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12화
649화
사람은 눈에 모래 한 알만 들어가도 참지 못한다. 처음에는 찝찝하고, 눈물 나고 따갑다가 그대로 두면 충혈되어 통증이 오고, 결국에는 눈병까지 난다. 눈만 아니라 코에 들어가도 그렇고, 입에 들어가도 그렇다.
그나마 입은 매일매일 음식을 집어넣으니 이물감이 덜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음식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당장 매일 물고 빠는 숟가락도 오랫동안 물고 있으면 헛구역질이 난다.
이것이 일반적인 반응인데, 무인은 그 반응이 더 격렬하고 예민하다.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머릿속에서 그린 그림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의 감각은 하나하나가 정밀한 기계와 같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몸이 재산인 사람들인 것이다.
특히 내공과 관련된 것에는 더욱 예민한데, 기혈이나 이질적인 기운의 침범에 대해서는 조금도 참지 못한다. 이는 그만큼 무인에게 내력의 힘이 특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난 상해는 신체에 난 상처처럼 약을 바르거나, 질병처럼 요양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 있어서는 무림의 무인이나 그레센의 기사나 반응이 다르지 않았고, 무인인 이드 역시 자신의 몸에 대한 반응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 무슨 태평한 반응이란 말인가? 새 옷을 받아 입고 언제 사 온 옷이냐고 묻는 것 같은 모습이라니!
[몸에 이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태연해요?]
“그런 넌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걸 알면서 왜 그렇게 태연한데?”
이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의 라미아에게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거야・・・・・….]
“내 몸에 해가 될 것이 아니니까 그런 거겠지. 네가 내게 해가 될 일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가장 잘 알고 있고.”
[…]
“그러니까 지금 내가 태연한 이유는 바로 너 때문이라는 거지. 내가 널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
[핏. 뭐예요, 그게.]
능글거리며 날개를 툭툭 치는 이드의 대사에 라미아가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영혼을 나누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지만 뜬금없이 표현되는 이드의 고백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울 정도로 기뻤다.
“그보다 진짜 이건 뭐야? 정령의 기운 같기도 하고 자연지기 같기도 한데, 근골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어. 몸이 전혀 거부하지 않아.”
[조금 특별한 힘의 씨앗이지만, 그 근본은 세상을 이루는 기본인 자연지기에 두고 있으니까 몸이 거부하지 않는 건 당연해요.]
“씨앗?”
[그래요. 그거 초인의 씨앗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툭 뱉어 내는 라미아의 말에 몸속 깊이 아스라이 스러져 가는 기운을 쫓던 이드가 화들짝 놀랐다.
“뭐! 이게? 그럼 아까 바이트 타블렛에서 뿜어지던 힘이 초인을 만들어 내는 힘이었던 거야?”
방금 전까지 라미아를 믿는다며 태연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라미아가 툭 하고 웃어 버렸다.
[히히, 우리 둘이 그렇게 요란을 떨었는데 그 정도는 나와 줘야죠.]
“그래도 어떻게 초인이 될 수가…………… 바이트 타블렛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그럼요. 괜히 비올라가 애지중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이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이트 타블렛을 돌아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씨앗이 발아하면 자신도 초인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가장 중요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럼 이 바이트 타블렛을 이용하면 마음대로 초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야?”
[에이, 어림도 없어요. 씨앗이 튀어나온 건 우연과 제 노력이 만들어 낸 행운이에요. 만약 그런 게 가능했으면 생명의 관이 초인들로 가득 찼을걸요?]
“하긴.”
이드는 쉽게 납득했다. 그 말처럼 초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벌써 그들이 세상에 나와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을 것이다. 현세 대륙을 떠받치고 있는 초인이라는 힘을 마음대로 찍어 낼 수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을 테니까.
“그럼 나 이제 초인이 되는 거야?”
큰 걱정거리 하나가 가망성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드가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이드도 초인기라는 것이 은근히 탐이 났다. 특히 이미 이드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뿐인 힘보다는 희귀하고 다양한 능력에 관심이 갔다. 당장 에단의 간파의 눈만 해도 이드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속을 들여다보면 이드가 하는 생각은 좀 더 단순한 것이다.
‘초인기를 얻으면 나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려나?”
초인들이 어쩐지 초능력을 각성한 영화 속 주인공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드의 속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었다. 부끄러우니까.
한데 그런 기대감 어린 이드의 물음에 라미아가 눈을 피하고 있었다.
[글· ·쎄요? 될 수 있을지도?]
“뭐야, 그 애매한 말은. 초인의 씨앗이라며. 그럼 초인이 되는 거 아냐?”
[그렇기는 해요. 바이트 타블렛을 통해서 알아낸 사실도 그렇고요. 하지만 다른 초인과 다르게 이드가 가진 내공이 너무 강대하니까 그 속에서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자연스럽게 태어난 씨앗도 아니고………………]
살짝 실망스러운 답이지만 납득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토양이 나빠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싹이 나지 않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자연지기에 가까워 싹을 틔우지 못하더라도 좋은 보약을 먹은 정도로 끝난단다.
“아쉽네. 이왕이면 재미있는 초인기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복불복처럼 초인기도 발현되기 전까지는 어떤 능력인지 알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애초에 초인으로 각성하는 사람의 기준에 대해서도 불분명한데, 그 사람이 각성할 초인기를 알 수 있을 턱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드. 초인기는 예능 기술이 아니라고요.]
“뭐, 그냥 그렇다고.”
이드는 대충 라미아의 말을 넘겼다.
초인기가 탐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절실함은 없었다. 생기면 좋지만, 없어도 딱히 아쉬울 것이 없는 정도. 자신이 가진 무공과 라미아가 보조해 주는 마법이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보다는 자신이 어떠한 초인기를 가지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전부였다. 신분 상승과 성공을 꿈꾸며 초인으로의 각성을 기도하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생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가진 자의 여유랄까? 뭐, 이드는 가져도 너무 많이 가진 경우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직 생겨나기는커녕 싹이 날지 말지도 정해지지 않은 초인기로 아옹다옹하던 중 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여기서 할 일은 더 이상 없지? 이제 올라가자. 지하실에 내려온 지 너무 오래됐어.”
[그래요. 이드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고 있으면 일리나도 내려올 테니까요.]
물론 피곤해서 깊이 잠든 일리나가 중간에 깨지는 않겠지만 이드는 굳이 이야기해서 라미아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않았다.
지하실을 나선 이드가 저택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원의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택에는 자는 사람도 있으니까 여기서 이야기를 마저 끝내고 들어가자.”
[알았어요. 처음부터 이야기해 주면 되죠?]
“쭉 풀어 봐. 중간에 질문한다든가 해서 이야기를 끊지 않을 테니까.”
[말로 할 필요 있나요. 한 번에 쭉 보여 줄게요.]
라미아의 말과 함께 이드의 머릿속에 오늘 하루 그녀가 겪었던 일들이 주르륵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조사는 실질적으로 수일 전에 끝났지만, 오늘 라미아는 문득 떠오른 한 가지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지하실을 찾았다. 그 가능성은 어째서 침입자가 있는데도 생명의 관에서는 바이트 타블렛을 숨기거나 옮기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에서 생긴 것이었다. 이 점을 파고든 라미아는 옮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옮기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이유로 당시 바이트 타블렛이 해당 지역의 지맥에 흐르는 마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상층까지 차례차례 밀린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 귀중한 바이트 타블렛을 노출시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직접 해 봤구나?”
[…………안 끊는다면서요?]
“물은 거 아냐. 이랬겠구나, 하고 짐작해 본 거지.”
[………]
결과적으로 라미아의 가설은 정확했다. 바이트 타블렛이 온전히 그 힘을 회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침묵하던 바이트 타블렛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쌓여 있던 자료가 있어서 바이트 타블렛을 살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바이트 타블렛의 구조는 물론 심층까지 침입해서 들여다볼 수 있었고, 코어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코어의 발견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라미아는 그 속에 바이트 타블렛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확신하고, 접속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바이트 타블렛이 힘을 회복하면서 그것에 접근한 것이 라미아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 바이트 타블렛을 빼앗겼던 원래 주인이 잃어버린 물건의 작동을 감지하고 공간을 넘어서 접속해 왔다.
“저런, 조심하지. 그런데 접속한 건 누구야? 그때 봤던 부관주? 아니면 탑주?”
[…………바이트 타블렛에 접속했으니까 탑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과연 상대는 바이트 타블렛을 만들어 낸 인물다웠으며, 또한 마법사다웠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방법들은 정말 강력했고, 대단했다.
라미아가 마법에 있어서 상대를 천재 중의 천재라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바이트 타블렛과 물건의 주인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간을 넘어 접속한 건 대단하지만, 거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 것이다. 반대로 라미아는 바이트 타블렛의 주인은 아니지만 강제로 침입에 성공했으며, 동시에 물리적 거리가 제로였다. 접속 방법도 문제다. 한쪽은 간접적으로 접속한 상태고 한쪽은 직접 접속한 상태다. 무선과 유선의 차이랄까?
아무리 상대가 준비를 많이 했다지만 접근하는 방법에서부터 이렇게 크게 차이가 나면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탑주로 예상되는 접속자의 가장 큰 불행은 뭐니 뭐니 해도 그와 대치한 것이 라미아라는 사실이었다. 라미아는 드래곤의 마법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존재로, 그녀의 마법적 지식은 인간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대 접속자는 바이트 타블렛을 회수하고 불법 접속자를 제거하려 했고, 이런 시도는 라미아에 의해서 철저하게 분쇄되어 버렸다.
모든 수단이 막히자 탑주는 바이트 타블렛의 코어만이라도 회수하려고 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핵심부를 빼앗길 생각이 없었던 라미아는 전력으로 이를 막아섰다.
그러나 그녀가 깨부순 다른 수법과 달리 코어를 회수하려는 것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인의 존재를 감지한 코어가 주인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라미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이 대 일의 상황이 되어 버린 것.
“차라리 대지의 마나를 끊어 버리면 되는 거 아냐? 그럼 바이트 타블렛도 힘을 잃을 테니 탑주의 접속도 자동으로 끊어졌을 거고, 훨씬 쉬웠을 텐데.”
[…………당연히 끊었죠. 제가 그것도 안 했을까 봐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라미아가 접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상대 접속자가 접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바이트 타블렛은 작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 상태로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져 버렸다.
“아하, 그래서 내가 올 때까지 바이트 타블렛 위에서 엉덩이만 흔든 거구나.”
[자꾸 방해할래요? 묻지도 않고 조용히 듣겠다면서요?]
“하하하, 미안, 미안. 계속 이야기해. 이제 정말 말 안 할게.”
[이야기할 거 다 했거든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엉덩이만 흔들고 있었다니! 그게 뭐예요!]
“하…… 하하하하”
[네 입에 거미줄! 스트롱 웹! 내일까지 아무 말도 말아욧!]
쌍심지를 켠 라미아의 눈초리에 이드가 어색하게 웃자 라미아가 발끈해서는 이드의 입을 마법의 거미줄로 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차가운 콧방귀를 뀌며 푸드득 저택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드는 순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어 그녀가 저택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네…?
아무래도 그녀의 수고를 알아주고 축하해 주는 게 먼저였는데, 도리어 엉뚱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이드는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흠흠흠………… 흠.”
혼잣말도 입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이드가 입가를 슬슬 만져 보았다.
강화되었다지만 어차피 2클래스 웹 마법.
내공을 운용하면 충분히 뜯어 버릴 수 있는 마법이지만 그것을 뜯어서 라미아를 더 화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드는 한참 동안 정원에 앉아 고민해야 했다.
‘이걸 뜯어,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