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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14화


751화

에단의 안내를 받아 이드가 다시 오두막을 나섰다.

이미 자정을 지난 시간. 날이 밝기 전에 거점을 살펴보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무래도 훤히 밝은 대낮에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스톤은 뒤에서 조용히 따르며 은밀히 이드를 살폈다.

그도 무공을 익힌 사람으로서 이드에게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제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이 아닌가. 암살자라는 업을 가진 그로서는 감히 가까이서 보기 힘든 인물을 만난 것이다.

그의 직업이 암살자인 만큼 이후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이드에 대한 정보를 확보해 두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거금을 건 이드에 대한 암살 의뢰라도 들어올지.

그러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이드를 살피던 스톤은 이내 그런 마음을 곱게 접었다.

‘크하~ 역시 고수라는 건가. 이리도 읽히는 게 없을 수가 있나.’

본래 무공을 익히다 보면, 아니 무공이 아니라도 몸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버릇이 생긴다. 버릇을 다르게 말하면 ‘편하다’라는 느낌이라고 하겠다. 사람인 이상 본능적으로 어려운 것보다는 편한 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나타나는 것을 버릇이라고 한다. 크게는 공격하기 전 기합을 터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고개를 돌릴 때 오른쪽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차라리 확률 계산에 가까운 행동까지.

그리고 암살자란 이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의미 없는 것들을 모아 유의미하게 가공해서 빈틈을 노리는 자들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런 전문가의 눈으로 이드를 살폈지만 도저히 버릇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한 부분만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그것은 바로 발과 허리다.

아무래도 단련을 하다 보면 움직이는 것과 중심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인데, 그것의 시작이 바로 발과 허리이기 때문이다. 이 두 부분만 잘 보아도 상대가 하수인지 고수인지 구별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드의 발과 허리를 관찰한 스톤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하수, 고수를 따지기 이전에 무공을 수련하고 몸을 단련한 흔적조차 발견할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발과 허리에 집착하는 변태 성욕자라고 할 만큼 열기를 가지고 노려보았는데도 그렇다!

규칙적인 보법에 길들여졌어야 할 걸음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 간격이고, 항상 무게를 아래에 두어 단단히 중심을 잡아야 할 허리는 여인의 머릿결처럼 하늘거렸다.

그렇다고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구름과 물같이 자연스러웠다. 소드 마스터 너머의 경지에 이르면 나타나는 평범함 속에 숨은 비범함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눈앞에 걷고 있는 인물이 그 유명한 이드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냥 어느 집 애새끼가 폼 잡아 보려고 형이 쓰는 검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암살자에게는 실로 최악 중 최악의 상대다. 너무 평범한 상대라 얕잡아 보고 작업하다가 영혼까지 털리기 딱 좋은 상대지 몰랐으면 암살계의 개미지옥이 될 자였군.’

자고로 좋은 암살자는 견적이 나오지 않는 상대는 작업하지 않는 법. 스톤은 암살자라는 입장을 버리고 이드를 살폈다.

그러자 블러디 혼을 꺾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아니라 에단과 격의 없이 말을 주고받는 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들어 있었다.

기억 속 피비린내 나던 에단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와 지금은 하는 일이 비슷한데도 그 진하던 피비린내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 그는 제국 특수 기사단에 속한 부품이 아니라, 마인드 마스터의 신뢰를 받는 부하가 되어 있지 않은가. 

“부엉이가 제대로 둥지를 틀었군.”

부럽다는 생각에 무심코 중얼거리던 스톤은 다음 순간 어느새 자신을 향해 있는 이드의 눈을 마주하고 섬뜩한 느낌에 입술이 굳어 버렸다. 

‘언제……’

씨익.

이드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스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은밀히 살핀다고 살폈겠지만, 무극신기의 공간 장악력을 피하기에는 시선이 너무 끈적했다. 하지만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유명 인사를 직접 보면 눈이 가는 게 당연하니까.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자신을 보고 알아낼 것이 없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쪽에 관심이 갔다.

“방금 부엉이라고 하던데, 에단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현장에서 그를 부엉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엉이처럼 무엇이든 잘 보기 때문입니다.”

과연 암살자. 스톤은 내심의 동요를 전혀 내보이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에단이 버럭 소리를 치고 나섰다.

“이 돌멩이 자식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끌끌, 부엉이가 출세한 게 부러워서・・・・・・ 무심코?”

“지랄!”

이드는 씩씩거리는 에단을 보며 말했다.

“좋은 별명이네. 부엉이라면 간파의 눈 때문인가?”

이드의 질문에 에단은 화를 삭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목숨 걸고 부딪히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이거든요. 간파의 눈은 몰라도 제 눈에 뭐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을 겁니다.” 그때 비올라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한다.

“분에 넘치는 눈이지. 매듭이 보이면 뭐해? 그걸 풀 머리가 없는데.”

“흥, 마법사면서 전문 분야 아니라고 해주도 못하는 마법사 머리보다는 낫다! 아, 라미아 온 김에 저 자식이 만든 인형 좀 봐 줘라.

[인형이면…… 에단의 상태를 보기 위해 만든?]

“그래, 그거. 그런데 만드는 방법이나 음산한 분위기가 딱 저주의 인형이야.”

“오냐. 그렇게 원한다면 특제 저주를 퍼부어 주마!”

저택에서와 마찬가지인 두 사람의 관계에 라미아가 까르르 웃었다.

[호호호, 그 인형 저도 아는데 저주 인형은 아니에요. 그래도 불안하면 확인은 해 볼게요.]

“고맙다!”

잡담을 나누며 얼마를 갔을까.

멀리 둘러 산을 오른 이드는 계곡 안에 성채의 절반을 담그고 있는 고성을 볼 수 있었다.

[상당히 화려한 곳을 비밀 거점으로 삼고 있네요.]

“그러게.”

당연히 자자수 영지에 숨겨진 거점처럼 숨겨진 장소를 상상했던 이드가 에단을 돌아보았다.

“주변 거주민들은 어떤 상단에서 버려진 요새를 사들여 본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자수 영지에서도 상단하고 엮여 있었지 않아?”

“그때와 엮어서 검은돌에 조사를 의뢰해 두었습니다.”

적절한 조치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이제 곧 잠입해야 할 요새를 살폈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기척이 둘 접근하는데, 남자야. 여기 사람을 붙여 두었나?”

“……그걸 잡아내시는군요. 검은돌 넷을 남겨 두었습니다.”

스톤이 놀람과 감탄을 담아 말했다.

이드는 그의 말에 기감을 확장시켰다. 그러자 계곡의 반대편에 숨은 두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갸웃했다.

검은돌 넷을 제외하고 요새 주변에서 어떤 경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새 쪽에는 경비가 없는 것 같은데?”

“예. 다른 눈이 있어서 경비가 필요 없습니다. 이전 은색 기사단의 습격을 받았던 숲 기억하시죠? 그때 숲을 내려다보던 황금 장막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기운입니다.”

이드도 그때의 일이라면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요새가 적의 거점이라는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에단이 말하는 기운 찾을 수 있겠어?”

[벌써 확인 중이에요. 그런데 요새를 감싸고 있는 다종의 마법에 섞여서 구분하기 힘들어요. 좀 더 가까이 가야 해요.]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정령과 많이 닮아 있는 초인력은 가까운 거리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리를 두는 순간 급격히 세상의 흐름에 섞여 버리기 때문에 탐지가 쉽지 않다.

특히 에단의 말로는 이 기운이 요새 주변을 감시하는 역할에 특화된 듯 그 기색이 특히 희미하다고 했다.

“마법으로는 힘들고, 간파의 눈으로 봐야 보인단 말이지. 그 기운이 요새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건 확실해?”

“확실합니다. 다만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등대의 불빛처럼 일정 간격으로 요새를 돌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 기운의 감시를 피해서 요새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었고요. 진입은 누구의 무능으로 포기했지만요.”

에단이 무형의 기운을 마치 랜턴 불빛을 보는 것처럼 가리켜 보인다.

“새삼 간파의 눈이 대단한 걸 알겠네. 살 수 있으면 사고 싶을 정도야.”

“그저 운이 좋아 얻은 능력인데요, 뭐. 하하하.”

이드의 말에 에단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자신의 능력을 칭찬받아 기분이 좋은 듯 어깨가 한 뼘은 올라가 있다.

하지만 이드의 말은 진담이었다. 감지는 하지만 볼 수 없는, 세상에 흐르는 기(氣)를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드도 처음 내공을 수련할 때 기를 느꼈을 뿐 보지는 못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하게 그 존재를 인지하는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그 인식은 단순히 기운을 가려내는 것뿐 아니라 기를 다룸에 있어서도 분명한 이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지금 요새를 지키는 기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에단 뿐이지 않은가.

‘지금 위치에서 마법이 힘들다면・・・・・・ 나는 어떨까?’

무극신기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세상의 기운을 받아 투명하게 벼려 낸 무극신기라면 아무리 희미한 황금빛이라도 구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지금 최우선 사항은 적의 거점 요새에 대한 조사였다. 혹시 문제의 기운을 감지하려다 발각되어 버리면 여러 가지로 곤란했다.

저 등댓불 같은 기운에 대한 실험은 조사가 끝난 후 시도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사이 요새를 감시하던 검은돌 암살자의 보고를 받은 스톤이 다가왔다.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바로 진입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단이 말했다.

“누굴 데려갈까요?”

에단의 말에 기사들이 자신들을 뽑아 달라는 듯 고개를 비죽 내민다.

“당연히 다 들어가야지. 요새는 넓고 시간은 적으니 인원을 최대한 사용할 거야. 침투 루트는 네게 맡긴다. 출발.” 타탁.

이드는 짧게 신호를 하고는 라미아의 허리를 안고 계곡 아래로 몸을 날렸다.

모두 암살단과 특수 기사단 출신들이라 은밀히 움직이는 데 능했다. 베일이라는 기사가 비올라를 업고 움직였다. 에단은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었다. 간파의 눈을 가진 덕분에 그의 안내는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선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한번 다녀왔던 길이기 때문인지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순식간에 산속을 헤쳐 나온 일행은 요새의 한쪽 벽면에 가 닿았다.

“입구는?”

“위쪽 경비 창으로 진입하려고 합니다.”

그 말에 고개를 든 이드는 오 미터 위 벽에 작게 뚫려 있는 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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