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69화
806화
사실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라미아의 검신이 온전히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금속이라는 이클립스에, 드래곤 본과 하트 등 한국의 보양 음식처럼 세상에서 좋다는 건 거의 다 쏟아부어 제작되었다.
과연 그런 라미아를 초인기로 다룰 수 있을까?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문제없겠지.’
이드는 의심을 덮었다. 라미아가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고, 물어 봤자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이론 설명의 지옥에 빠져 하루 종일 고생해야 할 것이 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당장 절 인간 형태로 변신시켜 주세요.]
라미아가 말과 함께 이드 앞으로 가면 형태의 자신을 불쑥 내밀었다. 아바타의 손바닥 위에 놓인 가면에서 강렬한 시선이 쏘아져 나왔다.
그 앞에 선 이드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아름다운 가면에 눈빛만 살아 있으니, 완벽히 귀신 씐 가면 같다.
“야, 아무리 그래도 단번에 인간은 무리지. 방금 시험해 봤는데 실패야. 아직 숙련도가 모자라.”
이드는 원래 티스푼이었다가 큐브 형태로 변해 버린 금속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흥, 절 그런 티스푼 따위와 비교하시면 실망이에요. 전 신의 금속과 드래곤 본에서 태어났다고요. 거기다 이드와 영혼으로 이어져 있죠. 티스푼 따위와는 다르다는 말이죠. 티스푼 따위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든 것이 아닐까? 단단하고 특별한 물건일수록 외부의 자극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니까.
“알았어. 시도야 어려운 게 아니니까. 하지만 실패했다고 뭐라고 하지 마라.”
이드가 가면을 받아 들었다.
털썩.
가면이 이드의 손으로 넘어가자 연결이 끊어진 아바타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이드가 허공섭물을 발휘하여 빈 침대에 아바타를 눕혔다.
“이드는 마음이 참 따뜻한 것 같아요.”
“크흠!”
하………
[호호, 부끄러워 하…… 어머!]
이드는 라미아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재빨리 그녀를 변신시켰다.
챠앙!
검신에서 뿜어진 예기에 공기가 찢겨 나가며 맑은 소리가 났다. 라미아가 바라는 인간형이 아니라 원형인 검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우선 그녀의 입을 막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었기 때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충동적인 선택으로 한 가지 사실이 확인됐다.
[역시! 봐요. 내 말이 맞죠? 변신 속도가 빨라졌어요!]
“응. 그러네.”
아무리 익숙한 모습이라고 해도 몇 초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엔 그런 것 없이 정말 한순간에 변했다. 랭크업했다는 라미아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자, 이대로 인형(人形)까지 고고!]
“오! 고고!”
라미아를 따라 힘찬 고함을 지른 이드가 손에 든 검에 온 정신을 쏟아 집중했다.
다음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날씨 좋다.”
일찍 일어나 따뜻한 햇살을 즐기던 이드가 빙글 손목을 돌렸다.
스르륵, 스르륵.
그러자 이드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새끼손가락 굵기의 긴 은색 물체가 기어 다니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뱀을 반려동물로 삼은 사람들이 친밀감을 쌓기 위해 하는 핸들링이라는 행위 같아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 물체는 혀를 날름거리는 뱀의 머리도, 뾰족하게 다듬어진 뱀의 꼬리도 없었다. 아니, 머리와 꼬리랄 것도 없는 그것은 생명체도 아니었다.
한동안 해를 바라보던 이드가 고개를 숙여 핸들링 중인 손과 은색 물체를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손에 잡히는 것이 있으니, 마음 수련하는 것보다는 쉽지만, 과연 이게 효과가 있으려나?”
전날 라미아를 인형으로 변신시키려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티스푼으로 작은 인형도 만들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둘 간의 단단한 연결이 있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였다고 할까? 초보 소환사가 소환한 클레이 골렘처럼 온몸이 뭉개져 팔다리만 겨우 구분이 가는 형태로는 의미가 없었다.
다시 원래의 아바타로 돌아간 라미아는 이드에게 초인기의 숙련도를 올리기를 명령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노오력만 하면 말이죠!”
왜 그렇게 노오력이라는 말이 가슴 저릿하게 들리는지.
그 말과 함께 오리라르콘 한 조각을 건네받은 이드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드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 아래서 핸들링을 하게 된 것이다.
초인기가 없을 때는 라미아의 변신을 위해 수련 정도를 확인할 수 없는 마음공부에 힘을 쏟아야 했지만, 지금은 열심히 몸을 움직여 노오력하면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잠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되었다.
“라미아가 빨리 인간이 되면 나도 좋으니까 딱히 게으름을 피울 생각은 없지만, 막상 할당량이 정해지니까 묘하게 하기 싫어진단 말이지.”
이드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청개구리 심보였다.
혹시 아내의 명령을 회피하는 것은 남편의 본능과 같은 것이 아닐까?
뱀처럼 손가락 사이를 누비는 오리하르콘을 바라보며 되도 않는 상상을 하던 이드는 곧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슈루루-
이드는 작은 큐브로 변한 오리하르콘을 손바닥 위에서 데굴데굴 굴렸다.
“확실히 과해. 도대체 초인이 뭐라고?”
초인기를 각성하면서 이드는 초인이란 존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이 초인기를 각성했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게 깨달은 것.
그것은 초인기라는 것이 어느 날 떨어진 동전을 줍듯이 갑자기 주어질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당장 이 대륙에는 초인기를 각성한 후에 가난한 평민에서 작위를 받은 귀족이 된 이야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초인의 숫자가 많은 만큼 그런 이야기는 차라리 흔하다. 그래서 기사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은 초인기를 각성하고 초인이 되기를 바란다. 부와 명예가 부록으로 딸려 오니 싫어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당장 자신이 얻은 금속을 다루는 능력만 봐도 그렇다.
전투 능력은 치워 두고라도, 이 초인기가 있으면 돈을 버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숙련도를 올렸을 때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만 해도 재료만 있으면 간단한 금속 제품을 기계로 찍어 내는 것처럼 만들어 낼 수 있다.
초인기도 마나를 연료로 하는 만큼 생산에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대형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수량과 속도 이상일 것은 분명하다. 그뿐인가. 제품의 질도 뛰어나다. 대장간처럼 두드려 펴고, 이어붙일 필요가 없으니까.
이드는 과연 이런 능력이 아무런 노력도 수련도 없이 주어져도 괜찮은 것일까 싶었다. 이건 재능이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다. 재능이 흘러넘치는 이드 같은 재능충을 부러워할 수도 없는, 그저 운의 문제니까.
도대체 세상은 어째서 인간에게 초인기를 주는 것일까? 단순히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과했다. 과해도 너무 과해서, 먹었다 하면 백 프로 체할 만큼. 초인기를 얻은 후 부작용이 생기거나, 좋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과연 그럴까 싶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쉽게 보면 공짜 같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는 공짜들이다. 이드는 초인기도 그런 류일 것 같았다.
지금은 하늘이 행운을 무료 쿠폰 뿌리듯 뿌리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분명 대가를 지불할 날이 올 것이다.
천망회회소이불루라는 말처럼 세상의 일에 허튼 것은 없고,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 것처럼 쓰일 곳이 있기 때문에 초인을 만들었을 테니까.
“물론 난 제외지만.”
이드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핸들링을 시작했다.
초인을 어떻게 쓸지 모르지만, 만약 그때가 오면 이드는 초인기를 버릴 생각이다. 어차피 이드의 초인기는 정식 루트로 얻은 것도 아닌 불법 유통품이니까.
[혼자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어요? 불쌍해 보이게.]
어느새 다가온 라미아가 이드의 목을 뒤에서 감싸며 말했다.
“그냥, 초인에 대해서 이것저것. 문득 생각한 건데 혼돈의 파편. 초인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 걸까?”
[왜 갑자기 미완의 마탑에서 초인으로 뛰는 건데요?]
“아니, 생각해 보니까 미완의 마탑은 초인과 초인기에 대해서만 파잖아. 그럼 미완의 마탑에 기웃거리는 혼돈의 파편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초인 관련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잖아요. 당장 혼돈의 파편이 미완의 마탑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감고 있던 팔을 푼 라미아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런 영양가 없는 쪽으로 궁리하지 말고, 오늘 파티에 어떤 옷을 입고 참가할지부터 고민하는 게 어때요?]
“끄응, 그거 안 가면 안 될까?”
[황제가 꼭 참석하라고 했다면서요?]
“했지. 대신 어제 참석했잖아. 그러니 이번엔 내가 빠져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요. 안 괜찮을 거예요.]
그럴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은 인간일수록 자신이 하는 건 당연해도 남이 하는 것은 인정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으니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괜히 황제를 상대로 그 습성을 시험해 볼 필요는 없다.
[그런데 누구하고 갈지 파트너는 정했어요?]
“그걸 왜 정해? 당연히 둘 다 같이 가야지.”
일반적으로 파티의 파트너는 한 명이지만, 이드는 두 사람과 함께 참석할 생각이었다. 싫다고 한다면 몰라도 참석하면 같이 하는 거지, 누군 같이 가고 누군 남는 게 어디 있나?
라미아, 일리나 둘 다 세상에 자랑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부인들인데 말이다.
대신 파티에 참석하더라도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얼굴을 비친 후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파티 준비까지 적당히 할 수는 없었다. 어지간한 드레스보다 소검후와 마법사라는 타이틀이 화려하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에 현혹되는 인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라미아의 드레스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만큼 일리나의 드레스만 준비했다.
미리 맞춰 둔 드레스가 없기 때문에 지구의 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하는 김에 이드도 양복을 골라 입었다.
깔끔한 양복에 익숙해진 이드의 눈에 아나크렌 귀족의 복식은 조금 낡은 느낌으로 어색했는데, 마침 일리나가 지구의 드레스를 입었으니 기회다 싶어 양복을 꺼낸 것이다.
준비를 마친 이드는 적당한 시간에 저택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황궁으로 향하는 길은 러시아워의 도로처럼 복잡하게 막혀 있었다.
조금 빨리 나왔다면 편했을 수 있지만 차라리 이쪽이 나았다. 빨리 가 봤자 사람들을 상대하며 피곤할 뿐이니까.
승리를 기원하는 황제의 말이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자연스럽게 이드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는 귀족가의 레이디가 제법 많았다. 특이하다면 이번엔 이드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일리나를 보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일리나의 소검후라는 이름과 지구산의 특색 있는 드레스가 그녀들의 관심을 잡아 끈 것이다. 많은 관심에 라미아가 그녀를 옆에서 도왔다.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 던 이드 곁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접근했다.
“명예 후작님을 뵙습니다.”
“명예 후작님을 뵙습니다.”
각각 밝고 어두운 얼굴의 두 남자, 벤텀 백작과 사무엘 이었다.