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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22화


759화

“됐습니다.”

방어구의 결착을 확인한 코린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딱 적당하네요, 코린 경.”

이드는 흉갑을 탁탁 두드렸다. 불편하지도, 헐겁지도 않을 정도로 딱 알맞게 조여졌다. 실로 귀신같은 솜씨가 아닐 수 없다.

“명예 후작님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황녀의 수련을 수발들며 손에 익힌 감각을 칭찬받은 코린의 얼굴이 붉다. 황녀와 달리 단단한 이드의 몸을 만진 감각이 손에 남아서다.

하지만 그 감각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흐응~ 코린 경 얼굴이 왜 붉을까?”

귀신같이 코린의 변화를 알아챈 릴리의 접근에 그녀는 급히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드는 그런 모습에 상관치 않고 팔다리를 움직여 방어구가 움직임을 제약하지 않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전에서 내력을 뽑아 올려 루키브레이커의 성능도 확인했다.

이드가 9년의 내력을 운용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루키브레이커는 9년을 넘자 미세하게 진동을 하기 시작하더니 10년에 살짝 걸치는 순간 따각 하고 미세한 금이 생겼다.

이드는 그 모습에 황급히 내력을 되돌리며 루키브레이커의 정확함에 감탄했다.

“성능은 확실하네.”

그때 코린이 물러난 자리로 다가온 황녀가 그 모습을 보다 말했다.

“설마 명예 후작께서 방어구를 걸치는 방법에 서투르실 줄은 몰랐어요.”

그녀도 코린 경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수련할 때 방어구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다. 아니, 차라리 의무에 가깝다. 제국 황녀의 몸에 흉이나 상처가 생겨서는 곤란하니까.

이드는 황녀의 진한 의문에 곤란한 미소로 답했다.

“제 고향에서는 군 이외에 갑옷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수련 때나 싸울 때 오히려 무거워 방해가 된다고 보았죠.”

“그렇게 무겁지 않은걸요?”

황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이드는 굉장히 아쉬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레센에는 무공이 없었지만, 제 고향에는 마법이 없었거든요. 아시겠지만 경량화 마법이 사용되지 않은 갑옷은 매우 무겁습니다.”

“어머나, 마법이 없는 곳이 있다니. 그럴 수도 있군요. 생각도 못했어요.”

황녀가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반짝였다. 무공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바로 이해한 듯하지만, 황녀에게 공기와 같이 당연한 마법이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기한 모양이었다.

반대로 이드는 입맛이 시큼털털하다.

무공의 지고함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역시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마법에 비해서 너무 많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클래스에서 찾을 필요 없이 기초 마법만 따져도 그렇다.

사막에 낙오되어 봐라. 기초 마법만 알면 워터로 물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무공은?

‘아, 그만하자. 생각할수록 무공에 대한 신뢰감이……………?

이드는 어쩐지 눈가가 시큰해지는 느낌에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은 곳입니다. 저도 마법을 처음 보고 지금 황녀님처럼 놀랐었지요.”

“그럴 것 같아요. 전 이야기만 들어도 이렇게 신기한데・・・・・・ 참, 그럼 기회가 되었으니 평소 궁금하던 걸 하나 물어도 될까요?”

이드가 고개를 끄덕여 무슨 말을 할지 귀를 기울였다.

“내공은 왜 100년이 아니라 일 갑자 60년이라는 단위로 묶여 있나요?”

“아하하하.”

이드는 황녀의 질문에 반갑게 웃었다.

그에 황녀가 눈썹을 찌푸렸다.

“제 질문이 이상한가요?”

“아, 죄송합니다. 황녀님. 그저 반가운 질문이라서 그랬습니다. 제게 무공을 처음 배운 자들이 곧잘 하던 질문이거든요. 소드 팰러스에 있는 일리나도 그렇게 물었었죠.”

“후작 부인도요? 그래서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문화의 차이라고 답했습니다. 일 갑자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설명하려면 하루를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라거든요.”

당장 갑자만 해도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이다. 여기서 십간과 십이지에 대한 설명과 음양의 조화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다 보면 정말 끝이 없다. 외래어가 아닌 오랜 역사 속에서 태어난 말은 그 오랜 역사와 유기적으로 묶여 있어 하나로 딱 잘라 설명하기 힘든 법이다.

차라리 검이나 신발 같은 물건이라면 예를 들어 보이며 설명이라도 하지만, 이처럼 형체가 없는 것에 대한 설명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드는 그러한 사실을 그레센에 존재하지 않는 무공을 전수하며 철저하게 체험했다.

“앗! 그럴 수가. 귀찮으셔서 그렇게 넘기시려는 게 아니고요?”

이드는 의심 가득한 황녀의 반응에 쿡쿡 웃었다.

어쩌면 그게 핵심이었다. 설명은 할 수 있다. 다만 오래 걸리고 귀찮아서 하지 않을 뿐이지.

이드는 스틸하트를 방어구 고리에 걸었다. 황궁에 초대받았기 때문에 다른 검은 두고 황제가 하사한 스틸하트만 챙겼었다.

“제가 황녀님께 그럴 리가요. 이러면 어떻습니까? 황녀님께서 제게 마나가 왜 마나인지 설명해 주시면 저도 내공의 기준이 일 갑자인 이유를 설명해 드리지요.”

말을 마친 이드는 황녀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연무장으로 올라갔다.

“이잇…….”

황녀는 그 뒷모습에 분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황녀 곁으로 릴리가 다가와 말했다.

“우오~ 명예 후작님, 밀당을 아시네요. 우리 황녀님을 이렇게 안달 나게 하시다니.”

그러나 장난은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한 법.

따닥!

평소의 웃음 대신 돌아온 딱밤에 릴리는 이마를 문질렀다.

“아야야~ 황녀님, 아파요.”

아프라고 때렸으니, 아픈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마나가 왜 마나인지는 설명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글쎄다.”

황녀는 게일과 마주 선 이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마나가 마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라니.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교양으로 익힌 마법학에도 들어 있지 않던 내용이다. 그걸 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져야 할지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짧은 질문 하나를 통해 이드의 괴로움을 통감한 것이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게일 자작. 방어구가 익숙지 않아서 말이지요.”

“보고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어쩐지 답하는 게일의 말에 가시가 있다. 당연했다. 그가 보기에 방어구의 착용보다 황녀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길게 느꼈으니까. 

“그럼 바로 시작하지요. 그럼 누가 시작 신호를 해야 할 텐데.”

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여 있던 기사들 중 최고 연장자로 보이는 기사가 달려 나왔다.

“제가 하겠습니다. 대련의 룰은 일반적인 것으로 하고, 끝은 대련자 중 하나가 쓰러지거나 항복할 때까지로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이드와 게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게일 인테그란. 인테그란 가문의 베링 검법과 소드 팰러스의 스톰 검법, 그리고 검후님의 난화십이식 중 삼식을 익혔지만, 이 자리에서는

난화십이식의 삼식만을 사용하겠습니다.”

게일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대련의 이유가 난화십이식에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드 예천화, 난화십이식 육식까지만을 사용하겠습니다.”

이드도 그를 따라 검을 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에 구경하는 기사들의 기대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상에, 내가 난화십이식끼리의 대결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게일 경이 삼식까지고, 명예 후작님이 육식까지면 게일 경이 불리하게 시작하는 거 아냐?”

“뭘 그렇게 따지나? 다 사정이 있겠지.”

“그럼, 그럼. 우린 대련만 구경 잘 하고 돈만 따면 되는 거야. 움화화화.”

그가 시원하게 웃는 이유는 이드에게 판돈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높이 올랐던 기사의 팔이 떨어졌다.

“시작!”

그의 신호에 이드와 게일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검을 부딪혔다.

쩌저정.

순식간에 열 번 정도 부딪힌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10년의 내력, 이드는 그 내력으로 신체 능력을 끌어 올렸고, 게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10년의 검기로는 상대를 베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투가 아닌 대련인 이상 상대를 죽이기보다 최대한 많은 유효타를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검기보다는 좀 더 빠른 순발력과 좀 더 강한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슈슈슉.

타탕!

덕분에 연무장의 대련은 원초적으로 화려해질 수밖에 없었다. 검기가 아닌 검 끝을 향하다 보니 공격과 회피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와 같은 격렬한 움직임은 보고 있는 사람을 뜨겁게 만들었다.

“잘한다! 죽여 버려!”

누굴 죽이라는 걸까?

이드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응원을 흘려 넘기며 게일의 찌르기를 받아 냈다.

난화십이식 삼식의 쾌, 강, 변이 무르익은 검놀림이었다. 차라리 삼초식의 검법이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과연 스스로 자신할 만큼 깊이 익혔구나.’

그러나 그것으로 완벽하다면 난화십이식이 열두 개의 식으로 나뉠 이유가 없다.

이드는 찌르기에서 베기로 변형되는 게일의 공격을 연이어 막아 낸 후 쾌에 둔을 혼합한 허허실실의 공격으로 돌려주었다.

쉬리리릭-

그에 어깨에서 시작된 변화가 내공의 그림자 없이 허공에 환상처럼 검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아랫배와 목으로 날아들었다. “흡!”

자신의 난화십이식에는 없는 흐름에 살짝 흐트러지던 게일의 움직임이 찰나의 순간 속도를 더하며 공격을 막아 냈다. 한 치 앞으로 날아든 공격을 찰나에 막아 낸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에게서 감탄이 터졌다.

반대로 이드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드의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 게일의 난화가 공기를 찢으며 공격해 들어왔다.

분명 몇 차례 반복되어 익숙한 공격이지만, 앞서의 공격보다 미세하게 더 빠르고, 미세하게 더 강했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는 이어지는 공방에서 계속되었다.

깡! 쿵!

이드는 발끝으로 흘려내는 반탄력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끼며 내심 어이가 없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속도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검의 충돌에서 나오는 진력은 절대 10년의 내력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루키브레이커는 10년 내력에 설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게일의 루키브레이커는 10년 이상으로 설정된 것이 분명했다.

이드는 이어지는 게일의 낙화를 화령화로 제압한 후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게일 자작, 자네의 루키브레이커∙∙∙∙∙∙. 10년 내력으로 설정된 물건이 맞나? 내가 보기에 그 이상인 것 같은데. 잠시 점검해 보는 게 어떤가?” 

그러자 차갑게 번들거리는 눈을 반달로 만들며 게일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앗!”

터엉!

동시에 오금을 노린 발차기.

이드가 그것을 무릎으로 튕겨 내자 그 힘을 이용해 게일이 거리를 벌렸다.

그런 게일의 얼굴에는 이드가 보았던 미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한 무인의 얼굴이다.

이드는 그 모습에 게일이라는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생겼다.

앞선 말실수로 느끼긴 했지만 이런 수까지 동원할 정도로 최악일 줄이야. 자신을 향해 적의를 보였다면 차라리 이해라도 했을 텐데.

“록에게 말해 주면 눈을 빼서 씻어야겠다고 난리를 치겠군.”

물론 당장은 록보다 이드의 실망이 큰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스스스슥.

이드의 스틸하트의 움직임이 정확히 세 배 날카로워졌다.

핏.

그리고 그 변화는 즉시 대련에 변화를 가져왔고, 이드의 검은 게일의 볼을 베었다.

주르륵.

게일의 볼에서 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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