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95화
732화
검은 구름은 당연하게도 진짜 수증기로 이루어진 구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으로 이루어진 저주의 덩어리였다. 화원을 가두는 결계로 사용하던 그것을 아웃사이트가 탈출을 위해 무너트린 것이다. 당연히 원래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부분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정신없이 도망가는 적을 추적하던 기사들도 그것을 느끼고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갈등했다. 적을 추격해서 잡을 것인가. 검은 구름을 먼저 해결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드는 그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아니, 거기서 왜 망설이는 건데?”
검은 구름에 먼저 대응한다면, 추격은 포기해도 차후에 원수를 갚을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추격을 계속할 경우 검은 구름의 저주와 독에 당해 추격은커녕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 친구에게 놀림당한 동네 꼬맹이도 아니고, 이렇게 선후가 분명한 문제에 갈등이라니!
그리고 그런 이드의 마음을 대신해 겨우 몸을 일으킨 스위트가 바로 이럴 때를 대비해 지휘관이 있다는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의 임무는 화원의 수호다. 적 마법의 파괴를 우선하라!”
“옛!”
상명하복이 철저한 기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적에 대한 미련으로 질끈 입술을 무는 기사도 있었지만, 명령 수행에 망설이는 기사는 없었다. 슈슈슛-
기사들이 검은 구름을 향해 일제히 검기를 뿜어냈다. 벼락이 거꾸로 치솟는 모습과 함께 검은 구름이 쩌억 갈라졌다. 단순히 구름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검은 구름 마법을 구성하고 있는 마나의 연결을 잘라낸 것이다.
마나의 연결을 잘라 마법을 파괴하는, 검사가 마법에 대응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법사를 죽이는 것이다!
초인과 마법사는 엄연히 다르지만, 그 대처 방법은 의외로 비슷한 면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초인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인지도..
하지만 이 방법에도 몇 가지 예외는 있었다. 파괴하기 전에 중간계에 형성되어 버린 마법과 그 마법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검은 구름처럼 제물을 기반으로 했을 경우, 마나가 사라져도 제물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 남는 제물이 평범한 마을 처녀라면 모르지만, 지금처럼 대량의 독이라면? 마법이 취소되나 마나 큰 차이가 없다. 과연 누더기처럼 변한 검은 구름이 끝내 사라지지 않자 당황한 누군가가 소리쳤다.
“검은 구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아티팩트를 가진 기사는 동료를 지켜!”
“세 명 이상으로 모여 소드 배리어를 만들어!”
당황한 기사의 모습에 데일리와 경험 많은 기사들이 즉시 대처에 나섰다. 이런 경우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피해만 늘어난다.
기사들이 그들의 외침에 즉시 움직이려 할 때였다.
사아아아
갑자기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코끝을 스치더니 곧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강한 바람이 되었다.
바람의 근원지. 그곳에는 불꽃처럼 화려하고 밝게 빛나는 검강을 든 일리나가 있었다. 바람은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정령에게서 불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전장을 압도하던 그녀의 실력을 목격한 기사들은 기대감을 품었다. 그리고 일리나에게는 그들의 기대에 응해 줄 충분한 힘이 있었다.
타탓!
단숨에 검은 구름 아래로 뛰어오른 일리나가 빙글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자 그녀의 검에서 수많은 꽃잎이 뿜어져 나왔다.
삼 열의 초인들을 단숨에 쓸어 버린 백화난무가 다시 펼쳐진 것이다. 일리나는 백화난무의 강기로 화원의 하늘을 메워 검은 구름을 막고 바람으로 강기의 그물을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회전시켰다.
그 모습이 마치 화원에 씌워진 붉은 우산 같았다.
구우우웅~
구멍 난 그물 같던 검은 구름이 회오리치는 강기에 갈려 모래처럼 부서지며 타들어 갔다. 그러나 일리나가 처리하기에 너무 많았다. 결국 일리나에게 막혀 화원에 떨어지지 못한 검은 구름이 소드 팰러스로 퍼져 나갔다.
그 모습에 일리나가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스위트가 급히 소리쳤다.
“마법의 여파는 상관치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범위가 넓어지면 피해도 줄어들 테고, 이제 소란에서 깨어난 마법사와 신관도 있으니 피해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그렇지 않아도 검은 결계가 사라지며 뿜어지는 검기와 살기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깬 사람들은 일리나가 백화난무를 펼쳐 낸 시점에서 기겁하고 달려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처음 맞이한 것은 안개처럼 변해 사방으로 퍼지는 검은 구름이었다.
“이게 무슨…… 크윽! 누, 눈! 눈이 따가워!”
“뭐야! 갑자기 앞이 안 보여!”
“쿨럭! 이건 독이야!”
“습격이다! 사제와 마법사를 불러!”
검은 구름에 당한 사람들이 눈과 목을 쥐고 쓰러졌다. 비명이 터지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고요하던 소드 팰러스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버렸다.
휙! 휙!
그 소란을 틈타 화원에서 도망쳐 나온 초인들이 숨어들었다. 검은 구름에 당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쏟아지던 검은 구름이 사라지고 화원의 입구가 드러나자 일리나가 검을 내렸다.
“이 자식들, 무슨 일이 있어도 잡는다!”
“삼인 일 조로 행동해!”
문 앞에서 총소리를 기다리는 육상 선수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던 기사들이 튀어나가자, 데일리가 급히 그 뒤를 따르며 명령했다. 지금 뒤쫓아 보아야 잡기가 쉽지 않을 테지만, 근성이랄까? 부상자를 제외하면 추적을 포기하고 화원에 남은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일리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스위트에게 다가갔다.
“스위트 경.”
스위트는 일리나가 다가오자 힘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오늘의 활약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일리나 님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화원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그보다 기사들이 추격하는 건 그냥 두어도 되나요?”
“네. 오히려 빠를수록 좋습니다. 될 수 있으면 계획을 세워 철저하게 수색하고 싶지만…… 제 몸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요.”
스위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일리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오색 기사단의 이름을 걸고 모여 화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사상자를 냈음은 물론, 적 대장과의 정면 대결에서마저 지고 말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이 이상 일리나에게 신세를 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곧 마음을 정돈하고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들고 계신 건 혹시………….”
“맞아요. 검은 구름을 가둔 것이에요. 모두 처리하지 못하고 일부만 가두었지만요.”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노드의 바람에 갇혀 있는 검은 구름이 까만 풍선처럼 둥실 떠올라 있었다. 노드의 바람에 봉인된 그것에서는 연신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실 일리나가 일부라고 폄하했지만, 노드에 의해 압축된 검은 구름은 전체의 사 분의 일이다. 그녀가 막지 않았다면 소드 팰러스에 그만큼의 피해가 더해졌을 것이니, 실로 적지 않은 양이다.
“혹시 적에 대한 단서로 검은 구름이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그제야 일리나의 뜻을 알아챈 스위트는 그녀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급한 상황에 그런 것까지 생각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화원 밖에 있는 마법사들 중에 검은 구름을 확보한 자가 있긴 할 테지만, 만약을 위해서 확보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장 보관할 방법이…….”
스위트가 난감한 듯 말했다. 연기 같은 검은 구름을 가두어 두려면 특수한 용기나 이능의 힘이 필요했다. 이대로라면 지원이 올 때까지 일리나가 흉악한 내용물이 든 풍선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에 이드가 나섰다. 그는 일리나가 그런 고생을 하도록 그냥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드는 아공간에서 뒹구는 물주머니를 케마란에게 주어 두 사람에게 가져다주게 했다.
“아, 과연! 물주머니라면 공기도 가두어 둘 수 있어요.”
뽁!
입구를 열고 주머니의 주둥이를 검은 연기가 들어 있는 막 안에 찔러 넣자, 기압차에 따라 물주머니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일리나는 빵빵하게 부푼 물주머니의 뚜껑을 단단히 막아 스위트에게 건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물론입니다. 그런데 남은 검은 구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피해가 없도록 처리를 해야죠?”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일리나가 답한 순간, 검은 구름을 받치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백색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화르륵!
그것은 마법이나 정령의 불길이 아닌, 내공을 태워 만들어 낸 세상에서 가장 순정한 삼매진화의 불길이었다. 검은 구름은 그 속에서 한순간 파랗게 빛나더니 한 점의 재도 남기지 않고 소각 처리되었다.
“휴우~”
스위트는 그 모습에 의미 모를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전력을 다해 내공을 태워도 저 반의반만 한 불길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대련이 있던 날 사색 기사단의 기사들을 압도하는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오늘은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구나.’
오늘 그녀가 본 일리나는 대련 때보다 몇 배 이상 강력해 보였다. 아마도 그때는 대련이라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고, 오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일로 일리나를 대하는 기사들의 시선과 태도가 크게 바뀌었는데, 오늘이 지나면 과연 또 어떻게 바뀌게 될까. 누가 뭐래도 그녀는 많은 기사들의 목숨을 살렸지 않은가. 그녀가 살린 기사들과 그들의 동료들의 은인이니까.
“그럼 전 이제 안으로 들어가 있도록 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일리나의 말에 스위트는 별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화원의 수호는 어디까지나 오색 기사단과 그녀의 임무. 일리나의 역할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못한 소리가 나올 수가 있었다.
스위트는 케마란과 함께 화원으로 사라지는 일리나의 모습을 보다 문득 이드에게 생각이 미쳤다. 일리나와 부부로 묶여 있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오늘 일리나의 활약으로 스위트의 머릿속에 있는 이드의 존재감이 몇 배나 커져 있었다.
아내의 실력이 저와 같다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인 본인의 실력은 또 어떠할까. 아무리 못해도 일리나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은 그녀만이 아닌 오늘의 전투를 넘긴 모든 기사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소드 팰러스를 떠난 이드가 일리나를 통해 오색 기사단에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남녀 공히 배우자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으음・・・・・・ 네리베르가・・・・・・ 둘?”
케마란과 함께 다가오는 일리나를 향해 이드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일 때였다.
환자들을 눕혀 둔 곳에서 신음 소리와 함께 뿌옇게 눈을 뜨는 기사가 있었다.
“더글라스 경?”
“허, 체력이 좋은 사람이네.”
이드는 지력을 뿌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더글라스 기사의 수혈을 다시 점했다.
“아는 기사야? 부상이 좀 심해서 약하게 점혈하긴 했지만, 그걸 저항하고 깨어나다니. 내공이 제법 순정한 모양인데.”
“저와 대련했던 선배님이세요.”
“아!”
대련에 대해서 일리나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이드는 바로 이해했다.
“절 보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이드는 자신의 방문을 알리지 않기 위해 네리베르의 모습을 하고 부상자를 살피고 옮기며, 성안에 발을 들이기 전에 그들을 기절시켰다. 성안에 진짜 네리베르가 기다리고 있으니, 두 명의 네리베르를 본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챌 테니까.
이드는 염려스러운 표정을 한 네리베르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살살 손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비몽사몽이라 제대로 눈에 뵈는 것도 없었을 텐데. 잘못 본 거라 생각하겠지. 당장 저 사람 말고는 깨어난 사람도 없고.”
조금 무책임한 소리긴 했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다. 잠에서 깨어나 초점이 맞지 않아 물체를 겹쳐 보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그보다 라미아, 이제 이 일루젼 취소해 줘. 이 모습으로 일리나를 볼 순 없잖아.”
씨익!
[그거 좋은데요?]
“야!”
사악한 미소를 지은 라미아에 이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드는 일리나가 다가와 그의 모습을 볼 때까지 일루젼을 취소시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