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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06화


743화

페니메나의 비명이 파티를 멈추지는 못했다. 그러기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악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비롯해서 이드처럼 들을 만한 사람들은 모두 들었다.

오늘 파티의 메인이벤트를 기억하고 있는 이드는 고개를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생각 없는 인간이 결혼식에 와서 사고를 치는 거야?”

“……아무래도 그 생각 없는 인간이 우리가 데려온 인간인 것 같지요?”

“으…… “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 거기에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가를 적신 여성과 그 앞에서 멱살을 쥐고 있는 두 남자가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이그렌이었다.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치정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어머! 어머! 어머!”

“이런 걸 생으로 보는 건 오랜만인데 말이에요. 호호호.”

지구별 아침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구도에 귀부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봐, 이봐.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황녀님과 명예 후작이 참석한 중요한 자리에서 이러는 건 실례잖아?”

“남녀 간의 애정사엔 때와 장소가 없는 법. 멋없이 나서서 쫓아내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중에는 상황을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엄한 마나님의 손에 잡혀 결국 나서지 못했다. 마나님과 더불어 발길을 잡는 흉흉한 안광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하나도 벅찬 시선이 주변에서 여럿 번뜩이자 그들은 속으로 벌벌 떨어야 했다.

그러나 나서기를 포기한 용기 없는 자들과 반대로 이드는 멱살잡이 중인 이그렌의 모습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저러라고 데려온 게 아닌데.”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이그렌이 먼저 나서서 싸운 건 아니겠죠. 그보다 입술이 찢어진 걸 보면 한 대 맞은 것 같아요.”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이왕 주먹을 들었으면 때려야지. 왜 맞아?”

불쑥 본심이 튀어나왔다. 그레이의 피를 이어서 그럴까. 케마란이나 네리베르 만큼은 아니지만, 이드에게 가르침을 받는 일반 수련생들보다 마음이 쓰였다.

“쿠쿠쿡, 그게 불만이었던 거였어요? 지금 이드 표정 굉장히 귀여운 거 알아요?”

라미아가 귀여워 죽겠다는 투로 이드의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행동은 사실 노린 것이었다. 이 사람은 내 것이니 노리지 말하는 무언의 영역 표시인 것이다.

과연 효과가 있는지 소동 중에도 이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레이디들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고, 그 모습을 확인한 라미아는 작은 승리를 자축하며 마음속으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드는 라미아와 함께 나란히 이그렌에게 다가갔다. 사람들도 그제야 이그렌이 이드의 일행이었음을 알아보고 숨을 죽였다.

반대로 두 사람이 다가서자 두 남자를 말리는 페니메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높아졌다.

‘요것 봐라……?’

그에 이드의 눈이 번뜩였다. 예민한 그의 청각은 그녀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인한 것이 아닌 높낮이가 정확히 계산된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저 이그렌이 휘말린 시비를 해결하고자 다가오던 이드는 본능처럼 한걸음 떨어진 시점에서 사건을 보기 시작했다.

“아, 후작님. 다행이다. 제발 부탁드려요. 이 두 사람을 좀 말려 주세요. 저 때문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페니메나가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이드는 알았다고 말하고는 벨로우와 이그렌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한창 힘 싸움에 정신이 없었다. 그것도 막상막하의 박빙으로, 종잇장 같은 빈틈이라도 보이는 쪽이 먼저 나가떨어질 힘 싸움이다. 하기야 그렇게 정신이 없지 않고서야 이 많은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정신없이 멱살을 쥐고 흔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그렌은 사무엘 백작에게 당한 것이 있어서 그런지 고위 귀족들을 상대로는 기가 죽는 새가슴이었으니까.

두 사람을 떼어 놓기 전 잠시 벨로우를 살핀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특이하게 무공을 배우지 않은 순수한 실전 싸움꾼이었다. 이그렌이 아무리 격투술에 소홀했다고 해도,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이가 순수한 실전 싸움으로 이그렌과 대등하게 싸우다니.

실로 뛰어난 자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파티장이 자질을 보는 시험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드의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지며 ‘그만’이라고 외치는 순간.

“우웩~!”

싸움에 정신이 없던 벨로우와 이그렌이 동시에 손을 놓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두 음절의 각각 다른 파동이 두 귀의 달팽이관을 흔들어 멀미를 하게 만든 때문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멀미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 힘 싸움에 여념이 없는 두 근육 바보를 멈추기엔 최고의 방법이다.

물론 거기에는 결혼식에서 사고를 친 바보들에 대한 징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허허, 거 신기하군.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구역질이라니?”

“그건 내가 설명해 주리다. 방금 후작께선 각각 파장이 다른 두 개의 파동을 만들어 저 두 사람의 머리를 흔들어 놓은 것이오.”

갑작스러운 구역질에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인상 좋은 마법사의 설명에 오! 하고 놀라워했다.

한바탕 사람들이 의문점을 해결한 뒤, 구역질이 잦아든 이그렌과 벨로우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그・・・・・・ 렇습니다.”

“두 사람 때문에 괜한 사람까지 피해를 봤어.”

“……”

지은 죄가 있는 이그렌과 벨로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페니메나가 소리를 친 것 같기는 한데, 언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들었을까.

이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흔적도 없다. 그리고 페니메나에 대한 원망이 훌륭하게 그 자리를 메꾸었다.

‘아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시비를 이렇게 키워서 어쩌자는 건지.’

‘미친년 아냐? 우리가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거기서 비명은 왜 질러? 도와주긴 뭘 도와달라는 거냐고!’

두 사람이 한 몸이라도 된 듯 동시에 한숨을 쉰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물었다. 이런 소동을 일으켰으니 두 사람의 다툼이 끝났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남의 결혼식에서 주먹질을 한 건가?”

하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두 사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힐끔거렸다.

이게 뭐하는 수작인가 싶을 찰나.

페니메나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이드 앞으로 나섰다. 살짝 몸을 꼬고 눈을 치켜뜬 것이 대놓고 요염함을 강조하는 모습에 라미아가 혀를 찼다.

[우와~! 아주 작정을 했네, 작정을 했어. 저기 어디에 자기 때문에 싸우는 두 남자를 걱정하며 도와달라던 여자의 모습이 있냐고요. 자기 파트너를 옆에 두고 저러고 싶을까? 이드, 만에 하나라도 저 여자하고 둘만 같이 있는 자리는 피해요. 잘못하면 잡아먹겠다고 달려들겠네!]

‘난 지구에서 너한테 수작 부리던 놈들이 떠오르는데?”

라미아의 말에 맘속으로 대꾸해 준 이드가 말했다.

“할 말이 있는가?”

“네, 후작님. 여기 기사님은 곤경에 처한 절 도와주려고 하셨던 것뿐이에요. 그러니 탓하려거든 절 탓해 주세요. 제가 몸가짐을 바로 하지

못해서…… 흑……”

페니메나는 말을 하던 중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였다.

“쯧쯧, 벨로우 녀석이 또 사고를 쳤군.”

“저 여성 편력으로 기어코 사고 낼 줄 알았지. 암~!”

그녀의 모습을 본 누군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벨로우의 행실을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순식간에 파렴치 난봉꾼으로 몰린 벨로우는 심각하게 당황했다. 합의 하에 좀 즐기려고 하던 중에 갑자기 거부하며 이 소란을 만든 것도 어이없어 죽겠는데,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거 가만히 있다가는 사교계에서 매장당하겠다!’

벨로우는 적극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후작님. 전 절대 힘으로 여자를 꺾지 않습니다. 그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한 것도 아닌데 무슨 허락이에요!”

“파트너 신청도 당신이 먼저 했잖아!”

“전 그렇게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아요! 흑흑!”

한동안 진실 공방을 벌이던 페니메나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벨로우는 그 모습에 이를 갈았다.

이쯤 오자 그도 페니메나가 작정을 하고 자신을 엿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목적이 함정인지, 아니면 자신을 싫어하는 여자들을 대신한 복수인지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대화 상대를 이드로 바꿔 말했다.

“정말입니다, 후작님. 사실 갑자기 싫다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손목을 잡아채긴 했어도 그뿐입니다. 지금 이 여자 말은 거짓입니다!”

“글쎄…… 그럼 이그렌은 그 모습을 보고 도와주겠다고 나선 거고, 그러다 싸웠나?”

“예.”

이드가 묻자 고개를 끄덕인 이그렌이 죄송하다는 듯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자리는 사무엘 백작의 영지에서 시온 자작을 뽑아내기 위해 이드가 특별히 동행한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벌이다니, 얼굴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한 가지 더 부끄러운 것은 벨로우를 제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설마 무공도 익히지 않은 남자를 제압하지 못할 줄이야. 이드 앞에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가 벨로우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가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사귀면서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먹만은 기사들도 이를 갈면서 인정하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너무 성급했어. 주먹이든 검이든 써야 할 장소를 구별했어야지! 이그렌 경은 오늘 일에 대해서 필히 결혼식의 당사자들과 하리온 백작님께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빌어.”

이드는 고개를 숙인 이그렌을 향해 딱 잘라 말했다. 잘못한 부분은 확실히 지적해 줄 필요가 있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그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의 눈앞에 다시 페니메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계속 이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머나, 아가씨. 이게 무슨 일이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머리 하나가 삐죽 솟아났다.

그녀는 페니메나를 확인하고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벨로우 앞에서 연신 눈물을 닦아 내던 페니메나는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준비하던 때다!’

그것은 미리 정해 둔 신호였다.

페니메나는 다시 표정을 정돈하고는 우는 얼굴로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과 호흡을 맞춘 하녀의 위치와 직선상에 있는 라미아를 확인하고는 목 놓아 소리쳤다.

“흑흑, 후작 부인. 저는 정말 억울해요. 절 좀 도와주세요.”

“응? 나?”

페니메나는 당황한 라미아의 목소리에 눈물을 닦는 척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라미아를 향해 달렸다.

‘좋았어. 완벽해. 이대로 저년을 쓰러트려서 가면을 떨구고 그 못생긴 얼굴을 드러내기만 하면!’

바닥을 구르며 울상을 지을 라미아를 상상하니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지금까지 자신이 망신을 준 상대 중 최고의 인물이 되지 않을까? 페니메나는 돌진하기 전 가늠해 둔 라미아와의 거리를 생각하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후작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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