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307화


744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딱 발을 헛디뎌 쓰러지는 모습이다. 실제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지는 사람이 종종 있다. 특히 페니메나는 드레스가 걸리지 않게 갈무리할 손으로 눈까지 가렸지 않은가!

“저, 저런!”

“어머나, 후작 부인 피하세요!”

아주 넘어지려고 작정한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의심 없이 바닥을 구를 그녀를 안타까워했다. 뭐, 그중에는 페니메나보다 라미아를 걱정하는 약삭빠른 입도 끼어 있었지만 말이다.

“어머, 이를 어째! 아가씨. 조심하세요!”

거기에 더해서 주인을 돕기 위해 급히 손을 뻗는 충직한 하녀의 모습까지.

그러나 눈앞에서 그러 모습을 살핀 라미아가 보기에 이 상황은 절대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당하고 어이없게 느껴졌다.

‘헐~ 이게 지금 어디서 수작질이야? 그것도 감히 날 상대로?’

식당 개 삼 년이면 손님 방석부터 깐다고, 라미아가 이드 옆에서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넘어지는 모습만 봐도 저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도는 쉽게 견적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페니메나는 지금 넘어진 것이 아니라, 체중을 실은 몸통박치기를 하는 것에 가깝다.

비명부터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드에게 전해 들었지만, 설마 일부러 자신을 노리고 부딪쳐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 대충 예상은 된다. 상대에게 망신을 주어 낮추고, 반대로 자신은 인상 깊은 모습을 남겨 스스로를 높이려는 수작일 테다. 주로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인간들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라미아도 이와 같은 경우를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이서 제법 많이 봤다. 라미아에게 잘 보여 보려고 날뛰는 수컷들을 통해서. 

‘물론 그때 고생한 건 이드였지만. 구경하는 건 재미있었는데, 막상 당하니까 어이없고 짜증 나네. 미안했어요, 이드.’

아무리 보물을 가진 것이 죄라는 말이 있다지만, 멋진 사람 옆에 있다고 미움을 받아야 하다니. 라미아는 지난날 꼬여 드는 날파리로 고생하는 이드의 모습을 재미있어 했던 스스로에 대해 반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 넓은 이드가 좀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 바라보지만 아니나 다를까, 딱 이드가 고생할 때 그를 바라보던 자신의 표정을 하고 있다. 라미아는 그 속에서 자신이 쌓은 업보를 느꼈다.

‘에잇, 좀생이!’

방금 반성이 무색하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 라미아다. 그리고 이드의 도움을 포기하는 순간 단단한 팔 하나가 부딪히는 척하면서 허리를 감았다. 바로 페니메나가 넘어지는 모습에 몸을 던진 하녀의 팔이다.

그녀가 페니메나와 미리 정해 둔 대로였다. 페니메나와 같은 선상에 있는 라미아의 허리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함과 동시에 중심을 무너트려 페니메나로 하여금 결정타를 날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며, 페니메나가 주로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사실 하녀는 이번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지금까지처럼 여느 귀족가의 아가씨를 상대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무려 후작 부인이 상대라는 점에서 들켰을 경우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니메나의 강력한 명령과 실력에 대한 자신감에 나서고 말았다. 거기다 마법사라는 후작 부인의 소개에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놓기까지 했다. 마법사들이 몸치인 것이야 세상이 다 아는 사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보호 마법을 사용하지만.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는 못 쓰지!’

마법도 없다면 들키는 일은 없으리라!

“오마나~ 악?”

하지만 만만하게 풀리던 마음은 연습해 둔 비명의 끝에 붙은 삑사리처럼 한순간 바뀌고 말았다. 분명 손끝에 후작 부인의 말랑한 살이 닿아야 하는데 이건 마치 바위를 끌어안은 것처럼 단단하지 않은가.

‘잘못 걸렸다!’

눈치 빠른 하녀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방어 마법을 두르고 파티장에 오다니. 비상식적이야. 예의가 아니라고!’

하녀는 즉시 페니메나를 막으려 했다. 방어 마법이 발동되었다면 자신들의 의도는 허사가 된다. 잘못하면 페니메나의 술수가 들통 날 수도 있다. 이미 들통 났다고 해도 시도가 불발되면 찍히는 선에서 넘어갈 수 있지만, 실행되면 확신범으로 뒷감당이 힘들다.

그녀는 즉시 라미아를 잡은 팔을 풀고 달리던 관성으로 페니메나를 향하려 했다.

하지만 라미아는 그녀를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들어오는 건 맘대로지만, 나가는 건 허락을 받아야지.’

하녀의 몸 다루기가 제법 세련되긴 했지만, 라미아도 무공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다. 이드 옆에서 늘어난 것은 안목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골렘을 만들 때도 제법 정성을 쏟았다. 즉, 다양한 상황을 대비한 기능이 있다는 뜻.

꿈틀.

그와 동시에 라미아의 허리가 불룩 솟아오르며 떨어지려는 하녀의 손목을 꽈악 잡았다. 사람이 허리 살을 움직여 물건을 잡을 수 있었던가? 

“히익! 슬라임!”

누가 슬라임이냐! 라미아는 새로운 현상에 기겁하는 하녀의 모습에 내심 투덜거리며 엉덩이를 튕겼다. 여우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부드러운 움직임이지만, 하녀는 황소에 들이받힌 것 같은 충격을 받으며 허공에 떠 버렸다.

팔을 잡혀 제압된 상황에 중심을 잃었으니 당연한 상황이다. 또 하녀가 라미아에게 하려 했던 일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라미아는 그 상태에서 앞에서 다가오는 페니메나의 상태를 살피다 적당한 시점에 잡혀 있던 하녀의 팔을 놓았다.

그러자 지지력을 잃은 하녀의 발이 원심력에 의해 허공에서 회전하더니 무방비로 드러난 페니메나의 턱과 가슴에 박혀 들었다.

퍼퍽!

“켁!”

그 충격에 페니메나의 몸이 획 뒤집어지며 라미아를 향해 팔을 뻗어 내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 그리고 단순히 발에 채여 튕겨진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언가를 낚아채기 위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훤하게 보이고 말았다.

한참 억울한 상황에 그녀를 노려보고 있던 벨로우는 그 손짓이 가진 의미를 눈치채고는 눈에 불길을 쏟아냈다.

“으드득, 이 빌어먹을 년이?”

그는 난봉꾼으로 소문이 나고도 여자를 꼬셔 낼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작은 손동작과 이해되지 않던 그녀의 행동이 이어지자 자신이 그녀에게 제대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외에도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들의 표정이 대번에 변한다.

거기까지 살핀 라미아는 이제 징계를 포함한 마무리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어설픈 아가씨야. 연기를 하려면 나처럼 완벽하게 하라고.’

“내 손을……!”

라미아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담아 하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안타깝게 하녀의 옷깃만을 살짝 스친 후 간발의 차이로 놓치는 척을 했다. 그 순간 장갑을 뚫고 솟아난 진금의 실이 옷을 타고 오르며 허공에 뜬 하녀의 중심을 이동시키며 미세하게 그녀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 작은 변화는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페니메나 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진 페니메나는 자신보다 먼저 허공에 떴으면서도 나중에 떨어지는 하녀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끄엑!”

뿌드득!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끝이 났다.

라미아에 의해 조종된 하녀의 엉치뼈가 정확히 페니메나의 얼굴 위로 떨어진 것이다.

“아으윽…… 아, 아가씨!”

하녀는 자신의 적지 않은 통증에도 불구하고 허겁지겁 몸을 돌려 페니메나를 확인하고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엉치뼈에 눌린 페니메나의 코를 중심으로 얼굴뼈가 내려앉은 것이다. 코피는 말할 것도 없고, 도저히 그냥 봐 주기 힘든 상태다. “어, 어느 분이라도 빨리 신관을 좀 불러 주세요!”

하녀는 평소 상비하고 있던 포션을 페니메나의 얼굴에 부으며 사방으로 도움을 청했다.

“좀…… 심하지 않을까?”

라미아가 만든 결과를 확인한 이드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에 라미아가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모두 자업자득의 업보랍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자신이 당한 것이에요.”

“뭔 소리야?”

라미아의 반성을 알지 못하는 이드는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별거 아니네요. 거기다 심하다는 말은 이드가 할 말은 아니죠. 이드가 처리한 방법도 저 못지않았다고요. 거기다 도와주지도 않고서는…………… 어차피 신관이 있어서 회복도 되니까. 순간의 고통이라도 커야죠. 그래야 저 못된 짓거리를 고치지 않겠어요?”

이드는 당당한 라미아의 말에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기도 하다. 해를 끼치려 했다면 자신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하는 법. 말 그대로 자업자득이다.

이드도 그저 여성으로서 얼굴이 저렇게 떡이 되었다는 사실에 말을 꺼내 보았을 뿐이다.

그럼 라미아가 아니라 중간에 이드가 나섰다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

‘이빨을 털어 준 후에 머리카락을 밀고, 두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야지. 어디 내 사람에게 수작을 부려, 수작을 부리길!’

과연・・・・・・ 라미아가 심하다고 말할 입장인가 싶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페니메나를 돕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나서려던 사람도 그녀의 행태를 본 사람들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말렸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도 보인 일이야. 설마 후작께서 못 보셨을까. 어쩌면 후작 부인까지 알고 계실지도 몰라. 괜히 나서서 치료해 주었다가는 찍힐지 모른다고!”

“으허험, 후작께 찍힐 수야 없지. 고맙네. 말려 줘서.”

“누가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러다 아가씨께서 잘못되시겠어요.”

그 말과 함께 페니메나가 피를 토했다. 얼굴이 망가지며 출혈이 생긴 것.

그때 라미아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녀가 움직이자 사정을 파악한 사람들과 하녀가 숨을 죽였다.

“후・・・・・・ 후작 부인・・・・・・.”

하녀는 덜덜 떨며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도와줄 테니. 이렇게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다니. 안타까워서 어떻게 할까요.”

나긋한 라미아의 말에 하녀의 떨림이 커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튕겨 내던 충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라미아는 절대 자신들의 행동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사고라 말하며 친절을 베풀겠다고?

‘뭐, 뭐야! 무서워. 차라리 그냥 사실을 밝히라고!’

그런 하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미아는 푸른빛에 물든 손으로 페니메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힐 마법을 걸었다.

“좀・・・・・・ 아플 거예요.”

뿌드드득!

“꺄꺄아아아악!”

과연 아플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함몰되었던 페니메나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대신 그 속에서 뼛조각이 움직이느라 굉장한 고통을 만들어 기절했던 페니메나가 깨어났다 다시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라미아는 페니메나의 얼굴이 원상태를 찾자 그 속에 철심처럼 마나의 심을 박은 후에 손을 떼었다.

“혹시 얼굴이 무너질지 몰라 조치를 취했으니, 차후에 신관님께 치료받으세요.”

다만 마나심으로 인해서 신관의 치료에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커∙∙∙∙∙∙ 커헉…… 흑…….”

그때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턱으로 신음하던 페니메나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좀 전 이드 앞에서 보이던 눈물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진심이 담긴 눈물.

그 모습을 보며 라미아가 말했다.

“이렇게 다치긴 했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요.”

“으어…….”

사람이 이 꼴이 났는데 다행이라고? 페니메나가 부풀어 오른 눈을 겨우 떴다.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제 몸에 걸린 방어 마법이 발동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요. 제가 흑마법사와 싸운 이후로는 방어에 좀 예민하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앞으로 저에게 쓰러질 일이 있으면 주의하길 바라요.”

“……”

자상한 설명에 페니메나와 하녀는 할 말을 잃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도대체 무슨 그런 악독한 방어 마법이 있나. 사람을 죽이는 방어 마법이라니!

그 속에서 가면에 가려진 라미아의 은색 눈빛을 확인한 하녀는 진저리를 쳤다. 상대를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다.

‘다르다. 이분은 그저 그런 마법사나 귀족 부인이 아니야. 실전에서 피 흘리는 전투 마법사야.’

차라리 죽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