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97화
734화
소드 팰러스 전체로 퍼진 소란은 그날 정오까지 계속되었고, 하루 종일 어수선한 분위기에 누구도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
이것도 화원 주변으로 퍼지던 독 구름을 마법사들과 신관들이 서둘러 해독한 덕분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큰 소란으로 번졌을 것이다.
이후 도망간 적을 추적, 색출하는 작업이 이틀간 더 이어졌지만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소드 팰러스의 두뇌는 아니지만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화원을, 검후의 거처를 공격당하고도 도망가는 적을 온전히 잡아내지 못하다니! 실로 소드 팰러스, 기사의 성지라는 명성에 먹칠을 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습격 사실은 날이 밝자마자 바람보다 빠르게 퍼졌다.
방문자를 가리지 않는 소드 팰러스의 특성상 습격과 같은 큰 사건의 소문을 통제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성문을 닫고 출입하는 자를 막는다면 소문이 퍼지는 것을 수일 막아 볼 수는 있겠지만, 삼검왕은 물론 클라인도 그와 같은 사실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기사의 성지가 습격당했다고 겁쟁이처럼 문을 걸어 잠근다?
그것은 습격보다 더 소드 팰러스의 자존심을 뭉개는 행동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판단은 옳았다.
세상에 소드 팰러스에 대한 공격이라니!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리는 사람 없이 성문을 활짝 열어 뒀는데, 지금까지 무탈했던 것이 오히려 대단한 거야.”
“아무렴.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천지 분간 못 하고 겁 없이 소드 팰러스에 검을 들었으니, 결국 삼검왕의 검에 심판받을 것이 분명해!”
평소와 같이 활짝 열린 문과 근엄하고 분노한 얼굴로 말을 달리는 오색 기사단의 모습에 사람들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대신 오색 기사단과 소드 팰러스에 머물고 있는 기사 및 수련생들은 번뜩이는 눈으로 사방을 뒤졌다.
소드 팰러스 주변 영지에서는 병사들이 하던 검문에 기사들이 나섰다. 그들은 자신의 영지가 당한 일이 아님에도 분노한 매와 같은 눈으로 수상한 자를 가려내기 위해 애썼다.
그런 행동은 소문과 함께 주변 영지로 점점 넓혀져 갔으며, 습격 전후로 수상하다 생각되는 정보는 즉시 소드 팰러스로 전달되었다.
그와 같은 일은 소드 팰러스가 요청하기도 전에 착착 이루어졌다.
마치 자신이 지키는 영지를 공격받은 듯이 행동하는 기사들의 모습은 그들이 소드 팰러스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일부 소드 팰러스를 좋게 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에는 실로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소드 팰러스가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전국의 기사들이 제 일처럼 두 팔 걷고 나서다니………………
한편 빠르게 안정을 찾은 소드 팰러스와 달리, 제국은 같은 날 황궁과 소드 팰러스로부터 전해 온 소식에 뒤집어지고 있었다.
특히나 악당, 그것도 동화 속 마왕을 소환하는 사악한 흑마법사 같은 자들에 대한 토벌과 소드 팰러스의 습격에 묘하게 맞물려 제국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사악한 행적이 발각된 흑마법사가 공격당하기 전에 영웅들이 머무는 소드 팰러스를 먼저 공격한 것이 분명하다!”
상상력 좋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끼워 맞출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 제국의 자부심이랄 수 있는 소드 팰러스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던 제국민들은 그 말에 토벌을 지지했다.
그리고 토벌과 소드 팰러스의 습격에 대한 소식을 접한 기사들은 자신들의 우상이자 마음의 고향인 소드 팰러스와 정의를 위해 묵혀 두었던 갑옷을 꺼내 기름칠을 하고 무뎌진 검을 갈았다.
크게 활약하여 명성을 높이는 것은 덤이다.
“호오~ 토벌령이란 말이지. 그것도 우리 미완의 마탑을 향해서?”
수십 명의 사람이 모였지만 숨소리도 크지 않은 가운데 늙은 목소리 하나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스승님의 연구에 대한 결실이 머지않은 때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하여, 제자 면목이 없습니다.”
늙은 탑주 앞에 모여 있는 마법사들 중 탑주 못지않게 나이 든 마법사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친구로 볼 듯한 외모의 두 사람이다.
“아니. 난 그저 저 어리석은 자들이 한심할 뿐이다. 결과를 얻기 위해 투자를 했다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원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지. 중간에 판을 엎을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그 멍청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구나.”
훌훌거리며 실없는 웃음을 보이는 탑주였으나, 감히 따라 웃는 자는 없었다.
대신 입술이 붉은 여마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멍청이들의 결정이긴 하지만 제국의 토벌령입니다. 스승님. 잠시 자리를 피함이 어떨지요? 굳이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마법사는 제국의 토벌령에도 두려움이나 패배에 대한 의심은 일절 없는 듯 피해에 대해서만 말했다. 과연 땅을 빼앗기는 것도 아니라면 굳이 부딪히는 것보다 잠시 피해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법사들 중에는 그녀와 다르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는 듯 싫은 표정을 했지만, 감히 탑주를 향한 질문에 끼어드는 자는 없었다.
“그래. 옳은 답이다. 하지만 얻을 것이 있다면 어떠냐?”
“그때는 당연히 싸워 얻어내야죠.”
여마법사가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를 시켜라.”
“네. 스승님.”
탑주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훌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랜달?”
“자숙하며 연구 중입니다.”
“같이 준비시키거라.”
“생명의 관뿐 아니라 바이트 타블렛도 분실한 자입니다. 벌써 용서해 주시는 것은 빠르지 않을까요?”
랜달에 대한 처벌이 풀린다는 것이 못마땅한 몇 명이 슬그머니 반대하고 나섰지만, 탑주는 가볍게 웃음으로 넘겼다.
“훌훌 마법사는 항상 논리적일 줄 알아야지. 랜달의 능력 안에서 불가능한 일에 대한 책임까지 더할 생각은 없다.”
이미 생명의 관을 공격한 것이 저 유명한 은색 기사단과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랜달에 대한 처벌도 자숙이라는 말의 연금으로 비교적 가볍게 처리되었다. 사실 연구로 몇 달 동안 외부 출입을 하지 않는 마법사에게 있어 감금이나 연금은 딱히 처벌이라고 하기 힘들기도 했다.
거기에 탑주는 최근 바이트 타블렛을 찾으려 하다가 상대 마법사에 의해 실패한 적이 있다.
강력한 기사와 마법사까지 있으니 랜달의 실패를 그의 무능이나 실수로 보기도 힘들다 판단하고 연금을 풀어 준 것이다.
거기다 곧 있을 토벌에서 쓸 만한 힘을 놀려 두는 것도 옳지 않다는 계산이기도 했다.
“자, 준비하자꾸나. 우리의 연구가 어떠한 것인지 세상에 알릴 시간이다.”
“예, 탑주!”
와글와글.
황도 성벽에 걸린 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토벌에 대한 설명과 토벌에 나설 병사를 모집하는 글이었다.
사람들 속에 섞여 글을 읽어 내리던 한 남자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거다. 저기에 참여하면・・・・・・ 그러면 이드 님을 볼 수 있을지 몰라. 이드 님이 아니라면 사무엘 백작님이라도 뵙고 오해를 풀어야 해!”
그는 이드를 쫓아 황궁으로 달려온 빅터였다. 수련생으로 배우고 익힌 것이 있으니 병사들 사이에서 공을 세우고 주목받는 것은 쉽다고 생각한 빅터였다.
토벌이 발표된 후 수일.
세상은 떠들썩했지만 실제 귀족들은 바쁠 것이 없었다. 토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황궁과 기사들이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일단의 귀족들은 토벌보다는 다른 문제로 한데 모여 있었다.
그중 긴 파이프를 입에 문 사내가 깊이 연기를 빨았다가 뱉으며 말했다.
“후~ 이거 곤란하게 생겼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황제의 힘이 명예 후작의 등장으로 더 강해지게 생겼어요.”
“동감합니다. 이대로라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우리 귀족파가 더 쪼그라들게 생겼어요.”
짧은 수염을 까끌까끌 쓰다듬던 사내가 옳다구나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의 말처럼 제국에 귀족파라 할 수 있는 자들의 힘은 실로 약했다.
오래전 이드의 활약에 흔들리던 황권을 정리한 바 있는 아나크렌 제국은 그 후 검후의 탄생과 소드 팰러스의 존재로 인해 타국과는 비교되지 않는 강력한 황권을 세우고 있었다.
그 속에서 속칭 귀족들의 권익을 위해 모인 귀족파의 힘은 강할 수가 없었다.
황권이 강하다고 해서 황제가 폭정을 일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귀족파도 굳이 황제와 각을 세우기보다는, 너무 강력하게 변해 가는 황권에 혹시나 하고 모여든 귀족들의 보험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황제 역시 건강한 정치를 위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귀족파를 인정하고 나름 후원하고 있었다.
당연 이는 강력한 황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중에 등장한 이드는 황제의 이름으로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맞는다는 확인을 마치고, 명예 후작이라는 작위와 영지를 받음으로써 황제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황권에 힘이 더해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면 그중 꼭 엉뚱한 소리를 하는 자가 있기 마련.
사람들 속에서 술을 홀짝거리던 자가 술기운이 올라 알쏭달쏭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검증이 있던 날 우리도 난화십이식의 일부를 얻지 않았습니까. 백작께서도 분명 그걸 연구하면 큰 힘이 될 거라고 하시는 걸 제가 들었는데요. 그럼 힘이 같이 강해진 거지요.”
자리한 귀족들이 그의 한심한 발언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자 평소 그와 친분이 깊은 귀족이 나서서 면박을 주었다.
“어이구, 이런 답답한 사람을 보았나. 자넨 어떻게 검후의 무공만을 이야기하는가? 당장 기록된 마인드 마스터만 해도 난화십이식보다 대단한 무공에 대한 기록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당연히 그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인 명예 후작을 잡았으니 황제 폐하께서 그 무시무시한 무공들을 얻지 않겠는가 이 말이네.”
굳이 생각하고 궁리할 것도 없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그 간단한 논리를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할 만도 하련만 술이 죄인지 남자는 다시 당연한 소리를 더했다.
“흐음, 그렇군. 그럼 우리도 명예 후작에게 부탁해서 좋은 무공을 얻으면 되지. 간단한 일이 아닌가. 하하하.”
“어이구…… 마셔, 마셔. 자넨 이거 더 마시고 그냥 주무시게. 이런 자리에 와서 술은 왜 홀짝홀짝 마셔서 취해서는…………….”
술꾼의 입을 술병으로 틀어막은 트림 자작은 주위 귀족들의 눈치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트라보 후작은 담배를 내려놓으며 가슴이 품었던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술에 취한 소리긴 하지만 샹 자작의 말에 틀린 것도 없소. 분명 우리도 명예 후작과의 관계를 가까이할 필요가 있소. 이건 황제파와 귀족파의 문제가 아니라 황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자고로 황권이 독주하여 좋은 결과가 있던 적이 드물다는 것은 역사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명예 후작과 가까워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얼굴을 봐야 가까워지든 말든 할 것이 아닙니까.”
한 귀족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드는 저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만나고 싶어도 만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찾아가도 만나기 힘든 것이 그였다. 명예 후작이라지만 후작이 만나지 않겠다는데, 그 이하의 귀족들은 불만을 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은 후작 체면에 직접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찾아갔다가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만나 주지 않으면 그 망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는 것이 어떻겠소?”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노백작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나이만큼 경험도 많은 그의 말에 사람들이 주목했다.
“명예 후작이 어지간해서 저택에서 나오지 않으니 그가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오.”
그의 말에 귀족들은 각자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이 무엇일지를 떠올렸다. 하위 귀족일수록 그런 자리는 수없이 많았고, 고위 귀족일수록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노백작은 사람들의 눈에 궁금증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내 알기로 하리온 백작과 리뷰드 자작 사이에 혼담이 오간다고 알고 있소만. 그 혼담, 이번에 하는 것이 어떻겠소? 결혼식에 초대한다면 명예 후작도 거절하지만은 못할 것이오.”
“그….그건………..”
갑작스럽게 지목받은 하리온 백작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반대로 다른 귀족들은 묘하게 눈을 번뜩였다.
“결혼식이라…….”
문득 황녀가 채우고 있던 이드의 옆자리가 떠올랐다.
‘거기에 내 딸을내 조카를 세울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