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24화
761화
“축하드려요?”
황녀의 말에 이드가 납검하며 말했다.
“축하면 축하지, 왜 의문형입니까?”
“명예 후작님이 이기시는 게 너무 당연했으니까 굳이 덧붙이는 느낌이 들어서요.”
“글쎄요. 세상에 절대는 없으니, 졌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승부에서 이겼다면 무조건 축하해 주는 것이 좋을 겁니다. 축하의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승리를 축하드려요. 그런데 게일 경은 괜찮을까요?”
황녀가 ‘옜다. 축하!’라는 느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걱정스런 눈으로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게일을 살폈다. 최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간 그와 함께한 정이 있어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그에 이드가 말했다.
“소리만 요란했지, 직접적인 공격은 아닙니다. 뭐, 바닥에 부딪히며 찢어지고 깨진 곳은 있겠지만 그런 자잘한 부상은 포션만 써도 수습이 될 겁니다.”
사실 포션을 쓸 필요도 없다. 황실에서는 황궁의 기사들을 위해 신관을 항시 대기시키고 있으니까.
“게일 경을 배려해 주셨군요.”
이드는 누더기가 된 게일의 모습을 보고도 배려라고 말하는 황녀를 조금 신기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배려했다면 저 꼴은 아니겠죠. 그냥 대련이기 때문에 생명을 취하지 않는 선을 지켰을 뿐입니다. 마지막 공격이 완벽히 들어갔다가는 황실 기사 살해 죄로 황제 폐하 앞에 서야 할지 모르는 일인데, 그건 피해야지요.”
말과 함께 바닥을 툭툭 두드리는 발끝을 따라 이드의 발 모양대로 부서진 돌가루가 날렸다.
코린은 손가락 두 마디 깊이의 족적에 그 충격에서 나올 힘을 대충 헤아리고는 혀를 내둘렀다. 저런 힘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이드에게 대련을 신청한 게일은 얼마나 무모한가!
그때 게일의 상태 확인을 마친 듯, 한 기사가 황녀에게 달려와 말했다.
“비록 크고 작은 상처가 있어 치료가 필수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합니다, 황녀 전하.’
말을 마친 기사는 이드를 향해서도 기사의 예에 따라 가슴을 두드려 보였다.
“명예 후작님의 황홀한 솜씨와 게일 경에게 베푸신 배려에 감탄했습니다. 존경합니다.”
동료 기사를 떡으로 만든 자에게 존경을 표하다니. 역시 무림인이나 기사나 강함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것은 똑같다.
기사의 인사를 받아 준 이드는 황녀를 향해 말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시죠.”
“그러죠.”
이드의 말에 두 사람은 천천히 게일에게 다가갔다. 황녀의 접근에 게일을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이 비켜섰다.
그 사이로 반듯하게 눕혀진 게일이 보였다. 누군가 얼굴을 닦아 준 듯 깔끔한 얼굴로 편안히 숨을 쉬는 그는 잠든 것처럼 기절해 있었다.
황녀는 그를 잠시 살피다 가장 부상이 심해 보이는 오른손을 잠시 눈여겨보고는 말했다.
“신관을 불렀나요?”
“아닙니다. 옮기는 것에 문제가 없어 들것을 가져와 치료소로 직접 옮기려고 합니다.”
“신관에게 특별히 신경 써 달라고 전하세요.”
하지만 아직 게일을 옮겨서는 곤란하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드가 들것이 오기 전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 물건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이드의 손에 들린 루키브레이커를 바라보았다. 다만 이상한 것은 루키브레이커를 든 이드의 팔에 루키브레이커가 장착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그의 손에 있는 루키브레이커는……………?
사람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게일에게 향했고, 과연 그의 팔에는 있어야 할 루키브레이커가 없었다.
“그걸 언제.”
“어쩌다 보니?”
사실은 마지막 공격에서 지공으로 결착을 자르고 슬쩍한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도 모르게. 실로 그쪽 세계의 프로들이 보고 울고 갈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제게 주시면 정리해 두겠습니다.”
이드를 존경한다던 기사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드는 손에 넣은 좋은 증거물을 그냥 내어 줄 뜻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이드는 오히려 내밀었던 루키브레이커를 당기며 말했다.
“정리해 둔다면 게일 경 개인의 물건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보급품입니다.”
“나는 게일 경이 가져와서 그의 것인 줄 알았지요. 보급품이라면 내가 이걸 시험해 봐도 문제가 없겠군요.”
“하하하,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신입 기사는 루키브레이커의 파손금을 내야 하지만, 명예 후작님께는 특별히 무료로 망가트릴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게일이 기절하지만 않았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았을 일이지만, 그런 자세한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기사는 넉살 좋게 농담을 섞어 말하고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이드는 즉시 자신의 팔에 있던 루키브레이커도 풀어 손에 들었다.
자신들에게는 익숙한 루키브레이커를 신기하게 여기는 이드의 모습에, 게일의 상태를 보고 두려움과 경외를 가졌던 기사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럼 어디 제대로 작동하는지 봅시다.”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시선을 모은 이드는 양손에 든 루키브레이커에 내공을 주입했다.
“먼저 1년, 3년, 7년, 9년・・・・・・ 오! 미세한 떨림이 생기는군요. 마지막으로 10년.”
푸스스스.
카운트다운이 10에 닿는 순간 미리 설정된 대로 루키브레이커가 부서졌다. 마치 모래처럼 곱게. 대련 중에 날카롭게 깨어져 그것으로 인한 부상을 방지한 정성스러운 옵션이다.
“오오, 과연 대단하군요.”
이드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러나 그런 이드의 모습에 기사들은 앞서와 같이 재미있게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루키브레이커는 왜 부서지지 않지요?”
문제는 이드의 손에 멀쩡하게 들려 있는 루키브레이커에 있었다. 이드가 게일의 것이라고 내민 후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은 물건.
“…….”
무언가를 예감한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혹시 설정이 잘못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내공의 운용량을 좀 더 올려 볼까요? 황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도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잘못되어 있다면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 확인해야겠죠.”
황녀가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눈치 빠르게도 부서지지 않은 루키브레이커를 보자마자 단번에 상황을 짐작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게일에게 향하던 걱정스러운 눈길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유리처럼 무심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드는 황녀의 허락과 동시에 운용하는 내공을 늘렸다.
“15년, 20년, 30년, 40년, 50년, 일 갑자・・・・・・ 하하.”
일 갑자의 내공을 운용하던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일 갑자라니. 10년 내공을 제한하는 루키브레이커가 일 갑자의 내공 운용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던져 본 말처럼 정말 내공 제한 설정이 되어 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어이없음에 튀어나온 것이다. 기사들도 술렁였다.
“이봐, 이봐. 설마 아니겠지?”
“눈에 보이는 걸 부정할 셈인가? 아니긴 뭐가 아냐.”
“미쳤군. 미쳤어. 그러지 않고서야…….”
이드에게서 게일로 옮긴 기사의 눈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언제나 정정당당해야 할 기사가, 그것도 명예 후작과 같은 영웅을 상대로 너무 치졸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저자가 우리 황궁 기사단에 똥물을 튀기는구나.”
이전까지 게일이 있어 주목받았다면, 지금부터는 게일이 있어 조롱받을 것을 상상하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게일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드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이제 10년 단위가 아니라 20년 단위로 올라 이 갑자에 닿았다. 그러나 루키브레이커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드가 내공을 갈무리하고 말했다.
“이 이상은 의미가 없겠군요.”
당연하다. 말이 쉬워 이 갑자지, 그 힘은 깨달음을 얻어 그레이트 소드에 오르지 않는 이상 휘두를 수 없는 강력한 힘이다.
황궁 기사단에서도 그런 경지에 오른 것은 오로지 한 명뿐이다.
“이 루키브레이커는 어딘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어떤 특별함인지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모두가 다 안다.
“크흠, 허락해 주신다면 저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드에게 실험을 허락했던 기사가 뭔가에 재촉당한 듯 앞으로 나섰고, 이드는 그의 손에 루키브레이커를 올려 주었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전력을 다해 내공을 운용했다. 이미 이드가 확인했기 때문에 차근차근 오를 필요가 없다.
어차피 황궁 기사단의 명예에 먹칠을 할 물건, 부서져 버린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끄으응~”
그러나 그가 아무리 똥 싸는 표정으로 힘을 주어도 루키브레이커는 미동도 없다. 무기라면 강력한 내공에 진동이라도 할 테지만, 루키브레이커는 내공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내공을 주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확인을 위해 나섰던 기사가 손을 들고 물러났다.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군요.”
그 모습을 확인한 황녀가 짧게 감상을 말했다.
그에 기사들은 마치 자신을 향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황녀 앞에서 낱낱이 공개된 망신을 게일 개인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황녀는 그런 기사들을 살피다 이드를 바라보았다.
이드는 그녀를 향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러자 황녀가 쓰게 웃으며 기사들을 보고 입을 열었다.
“모두 고개를 드세요. 아무래도 이번 대련에 제가 알지 못하는 비겁한 수단이 사용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제국을 지키는 정의로운 황궁 기사단에서 이런 비겁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에 오늘의 일은 공평하신 황제 폐하께 고한 후 내가 직접 조사하도록 하겠어요.”
“황녀 전하의 공정한 판단을 따를 뿐입니다.”
마음 같아서야 오늘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이드의 손에 들린 루키브레이커를 부숴 버리고 싶지만, 감히 그 마음을 내보일 수 없는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때까지 이 연무장과 기사단의 창고는 봉인하겠어요. 코린 경은 즉시 경비를 세우도록 하세요.”
“예. 황녀 전하.”
“그리고 문제가 된 루키브레이커는 그대가 직접 황궁 마법사에게 가지고 가 물건의 출처부터 기능까지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전하세요. 내가 직접 확인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드는 황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코린에게 루키브레이커를 내어 주어야 했다.
뭐, 이미 사용 목적을 다해 미련 없는 물건이지만 말이다.
“명예 후작님께서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주셔야겠습니다.”
황녀가 말했다.
일전 파티에서 이드에게 검을 들었던 기사에 이어 게일까지. 황궁의 기사가 자꾸 이드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도록 하죠.”
이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후원자를 위해서 그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공식적인 문제다. 사과의 의미로 어떤 것이라도 얻어 낼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부자도 공짜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법이다.
이드와 황녀가 떠난 연무장에 기사들과 게일만이 남았다.
“후우~”
기사들이 동시에 긴 한숨을 내쉰다. 운이 좋아 좋은 구경과 자랑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던 것이 이런 사태로 막을 내릴 줄이야.
“제기랄!”
그때 기사 하나가 누워 있는 게일을 노려보더니 냅다 바닥을 차고는 등을 돌려 휑하니 연무장을 나가 버렸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기사들 역시 게일을 버려두고 연무장을 떠나 버렸다.
끝에 홀로 남겨진 막내 기사는 쓰러진 게일과 떠나는 기사들을 번갈아 보다가 울상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도 게일을 버려두고 나가 버리고 싶지만…….
“막내라는 것이 죄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