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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72화


709화

흥분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악단의 연주자들은 센스 있게 웅장하고 격렬한 곡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굉장히 좋아하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관리가 승진할 기회를 얻었고, 무인이 무력을 뽐낼 전장을 얻은 것이니까. 노력의 대가를 받을 때이며, 욕망을 채울 자리다. 이드는 그것을 무림 대회에 나서는 무림인 정도의 감각으로 이해했다.

파티장을 채운 환호성을 지켜보던 황제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드를 바라보았다.

“토벌 참가는 정해진 것 같고, 후작은 어떤가? 나는 그대가 이번 토벌에 함께해 주길 바라노라.”

이드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토벌 참가가 검증을 받는 조건의 하나였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황제의 질문과 답변은 그저 보여 주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저도 사악한 자를 벌하는 정의로운 일에 함께하겠습니다. 오히려 영광이지요.”

“좋군. 그럼 후작의 활약을 바라며 내가 선물을 내리도록 하지. 시종장은 준비한 검을 가져오라.”

그러나 이드만 요식행위라 생각한 모양이다. 황제의 명령에 시립하고 있던 시종장이 두 손에 검 한 자루를 들고 다가와 황제 앞에 바쳤다.

“이것은 후작의 작위를 받은 그대에 대한 축하이며, 이번 토벌에서 활약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하는 나의 선물이다. 받으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검으로 황제 폐하의 기대에 응하겠습니다.”

이드는 허리를 숙이며 검을 받아 들었다. 첫 느낌은 차갑고 묵직했다. 형태는 일반 롱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유독 무게감이 있었다. 쉴라가 가져왔던 카일란의 롱소드보다 무거웠다. 검은색 검집과 폼멜에 자리한 황금추가 적당히 중후한 멋이 있었다.

“좋은 검이군요.”

뽑아 보지 않아도 잘 잡힌 균형과 손끝을 간질이는 예기가 말해 준다. 그러나 황제는 그 말을 예의상 하는 말로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당연하네. 후작이 사용할 검이기에 신경을 썼다네. 한번 뽑아 보게나.”

순간 황제를 수행하던 기사들의 눈이 번뜩였다. 이드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황제 폐하 앞에서 검을 뽑아 보겠습니까. 그 말을 거두어 주소서.”

“아니네. 기사에게 검만큼 중요한 것이 있으려고. 지금 확인해야 바꿔 주든지 할 게 아닌가.”

뭔가 고객의 변심과 과실로 인한 교환, 반품은 해 주지 않겠다고 경고하는 장사꾼 같은 말이다.

황제가 저리 재촉하는데 계속 거절할 수도 없다. 황제를 수행하는 기사들이 말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황제가 하겠다면 그들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걱정할 것 없다. 그는 제국과 황실 영웅의 후손이 아니냐.”

그 말에 기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닫았다. 대신 황제와의 거리를 줄이고, 매와 같은 눈으로 이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당장 베어 버리겠다는 듯 칼자루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사검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이드를 막을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자신에게 엉뚱한 의사가 없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검을 삼 분의 일 정도만 뽑았다. 스르릉.

금속음과 함께 은은한 묵빛이 섞인 검신이 드러났다. 검의 두께가 일반 롱소드보다 1.5배 정도 두꺼웠다.

“여러 금속을 합금한 드워프제 검이네.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단단하고 강해서 검 본연의 기능이 강하지. 강한 기사에게 어울리는 검이라고 평가되었다더군.”

“과연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아티팩트는 아니라도 황제 폐하께서 직접 내려 주신 검이니 아티팩트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느 정도 긴장을 푼 사람들은 이드의 손에 들린 검을 보고 있었다.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황제가 내린 검이라는 의미는 제국 안에서만큼은 어지간한 아티팩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쉴라 경이 주었던 롱소드도 그런 의미였는데, 이렇게 되면 별로 소용이 없겠는데?’

아무렴 흑색 기사단의 단장보다는 황제의 힘이 더 세다. 어쩌면 황제도 쉴라와 비슷한 의미로 검을 줬을지도 모른다.

“혹시 황제 폐하께서도 이 검을 사용하고, 일라이져를 아끼라 하시렵니까?”

“호오? 누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일라이져도 실로 의미 있는 검이니까.”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은 황제가 말했다.

“쉴라 경이 그런 말을 하며 카일란 경의 롱소드를 주었습니다.”

“은색 기사단장이 제법 신경을 썼군. 같이 싸운 전우를 챙기는 것이로군. 보기에 좋아. 그런데 벌써 검이 세 자루군. 어느 검을 쓸지 고민이겠어.”

“그럴 것도 없습니다. 고작 세 자루가 아닙니까. 황제 폐하가 가진 수많은 보검에 비할 수 없지요.”

“하지만 어떤 보검이 마인드 마스터의 애검에 비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라일론 제국을 건널 때 가지고 있었다는 붉은 검. 기록에 따르면

라미아라고 했던가?”

뭉근한 황제의 말에 이드는 미소를 지었다. 저 일은 일리나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과연 제국의 황제, 타국에서 있던 일까지 어떻게 확인을 한 모양이다.

“저와 함께하는 라미아라면 이쪽뿐입니다.”

그 말과 함께 이드가 어깨에 납작 엎드려 있는 라미아를 가리켜 보였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라미아라고 합니다. 이드의 부인이에요.] 

고개를 든 라미아가 귀엽게 윙크를 날렸다.

“호오, 말로만 듣던 에고로군. 레오날도 후작과 말을 트기로 했다지?”

레오날도 후작에게 라미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다.

[말을 트기보다는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기로 한 거예요.]

“하하하하하, 후작과 친구인 에고라. 재미있구나.”

정말 재미있었는지 크게 웃음을 보인 황제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검에 대해 물었는데,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라미아를 언급하자 말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드에게 강제로 답을 얻어 낼 수도 없는 일이니까.

“정의를 수호하려는 경들과 명예 후작의 의지는 잘 보았다. 이제 토벌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리라. 그리니 오늘은 마음껏 파티를 즐겨라. 이는 축하와 함께 그대들의 용기를 칭송하는 파티이다.”

황제의 말에 또 박수가 터졌다.

[신하 짓 하려면 손바닥이 참 두꺼워야 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의미로.]

속삭이는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릴 때 황제가 황후의 손을 잡고 파티장으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파티에 춤과 음악, 술이 빠질 수 없듯이 황궁 파티의 시작은 황제의 춤이 가장 먼저였다.

황제의 춤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다시 이드에게 다가왔다. 딱 황제가 입장하기 전의 상황이었다.

황녀가 춤을 신청해 주길 바라는 듯 보였지만, 엄처의 감시망 아래 있는 이드로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귀족들의 이름을 듣는 중에 이드의 귀에 걸리는 단어가 들어왔다.

“명예 후작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일리나스 왕국의 벤텀 백작이라고 합니다.”

“일리나스 왕국?”

이드의 눈이 벤텀 백작을 향했다. 누구의 인사에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던 이드의 반응에 벤텀 백작이 당황하면서 반겼다. “그렇습니다. 마인드 마스터의 동료였던 그레이 시온 자작의 나라입니다.”

“시온 자작의 나라. 들어 알고는 있습니다. 시온 자작이 거짓 무공을 알렸다는 소문에 시달리느라 고초가 컸다고 하더군요.”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가 평온한 어투로 신랄하게 내용을 까발리자 벤텀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것은 여러 가지 오해가 있다 보니…….”

“뭐,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어제 돌아온 이그렌 경에게 말입니다.”

이드는 말을 하고는 파티장 건너편에 조용히 서 있는 이그렌을 불렀다. 어지간히 큰 소리가 아니라면 닿지 못할 만큼 시끄러운 파티장이었지만, 내력에 실린 파동은 솔바람처럼 부드럽게 이그렌에게 닿았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내력의 유동을 알아본 몇몇 귀족이 감탄을 토했다.

이그렌은 이드 주변에 가득한 귀족들의 모습에 애써 긴장을 감추며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이드님.”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검입니다. 조심히 다뤄 주세요. 그리고 여기 이분이 일리나스에서 오셨다고 해서 이그렌 경을 소개해 주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벤텀 백작님, 이쪽은 시온 자작가의 이그렌 경입니다. 현재 초대 시온 자작의 무공을 제게 다시 배우고 있지요.”

이드가 이그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벤텀 백작은 그 모습에서 미묘한 반감을 느꼈다.

이드는 그런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일리나스 왕국에서 시온 자작의 무공을 가짜라고 폄하한 일은…… 실로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그렌 경을 통해 알리고 싶더군요.”

그리고 미소와 함께 말을 더했다.

“그리하면 그간 시온 자작가의 불명예도 사라지고, 이그렌 경의 ‘가문’의 무공도 회복하겠지요.”

유독 가문을 강조한 이드의 말에 벤텀 백작은 간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속에 담긴 뜻이 느껴져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파티장의 창가에서 두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토벌이 아니라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파티로군.”

남자, 아이언 마스터 발터가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러자 그와 나란히 서 있던 그의 부하가 발터를 따라 술잔을 비우고 한숨처럼 가슴에 품은 말을 꺼냈다. 

“솔직히 전 차라리 이번 토벌이 반갑습니다. 마음도 편하고요.”

발터는 그의 말에 시종을 불러 새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네 일이 끝나서?”

“나약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초인들을 그 미친놈들에게 끌고 가는 일이 정말 싫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초인들의 폭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니까.”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같은 초인을 그런 개자식들에게 넘겼다는 것이…………….”

“그만. 그들은 초인이 아니다. 쓰레기지. 우리가 초인의 동료 의식을 강조하지만, 초인이라고 모두 같은 건 아니야. 기사, 마법사, 초인 이전에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야.”

발터의 말에 칸을 입술을 질끈 물었다. 발터가 하는 말은 머리로서는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그가 생명의 관에 이송한 초인들은 모두가 크고 작은 죄를 지은 자들과 어떤 의미로든 초인에게 해가 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자라도 초인이었다. 깨끗하게 죽지도 못하고 미친 마법사들에게 온갖 짓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다.

무엇보다 그를 이 갈리게 만들었던 것은 초인들을 전달하던 마법사의 눈빛이었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보는 것 같은 번들거리던 눈빛. 어쩌면 칸은 그 눈빛 때문에 자신이 이송한 초인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동지의식을 강조하는 초인들 사이의 문화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희도 토벌에 나섭니까?”

칸의 질문에 발터가 새 잔의 술을 홀짝이며 진하게 미소 지었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그놈들이 감히 초인을 연구 재료로 삼았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어야겠지. 원한다면 가장 앞에 서게 해 주겠다.”

과연 마법사들에게 초인을 넘긴 당사자가 할 말인가 싶지만, 칸은 술잔을 들어 단번에 비워 낸 후 답했다.

“기쁘게 앞장서겠습니다.

꾸욱!

굳게 쥔 그의 주먹이 희게 물들었다.

발터는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이번 기회에 해소되기를 바라며 이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사람이 너무 많군.”

그 유명한 이드를 직접 보기 위해 나왔지만, 이래서야 힘들 것 같았다.

“제가 나서 볼까요?”

발터의 기분을 살핀 칸이 말했다. 발터를 보좌하는 것. 그것이 그의 일이니까.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흔들던 발터의 눈이 한 곳에서 딱 정지되었다.

“저놈이…….”

이마에 주름을 만든 발터의 모습에 칸이 그의 시선을 쫓으려는 찰나,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름도 유명하신 이드 후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도 이런 영광이 없습니다. 라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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