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23화
760화
“……”
파르르르.
게일의 눈동자가 의문으로 흔들렸다.
이드는 그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게일과 마찬가지로 한층 빨라진 속도로 게일을 눌렀다. 순식간에 추월당한 속도에 게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빤히 보였다.
‘루키브레이커 때문에 10년 이상의 내공은 사용하지 못할 텐데 어떻게 널 따라오는지 궁금해 죽겠지?’
지금 게일의 머릿속을 채운 한 가지 질문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은 없다.
사실 내공의 금제 이전에 이드에게는 게일보다 절대 유리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육체다.
이드와 게일을 나란히 두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드가 게일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당연하다. 키는 비슷하지만 체격은 이드가 좀 작았으니까.
힘의 근원은 근육이고, 근육이 큰 쪽이 강력한 힘을 내는 것이 당연하니까.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드의 몸을 보고 의문을 품거나 실망한 기사들이 있을 정도다.
게일도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만 보고 속은 모를 때의 말이다. 근육의 크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근육의 질이 더 중요했다.
근골이 얼마나 질기고 강인한가.
이 근골의 뛰어남에 따라 같은 크기의 근육에서도 몇 배의 근력차를 보이게 된다. 2배 이상만 되어도 우락부락 근육만 키운 근육마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드가 그런 특별한 몸을 타고 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무공에 재능이 뛰어난 신체기는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드는 총 네 번에 걸친 환골탈태를 통해 선천적인 특별함에 모자라지 않는 강하고 질긴 근골을 가지게 되었다.
네 번의 환골탈태는 무림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그래이드론이 이드에게 남긴 드래곤 하트의 공이 지대했다.
그래이드론은 이드에게 라미아를 맡기는 대신 그에게 자신의 지식과 드래곤 하트를 남겼던 것.
이때 강력한 에너지 덩어리인 드래곤 하트를 무리 없이 담아 낼 수 있도록 신체 강화도 함께 베풀었다.
이드는 그의 배려와 선물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무림에서 겪은 두 번의 환골탈태에 이어 두 번의 환골탈태를 더 완성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이드는 강철같은 뼈와 탄소섬유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질기고 탄성 있는 근육을 가지게 되었고, 이 강력한 근골에서 나오는 힘은 10년이 아니라 30년의 내공으로 증폭한 신체 능력도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딱히 힘자랑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드는 육체적인 힘을 평균적인 남성의 그것으로 제한했다. 더불어 힘이 아닌 순수한 무공 실력만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게일은 이드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하고, 이드가 제한하고 있던 힘과 속도로 달려든 것이다. 그것도 반칙을 이용해서!
‘내 기대와 마음을 배신하다니! 배신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그 몸에 새겨 주마!’
이드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사실 일방적인 기대와 배려였으니 굳이 배신이랄 수는 없지만, 이드의 기분만은 그랬다.
덕분에 이드의 공격은 점점 거칠어졌다.
게일이 점점 힘과 속도를 더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게일도 피를 본 이후 이드를 따라 속도와 힘을 더했다. 이드의 속도와 힘에 대항하기 위해 내공의 운용을 늘린 것이다.
‘지금 느껴지는 기감으로는 15년쯤이네. 그래, 네가 어디까지 해 놨는지 보자.’
이드는 과연 게일이 그의 루키브레이커의 한계 설정을 어디까지 했을지 궁금했다. 지금 하는 행동처럼 두 배인 20년 내공으로 설정했을지. 아니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태연하게 이런 수를 쓰는 것처럼, 배짱 좋게 한계를 아예 없애 버렸을지 말이다.
이드는 그 한계가 게일 본인 그릇의 크기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단계 속도를 올렸다.
까가가강!
그에 긴 나팔 소리 같은 쇳소리와 함께 튄 불똥이 붉은 불꽃처럼 흘러내렸다.
“우와아아!”
이드와 게일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연무장 아래의 기사들은 그 화려한 모습에 감탄하기 바빴다.
“굉장해. 저게 정말 10년 내공의 빠르기라고?”
“내가 루키브레이커를 사용하면 저 반 정도의 속도도 나오지 않는다고! 게일 경이 원래 빨랐나?”
“그건 네 발이 느려서 그런 거고.”
“그런데 정말 대단하군. 게일 경의 실력이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명예 후작의 실력은 직접 보니 새로워.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지?”
“봐. 게일 경이 오히려 힘에서 밀리고 있어. 이래서 천재들이란! 범인들은 어떻게 따라가란 말이야!”
한 기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황궁 기사인 그도 범인이 보기에 충분히 천재라는 사실을 그만 모르는 모양이다. 뭐, 사람은 항상 위를 향해 목을 매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등신들, 지금 그걸 볼 때가 아냐. 핵심은 두 사람의 검법이라고. 난화십이식. 그 엄청난 검법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기회나 잘 잡아.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줄 알아?”
그러나 어느새 승부에 뜨거워진 기사들 중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떨어져 앉아 있던 황녀가 찰나 눈을 반짝였다.
“릴리, 저 기사의 얼굴을 잘 기억해 두렴.”
“네, 황녀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진짜 집중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사람. 황녀는 그런 사람들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제법 아끼는 편이었다.
그그그극!
검날이 흉갑을 긁으며 나는 섬뜩한 소리에 게일은 이를 악물었다. 흉갑에 막히긴 했지만 흉갑을 넘어 전해지는 예기에 간담이 서늘했다.
“크윽! 어째서!”
그의 머릿속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했다. 분명 자신이 우위에 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
그는 말과 달리 검법에서 이드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았다. 난화십이식을 삼식까지 익혔지만, 온전한 난화십이식이 얼마나 강력한지 검후를 보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검식을 제안하고 내공을 제안한 상태라면, 그런 상태로 자신이 조금만 더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최대한 승부를 오래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했다. 그만큼 내공의 존재는 무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였으니까.
아무리 굽는 사람의 실력이 좋아도, 팥 앙금 빠진 붕어빵을 사람들이 사지 않는 것처럼. 마르텔을 이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그에게 승리하지 못해도 그를 오랫동안 괴롭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이름값은 올라간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대련이 갑자기 이상해져 버렸다.
서서히 늘어 이미 20년이 된 내공으로 속도와 힘을 강화한 자신을, 저 이드는 어떻게 따라올 수 있는가.
‘설마 저 자식도 루키브레이커를….?
답답한 나머지 말도 되지 않는 생각까지 떠오른다. 다름 아닌 자신이 준비한 루키브레이커이지 않은가. 미리 준비한 것을 창고에서 꺼내는 것처럼 가져오기 전에 재차 확인까지 해 놓고서!
“빌어먹을, 그럼 도대체 저 속도와 힘은 뭐냐고!”
게일이 답답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그가 어떻게 네 번의 환골탈태에 대해서 알겠는가!
오히려 그 답답함은 그의 움직임에 삐걱임만 만들었다. 이드는 환하게 열린 빈틈에 망설임 없이 주먹과 팔목, 팔꿈치로 이어지는 연환기의 은혜를 내려 피분수를 뿜게 만들었다.
“크억!”
“허허허,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요? 내가 10년 내공을 쓰는지 30년 내공을 쓰는지 말이오. 어떻게…… 지금이라도 잠깐 멈추고 루키브레이커를 확인해 보시겠소?”
이드는 게일이 뿜어낸 핏속에 들어 있는 이빨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고 하면 당장 그러겠다는 듯.
그러나 게일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이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확인하면 명예 후작을 의심했다는 부담과 함께 그가 가진 루키브레이커의 이상한 설정도 발각될 테니까.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심정이란.
이드는 급하게 뿜어지는 게일의 숨소리에 으흐흐하고 음흉하게 웃었다.
“그런데 나한테만 한번 말해 보겠소? 그 루키브레이커, 내공 제한 설정은 되어 있는 것이오? 아무리 안으로 숨겨도 그렇지. 30년 내공이라니. 내 생각보다 자작의 배짱이 두둑하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조금씩 늘어난 게일의 내력은 어느새 30년, 반갑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쯤 되면 루키브레이커의 존재 의의가 없다. 저러고 10년 내공만 쓰고 있다며 연기를 하고 있으니 그 뻔뻔함의 그릇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물우물, 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 낸 게일이 여전히 시치미를 뗀다.
이드는 그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절대, 절대로! 자신에게 맞아 빠진 앞니 때문에 게일의 발음이 새서 웃는 것이 아니다.
신관과 마법사가 있어 저 모습을 계속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럼 알 때까지 가 봅시다.’
잠시 멈췄던 대련이 다시 이어졌다.
한번 끊어졌기 때문인지 대련의 양상이 바뀌었다. 게일이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고 껍질 속에 숨은 거북이처럼 철저히 방어식 속에 숨었다.
“거 잘됐네. 마침 나도 공격 방식을 바꿔 볼 생각이었는데.”
그가 최대한 버티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을 안 이드도 공격 방법을 바꾸었다. 앞서는 반칙을 사용해 속도와 힘을 올린 게일에게 그대로 힘과 속도로 갚아 주었다면, 이번에는 대련을 하게 된 원래 주제로 돌아간 것이다.
이드는 단단히 가드를 올린 게일의 주변을 돌면서 일식 난화부터 육식 분영화까지의 여섯 검식을 집요할 정도로 철저하게 둔과 환에 중점을 두고 풀어냈다.
둔으로 밀고 당겨 게일의 방어를 뚫고, 환으로 눈과 감각을 속여 뒤통수를 친다.
강한 힘으로 뚫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열기로 외투를 벗기는 것처럼 스리슬쩍 게일의 방어를 무너트린 것이다.
그리고 방어를 무너트린 후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퉁!
“커헉!”
검면에 복부를 당한 게일이 바닥을 구른다.
“끄악!”
어깨를 맞은 게일이 옆으로 구른다.
마치 공이라도 된 것처럼 게일이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차라리 힘 대 힘으로 부딪혔으면 강인한 사나이의 로망으로 봐 주기라도 할 텐데, 어떻게 봐도 힘없는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게일의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그저 흉하게만 보였다.
“쯧쯧, 게일 경의 실수야. 강자와의 대련을 끝까지 당당해야지.”
“아쉽군. 아쉬워.”
기사들이 입맛을 다셨다. 흉한 모습을 만든 이드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목숨을 건 대결도 아니고, 수비에 치중하는 게일의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이길 수 없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부딪치고 깨져서 배워라. 그것이 대련의 핵심인데 말이다.
게일이 원했던 반응과는 거리가 먼 반응들이었지만, 정작 게일은 사방을 구르느라 그런 반응을 캐치할 정신이 없었다.
이드는 정신없이 구르고 다시 벌떡 일어난 게일을 보았다.
전신을 골고루 두드린 이드의 공격에 찢어지고 더럽혀진 방어구와 옷, 산발이 된 머리와 퉁퉁 부어오른 한 볼까지.
이드는 황녀가 듣도록 크게 말했다.
“황녀님은 지금까지의 모습을 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번에 보여 드릴 것이 전 삼식에 둔과 환이 깃들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이드의 검이 부웅하고 크게 휘돌며 사라졌다.
이는 게일이 그렇게 본 것으로, 검이 그의 사각으로 사라진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회오리처럼 뿜어지는 검풍에 게일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이, 이건!”
한순간 중력을 잃은 감각에 게일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본 이드가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한숨 주무시오, 자작, 루키브레이커의 확인은 내가 하지.”
오싹!
순간 게일의 호흡이 멎었다. 그는 이드에게 당하고 있는 상황에 분노했지, 이드가 자신의 루키브레이커에 손을 대는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대련에서 이겨도, 져도 그가 정신을 잃는 상황은 최소한 그의 머릿속에 없었으니까.
이드의 반응을 생각지 못한 초보 음모자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두려운 결과에 게일의 손이 자동적으로 루키브레이커로 향했다. 들통 나기 전에 루키브레이커를 원상태로 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드도 그걸 가만히 봐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벼락처럼 검풍을 뚫고 낙화식이 펼쳐지며 게일을 바닥에 떨구었다.
퍼억!
“쿨럭!”
그리고 다시 튕겨 오르는 그를 향해 수십으로 분열된 검격이 이어졌다.
퍼퍼퍼퍽!
순식간에 검과 대지의 연합 공격 사이에 끼어 버린 게일은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루키브레이커로 향하는 손은 이드의 집중 공격에 이미 부서진 뒤였다.
하지만 게일은 자신의 손이 부러진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몸에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기 전 이드의 손이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그의 가슴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봅시다, 자작.”
빙긋.
이드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새겨지는 순간.
쩍!
연무장에 선명히 족적을 남기는 진각을 타고 오른 회오리 형태의 경력이 이드의 손끝에서 터졌다.
퍼엉!
이드의 손과 게일의 가슴 사이에서 강력한 충격이 폭발했다.
그와 함께 게일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갔다. 발경의 충격과 동시에 기절한 것이다.
연무장 끝에서 구르는 그의 모습에 기사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갔다.
폭발음이 워낙 컸기 때문에 게일의 상태가 크게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드도 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련으로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발경의 발현 위치만 조금 뒤로 물리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일부러 앞에서 터트려 게일을 기절시키기만 했다.
뭐 충격이 적지는 않겠지만, 크게 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사들도 그 사실을 확인한 듯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게일의 상태를 보며 혀를 내두르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검왕자로 불리던 게일을 이토록 망가트린 이드의 손속에 여러모로 감탄한 것이다.
그때 연무장에 서 있던 기사가 손을 들어 이드를 가리켰다.
“크흠, 게일 경이 기절했기 때문에 이 대련의 승자는 이드 명예 후작님이 되시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마친 기사는 다른 자들처럼 게일을 향해 달렸고, 그를 대신하여 황녀의 일행이 이드를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