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50화
787화
삐이익-
소드 팰러스 위를 한참 맴돌던 새는 날카롭게 한 번 울고는 검성 중앙에 우뚝 솟은 가장 높은 건물의 테라스를 향해 날았다.
작은 새라면 부딪힌 충격에 새가 떨어지겠지만, 다 자란 독수리보다 조금 더 큰 녀석이 부딪혔다간 새가 아니라 창이 산산조각 날 판이다 싶은 순간이었다. 굳게 닫힌 창의 종잇장 같은 문틈 사이를 비집고 빛의 칼날이 튀어나와 창문을 향해 돌진하는 새를 갈랐다.
방의 주인이 검기를 뿜어 새를 가른 것이다. 실로 대단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분명 늦은 밤 자고 있었을 텐데, 수면 중에 창밖으로 날아오는 새를 감지했을 뿐 아니라 능숙함을 넘어 숙련되고 섬세한 검기 조종으로 창문 틈을 노려 창에 손톱만큼의 흠집도 내지 않고 새를 베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활을 잡고 쏴도 쉽게 잡을 수 없는 비행 중인 새를!
저 기행 중 하나만 제대로 흉내 낼 수 있어도 입단하고 싶은 기사단을 골라서 갈 수 있다. 마치 수능 점수 0.1%의 위엄과 같다고 할까.
푸드득!
그런데 머리가 떨어지며 즉사했어도 백 번은 했을 새가 여전히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잘려진 목에서는 검은 진흙과 같은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뿜어지던 피가 멈추었다.
검은 진흙이 땅에 떨어지자 고약한 냄새와 함께 땅이 타들어 갔다. 그러는 중에도 새는 테라스로 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평범한 새도 아니고, 이런 정체 모를 괴 생명이라면 테라스의 문이 박살 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흥, 예의도 모르는 것들. 바닥에 지저분한 것을 떨어트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이번에 목이 아니라 깃털 하나까지 없애 주도록 하겠다.” 불쾌한 목소리가 분명한 뜻을 담은 경고를 날렸다.
그러자 그 소리를 알아들은 듯 질질 흘러내리던 검은 진흙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듯 테라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새는 비행하던 속도 그대로 열린 문을 넘어 방 안으로 날아 내렸다. 그리고는 머리도 없이 뒤뚱거리며 방의 주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예의도 없을 뿐 아니라 흉측하기까지 한 불청객이로군.”
짝짝.
두 번의 박수 소리에 컴컴하던 방이 밝아지며 방 주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만한 자세로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현 소드 팰러스의 지배자이자 삼검왕의 일좌인 페시딘이었다.
그는 벌거벗은 상체에 얇은 이불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는데, 드러난 상체가 나이답지 않게 탄탄했다. 이십 대 건장한 남성도 옆에 서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근육질의 탄탄한 몸이었다.
그는 불쾌한 시선으로 머리가 없는 새를 바라보다 혀를 찼다.
“멍청하군. 머리도 없이, 뭘 보고 말하겠다는 거지?”
페시딘의 말과 동시에 검은 진흙이 다시 끌어 오르며 크게 부풀어 오르며 아이의 머리통만 한 인간의 머리가 생겨났다.
역겨운 진물이 흐르는 얼굴은 굳은 얼굴을 풀 듯 꿈틀거렸다.
페시딘이 그 모습을 불쾌함 반, 흥미 반으로 바라보고 있자 놈이 입을 열었다.
“그르르. 그거야. 귀하가 머리를 자른 때문이 아니겠소.”
부자연스럽고, 거칠지만 분명 인간의 언어였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악마가 기르는 까마귀라고 기겁할 장면이지만, 페시딘은 덤덤히 깔아보는 눈으로 새를 노려보았다.
“예의를 모르는 멍청한 짓을 한 탓이겠지. 깃털까지 소멸하고 싶지 않으면 정체를 밝혀라.”
“굳이 밝히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지 않소.”
“글쎄. 내 주변에 그렇게 역겹고 냄새 나는 낯짝이 없어서 말이야. 아, 아닌가. 불완전한 반푼이가 있기는 했지.”
이미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페시딘은 노골적으로 상대를 조롱하며 비웃었다.
“그렇소, 미완의 마탑의 키릴. 이오.”
페시딘의 비웃음에도 검은 새를 조종하는 남자는 불쾌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덤덤한 반응에 흥이 식었는지 페시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아, 물을 필요도 없었군. 토벌 때문에 벌벌 떨렸던 모양이지?”
“그렇소. 이는 우리. 계약에는 없던 일이오.”
“흐흐, 없지. 마찬가지로 내 기사를 가두거나 실험물로 쓰는 일도 계약에는 없는 일이지.”
흉흉한 얼굴로 미소 지은 페시딘이 허리에 감은 이불을 치우고는 일어나 탁자에 놓은 술잔을 단숨에 마셔 버리고 말했다.
“네놈들, 반푼이 주제에 선을 넘었어. 시키는 일만 해야지. 감히 내 기사들에게 손을 대? 하인 주제에 주인의 것에 손을 대었으니 당연히 죽여 줘야지. 안 그런가?”
“오해요. 기사가 선을 넘었고, 우린 가두었을 뿐이오.”
“그녀를 발견하고 나에게 알리지 않고 잡아 가둔 시점에서 이미 잘못된 것이지. 부디 이번에 살아남거든 정신을 차리길 바라지.”
“당연히. 우리는 살아 남을 것이오. 당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 없이.”
술잔으로 입을 가린 페시딘의 입술이 비틀렸다. 이번 토벌에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그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을 내놓을 거지?”
잠시 침묵하던 페시딘이 일단 들어 보겠다는 듯 무심히 물었다.
“초인력을 주겠소. 초인에 대한 해석이. 조만간 마무리 될 것이오.”
“호오~ 이 시점에 말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이야. 그래서 거짓말 같군.”
“마법사로서, 맹세하오.”
페시딘은 상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패밀리어를 통한 맹세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또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번 토벌을 기회로 그들에 대한 고삐를 한 번 조일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들이 가짜 결과를 보내올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 문 개는 두 번도 물 수 있지.’
그는 개인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저들에 대한 징계는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진실이라고 해도 초인력 따위 기사를 나태하게 만들 뿐이야.”
“하지만. 진정한 기사라면, 나태를 이겨 낼 터. 무엇보다. 저들의 정체성인. 특별함이 사라진. 다면, 초인의 가치는 무의미해. 지고. 다시. 검과. 마나에 의한, 질서가 바로 서게 될 것이오.”
검과 마나에 의한 질서. 초인이 나타나기 이전 세상을 지배하던 양대 슈퍼 파워!
고향에 대한 향수병과 같은 달콤한 말에 페시딘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그 말에 혹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
검에 있어 전통적인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과 달리 초인의 존재는 그도 매우 거슬렸으니까. 무식하고 천박하게 힘에 휘둘리는 멍청이들. 특히 최근 화원과 소드 팰러스에 대한 그들의 대담한 공격에 뒤통수를 맞아 얼얼하던 참이 아니던가.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자신을 무시할 수 있었을까. 바로 초인기가 아닌가. 그 이점이 사라진다면?
그러나 분명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초인에 대한 해석이 끝나고, 저자는 초인력을 주겠다고 했다. 즉, 인공적으로 초인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힘을 저들이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위험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 초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인가?”
“연구가 더 진행 된다면, 가능성은 있소. 지금. 목표는. 초인의 초인기를 추출하여, 타인에게 주입하는 것이오.”
다행히 초인력을 찍어 낼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저 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무의미하군. 지금 당장 내놓을 수도 없는 대가라니. 차라리 마탑을 옮기지 그러나? 설마 우리 세 검왕이 없다고 제국의 힘을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
“피해는 크겠지만, 그럼으로써, 우리. 마탑은 대륙에 인정 받을 것이오.”
키릴은 배짱을 튕겼다. 하지만 내심 한숨을 쉬었다. 분명 말한 것과 같은 노림수는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벌써 주변에 가득한 감시자들을 피해 이사하기엔 너무 짐이 많다는 것과 지맥에 연결된 바이트 타블렛 때문이었다.
바이트 타블렛을 이 시점에 지맥과 강제로 분리하게 되면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과 초인력에 대한 해석이 늦어지게 된다.
그것은 오랜 시간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과 초인에 대한 해석에 모든 시간을 받친 그에겐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괴멸적인 피해를 당하더라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낫다.
‘참으로 제대로 미친놈이로다. 차후 잡아 영혼까지 마법 재료로 갈아 넣어 주리라.’
생각하면 할수록 적에게 붙어 마탑의 정보를 빼돌린 비올라의 배신이 괘씸한 키릴이었다. 평소 그 재능을 보고 아끼던 자가 배신을 할 줄이야.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만 아니었다면 당장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배신의 대가를 받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과 차후 배신자에 대한 응징을 위해서라도 지금 검왕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로 초인에 대한 대응은 자신 있지만, 아무래도 기사들은 부담스러웠다. 특히 기사들의 정점에 서 있는 세 검왕까지 토벌에 참가하게 된다면 바이트 타블렛을 위해 억지로 버틴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 그런 일은 피해야 했다.
‘세 검왕만 빠진다면 공을 탐하는 기사들의 힘은 하나로 뭉치지 못할 것이다. 유일하게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차라리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지.’
그때 오랜 생각에 잠겨 있던 페시딘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좋다. 마탑의 요청대로 우리는 토벌에서 빠지겠다. 대신 몇 가지 요구 사항을 그쪽에서 들어주어야겠다.”
“말하시오.”
키릴은 넉넉히 웃으며 말했다. 그가 아는 페시딘은 매우 합리적인 인간으로, 부담스러울 수는 있어도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지는 않을 것이다. 씨익.
여전히 진물이 흐르는 작은 머리통이 흉측하게 웃었다.
이드가 수련을 마치고 방 밖으로 나섰다는 이야기는 금방 알려졌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집사였고, 그 다음 달려온 것은 이그렌이었다. 집사가 식사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이드는 이그렌에게 백작가에서 있었던 일들 이야기했다.
“정말 이드 님이 계서서 천만 다행입니다. 이드 님이 아니었다면 또 백작가에 어떻게 당했을지.”
“글쎄. 그렇게 따지면 내가 없었으면 이런 일도 없겠지. 거기다 시온 자작과 이야기해 보니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백작가에 당했을 것 같지는 않던데?”
“아닙니다. 아버님이 얼마나 책임감 강하고, 정에 약하신데요.”
“그건 올바른 일에서겠지.”
자작과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이드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내가 없는 사이 별일 없었어?”
“있었습니다. 토벌대가 도착하면서 이드 님을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드 님이 중요한 수련 중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라 집사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그렌이 질린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인간들이 있었단 말이지.”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명색이 명예 후작을 찾아와 그런 짓을 벌였다니. 명예 후작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약한 것이었던가? 설마 하나, 후작과 공작들이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는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때 라미아가 종이와 펜을 들어 이그렌에게 주며 말했다.
[그 막무가내라는 사람들. 여기에다 이름 좀 적어 줄래요?]
어쩐지 굉장히 뒤끝 있어 보이는 말에 이그렌이 방긋 웃으며 명랑하게 대답했다.
“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