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43화
780화
이드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자작의 위장에 대기하고 있던 캡쳐가 발동했다.
아티팩트에서 뿜어진 마나의 그물이 자작의 위와 식도, 구강을 뒤덮었다.
“음?”
“자작, 와인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요. 아닙니다. 맛이 무척 뛰어나기에 놀라서 그럽니다.”
“하하하, 제가 괜히 자신한 것이 아닙니다. 자, 다시 건배.”
시디푸는 혹시나 자작이 와인의 이상을 알았을까 놀랐던 가슴을 쓸어 내리고는 다시 건배를 외쳤다.
자작은 시디푸를 따라 잔을 기울이며 내심 캡쳐의 효과에 놀라고 있었다.
‘와인을 머금은 느낌은 나는데, 맛과 물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니. 대단한 아티팩트로군.’
마나실드로 몸에 들어오는 것을 감싼다 하더니,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동시에 무서운 사용법도 떠올랐다. 만약 죄인에게 캡쳐를 넣어 두면 그자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허기를 느끼다 말라 죽게 될 것이다!
캡쳐에 대한 믿음이 생기자 시디푸가 권하는 와인을 마시는데 거침이 없어졌다.
오히려 계속 자신이 와인을 마시게 하려고 아양을 떠는 시디푸의 꼴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어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재미를 즐기고 있으니, 은근히 몸에 열이 오르고 가슴이 빠르게 쿵쾅거리는 것이 아닌가.
‘혹시 캡쳐가 잘못된 것인가?’
순간 불길한 생각을 떠올린 자작의 얼굴에 두려움이 비쳤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드는 재빨리 전음을 날려 자작을 안심시켰다.
[자작, 지금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초반에 약간의 약을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와인을 마셨는데 아무런 약효가 없으면 백작가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캡쳐의 발동을 살짝 늦게 했는데,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을 미량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 자작은 사람들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시디푸에게는 영락없이 약발이 오르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런, 시온 자작은 보기보다 술이 약하시구려. 후후후.
“아, 예. 좋은 술을 마셔 일찍 취하는 모양입니다.”
이드는 시디푸와 이야기하는 자작의 몸 상태를 살폈다. 미약하게 흡수시킨 약을 통해 다량의 약을 섭취할 경우 자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약이 끌어내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또 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인간의 몸에 대해서는 의사 이상으로 잘 아는 것이 무인이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드는 자작에게 우선 숨을 빨리 쉬라고 전음을 날렸다.
[지금 자작 몸의 반응으로 예측해 보건대, 자작이 캡쳐 없이 약을 먹었다면 몸에 열이 올라 눈가가 붉어지며, 숨이 빨라지고, 성욕이 올라야 합니다. 미약하게 흡수한 약효로 열도 오르고 눈도 붉어졌으니, 이제 숨을 빨리 쉬세요. 그리고 급히 취기가 오른 것처럼 취한 척 어지럽다고 말하면서 휘청거리세요.]
자작은 아바타가 되어 이드의 말을 충실하게 따랐다.
“후우~ 오늘따라 유독 일찍 취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어지럽군요.’
“이런, 아쉽군요. 아직 술이 조금 남았는데. 그럼 이 술은 다음 파티에 마시기로 하고 일찍 들어가서 쉬시오. 고모님, 아무래도 자작이 심하게 취한 듯하니 방까지 같이 가 주십시오.”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오오, 부인을 귀찮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자작이 약하게 거부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게덴 부인이 자작을 끌다시피 해서 부축하고 나갔다. 범인을 끌고 가듯 자작을 데려왔던 기사들도 따르지 않았다.
괜히 기사들이 있으면 자작이 게덴 부인을 무를 수도 있어 미리 시디푸가 지시를 해 둔 것이다.
자작은 일부러 흔들흔들 취한 걸음으로 게덴 부인을 더욱 힘들게 하며 별채로 향했다.
그리고 게덴 부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별채에 도착해 문을 닫는 순간, 이드가 나타나 그녀를 기절시켰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힐끗 돌아본 이드가 자작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한두 시간 지나면 약효가 사라지겠네요. 몸에 이상은 없지요?”
“몸에 열이 있어서 그런지 취한 것 같기도 하고 감기가 온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 입을 벌리세요. 캡쳐를 꺼내야 하니까요.”
이드는 자작이 입을 벌리자 섭물진기의 묘기를 보여 자작의 뱃속에 든 캡쳐를 꺼냈다.
슈루루루룩.
반짝이는 은이 머리가 된 캡쳐가 자작이 마신 와인을 뱀의 몸처럼 길게 뽑으며 자작의 입에서 기어 나왔다. 자작은 별다른 이물감 없이 자신의 입에서 기어 나오는 캡쳐의 모습에 신기한 듯 동그란 눈을 했다.
완전히 밖으로 나온 캡쳐 안의 와인은 족히 반병은 되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이 마시셨네요.”
“약효를 빨리 보고 싶었던지 자꾸 권하더군요.”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제 약으로 흥한 자는 약으로 망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줘야죠. 로이나.”
이드가 말을 마치며 정령을 소환했다.
퐁퐁퐁-
이드의 부름에 물방울이 몽글몽글 생겨나더니 물의 중급 정령 로이나가 나타났다. 이드는 얌전하게 명령을 기다리는 로이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 와인에서 이물질만 따로 분리해 줄 수 있니?”
이드의 말에 로이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와인에서 소주잔을 채울 만큼의 투명한 액체를 분리해 냈다.
“좋았어. 그럼 이 와인은 너 줄게. 잘했다.”
이드의 말에 로이나가 기뿐 표정으로 공중에 뜬 와인을 끌어안고 사라졌다.
순수한 대자연의 정수가 숙성된 최상급의 와인은 정령들에게도 먹힌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두드려 만든 창칼 따위와는 다르다.
“많기도 하군요. 그건 어떻게 하시려고 분리하셨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용한 사람들에게 돌려줘야지요.”
이드는 동그랗게 말린 이름 모를 약을 손에 쥐고 기절해 있는 게덴 부인에게 다가갔다.
약을 써서 자작을 옭아매려고 했던 것처럼,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서 백작가 가장 말단 하인의 방에 던져 둘 생각이었다.
과연 내일 아침, 별채에서 나올 게덴 부인의 모습을 기대했을 시디푸가 하인의 방에서 나오는 게덴 부인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심히 궁금했다.
“…….”
자작은 지옥을 경험할 게덴 부인의 미래에 애도를 표하고는 게덴 부인의 머리를 잡고 입을 벌렸다. 아무리 불쌍해도 죗값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드는 그 모습에 애써 웃음을 감추고 구슬처럼 뭉친 약물을 넣기 위해 게덴 부인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허!”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슨 문제라도?”
자작이 경악한 듯 입을 딱 벌리고 굳어 버린 이드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드가 정신이 든 듯 허탈하게 웃으며 게덴 부인에게서 한 발 물러났다.
“하, 하하, 이 집안사람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인간들이네요. 설마 정말로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대단합니다. 참 대단해요.”
“게덴 부인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자작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자신이 잡고 있는 게덴 부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는 물었다.
“문제라면 문제인데・・・・・・ 이 여자,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습니다.”
이드의 말에 자작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해 눈만 껌뻑거렸다. 그러다 곧 임신이란 말을 이해하고 화들짝 놀라더니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
“그, 그게 무슨 미친・・・・・・ 아니, 잠깐만요. 이 여자는 저와 혼인시키기 위해서 사무엘 백작이 준비한 여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임신이라니요?”
“그러니 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자작이 거부할 수도 있는 혼인을 기정사실로 만드는데 아이만큼 좋은 무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허…… 허허, 그럼 임신했다는 것을 모르고 이 일을 벌인 것이 아니라, 알고서 했다는 말이군요. 백작도, 소영주도, 심지어 이 여자도.”
“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도 모르겠습니까?”
이드는 한숨과 함께 손에 든 약물과 게덴 부인을 번갈아 보았다. 자작에게 하려던 짓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차마 임산부에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했다가는 게덴 부인이 충격을 받아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또 약물이 아기에게 어떤 위험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리 악독한 범죄자라도 그 뱃속에 든 아기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참 대단하다. 대~단해!”
하지만 그런 아기조차 도구로 사용하려 했다는 사실에는 오히려 더욱 역겨움이 치솟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돼지도 제 자식은 소중히 하는 법인데, 이 여자와 그 일족은 멀쩡히 살아 있는 아이의 아비를 버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도구로 자작을 옭아매려 하지 않았는가.
이드는 충격을 받아 비틀비틀 일어나는 자작을 지나쳐 게덴 부인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일단 자작은 들어가서 쉬고 있으세요. 남은 문제는 제가 처리하죠..”
이드는 짧게 말을 남기고는 별채의 지붕에 올랐다. 그러자 달빛을 피해 숨어 있던 윌이 나타났다.
“일이 잘못되었습니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예상외의 사태네요. 이 여자, 임신했더군요.”
이드는 자신이 짐작한 그들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윌이 눈썹을 힘껏 찌푸리며 경멸이 가득한 눈으로 게덴 부인을 노려보았다.
“참, 잔혹한 여자로군요.”
“그렇죠. 하지만 아기는 죄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일단 윌은 다른 엘프들과 함께 이 여자의 남편이 어디 있는지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드는 윌에게 지시한 후 게덴 부인을 지붕에 눕혀 두고서 연회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게덴 부인에게 약을 쓸 생각이었지만, 아이가 있는 이상 대상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은 진짜 약의 주인일 수밖에 없지.”
다행히 시디푸는 아직 연회장에 있었다.
그는 목표를 이룬 것이 기분이 좋은 듯 연회장에서 가장 크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아하하, 이 와인이 바로 보물이지. 보물이야.’
그는 자랑하듯 바닥을 보이는 와인병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가도 살짝 붉은 기가 돌고 있었다.
자작과 같이 와인을 마신 만큼 이미 해독제를 먹고 나왔겠지만, 약효가 아주 없을 수는 없다. 특히 이런 최음 성분의 약은 순수한 독이 아니기 때문에 해독제로 완전히 해소할 수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아마 파티가 끝나면 시디푸는 부인이나 하녀를 불러 남은 욕정의 찌꺼기를 풀어 낼 것이다. 승자의 포효를 터트리면서.
“아무 죄 없는 아기까지 도구로 쓰는 놈이 즐기는 꼴은 못 보지.”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시디푸를 살핀 이드는 섭물진기로 약물을 조정하여 날려 보냈다.
이드가 조종하는 물방울은 철저하게 사람들의 사각을 넘나들며 날았다.
덕분에 연회장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물방울을 보지 못했다.
목적지에 이른 물방울은 시디푸가 들고 있는 술잔에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의 건배 외침에 시디푸는 시원하게 술잔을 비웠다.
약효가 나타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붉던 시디푸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며 휘청거렸다.
“으하하, 취하는구나. 모두 즐겁게 취하라~”
그 순간 이드의 손에서 순수하게 정제된 양의 기운이 튕겨 나갔다. 순양의 힘은 본래 남자에게는 보물과 같은 것으로, 제대로 받으면 몸과 정력이 좋아지고 활력이 돋고 의욕이 솟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것이 과하거나 몸에 열이 있을 때 주입되면
“발정난 개가 돼지.”
거기에 최음제까지 더해졌으니 말해 무엇 할까!
부울끈!
이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디푸의 바지춤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욕정에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에구머니.”
가까이 있던 레이디들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리자, 여자의 목소리에 자극받은 시디푸가 본능처럼 그녀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즐겨라. 너희도…… 나와 함께 즐기자꾸나!”
“꺄…… 꺄악!”
“소, 소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