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64화
801화
사악한 마법사를 토벌하기 위해 모인 용사들이 곧 출정한다!
출정 전에 승원 기원 파티가 열리는데, 제국의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용사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낼 것이다.
아침에 황궁에서 나온 말은 한 시간 만에 수도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이야, 드디어 나쁜 놈들 조지러 가는구나!”
“자넨 그놈들에게 해코지 당한 적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신나 하나?”
“꼭 당해 봐야 하나? 그런 놈들은 빨리 사라질수록 좋은 거라고.”
“캬~ 기사 수천이 출정하면 어마어마한 장관일거야. 우리 꼭 보러 가세.”
“아무렴. 그날은 마누라한테 가게 맡기고서라도 가야지. 그런 자리에 빠질 수 있나.”
최근 끊이지 않는 기사단의 행진 구경에 신이 나 있던 사람들은 출정이라는 하이라이트가 목전에 다가온 것에 기대감을 불태웠다.
“좋은 시절도 며칠 안 남았구나. 꿀 잘 빨았는데.”
그런가 하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안티로스에 모여든 수천의 병력이 소비하는 돈으로 수익을 올린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병사들이 아니라 주머니 넉넉한 기사들이 모였기 때문에 소비력은 실로 엄청났다. 이 년 치 수익을 한 번에 올린 가게도 있을 정도다. 그로 인해 영원히 토벌 준비만 했으면 좋겠다고 신전에 성금을 내고 기도 올린 가게 주인이 있을 정도다.
“수도는 오늘도 시끌벅적하구나.”
턱을 고인 이드가 말했다. 마차 안에서 들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드의 청각은 동물과 비슷한 수준이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창밖으로 보던 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포션을 마셨는데도 아직 피곤해?”
거기에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잘 익은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었다.
“하~암. 너무 졸려요. 포션은 피로 회복에는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케마란이 입도 가리지 않고 크게 하품을 했다. 어린 아가씨 특유의 부끄럼도 없는 모습이다.
‘아, 충치 발견’
덕분에 크게 벌어진 입에서 충치를 하나 발견하는 이드다. 나중에 말해줘야겠다.
“포션이 정신적 피로까지 풀어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피곤하기는 네리베르도 마찬가지인 듯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이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두 사람이 피곤한 이유가 누구도 아닌 이드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이 아니면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아침 해가 뜨는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이그렌의 상대를 시킨 것이다.
길어야 삼십 분 정도를 쉬고 계속해서 대련을 했으니 체력도, 정신도 정상이 아닌 것이 당연했다.
“내가 쉴라 경에게 말해 둘 테니까 기사단으로 돌아가거든 푹 자고, 푹 쉬어. 빠르면 이틀 후 출정인데 몸 상태는 최고로 만들어 놔야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밤샘 대련은 저희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번처럼 밤을 새워 가며 오랫동안 싸워 보긴 처음이에요.”
“저도요. 아버지와 용병 생활할 때도 이렇게 오랫동안 싸운 적은 없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은색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고 제법 기사다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드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성장에 흐뭇했다.
“그런데 이그렌 경은 정말 다시 봤어요. 번갈아 가며 쉬는 저희도 이렇게 힘든데,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텼잖아요. 대련 끝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기절하긴 했지만요.”
직접 해 봤기 때문에 밤을 새워 가며 쉼 없이 대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사실 이그렌도 말이 좋아 끝까지 버틴 거지,
대련이 끝나기 한 시간 전부터는 반쯤 정신을 놓고 흐느적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젠 기절하지 않고 흐느적거리는 것조차 어지간히 대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그렌 경은 괜찮을까요?”
그런 이그렌의 모습에 놀라고 감동했던 네리베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지. 하루 밤샜다고 안 죽어. 포션도 먹였으니까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쌩쌩해질 거야. 원래는 너희들도 푹 쉬게 한 후에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말이야.”
네리베르들이나 이그렌이나 똑같이 밤을 새웠는데 취급에 온도 차이가 극심하다. 실로 노골적인 성차별과 편애를 시전 중인 이드 되시겠다.
“저흰 괜찮아요. 차라리 기사단 숙소에서 쉬는 쪽이 편해요. 임무 중에 외박하지 말라는 규칙도 있는 걸요. 오늘도 단장님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도 내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지. 도대체 왜 사람을 쓸데없이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이 말이지. 분명 오늘 있는 어전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 놓고 아침부터 찾아와서 꼭 참석하라는 건 무슨 경우냐고. 황제는 한 입으로 두 말 해도 되는 거야?”
이드는 줏대없는 황제를 거침없이 욕했다.
일관성 없는 그의 말 때문에 침대에서 쉬어야 할 시간에 마차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아하하…….”
거침없는 이드의 말에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딱딱하게 웃으면서도 주변을 경계하고 말았다. 그저 본능일 뿐 절대 담이 작기 때문은 아니라고 맘속으로 주장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냥 두면 또 어떤 말이 나올까 두려웠던 케마란은 말을 돌리기 위해 한옆에 기대 놓은 링스피어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정말 제 링스피어는 더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는 다른 창을 쓰면 되니까 말만 하세요.”
그러나 말과 달리 온 힘을 다해 링스피어를 쥐고 있는 케마란이었다.
씩씩거리던 이드는 그 모습에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하려거든 손에 힘이나 빼든가.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리고 정말 필요 없다. 더 들고 있어 봤자 아무 소용없어.”
“그럼・・・・・・ 어제 그건 뭐였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네리베르는 전날 밤. 이드의 손에 링스피어가 놓이는 순간 링스피어에서 뿜어진 초록빛의 기운이 이드의 팔을 타고 오르던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이드만 빼고 모두 놀랐었다.
초록빛의 기운이 금방 사라지고, 이드도 큰일이 아니라고 해서 겨우 진정이 되었었다.
당장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고 싶었지만, 링스피어를 케마란에게 돌려준 이드가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에 결국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질문과 달리 이드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엄청난 비밀은 아니니까. 어제 그건 초인의 씨앗이 깨어난 거였어.”
“초인의 씨앗이요?”
이드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라미아가 바이트 타블렛의 에고를 뽑아 낼 때 같이 뽑혀 나와 이드의 것이 되었던 힘의 덩어리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당시 이드에게 흡수된 후 까맣게 잊고 있던 놈이 지금은 링스피어와 하나가 되어 버린 ‘전’ 바이트 타블렛의 에고가 뿜어낸 힘에, 봄을 맞은 씨앗처럼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이다.
전날 황녀와 함께 미완의 마탑과 그들의 목표, 그리고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 들었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숨이 턱 막힌다는 듯 말을 잊었다. 그러다 버럭 소리쳤다.
“그거 엄청난 비밀이잖아요. 비밀이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세상에나! 인간의 손으로 초인을 만들어 내다니.”
“엄청난 비밀인 걸 알았으면 당신부터 목소리를 줄이세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듣도록 소리치지 말고!”
“미안. 조용히 할게. 그런데 마스터, 링스피어에 든 에고가 그런 엄청난 물건에서 추출한 거라면, 이거 제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안 된다고 하면 링스피어 버릴 거야?”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묻는 말에 이드가 되물었다. 설마 그런 것도 계산하지 않고 케마란에게 주었을까.
붕붕붕. 케마란이 머리카락이 날리도록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못 버려요.”
“그러면서 뭘 물어. 그냥 써. 라미아 말로는 그 에고는 링스피어에서 새로 태어난 상태라서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아~ 다행이다. 참, 그럼 이제 마스터도 초인이잖아요. 어떤 초인기를 얻으셨어요?”
라미아의 보증에 노골적으로 안심하던 케마란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불쑥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이드가 어떤 초인기를 얻었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가득했다. 이드가 강한 만큼 엄청난 초인기를 얻지 않았을까 기대 중인 것이다.
하지만 이드는 거기에 대해서는 해 줄 말이 없었다.
“미안. 나 아직 초인기는 얻지 않았거든. 초인기가 아직 없으니 초인도 아니겠네.”
“에엑? 씨앗에 싹이 났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싹이 나려고 단단한 씨앗 껍질이 깨졌다는 거지. 아직 완전히 씨앗이 벌어진 건 아니야.”
정확히는 벌어지지 않게 막고 있는 거다.
이미 초인의 씨앗을 몸에 받아들일 때부터 라미아에게 좋은 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자신의 몸속에 자신의 것이 아닌 힘이 기지개를 켜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성 이전에 본능의 문제였다.
이종진기는 마약보다 몸에 나쁘다는 무인의 고정관념도 한몫했다.
그래서 지금 힘을 꽉 줘서 씨앗에서 싹이 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상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누군가 갑자기 옆구리를 찔렀을 때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주사 맞을 때 엉덩이가 땡땡하도록 힘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초인 각성을 그런 식으로 막을 수도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친절한 예를 든 설명에 기가 막힌 네리베르였다. 이드가 얼마나 굉장한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설마 초인기의 각성까지 멈춰 세울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건 인공적인 방법으로 초인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다. 순간 이드와 미완의 마탑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 초인기 버리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 공짜로 생긴 힘인데 아깝게 왜 버려? 천천히 어떤 식으로 초인기가 각성하는지, 또 몸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다른 위험은 없는지를 잘 살핀 후에 잘 써먹어야지.”
아무렴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인데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꼼꼼하고 조심해야 한다. 초인의 씨앗에 대한 안전을 라미아가 보증하긴 했지만, 애초에 바이트 타블렛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방심하다가 당하는 것보다야, 조금 피곤해도 확실히 살펴 안전하게 가는 것이 백번 낫다.
그 후로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주가 되어 싹을 틔우고 있는 초인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토론하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아무리 이야기해 봤자 소용도 없는 일에 열심히 열을 올렸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의견을 내는지 턱밑까지 내려왔던 다크서클이 쑥 올라가 버릴 정도다.
그러는 사이 마차가 황궁에 도착했다.
이드는 따라 내리려는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말리고는 마차를 곧장 은색 기사단의 숙소로 출발시켰다.
그만큼 고생을 시켰으면 최소한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옳다.
황궁에 내려봤자 번거로운 일만 생긴다.
“어서 오세요, 명예 후작님.”
지금처럼 말이다. 혹시라도 마차에서 내렸으면 황녀에게 인사를 올리는 등 상당히 번거로울 뻔했다.
이드는 설마 자신을 마중 나온 것인가 싶은 황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설마 직접 맞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참석해 주시길 부탁드린 일인데요.”
황제를 대신해서 이드를 불러낸 사람이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