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41화
778화
수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꿈을 심어 준 이드는 음속의 영역에 이른 속도를 반탄기, 에어브레이크, 중력 중화의 삼 단계로 나누어 줄여 나갔다. 이만큼 속도가 붙으면 가속만큼이나 감속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속도를 줄일 때마다 극한의 압력차로 인해 만들어진 비행운이 둥근 도넛을 만들다 흩어졌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화려하지만 어쩔 수 없다. 두 다리가 제비 다리처럼 부러지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꼭 거쳐야 하는 절차다.
처음 뇌룡노도를 성공하고 착지하다가 다리에 금이 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후우~ 이건 발동하는 것보다 착지가 더 어려워.”
투둑.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제트기 조종사의 심정으로 부드럽게 착지한 이드는 옷에 내려앉은 그을음을 털어 내고 주변을 살폈다. 그가 있는 곳은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저 멀리 지는 해를 등진 작은 성채가 보였다. 하늘길에 놓였던 붉은 라인이 가리키던 곳.
“저기지?”
[네. 백작성이에요.]
라미아가 가면 형태로 돌아간 뒤 골렘을 꺼내며 답했다.
이드와 라미아는 단숨에 성 앞에 도착했다. 성문 앞에는 해가 지기 전에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검문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이드는 굳이 기다려 검문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누구인지 사실대로 밝힐 것도 아닌데, 굳이 오랜 시간을 기다려 검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훌쩍 성벽을 넘었다.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하얀 연기와 빵 굽는 냄새를 피워 내는 곳이 가득했다.
목적지는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성안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이 내성일 테니까. 이드는 지는 해의 그림자에 숨어 지붕 사이를 달렸다. [일단 엘프들부터 찾는 게 좋겠죠?]
이드의 옷깃을 잡은 라미아가 유령처럼 둥둥 떠가며 말했다. 이동은 이드에게 맞기고 부유 마법만을 사용한 것이다.
“당연하지. 시온 자작은 성안에 있고, 엘프들은 밖에도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 주변엔 제대로 된 숲도 없는데, 파견된 엘프들은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달리는 중에 주변을 살핀 이드가 말했다. 자신의 부탁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엘프들이 고맙고 미안했다. 일을 시켰으면 기본적인 부분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말이다.
[온 김에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고, 집이라도 하나 구할까요?]
“곧 왕실에서 시온 자작을 데려갈 텐데?”
그렇게 되면 엘프들도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며칠 쓰고 버려질 집을 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루스한에 사둘까요? 특별히 커다란 정원이 있는 저택으로.]
아루스한은 왕실이 자리한 일리나스의 수도다. 시온 자작이 곧 왕실의 부름을 받아 그쪽으로 갈 테니, 그를 보호하려면 엘프들도 수도로 가야 했다.
“아니. 자작이 아루스한에 가면 엘프들은 숲으로 돌려보낼 거야. 엘프들에게 거기까지 부탁할 수는 없지.”
자작이 왕실의 그늘에 들면 사무엘 백작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사무엘 백작 대신 왕실이 자작의 목줄을 쥘 수는 있겠지만, 아무렴 왕실의 체면이 있지 사무엘처럼 노예로 팔아먹고, 강제로 혼인시키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 우리 마을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으려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넝쿨이 엉킨 초록 지붕에 올라선 이드가 흥얼거리며 기감을 돋웠다. 레이더처럼 내공의 그물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실려 온 냄새를 맡는 개처럼 독립된 영혼이 뿜어내는 개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드는 곧 몸을 숨긴 엘프의 존재와 그 속에서도 낯이 익은 기감에 눈을 반짝였다.
“오호라, 윌이 여기 나와 있었네.”
[숲 밖에 대해서 자주 묻더니, 기회다 싶었나 보죠.]
“그럼 오랜만에 얼굴을 좀 볼까?”
말을 마친 이드가 유령처럼 날아올랐다.
그가 향한 곳에는 윌이 따뜻하게 데워진 굴뚝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예민한 엘프의 감각으로도 이드의 접근을 알지 못한 듯했다. 이드는 그를 위해 살짝 인기척을 내며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 배려는 없는 것과 같았다. 어차피 갑자기 나타난 기척에 놀라긴 마찬가지였으니까.
흠칫.
윌의 몸이 굳음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날카로운 기도가 뻗어 나왔다. 곧장 검이 날아올 분위기에 이드가 급히 입을 열었다. “워, 워, 진정해요, 윌. 나에요.”
“……이드?”
다행히 말하는 것이 늦지 않았는지, 이드를 돌아본 윌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동시에 내성 곳곳에서 뿜어지던 살기가 순간의 착각인 듯 스러졌다. 한순간 뿜어지는 윌의 기운에 숨어 있던 엘프들이 반응한 것이다. 말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난리가 났을 상황에 이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반가워서 바로 달려왔는데. 먼저 말이라도 걸 껄 그랬어요.”
“다음엔 꼭 부탁하죠.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이드가 직접 오다니. 혹시 드래곤이 자작을 노리기라도 하나요?”
자신들이 있는데도 이드가 달려왔다면, 그만한 존재가 연관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윌이 생각하는 이드라는 존재는 그만큼 강력한 힘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드래곤은 아니지만, 성가신 인간들이 자작을 노리고 있죠.”
윌과 반가운 악수를 나눈 이드는 그에게 백작가에서 꾸미고 있는 일을 이야기했다. 파견된 엘프 중 마법사가 없어서 직접 달려와야 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윌은 자신들의 초보적인 실수에 허탈해하고, 백작의 욕심에 질색하며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이드가 말하지 않았다면 저희가 막지 않았을 일이네요. 최근 며칠 만에 인간의 성욕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았거든요.”
“하하하.”
내성에 숨어 자작을 보호하던 엘프들이 무엇을 보았을지 상상한 이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충만한 사랑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광경만은 아닐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든다는 것이다.
월도 어색한 이드의 모습에 그 이상 그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이드가 관심을 가질 소식을 전했다.
“아무튼 마침 적당한 때 오셨네요.”
“……혹시?”
“네, 마침 오늘도 파티가 있습니다. 오늘 뿐 아니라 최근엔 거의 매일 작은 파티의 연속인데, 자작은 모든 파티에 강제로 참석당하고 있습니다.” 윌은 말과 함께 파티가 준비 중인 한 건물을 가리켜 보였다.
“오~ 요란하게 서둘러 달려온 보람이 있었네.”
[그러게요. 하루만 늦었으면 이그렌에게 새어머니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나 하인들을 독촉하자 윌이 말했다.
“저자가 소영주입니다.”
그는 제법 훤칠한 키에 호남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멀쩡하게 생겨서 한다는 짓이 자작에게 약을 먹여 고모와 결혼시킬 계획이나 짜는 남자인데.
대충 그의 얼굴만 확인한 이드가 윌을 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 시온 자작은 방에?”
“예.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인질의 생활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드는 윌을 따라 시온 자작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온 자작의 거처는 내성의 별채였다. 사방이 트여 있어 감시하기 좋은 곳이, 딱 고급 인질용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곳이었다.
이드는 윌을 밖에 두고 라미아와 함께 별채로 잠입했다.
안은 조용했다. 별채 안의 인기척은 하나뿐이었다.
조용히 자작을 만나고 싶은 이드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똑똑.
“들어오시오.”
문을 두드린 이드는 안에서 들린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
그러자 작은 탁자에 힘없이 앉은 남자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왜소한 체격에 심한 마음고생으로 주름진 얼굴은 본래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벌써 파티가 시작할 시간인가 보구려. 갑시다.”
“시온 자작이십니까?”
“・・・・・・ 당신들은 누구요?”
이드를 자신을 데리러 온 기사로 여겼던 자작은 힘없는 눈으로 이드를 바라보았다.
정체 모를 침입자를 경계하기는 하지만, 이미 인질로 잡혀 있어 이보다 더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그렌 경의 부탁을 받고 자작을 찾아왔습니다.”
“이그렌의 부탁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려.”
이그렌의 이름이 나오자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무기력하던 자작이 바짝 긴장한 눈빛으로 이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자작은 이그렌의 부탁이란 말보다, 백작가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시험한다고 나올 것도 없었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에 아들의 몸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자작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드는 예상했던 모습에 준비한 쪽지를 자작에게 건넸다. 그것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가져온 이그렌의 짧은 편지였다.
그 안에는 이드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상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두 부자만이 알고 있는 일을 적어 이그렌이 이 글을 적었다는 증거로 삼았다. 한자, 한자 신중히 편지를 읽어 내린 자작은 떨리고 감격스러운 눈으로 이드와 라미아를 바라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정말 이드 님이십니까?”
“반갑습니다, 시온 자작.”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작은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아아…… 명예 후작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드는 아이처럼 우는 자작을 달래기 위해 제법 진땀을 뺀 뒤에야 그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휴~ 처음부터 못난 모습만을 보여드려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읽으셨습니까?”
이드가 묻자 자작은 흘리던 눈물도 쏙 들어간 표정으로 뿌득뿌득 이를 갈았다.
“제 눈으로 직접 읽고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소영주의 고모는 누굽니까? 이그렌 말로는 결혼했다고 하는데.”
“허허, 그렇지 않아도 게덴 부인이 갑자기 남편과 헤어지고 백작가로 돌아온 것이 이상했는데, 그게 저와 혼인하기 위해서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드는 자작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잘 살고 있던 여동생을 이혼시켜 데려온 거란 말입니까?”
“……잘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덴 부인도 백작가의 피를 이어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무공을 얻으려 자작을 인질로 두고, 이그렌을 끌고 접근할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자작을 노리고 일부러 이혼까지 시킬 줄이야!
[어쩌면 이혼한 남편은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게덴 부인의 남편은 백작가의 상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부인과 이혼하면서 직위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결사반대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끼리끼리 모였다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는 집안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일단 이그렌의 생각은 아셨을 테니, 자작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드가 전달한 쪽지에는 백작가와 완만하게 헤어지고 평온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그렌의 바람이 적혀 있었다.
과연 자작의 생각도 그와 같을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자작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 생각 같아서는…… 백작가의 일족이 멸망하기를 원하지만・・・・・・ 이그렌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