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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47화


684화

“좋아! 오른쪽이 비었어. 검을 오른쪽으로 좀 더 강하게 당겨! 그렇게 말고! 어깨에 힘을 실어서 당겨. 그렇지. 잘한다!”

네리베르가 더글라스를 밀어붙이자 쉴라가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며 응원하기 바쁘다.

스폴은 그 모습을 보며 그녀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이드를 강하게 신뢰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드의 수련법을 기사단에 가져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냥 사용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기사들의 실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련법을 바로 사용하겠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이드를 신뢰하고 있는지 느낀 것이다.

‘하지만 섬세함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데.’

스폴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쉴라가 네리베르의 실력을 보고 놀라지만, 그전에 그녀를 포함한 수련생들의 실력 향상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놀란 것은 스폴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수련생들의 실력이 빠르게 늘어 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겠는가?

당연히 그녀도 이드의 수련법대로 해 봤다. 이것은 그녀가 아니라도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 시도해 볼 일이었다. 특히 강함을 목표로 하는 소드 팰러스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틀 동안 술을 입에 대지 못한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발견한 것처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과 같은 것이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분명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사용하고 있는 수련 방법과 비교했을 때 크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수련생들이 보여 주었던 만큼 두 눈 번쩍 뜨일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만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도전한 데일리도 마찬가지였다.

스폴은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고, 이 수련법이 일정 수준 이하의 수련생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이미 선배 기사들 이상의 실력이지만, 그녀들이야 이드 님에게 따로 수련 받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좌우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포함해서라도 함부로 기사들에게 퍼트릴 일은 아니야.’

스폴은 이 대련이 끝난 후 자신의 의견을 쉴라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사단장을 옆에서 보좌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니까.

“뭐, 지금은 귀여운 후배 응원부터 하고, 날려 버려! 네리베르!”

스폴의 응원을 등에 업은 네리베르의 검이 더글라스의 사지를 베고, 복부를 찔렀다.

“으득! 제엔장!”

더글라스는 악을 쓰며 큰 동작으로 네리베르의 공격을 막았다. 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똑같은 방식의 공격에 세 번이나 당한 것이다. 왜 자신은 이 공격을 미리 피하지도, 사전에 차단하지도 못하고 매번 당하고 있는가!

이미 화가 오른 그의 머리는 의문을 토하지만 답을 찾아내진 못했다. 그리고 답을 찾기보다는 끓어 오른 열기로 곧장 반격을 시도했다.

‘선배님의 공격 방식은 너무 단순하지요.’

더글라스의 호흡을 세어 공격을 예측한 네리베르는 꼼꼼히 펼친 그물 같은 방어로 그의 공격을 철저히 무로 돌려 버렸다.

“으아악!”

한 점에 모았던 힘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낀 더글라스는 악을 썼다. 도대체 저 근육도 없는 몸으로 어떻게 자신의 힘을 흩어 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뛰어난 검법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그 또한 믿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수련 기사의 검법이 왜 저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검법만 봐서는 무작정 돌진하는 자신이 후배고, 깔끔한 정석대로의 움직임을 보이는 네리베르가 선배인 것 같지 않은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더 이상 네리베르를 후배 수련 기사라 하여 얕보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후배님, 실력 좋구나! 그런데… 으랏챠! 그러다가 이 선배 배에 구멍 뚫겠다?”

실전 경험이 적다는 생각에 말을 시켜 허점을 만들어 보려 해도 철벽처럼 대답도 없다. 오히려 표독한 눈으로 두 배나 열심히 검을 휘두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여섯 배까지 빨라지는 검속(劍速)을 보고는 조용히 헛소리를 멈췄다.

대련 시작 전에 선전을 기대한다고 후배를 무시했던 그때의 자신이 밉다. 도대체 뭘 보고 후배를 우습게 봤는지! 하지만 한 번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더글라스는 다시 열두 걸음을 물러서며 주룩주룩 진땀을 흘렸다. 벌써 대련장을 두 바퀴째 돌고 있다. 그것도 후배의 검에 밀려서.

지금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더글라스라도 이 정도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패배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농담이 아니라고. 새파란 후배한테 지면 그게 무슨 망신이야!”

그것도 그냥 후배도 아닌, 야리야리하고 이쁘장하게 생긴 후배 여기사.

아마 기사단에서 절대로 자신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기사단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아니, 당장 후배 기사에게 지고 화원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라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고 만다. 난 안 져! 절대 안 진다고!”

스스로 멈출 선을 지키라는 스위트의 당부는 어느새 그의 머리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한껏 신난 여기사들과 달리 남자 기사들은 응원도 환호도 없이 심각하게 조용했다.

“아무래도 저 바보 같은 놈이 질 것 같지?”

“당연하지. 승기가 완전히 꺾였어. 차라리 못난 꼴 더 보이지 말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다.”

“그러게. 도대체 저 꼴이 뭐냐? 구질구질하게. 야, 황색 기사단. 너희들 원래 저러냐?”

어떻게든 패배만은 피해 보려는 더글라스의 발악은 구질구질해 보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적을 상대로 저렇게 들러붙으면 투지라도 높이 사 주겠지만, 지금은 그 상대가 후배 수련 기사가 아닌가. 딱 봐도 결과가 나온 상황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선배 기사 체면에 할 짓은 아니었다.

오로지 같은 기사단이라는 사실로 인해 황색 기사단의 기사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속으로 더글라스를 욕하기 바빴다.

“그나저나 이거…………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적색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주변의 기사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그의 말에 몇몇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글라스 경이 패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아닙니다. 전 이후 두 번 남은 대련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왜 심상치 않다는 거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기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기사들 중 청색 기사단의 기사가 말했다.

“잘못하면 이 대련에서 우리가 일 승도 챙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세 번 다 진다는 말입니까?”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삽시에 굳어졌다.

“그렇게 되면 좀・・・・・・ 상당히 곤란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 대련이 일리나 등의 실력 검증에 그 의의를 두고 있지만 남녀 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대련에서 삼연패를 한다면?

싸악-

여기사들의 싸늘한 비웃음을 상상한 기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며 핏기가 가셨다. 주변 기사들이 모두 이해한 듯하자 처음 말을 꺼낸 적색 기사단의 기사가 다시 말했다.

“일리나라는 여검사의 실력은 쉴라 단장님이 보증하고 있어서 데이노스 경의 패배를 각오한 일이지만, 수련 기사들은 다릅니다. 지금 보다시피 저 수련 기사의 실력은 이미 기사단의 중견 기사급으로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함께 입단한 수련 기사 둘은 경쟁자인지라 서로 비슷한 실력이라고 들은 바 있습니다. 결국 다음 대련에 나서는 수련 기사 역시 최소 저와 비슷한 실력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그 수련 기사를 상대할 알폰스 경의 경우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평가를 망설이는 기사를 대신해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알폰스 본인이 말했다.

“크흠,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럽소만 내 실력도 더글라스 경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오.”

“부끄러울 게 무에 있습니까. 그만하면 충분히 뛰어난 실력이지요. 지금은 그저 특출한 후배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문제지.”

알폰스가 씁쓸한 기색으로 말하자 누군가 무뚝뚝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설마 후배 기사, 그것도 어린 여기사가 저리 강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중 그들은 어느새 남자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데이노스만은 대련장에서 밀리는 더글라스와 한데 모여 쑥덕거리는 기사들을 보며 흉하게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겨우 여기사들을 상대로 당당하지 못하게 이게 무슨…………….”

당장 뭐라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이대로는 남자의 자존심이 위험하다는 뜻을 함께한 기사들이 삼 연패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더글라스 경은 이미 패했고, 쉴라 단장님이 보증하는 자를 상대할 데이노스 경의 승리도 장담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다음 수련생의 실력도 만만치 않으니…….”

“차라리 대련 상대를 바꾸는 건 어떻습니까?”

기사 하나가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지만, 많은 기사들이 질색한 얼굴을 했다.

“그게 더 구질구질합니다. 이제 와서 다른 이가 대련에 나선다니요. 앞으로 화원에서 고개를 못 들고 다녀도 차라리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말겠습니다.”

누군가 화를 내자 말을 꺼냈던 기사가 황급히 손을 저어 보였다.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닙니다. 기사 체면에 나부터 그런 흉한 꼴을 보이긴 싫습니다. 내 말은 대련의 순서를 바꾸자는 겁니다. 즉, 일리나 여검사와 알폰스 경이 대련하게 하고, 데이노스 경을 수련 기사와 붙이자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 데이노스 경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던데, 사실입니까?”

그의 말에 기사들이 확인을 바라듯 황색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저희들 중 가장 강합니다. 기사단 내에서는 상급 기사에 가장 근접한 실력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데이노스 경이라면 아무리 수련 기사의 실력이 좋아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모두 하나같이 엄지를 추켜세우며 데이노스의 실력을 칭찬하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뭘 그렇게 하겠다는 말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막 결론이 정해지려는 찰나, 데이노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왜? 자네는 싫은가?”

“싫네. 내가 왜 대련 상대를 바꿔서 미숙한 수련 기사를 상대해야 하는가?”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당연히 이기기 위해서지.”

“그게 말이 되냔 말이야. 고작 수련 기사를 이기겠다고 대련 순서를 바꾼다는 게 말이 되나? 무엇보다 난 쉴라 단장님이 그렇게 자신하는 저 여검사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야겠어!”

격렬히 거부하던 데이노스는 얼결에 본심을 섞고 말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마침 잘 걸렸다는 듯 동시에 떠들고 나서기 시작했다.

“쯧쯧, 이 사람아. 자네가 일을 벌였으면 책임을 지라고! 사건을 벌여 놓고 자네가 원하는 것만 챙기면 단가?”

“옳소!”

“맞아. 지금 우리 남자 기사들이 전패를 앞에 둔 건 모두 자네 때문이라고. 책임을 느낀다면 우리 말대로 해!”

“이……………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 나도 말 좀 하자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말에 참지 못한 데이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주변의 압력에 물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 역시 다수를 앞세운 폭력 앞에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론이 나온 듯하자 그들 사이에서 가늘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럼 이제 데이노스 경이 케마란과 싸우기로 정해진 거지?”

“……어? 스, 스폴 경?!”

“아니, 언제부터 거기에………………”

남자 기사들 사이에 너무 자연스럽게 끼어 있던 스폴의 등장에 놀란 기사들이 낭패한 얼굴이 되어 물러섰다. 자신들의 꿍꿍이를 그녀가 들었다 생각하니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좌우간 자네들 요청은 받아 주지. 하는 짓이 제법 귀여웠어. 깔깔깔!”

스폴은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스위트 경에게 다가갔다.

기사들이 떠드는 사이 어느새 대련은 끝이 나 있었다. 특히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아 기사들을 더글라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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