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00화
737화
결혼식 준비는 촉박했다. 토벌 전에 결혼식을 마치려고 날짜를 잡아 놓았기 때문이리라.
초대장도 보내지 못할 만큼 서두른 이번 결혼식이 만약 일반적인 결혼식이었다면 최악이라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혼식은 달랐다.
우선 초청할 하객들이 이드를 보고 토벌에 참가하기 위해 모두 수도에 모여 있는 덕에 초대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둘째로 결혼식에 필요한 크고 작은 것들은 이드를 불러내기 위해 모였던 여러 귀족들이 지원해 주었다. 덕분에 모자랄 것 없이 준비되었다.
짧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고, 신속하고, 화려하게 결혼식이 착착 준비되었다.
역사상 가장 빨리 준비된 결혼식으로 손에 꼽힐 한 장면이었다.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라미아도 의욕이 불탔다. 그녀는 자신이 이드의 파트너로 같이 가겠다고 선언하고는 저택의 빈방을 하나 골라 들어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만드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드도 그녀가 무엇을 만드는지 알지 못했다. 중요한 작업이라며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처음 있는 일에 이드는 놀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저번에 봤던 골렘을 만드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섬세한 일인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지기 위한 여성의 노력은 남자인 이드가 이해하긴 조금 힘든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서운함도 하루가 가지 못했다. 바로 다음 날 라미아가 이드를 방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중요한 작업은 끝난 거야?”
이드는 방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이드가 오기 전에 간단히 정리를 해 두었는지 밤새도록 뚝딱거린 것에 비해 방 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방 한쪽에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가 좀 쌓여 있었지만, 한쪽에 몰아 두어서 그렇게 거슬리는 것은 아니었다.
[네. 가장 중요한 기본 작업은 이제 끝났어요. 시간이 촉박해서 걱정했지만, 결국 해냈죠.]
라미아가 마치 에베레스트를 오른 등산가처럼 뿌듯해했다.
이드는 그녀의 표정을 멀뚱히 바라보다 방 중앙에 하얀 천으로 덮어 둔 무언가를 가리켜 보였다.
“만든 게 저거야? 골렘 만든 거 뻔히 아는데 뭐 하러 가려?”
[놀라게 해주려고요. 골렘이 다 같은 골렘이 아니라고요. 이걸 제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데요. 그냥 골렘이라고 하면 화낼 거예요.]
골렘을 골렘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란 말인가?
이드는 골렘에 밀려 이틀 동안이나 출입 금지당한 것이 갑자기 서운해져 입술을 삐죽이고는 말했다.
“그럼 어디 그 특별한 골렘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자. 이제 천 벗겨도 되는 거지?”
[두구두구두구~]
라미아가 입으로 드럼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신제품 발표회도 아니고 말이다.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삐죽이던 입으로 웃음을 흘린 이드가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천을 벗겨 냈다.
동시에 이드는 급격히 밀려오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에게? 이게 뭐야!”
하얀 천에 덮여 있던 것. 그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간 크기의 스켈레톤이었다.
몇몇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인간의 뼈대와 거의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특히 사지 관절과 목, 손, 발과 같이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곳은 인간의 그것과 꼭 닮았다.
“골렘 만드는 거 아니었어?”
이드는 상상과 전혀 다른 물건의 등장에 반사적으로 라미아를 찾았다.
[맞아요. 그래서 만들었잖아요.]
“이건 뼈잖아! 골렘에 뼈가 왜 있어? 저번에 네가 쓴 골렘에는 이런 거 없었잖아.”
이드는 그녀가 골렘을 흙으로 되돌리던 장면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호호, 그건 즉석에서 만든 시험기라서 그랬죠. 하지만 이건 한 번 쓰고 버릴 골렘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뼈대에서부터 외관까지 신중하게
만들어야죠. 섬세하게 신경을 쓸수록 천하제일의 몸매 비율….. 아니, 아니. 천하제일의 신체가 나온다고요.]
빠르게 말하다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왔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평온을 위해 애써 모른 척했다.
다만 이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이야. 진짜 뼈와 근육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몸도 아닌데 천하제일의 신체를 가져서 뭐하게?”
[좋은 몸을 가져서 나쁠 건 없잖아요!]
당당한 라미아의 말이었지만 이드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뼈와 근육은 물론이고, 당장 눈앞에 뼛속까지 내보이고 있는 뼈의 형태부터 다르다. 이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하제일의 신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당장 아무리 인간이 뛰어나도 숲의 최강 포식자로 통하는 오거와의 기본 성능을 따지면 비교하는 것이 바보로 느껴질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뭐, 어차피 그녀의 본심은 몸매에 있을 것이니 이드는 더 따지고 들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라미아가 아름다운 몸을 만든다면 이드도 반대할 일은 아니다. 딱딱하긴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아름다운 조각상을 감상하는 감각이랄까?
무엇보다 일단 그 조각상이 부인님께서 임시로 사용하시는 몸이 아닌가 말이다.
아내가 아름다워진다는데, 싫어하는 남편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럼 이건 아직 미완성인 거네? 서둘러야 하지 않아? 드레스도 준비해야 할 텐데.”
스켈레톤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미완성인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이드를 불렀어요. 천하제일미의 완성을 위해서 이드의 도움이 필요해요.]
천하제일미가 골렘의 이름인 듯했다.
“・・・・・・뭘 도와줄까?”
이드가 묘하게 허탈한 음성으로 묻자 라미아가 아공간을 열어 번쩍이는 금괴를 쏟아 냈다.
[이 금으로 천하제일미의 외형을 완성할 거예요. 이드는 이 금을 녹여 주세요.]
금을 녹이는 일이라면 라미아의 마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왜일까? 순간 이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진금을 만들자고?”
[네. 진금으로 만든 신체. 굉장할 것 같지 않아요?]
“굉장하긴 하겠지…….”
이드는 급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진금이란 이드와 라미아가 만들어 낸 제련된 황금의 이름이었다.
보통 미스릴을 진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금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진금이라는 용어로 부르진 않는다. 그저 일부의 사람들이 진금이라 부르는 것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금속을 아다만타이트라고 부른다.
아다만타이트는 미스릴, 오리하르콘과 함께 3대 희귀 마법 금속에 속하는 물질로 제련 후에는 태양과 같은 찬란한 황금색을 발하기 때문에 누군가 진은에 견주어 진금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아다만타이트는 제련 방법에 따라 황금색이 아닌 은색으로, 또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진금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황금만이 가진 독특한 성질을 가진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드가 말하는 진금은 아다만타이트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말한 진금은 라미아가 지구의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 낸 것으로 금을 이드의 내공으로 특수하게 정제한 것에 붙인 이름이었다.
이드의 내공에 의해 정제된 진금은 미스릴에 가까운 마력 전달력과 정령석에 가까운 속성 값을 가지게 된다.
다만 이때 본래 무른 금의 연성이 더 높아져 단단한 병기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부드럽게 움직이는 골렘의 재료로는 훌륭하게 들어맞을지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금을 만드는 게 제법 힘들지……..
진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밀한 진기 운용이 필수다. 하지만 기대감 가득한 라미아를 앞에 두고 힘들어서 만들기 싫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힐끔 라미아를 곁눈질한 이드가 허공섭물로 황금을 그러쥐었다.
덜그럭 덜그럭.
금괴가 부딪히며 허공에 떠올랐다.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를 들어 올렸음에도 이드의 얼굴에는 힘든 표정 하나 없었다.
“녹은 진금은 어디에 둘 거야?”
[바로 천하제일미 위로 부으면 돼요. 이미 준비는 다 해 뒀으니까.]
라미아가 자신 있게 말했다.
과연 재차 확인하니 라미아가 만든 뼈대 표면에는 미세한 마법의 가공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미스릴로 전체를 다 만들지.”
휴일에 못을 박기 싫어 투덜거리는 남편처럼 진금을 정제할 준비를 다 해 둔 이드가 미련을 담아 말했다.
일반 마법사라면 거기에 들어갈 미스릴의 양에 한 번, 또 그 쓸데없는 용도에 두 번 분노할 발언이었다. 과연 드래곤 레어의 보물을 챙긴 자만이 보일 수 있는 배포다웠다.
[그것도 생각해 봤지만, 결과 값을 계산한 결과 이 작업에는 진금이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고 나왔거든요.]
과연 계산 결과가 그렇다면 취향 이전의 문제일 것이다. 어차피 미스릴이나 진금이나 남에게 대놓고 보여 줄 수 없는 몸. 성능이라도 좋아야겠지. 마지막 미세한 발악도 막혀 버린 이드는 마음을 정한 듯 강물처럼 잔잔했던 내공을 퍼 올렸다.
“그럼 시작한다!”
화아아아악!
무진장하게 쏟아진 내력이 단번에 삼매진화의 기운으로 바뀌며 금괴가 단숨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 점의 불꽃도 보이지 않지만, 녹아내리는 금으로부터 용광로의 열기가 뿜어지며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열기로는 이드와 라미아에게 티끌만큼의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 속에서 이드가 녹아내린 금을 향해 반대 손을 뻗어 잡아당겼다.
주우욱!
녹아내려 연유처럼 변한 금이 엿가락처럼 아래로 늘어지자, 이드의 다섯 손가락에서 뻗어 나간 오행대천공의 다섯 기운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황금을 두드려댔다.
투퉁. 투퉁 퉁, 투두둥.
녹아내린 황금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오행의 기운이 황금을 밖에서 또 안에서, 차례차례 또 번갈아 가며 두드려 대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녹아내리는 황금이 많아지면서 떠 빨라지고 격렬해졌다.
결국에는 모든 황금이 녹아내려 다시 하나가 되었을 때 빨라진 타격음은 일정한 리듬을 타며 격렬한 드럼 연주처럼 변해 갔다.
그리고 그 연주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이드의 이마에 살짝 땀이 스밀 때쯤 탁하기만 하던 소리에 변화가 찾아왔다.
투퉁 퉁. 통!
그것이 시작이었다. 둔하지만 살짝 높아진 음을 시작으로 소리가 점점 맑아지고 높아지더니 결국에는 진짜 피아노처럼 맑고 고운 소리를 토해냈다.
그와 더불어 한 덩이로 녹아내린 금이 오행기의 속성을 따라 울긋불긋 변해 갔다.
이드는 그 모습에 입술을 핥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스며든 속성력을 한데 녹이면 끝이야.”
후웁!
마지막 스퍼트를 내듯 짧게 끊어지는 호흡. 그 뒤를 이어 달아올랐던 방의 온도가 더 높이 올라가며 새하얀 커튼이 열기에 누렇게 변색되었다. 대신 울긋불긋하던 금은 제 색깔을 찾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녹기 전보다 좀 더 부드럽고 고아해진 듯, 미묘한 변화가 느껴지는 색깔로 변했다.
“휴~ 이거 이대로 머리 위에서부터 부으면 되지?”
[네, 단숨에 말고 천천히.]
라미아의 대답과 동시에 내공의 가마에 작은 구멍이 생기며 녹아내린 진금이 흘러내렸다.
녹은 진금이 닿자 미스릴 뼈대가 희미하게 발광하며 솜처럼 진금을 빨아들였고, 진금은 한 방울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미스릴 뼈를 따라 흘러 발에서부터 차근차근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볼품없던 미스릴 뼈가 아름다운 황금의 비너스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후와…….”
이드는 완성된 황금 미녀상에 작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미아는 그런 이드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득의만만해하며 말했다.
[이제 집사에게 드레스를 준비하라고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