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61화
798화
아무런 반대 없이 찬성하는 쉴라다.
반대하지 않아요?』
「이드 님이 결정하신 일이니까요.』
자신이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따른다니. 이드는 그만큼 자신을 믿어 주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지 부담스러워해야 할지 헷갈렸다. ‘이후 발생하는 문제는 몽땅 이드님의 책임입니다.’라고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지지 뭐. 그 정도 책임이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황녀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데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할 만했다. 이제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황녀와 라발에게 오픈하느냐는 것이다.
『라발 경에게는 어디까지 오픈할 생각이었죠?』
『확신을 가졌을 때는 온전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드 님의 정체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 모든 정보를 오픈하려고 했습니다.』
『검후의 납치. 그에 관련된 삼검왕의 야망 손을 보탠 초인파. 거기에 미완의 마탑까지 말이군요?』
쉴라가 어두워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발에게 자신이 지고 있던 큰 짐을 나눠 지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제법 충격이 클 텐데요.
『놀라시겠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실 거라고 봅니다. 그저 인정하기 싫어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죠.』
확실히 라발이 묵묵히 앞만 보는 충직한 사람이긴 하지만, 아둔한 자는 아니다. 그저 지금의 소드 팰러스가 변하지 않기를,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외면하고 있을 뿐, 오색 기사단과 삼검왕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완전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쉴라와 클라인 백작은 더 이상 그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하려고 나선 것이다.
라발을 바라보던 이드는 그의 모습과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라발과 함께 오색 기사단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자. 이 저택의 주인 카일란.
다섯 명의 오색 기사단 단장 중 두 명이 삼검왕의 수족으로 보이고, 그중 두 명이 진실을 알았다면 마지막 남은 한 명에게도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혼자 모르면 불쌍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이없이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카일란 경이 순순히 이용당해 줄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야.’
이드가 만난 카일란은 심해처럼 고요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철을 두드려서 그럴까, 기사보다는 장인이나 도인에 가까운 눈이었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깊이 뿌리박은 나무처럼 타의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쉴라에게 물으니 이드가 허락한다면 클라인이 카일란을 만나기로 했단다.
선후를 따지자면 클라인이 삼검왕을 살핌에 있어 카일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사실을 밝히기로 했기 때문에 라발에게도 알리는 것이었다.
“마스터, 주름이 생겼는데요?”
케마란이 두 검지로 자신의 미간을 밀어 주름을 만들었다.
이드와 쉴라와 심각하게 대화하는 사이 케마란의 모험담은 물론 황녀의 부탁에 입을 연 일리나의 이야기까지 끝나 있었다.
케마란이야 전문 이야기꾼처럼 한껏 살을 더하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몄지만, 그런 성격이 아닌 일리나는 간단한 사실만 전달한 덕분에 일찍 이야기가 끝나 버린 것이다.
오히려 담담한 일리나의 이야기에 흥분이 가셔 눈을 돌리던 케마란의 눈에 심각한 이드의 얼굴이 들어온 것이다.
이드는 뿌듯하게 부풀어 오른 미간을 살살 문질렀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예 후작님, 이그렌 경을 모셔 왔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시 부를 때까지 쉬면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집사와 이그렌이 조용히 물러가고 방 안의 시선이 이드에게 모였다. 어떻게 보아도 케마란과 일리나의 모험담이 사람을 물려야 할 중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운 티타임을 방해하게 되어 죄송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조한 이드의 목소리에 황녀가 작게 실망의 한숨을 쉬었다.
그저 새로운 우상인 소검후와 생기발랄한 어린 기사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 이야기가 ‘중요한 일’인가 보군요. 혹시 미리 준비하신 건가요?”
이드는 황녀의 이상한 오해를 할까 싶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황녀 전하께 저희와의 동행을 강요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우연이란 거군요.”
이드의 말을 바로 이해한 황녀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급변한 이드의 분위기에 긴장했던 어깨가 풀린 것이다.
“원래는 쉴라 단장이 라발 단장과 함께 할 이야기가 있다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끼어든 것이군요. 그리고 즉석에서 저에게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결정한 것이고요. 좋아요. 명예 후작님과 쉴라 경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일이라면 그런 것이겠지요. 경청하겠습니다.”
“저도 귀를 기울이지요.”
황녀는 물론 라발도 좋은 청자가 될 준비가 끝난 듯했다.
그에 이드와 눈을 마주치던 쉴라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황녀가 그녀의 말을 막고 나섰다.
“잠시 멈추세요, 쉴라 경.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케마란 경과 네리베르 경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지 않나요?”
그것은 두 사람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배려한 말이다.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듣고 잘못되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
“저…… 나, 나가 있을까요?”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눈치를 보고 있던 케마란이 말했다.
“아니,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
이드가 웃으며 말하자 황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괜찮은 건가요?”
“네.”
이드는 간단히 답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에 한정되긴 하지만, 제국의 황녀보다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수련 기사라니.
거기다 두 사람은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황녀보다 보안 등급이 높다는 말이다. 과연 이런 사실을 황녀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심히 궁금하다.
쉴라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새삼스럽게 검후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간 그녀가 알아낸 사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이드에 대한 사실만을 제외하고서.
“……”
쉴라의 말이 끝나자 두 눈을 꾸욱 감은 라발의 이마에 주름이 가득했다.
반대로 쉴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날카롭게 반응하던 황녀의 분위기는 점점 누그러지더니 평탄해졌다.
“휴~ 혹시 그렇지 않을까 했던 일들이군요.”
황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더욱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본 덕분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뒤로・・・・・・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뻣뻣하게 굳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쉴라의 이야기 속에는 그녀들도 모르던 사실이 다수 들어 있었는데, 그중 어느 하나도 그녀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지?’
네리베르는 이 이야기가 자신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
이드는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나요?”
충격을 빠르게 소화한 황녀가 쉴라를 압박하듯 말했다.
조용히 검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문제들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다.
검후와 함께하는 자리에는 항상 쉴라가 함께하며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고 여겼는데, 정작 쉴라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이드는 황녀의 시선을 피하는 쉴라를 대신해 말했다.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이쪽에서도 차근차근 일을 풀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황녀 전하의 도움은 이전 저에게 주신 검후님의 추적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거짓말이네요. 그랬다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이드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하는 황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사실 소소하게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당장 이번 토벌에서 삼검왕이 무언가를 노리고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꼭 그것이 아니라도 전에 약속드렸지요. 황녀 전하께서 주신 정보 대신 검후님에 대한 일을 알게 되면 알려드리겠다고.”
그때 세 번째 만남에서 이드와 은색 기사단이 검후를 찾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돕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약속을 말하는 이드의 말에 심각하던 황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렇다면 저도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때 이미 도움을 드린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오히려 그때보다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요?”
“아직 검후님에 대한 정보는 얻은 것이 없으니 기뻐하긴 이르겠지요.”
“하지만 제국의 황녀로서 지금 들었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안답니다.”
쉴라의 이야기 중 어느 하나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견원지간의 기사와 초인이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은 것도 문제이며, 사악한 흑마법사를 지원한 것도 문제다.
거기다 제국의 기둥인 삼검왕과 황제가 아끼는 초인파가 손을 잡고 검후를 납치했다.
물론 정확한 증거는 없다. 그저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후를 따져 보면 그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검후에 대한 문제가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제국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해야 할 황실의 혈족에 손을 댄 것이니까. 그것도 납치라는 무도한 짓을.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이후 다시 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황실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당장 황제 폐하께 밝히는 것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증거가 없어서인가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아직 황제 폐하께서 이 일에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타앙!
“명예 후작께선 말을 조심해 주세요.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검후님은 제국의 자랑이며 황실의 자랑이십니다. 황제 폐하의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인데 그런 분이 사라지길 바라실 리가 없습니다.”
황녀가 탁자를 내려치며 단호히 소리쳤다.
과연 제국을 지배하는 핏줄인가. 줄기줄기 뿜어지는 황족의 위엄에 쉴라와 라발이 고개를 숙였다.
이드는 덤덤히 황녀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소드 팰러스와 거리를 두신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황녀 전하께 부탁드립니다. 황제 폐하의 뜻을 살펴 밝혀 주십시오. 그런 후 황제 폐하께 밝혀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황녀가 입술을 물고 이드를 노려보았다. 당장 거부해야 하지만, 황제만큼이나 사랑하는 검후에 대한 마음에 망설이고 만다.
“좋습니다. 명예 후작의 말대로 하지요. 그리고 미리 단언하는데, 황제 폐하께서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닙니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오늘 티타임은 여기서 끝내야겠습니다.”
마음이 상한 듯 황녀가 일어났다.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분위기에 모두 말없이 황녀를 배웅했다.
저택을 나서는 황녀의 마차를 보고 있을 때 라발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뗐다.
“저는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