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0화
467화
에단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랬군요. 참으로 공교롭습니다. 저희들이 몬스터를 피해서 잠시 쉬기 위해 찾은 곳에 이 아이가 있어서 보호했는데, 아이를 찾던 여러분 덕분에 이번엔 저희들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테이를 보호했다니 감사드리오. 따로 사례를 해야 하나, 서로 목숨을 구했다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대신 이곳에서 목숨을
위협받았으니, 시온에서 나가는 것 정도는 도와드리겠소.”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시온의 상태가 이상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희도 사정이 있어서 바로 떠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정말 아쉬운 듯 이야기하는 에단의 모습에 페르디움의 눈썹이 묘하게 찡그려졌다.
“그 사정이라는 게 뭐요?”
“아, 이런. 그러고 보니 엘프분이시니 이 숲에 대해서 잘 아시겠군요. 이거 다행입니다. 혹시 저희들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에단은 말을 하면서 업고 있던 테이를 슬그머니 자신의 옆으로 내려놓았다. 도움을 주겠다는 말만 있으면 바로 돌려보내겠다는 제스처였다. “어떤 도움인지 들어 보고, 들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생각해 보겠소.”
거의 반승낙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에단은 여기서 좀 더 해 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이런 고맙습니다. 테이야, 네가 정말 복덩이다. 네 덕분에 목숨도 구하고 이렇게 도움도 얻고 말이다. 저희는 지금 얼마 전 시온에 들어온 어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며칠 전 시온에 들어와서 지내고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자도!’
에단의 말에 페르디움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델프리드를 통해 전달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테이를 납치한 자가 이드를 쫓아온 자인 듯하다는 것이었다.
“혹시, 짐작 가는 인물이 있습니까?”
에단은 페르디움이 뭔가 생각하는 듯하자 슬쩍 운을 띄웠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그거 내 이야기 같은데!”
갑작스러운 목소리의 출연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델프리드와 함께 어깨에 다리가 부러진 헨리를 짊어진 이드가 한껏 기분 나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엘프들은 그를 반겼지만, 에단을 포함한 트와이스의 인물들은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냥 뒤통수를 치고 테이만 데리고 돌아가는 건데, 잘못했어!’
이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내심 아쉬운 한숨을 토했다.
이드와 라미아, 델프리드가 도착한 것은 조금 전이었다. 혼자 움직였다면 더 빠르게 올 수 있었겠지만, 델프리드와 헨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틀 전이었다면 라미아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한순간에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줬겠지만, 아쉽게도 전날 있었던 차원 진동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서 도저히 공간 이동이 불가능했다. 혹시나 싶어서 라미아가 시도해 보긴 했지만, 공간 좌표조차 잡을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했더니 이미 테이를 데리고 있는 인간들과 페르디움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이 원만히 풀린다면 따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찾아 시온에 왔다는 헨리의 말 때문이었다. 혹시 저들도 자신을 찾아 시온에 온 것이라면 일이 더 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또다시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당장 테이를 보호라는 명목하에 붙잡고 있는 놈들 입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들의 뒤를 쳐서 테이만 확보한 후 떠나 버리는 것이 최선의
행동이었던 것 같아서였다.
[그러게 너무 서둘렀다고요, 이드.]
씩씩거리며 갑자기 앞으로 나서는 이드의 모습에 놀라서 그를 말렸던 라미아의 말이었다.
‘그러게, 네 말을 들을 걸 잘못했어.’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니었다. 저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자의 얼굴에 한 방 먹인 뒤 테이를 안고서 마을로 돌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정령수의 가지들은 혹시나 테이가 인질이 되는 과정에서 다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있지만, 자신이라면 반응하기도 전에 상대를 처리하고 테이를 빼낼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라미아, 찾으러 와줬구나! 이드도.”
그때 이드의 머리 위에 올라 있는 라미아를 확인한 테이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의지할 수 있는 마을의 어른도 좋지만, 역시 짧은 시간이라도 같이 뛰어놀며 친구가 된 존재가 더 친숙한 듯했다. 무엇보다 위급한 상황이 끝났다고 느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푸드득―
라미아가 날개를 펴고 테이에게 날아갔다. 말없이 테이에게 날아가는 라미아의 모습에 이드가 피식 웃었다. 라미아의 생각이 대략 보여서였다.
“그런데 저 녀석, 난 또 뒷전이네.”
이드는 라미아가 앉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보이는 테이를 보며 투덜거렸다. 어떻게 봐도 앞서 라미아를 부르던 목소리와 이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마을의 아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드였다. 딱히 경쟁할 거리도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라미아와 자신을 대하는 온도차가 나도 너무 나자 신경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이런 새도 있나?”
이드를 살피던 에단은 테이의 부름에 날아오른 라미아를 바라보며 살짝 경계했다. 위험해 보인다기보다는 처음 보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새일 테고, 그게 아니라도 아이가 가지고 노는 마법 아티팩트 정도일 거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엘프의 마법 실력은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런 물건보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중요했다.
‘분명 이드라고 했겠다!’
이쪽 특수 기사단 일을 한 것이 한두 해던가. 에단의 눈썰미는 보통 사람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그가 확인한 이드의 모습은 시온에 들어오기 전에 숙지한 후계자의 모습과 똑같았다. 옷만 제외하고 말이다. 거기다 이름도 이드라고 하지 않는가.
‘찾았다!’
에단이 임무 성공을 예감하며 속으로 환호하는 사이 테이는 손에 내려앉은 라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찾으러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나 정말 무서웠거든. 지금까지 운 적이 없는데 이번엔 울어 버렸어.”
히히히 하고 바보처럼 웃어 보이는 테이의 모습에 잠시 에단을 날 선 눈으로 바라보던 라미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장난 너무 심하게 치지 말라고 했지. 도대체 그 밤에 혼자서 거길 왜 가니? 마을에서 모두 널 걱정했단 말이야.]
“반성 중이야. 다시는 밤에 혼자 나가지 않을 거야.”
조곤조곤 야단치는 라미아의 말을 들은 테이의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그리고 에단은 그와 반대로 말을 하기 시작한 라미아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말・・・・・・을 했다?”
[흥, 그래요. 말했어요. 말하는 새 처음 봐요?]
처음 본다. 단어 몇 개를 외우고 말할 줄 아는 새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보기는 했지만, 이처럼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새는 처음이다. 어쩌면 엘프들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처럼 능숙하게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라미아의 말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당신이 테이를 강제로 붙잡고 있다면서요?]
난데없는 돌직구가 날아왔다. 정령수의 가지는 테이가 위험해질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다.
에단은 그렇지 않아도 찔리던 상황에 그렇게 물어오자 급히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이미 자신들이 찾던 후계자를 찾았다. 그리고 시온에서 나가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더 이상 아이를 데리고 인질범 흉내를 내고 싶지 않았다.
“라미아라고 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테이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같이 목숨을 걸고 위험을 헤쳐 나온 동지라고.”
한가득 억울하다는 얼굴로 에단이 강하게 이야기했다. 제법 경지에 오른 표정 연기였다. 그러나 앞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는 라미아의 눈에는 가증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뭐, 그건 테이에게 들어 보면 알 일이겠죠. 테이, 너도 쭉 들어서 상황은 알고 있지? 지금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서 그러니까 네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 줄래?”
앞서 페르디움과 에단의 대화와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오고간 라미아와 에단의 대화에 테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라미아가 어째서 저러는 걸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테이는 라미아의 말에 저들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친절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
처음 밤에 집을 나섰다 납치된 일과 숲에서 버려진 일, 숨어 있다가 에단을 만난 일과 몬스터와 싸운 일까지. 테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했다. 그리고 에단이 내심 그렇게 잊지 않기를 원하던 빵과 우유, 그리고 사과에 대해서도 마지막에 추가로 자랑하듯이 이야기했다.
‘잘했스~’
에단은 자신이 원하던 내용이 그대로 나오자 불끈 주먹을 쥐어 보이며 테이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정작 성인 엘프들에게는 찍혀 버렸는데 말이다. 원래 테이에게 잘 보이려고 한 이유가 테이를 통해 엘프들의 도움을 얻고 엘프의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성인 엘프들을 상대로 테이를 인질로 잡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바람에 제대로 밉보여 버린 것이다.
에단으로서는 대장이 일어난 후 뭐라고 말을 할지 상당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에단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테이를 찾으러 온 엘프들의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자신들을 적으로 보고 있는 듯한 그 분위기에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고, 훈련받은 대로 사고(思考)하고 만 것이다. 나름대로 트와이스에서 열심히 훈련받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들었지? 우리는 테이를 도왔을 뿐이라고.”
[그러네요. 테이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당신 말대로 서로 생명을 구해 줬으니 빚은 없는 걸로 치고 테이, 너도 이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저쪽으로 가자.]
“응. 아저씨,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미아의 말에 따라 인사를 마친 테이가 순식간에 달려가 에나의 품에 안겼다. 어어 하는 사이 상황이 정리되자 에단은 급히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들이 그대로 떠나 버릴 것 같아서였다.
“자, 잠깐만. 제 이야기를 좀 들어 주시죠. 저희는 이드, 당신을 찾아서 이 숲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내 차례인가 보네.”
라미아가 나서는 모습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드는 자신을 부르는 에단의 모습에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사이 페르디움이 에나와 브레임, 하르만과 이지문을 붙여서 테이를 마을로 먼저 데려가도록 했다. 이드도 라미아에게 이야기해서 함께 돌아가도록 했다. 시온에 외부의 인간이 들어와 있는 이상 확실한 안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납치되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납치되는 일이 벌어져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바라본 후 이드는 에단 앞에 헨리를 툭 던져 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앞서 이드에게 맞으면서 온몸에 묻은 흙먼지가 피어 오른 것이다. 기절해 있던 그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녀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