳐 가는 곳곳마다 금이 갔지만 여전히 단단하던 그림자의 신체가 깨지고, 터져서 떨어져 나갔다. 갑자기 변해 버린 위력적인 검세(劍勢)에 그림자의 몸이 주춤하고 뒤로 밀려나는 순간 은빛 검강이 스쳐 가며 갈라진 괴수의 머리 위쪽으로 이드의 주먹이 팔목까지 파고들었다.

주춤!

순간 이드와 그림자, 두 존재의 움직임이 멈췄다.

“한판 잘 놀았지? 이제 사라져라.”

우우웅!

이드는 앞서 그림자를 때리면서 속을 부쉈을 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기운을 주입해서 기운끼리 거미줄처럼 얽어 그림자의 전신을 하나의 기운으로 묶어 두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이드의 주먹이 기운의 핵이 되어 그림자의 전신에 흩어져 있던 기운들을 끌어당겨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구 모양을 한 특별한 힘의 형태였다.

“끄, 끄르르르………… 저, 저열한 것들………….”

“어느 쪽이? 원원대멸력이라는 것이다. 집(集)!”

이드는 자신이 심은 씨앗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운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 느껴지자 주먹을 빼고 뒤로 물러섰다. 주먹을 찔러 넣고 물러서기까지는 한 호흡,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끼이이익-

철판이 강한 힘에 의해서 뒤틀릴 때 나는 소리가 났다. 이드를 향해 핼버드를 휘두르려던 그림자가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떡하니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못했다. 붉게 타오르던 눈은 흐릿해지고, 결국에는 빛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없이 많은 균열로 조각나 있던 그의 몸 한 조각이 이드가 심어 놓은 씨앗 속으로 잡아당겨지듯이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것은 수박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한 부분을 따내는 모습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았다. 그런 현상은 순식간에 몸 전체로 퍼지고, 그림자의 커다란 몸은 조각조각 나서 사라졌다. 그렇게 마지막 한 조각마저 빨려 들어가고 난 자리에는 강기로 이루어진 손바닥만 한 회색의 고리만이 남아 있었다. 고리는 천천히 작아지더니 곧 작은 점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쉽지 않은 힘이야.”

생각대로의 효과를 보이지만 아직도 순간적인 심력의 소모가 큰 수법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대들던 돌원숭이를 제압하여 인간의 말을 듣게 만들었던 금고아를 본떠 만들어 낸 힘. 그것이 바로 원원대멸력이다. 강력한 힘인 만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한 힘이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수법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찾았다.’

그림자의 마지막 모습에 놀라 파르르 떨던 눈동자가 버릇처럼 주변을 살폈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이제 보고만 하면 되는데…………… 문제로군.’

검은 로브는 고민했다. 알지 못하는 행운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마을이다. 덕분에 목표하고 있던 장소와 인물도 확인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사이 이드와 엘프들이 움직였다.

검은 로브는 그 모습에 땅에 바짝 엎드렸다.

커다란 로브로 몸을 감싼 그의 모습은 주변의 색과 동화되어 구분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있기에 엘프와 이드는 너무나 어려운 존재다. 그는 천천히 땅을 기어 어두운 숲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울퉁불퉁. 검은 동굴 벽이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이 들고 있던 병에서 한 방울의 포션이 떨어졌다. 차가운 포션이 눈에 들어오자 눈이 시원해지고 통증이 가라앉았다. 포션이 잘 흡수되도록 눈을 감은 덕분에 예민해진 귓가로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신음 소리들이 들려왔다.

‘하나, 둘, 셋……………?

본능적으로 세어 가던 숨소리의 숫자가 열다섯에서 멈췄다.

‘일곱이나! 빌어먹을.’

에단은 잔뜩 찡그린 눈을 떠서 주변을 살폈다. 푸르스름한 마법의 빛 아래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상처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쓴 처참한 몰골들이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회색 안개가 덮치고 반나절, 아무리 악명 높은 시온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을 줄은 몰랐다. 끝없이 덮쳐 오는 몬스터를 정신없이 상대하다 죽은 동료가 일곱이다. 시체는 고사하고, 유품을 챙길 짧은 여유조차 없었다.

이 좁은 동굴도 정신없는 전투 중에 에단의 눈이 겨우 찾아낸 휴식처였다. 그나마도 달려드는 몬스터를 떨궈 내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그러게 이 인원으로는 힘들다니까.”

아마 인원이 많았다면 그만큼 희생자도 많았겠지만, 당장은 전투 인원이 적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희생자가 늘어 갈수록 남은 사람들의 위험도 또한 같이 올라간다.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될 악순환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좁은 동굴 입구를 통해 대장이 들어왔다. 마지막까지 주변을 경계하다 들어온 것이다. 그의 얼굴에도 피로와 긴장이 가득했다. 입구에 멈춰 대원들을 확인하던 대장은 그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는 에단을 보고는 그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고생하셨어요.”

에단은 그가 자리에 앉자 풀썩 일어나는 먼지를 흩으며 물통을 건넸다.

“후, 돌아가지 못할 임무를 맡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입가에 묻은 물을 닦아 낸 대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말했다. 평소라면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임무를 수행한 에단에게도 하지 않을 푸념이었다.

‘그만큼 이 양반도 힘들다는 거지.’

에단은 남은 물을 털어 마시고 빈 병을 던져 버렸다. 대장이 전에 없던 말을 할 만큼 힘든 상황이기는 했다. 사방이 몬스터 천지다. 적지 한가운데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시온이 위험한 곳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시온에 들어갔다가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서 시온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가 알려졌고, 동시에 시온 안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는지도 알려졌다.

자신들도 그런 정보를 기준으로 시온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놈의 회색 안개.’

생각해 보면 그 안개가 덮치고서 모든 것이 미쳐 버렸다. 어쩌면 회색 안개에 싸여서는 살아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지금과 같은 경우를 모르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으냐?”

에단이 속으로 씩씩거리고 있는 사이 상처에 대한 처치를 하던 대장이 물었다.

“이번 임무요? 이제까지 한 임무 중에서 최악이죠.”

방금 전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분노하고 있던 덕분에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대장은 별다른 핀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단의 머리를 툭하고 쳤다.

“그래, 나도 역대급으로 힘들다. 그런데 지금은 빌어먹을 회색 안개가 더 궁금하다. 처음보다는 많이 약해진 것 같지 않냐.”

“아, 그 이야기셨어요? 뭐, 확실히 약해지기는 했지요. 그래도 제 눈에는 여전히 레듭니다. 방금 전까지 미쳐 날뛰던 놈들 보셨잖아요.”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욱했던 안개는 몇 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안개와 함께 왔던 그 미묘한 마나의 그림자는 여전히 대기 중에 남아 있었고, 몬스터의 광기도 그대로였다. 그런 사실은 마지막 한 마리를 베어 넘긴 대장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눈으로 보기에 얼마나 더 저럴 것 같으냐?”

“그건…… 음.”

그걸 자신이 어떻게 아느냐,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던 에단은 무겁고 진지한 대장의 눈에 머리를 굴렸다. 자신도 힘들지만, 모두를 책임지고 있는 대장의 마음만 할까 싶었다. 특히, 이 사람이 부하를 챙기는 마음은 남달랐다.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일하는 거지만.’

간파의 눈이라는 재주를 얻고 나서 오라는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에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대장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짧은 시간에 일곱이나 몬스터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대장이 아니라도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속이 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에단은 신중히 처음 회색 안개를 봤을 때와 동굴로 들어오기 직전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비교하고 대답했다.

“대장도 알지만, 제가 그렇게 섬세하진 못해요.”

좋은 쪽으로 말하고 싶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마냥 좋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차라리 진실이 가장 좋다. 대신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됐다. 대충만 말해 봐라. 이거 삼 일, 그 안에 멈출 것 같으냐?”

에단을 잘 아는 대장이 그의 말을 막고 궁금한 부분만을 물었다.

“……아니요.”

“알았다. 엘프의 마을까지 하루 거리라고 했지?”

그나마 회색 안개 속에서 건진 것이 있다면 한순간 보였던 거대한 크기의 정밀한 마나 흐름이었다. 몇 번 본적이 있는 결계 마법에서 보이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그 크기는 정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시온에서 그런 거대한 결계를 설치할 곳이 어디일까.

“대충은요. 그래도 그게 엘프 마을인지 정확하지가 않은데요. 재수 없으면 회색 안개를 만들어 낸 흑마법사 집단 같은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건 이야기책 속이나 찾아봐. 뭣보다 정말 그 새끼들이 만든 거라면 내가 모조리 갈아 버릴 거다.”

하기사,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이다. 그런 놈들이 있다면 살로 포를 떠서 씹어 먹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거리. 하지만 지금같이 몬스터가 바글바글거리는 상황에서는 몇 배의 시간이 든다고 보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겠지.” 

돌아가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왔다. 이곳에 계속 숨어 있을 수도 없다. 이곳도 절대 안전한 곳은 아니다.

“차라리, 다른 놈들하고 합류하는 건 어때요? 아무래도 인원이 늘어나면 좀 편해질 텐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임마! 그놈들이 어디 있는 줄 알고 합쳐?”

전투 중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마법의 흔적이 반나절 거리였다. 대장의 계산대로라면 하루 이상의 거리다. 거길 가느니 차라리 엘프 마을로

짐작되는 곳으로 가는 것이 낫다. 다른 곳보다 먼저 숲으로 들어온 것이 이번엔 독이 되었다.

“더구나 후계자의 흔적까지 겨우 찾았다. 목숨값을 그렇게 쉽게 공유할 수는 없지.”

“전 여기서 나갈 수만 있으면, 줘 버리고 싶은데요.”

“네가 그래서 아직 대장이 못 되는 거야.”

“줘도 안 해요. 그런 거.”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긴장이 풀린 듯 평소와 같은 말대꾸가 오고갔다.

그러나 여유로운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다. 동굴 입구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테일이 창백한 얼굴로 위험을 알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레듭니다. 포위됐어요.”

동굴 밖에는 수백 개의 노란색 눈동자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한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있다가는 몰이사냥 당한다.”

대장이 빠르게 판단했다.

“피를 흘리더라도 나가야 한다. 모두 포션과 스크롤을 아끼지 마라. 최대한 희생이 없어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평소 대형으로 움직인다.” 

일반적으로 대장이 가장 앞에 서고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에단과 테일이 중앙에 선다.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도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에단이 가장 싫어하지만, 에단이 가진 간파의 눈을 통해 빠른 상황 변화에 대응하며 생존율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서로 옆에 있는 놈을 제 살같이 챙겨라. 가자.”

짧은 말과 함께 마실을 나가듯 덤덤한 표정으로 대장이 동굴을 나섰다.

“젠장. 저 양반은 긴장감 있게 이야기 좀 못 하나. 칼 휘두르기 전에 기운 빠져서 힘을 쓰겠냐고.”

그 뒤를 따르던 에단이 괜히 한 소리를 한다. 그 말에 다른 대원들이 피식 웃었다. 대장의 말이나 에단의 말이나 자신들의 긴장을 풀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절반 정도의 인원이 동굴을 나왔을까. 갑작스러운 인간들의 움직임에 엎드려 있던 놈들이 이들을 덮쳐들기 시작했다. 이 이상 나오면 도망칠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덮쳐 오는 놈들은 시온 숲의 맹수와 괴수는 물론이고, 소형과 대형을 가리지 않는 몬스터들의 집단이었다. 쿠크아아아!

“스크롤부터 까!”

그런 괴수들의 모습에 거리를 재던 대장이 소리쳤다.

콰과과광!

빠르게 찢어진 스크롤들의 숫자만큼이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는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금은 보통 상황이 아니다. 이미 나와 있던 대원들과 나오던 대원들이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고 크고 작은 화상을 입고서 칼을 뽑아 들었다.

본격적인 시온 숲 몬스터와 트와이스 간의 2차전이었다.

싸움은 정신없고, 무질서했으며, 치열했다. 그리고 잔인했다. 짧은 시간에 두 명이 죽었다. 맹수의 입에 물려 끌려 가는 시신도 챙길 수 없었다. “끄아아악! 빌어먹을! 죽어!”

그 속에서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을까. 대원들은 겨우 대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에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어! 죽어! 씨발, 죽어어!”

사실 에단은 정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진 간파의 눈 때문이다. 이형의 힘과 위험에 반응하는 덕분에 그의 시야는 지금 온통 동료들과 몬스터들이 쓰는 힘과 위험 신호를 알리는 색색깔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같이 싸우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하늘도 땅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다. 당연히 제정신일 수 없었다.

이야기 속의 맹인검사는 다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에단이었다. 언제 공격을 당할지, 자신의 검에 동료가 베이지는 않을지 두렵다. 그러나 휘두르지 않으면 죽는다. 에단은 죽지 않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힘의 흐름을 따라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검법이고 뭐고 없었다. 옆에서 보면 딱 미친놈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다.

주변의 동료들도 이럴 때 그의 가까이에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위험한 상황이다.

“야, 이 미친놈아. 뒤로 더 빠져!”

그나마 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대장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자주 터져 나와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던 어느 순간이었다. 에단은 총천연색의 세상을 쪼개며 구불구불 자신에게 날아오는 작은 크기의 검은 기운을 보며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검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어?”

다음 순간 그대로 날아온 검은 기운이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란 순간 한쪽의 시야가 검게 변했다.

“이건 또 뭐야!”

에단은 알 수 없는 상황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그의 검이 주춤하자 대장이 크게 소리쳤다.

“이 미친놈. 이제 칼질도 똑바로 못 하냐!”

“합니다. 해요!”

에단은 급히 대답하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대장의 말대로 지금은 검을 휘두를 때였다. 검을 멈추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죽게 된다. 에단은 억지로 신경을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지만 검만 휘두르려고 했다. 그런데 곧 검게 변한 시야가 원래대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회복되면 다행이다. 그렇게 에단이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계약. 계약. 계약.]

황당한 일이었지만 분명했다. 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지만 눈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에단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욕설이 튀어 나왔다.

“이런 씨발, 이건 또 뭐야!”

“이 또라이 새끼. 이제 정말 미쳤냐! 왜 싸우다가 지랄이야!”

그리고 에단만큼이나 그의 상황에 신경을 쓰고 있던 대장이 같이 소리를 질렀다. 말 한 마디가 아까운 전투 중에 뜬금없는 욕설이 난무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