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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45화


782화

왕실 호위대가 도착했다는 말에 시디푸는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왕실에서 어떻게 벌써 도착을 해? 이동 마법도 막힌 상태에서 아루스한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손수 약의 용량까지 계산해 가며 정성 가득한 약술을 만들고 있던 시디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로서는 호위대가 도착했다는 말을 쉽게 인정해줄 수가 없었다.

수도에서 백작령까지 거리가 얼만가. 전령이 쉬지 않고 말을 달려도 최소 칠 일 이상이 소요되는 시간을 마차를 호위한 호위대가 삼 일만에 주파했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자작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희가 아는 것보다 먼저 호위대가 수도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무엇이건 그들이 지금 성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 우리가 자작을 잡지 못하도록 왕실이 수를 쓴 것이로군. 어쩌면 저 호위대도 아루스한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겠지. 역시 왕궁은 만만한 곳이 아니야.”

충직한 기사의 말에 시디푸는 입술을 씹으며 분노를 표했다. 사실 스스로의 납득보다는 차후 사무엘 백작에게 말할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호위대가 도착한 이상 어제처럼 자작에게 약술을 마시게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당장 자작을 데려가지는 않겠지만, 그에 대한 호위는 당장 시작할 텐데 그들을 뚫고 자작에게 약술을 마시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셔서는 곤란하다. 약발로 폭발한 성욕에 대해 분명 따지고 들 것이 분명하다.

“이건 이제 쓸모없게 되었군.”

와장창!

시디푸가 던져 버린 와인병이 깨어지며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그때 창을 통해 호위대로 짐작되는 무리가 내성으로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기사가 말했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왕실의 손님이니 직접 맞으셔야 합니다.”

“알아, 알아. 잔소리는 적당히 해.”

대충 손을 닦은 시디푸는 창밖을 향해 길게 한숨을 쉬고는 방을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영주이신 사무엘 백작님을 대신해 영지를 책임지고 있는 시디푸라고 합니다만…… 실례지만, 괜찮으십니까?” 기사의 재촉으로 먼저 나와 왕실 호위대를 맞이하던 시디푸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흐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성 앞에 멈춰선 호위대의 몰골이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땀과 먼지투성이 몸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를 시작으로, 사흘은 굶은 듯 볼은 홀쭉하고, 며칠을 자지 못한 듯 핏발이 선 눈은 움푹했다.

잘 발달된 근육이 아니었다면 어느 뒷골목에서 뒹구는 거지를 데려다 호위대로 꾸몄다고 말할 것 같은 모습들이다.

“피곤하긴 하지만 괜찮소. 나는 시온 자작을 왕실까지 모실 호위대를 책임진 코롤 콘 남작이오. 소영주의 환대에 감사하오.”

자신의 몰골이 어떠한지 잘 아는 듯 자신을 코롤이라고 밝힌 남자가 억지로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탁인데 당장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기 바라오.”

“그거야 이미 준비되어 있지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좀・・ 많이 어이없는 일을 연속으로 겪었소. 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싶은 황당한 일을 모두 경험한 삼 일이었소.” 코롤은 마침 물어 주길 기다렸다는 듯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말을 쏟아내고는 힘없이 웃었다.

시디푸는 코롤과 호위대가 겪은 일이 매우 궁금해졌다.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라미아가 브이자를 그리며 나타났다.

[쨘! 무사히 임무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방금 호위대가 내성으로 들어가는 거 봤어. 고생했어.”

이드가 라미아를 가볍게 안아주며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했기에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거죠?”

다른 엘프들과 함께 느긋하게 망중한을 즐기던 윌이 물었다. 지금 이드가 있는 곳은 엘프들이 백작성에 와서 빌린 여관의 별채였다.

혹시 먹고 자는 것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닐까 했던 이드의 걱정은 헛것이었던 것이다. 시온 숲의 엘프들이 오랫동안 숲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지식이 있었고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인 넉넉한 재산이 있었던 것이다.

윌과 엘프들은 그 돈으로 백작성에서 손에 꼽히는 고급 여관의 별채를 통째로 빌려 사용 중이었다.

[호호,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죠. 분명 이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어 억울할 거예요. 확인할 수도, 증거도 없는 방법들을 사용했죠.]

이후 그녀는 자신이 쓴 술수를 간단히 소개했다.

우선 간단하게 몬스터를 몰아 저들을 달리게 하고, 비를 뿌려 쉬지 않고 달리게 했으며, 가벼운 질병을 만들어 잠들지 못하고 달리게 했다. 그리고 백작성이 가까워서 호위대가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는 말만 조종해서 쉼 없이 거리를 단축시켰다.

결국 호위대는 라미아가 그들을 찾은 이후 제대로 된 잠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달렸다는 것이다.

어느새 한데 모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프들은 하나같이 질린 듯했다. 독해도 어쩜 저렇게 독할 수 있는지.

그중 여성 엘프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렸다면, 죽은 말은 없나요?”

엘프의 눈으로 보면 말이나 인간이나 그 생명의 무게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생각에 따라 무게를 더하는 생명이 있는데, 이 여성 엘프의 경우 인간보다 말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인간을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엘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라미아가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요. 사람들이야 회복 마법을 사용하면 바로 깨달을 수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지만, 말들은 자기가 회복되었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넘치도록 사용했죠. 수미라가 말을 얼마나 아끼는지 아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희생시켜 가며 달리겠어요?]

“응. 응. 고마워!”

수미라가 라미아의 손을 잡고 기쁘게 웃었다.

이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렸으면, 오늘 출발하지는 못하겠네?”

오늘 출발이 뭔가. 내일이라도 출발할 수 있으면 다행인 상태일 것이다.

무엇보다 수일의 시간을 벌어 둔 것이 있으니, 급하게 굴지 않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싶을 것이 당연했다.

“아무래도 며칠 밤은 더 고생을 해야겠네요.”

이드는 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호위대를 봐서 멈춰 주면 좋겠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에요.”

이드의 예감은 정확했다.

“좋았어! 한두 번은 더 시도해 볼 수 있겠어.”

호위대가 쉴 곳을 안내한 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방으로 돌아온 시디푸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코롤을 통해 들은 호위대가 겪은 기괴한 일의 연속은 기가 막혔지만, 덕분에 호위대가 철저하게 피곤에 절어 자작을 호위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기괴한 일 때문에 호위대가 빨리 도착하게 되었지만, 시디푸에게 중요한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작가의 충직한 기사 투맨은 그런 소영주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소영주는 깊이 생각지 않는 듯했지만, 호위대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했다.

그때 명령을 위해 시디푸가 돌아섰다.

“투맨, 파티다. 중지시켰던 파티를 다시 진행해야겠다.”

“바로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 아닙니다. 바로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투맨은 시디푸의 질문에 침묵을 택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확인할 수 없는 일로 소영주의 심기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연신 짜증을 내고 있지 않은가.

시디푸는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서는 투맨의 뒤통수를 보다 아직 바닥을 적시고 있는 와인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쩝, 귀한 와인만 아깝게 되었군. 이럴 줄 알았으면 깨지 않는 것인데.”

하지만 다행히 좋은 와인은 새 약물과 함께 몇 병사 둔 것이 있었다.

시디푸는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다시 약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필코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면서 말이다.


밤이 되자 여지없이 파티가 열렸다.

자작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캡쳐를 삼키고 연회장으로 끌려갔다.

왕실에서 왔다는 호위대는 한 사람도 참가하지 않았다. 겹겹이 쌓인 피로에 파티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당연했다.

거기에 시디푸도 염려하는 척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참석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말리고 싶은 그였으니 차라리 다행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자! 오늘 도착한 왕실 호위대와 곧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정든 댑슨 성을 떠나갈 시온 자작을 위해 건배합시다!”

“건배!”

건배를 외치고 술잔을 비우던 시디푸는 시온 자작이 와인을 마시는 것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 사용한 약물은 전날까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상인의 몸에 직접 테스트를 한 후 가져온 물건이다. 이것이라면 자신은 절대 취하지 않고, 자작만 발정 나게 할 수 있다.

거기다 자작의 여성상을 조사해서 그에 맞는 여성을 둘이나 준비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의 실패는 있을 수 없지.’

시디푸의 단단한 결심이 밖에 있던 이드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지랄도 풍년이다. 저 정열을 생산적인 곳에 썼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

[올바른 열정과 제대로 된 노력을 할 줄 모르니까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죠.]

“하긴…….”

어리석은 말이었다. 악당이 괜히 악당인가. 선한 일을 할 줄 모르고, 악한 짓을 해서 악당인데 말이다.

“와인은 잡아냈어?”

이드는 라미아가 도착하는 즉시 캡쳐의 발동에 대한 권한을 그녀에게 넘긴 상태였다.

[당연하죠. 이드가 말한 대로 증상만 살짝 나올 수 있도록 아주 소량만 위장으로 흘려 보냈어요.]

“좋아.”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취기가 오르길 기다렸다.

이드는 적당히 때가 된 듯하자 행동에 나섰다.

“지금이면 적당하겠네. 내가 호위대를 데려올게. 약물은 미리 좀 추출해 두고 기다려.”

[알았어요.]

라미아의 대답과 함께 그녀의 손 위로 자작의 뱃속에 있어야 할 캡쳐가 와인을 품고 이동되어 왔다.

이드는 사용할 수 없던 기능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드는 즉시 왕실 호위대가 쉬고 있는 곳을 찾았다.

얼마나 피로가 겹겹이 쌓였는지 그들은 내성에 들어온 후 시온 자작을 만날 생각도 않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드가 찾아갔을 때도 깨어 있는 인원은 세 명뿐이었다.

‘하지만 이 세 명이면 충분하지.’

그들의 모습은 라미아가 말했던 호위대의 대장과 부대장들의 인적 그대로였다.

똑똑똑.

이드가 그들이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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